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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47화 (147/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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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 클리어러 147화

나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수보타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맡긴 임무는 충실하게 이행하는 녀석이다.

여전히 겁쟁이처럼 굴기는 했지만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비명과는 다르게 점점 파티의 일원으로 익숙해지는 모양새였다.

아린이 연주하는 음악으로 움직임에 제약이 생긴 레굴라는 점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 땅속으로 다가올 때까지만 해도 우리를 포위하고 간단히 요리할 속셈이었을 것이다.

물론 던전 마스터는 게이머를 죽이기보다 그들에게 사냥당하는 일이 훨씬 많은 존재지만, 죽고 나면 리셋 돼서 새로운 놈이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세세한 기억이 누적되지는 않는다.

그저 새로 태어난 던전 마스터마다 오만한 태도로 침입자를 공격할 뿐이었다.

길고 퉁퉁한 몸을 부풀려 바윗덩이를 토해내던 레굴라는 그것이 통하지 않자 머리 부분을 석화시켰다.

암갈색의 피부가 부풀며 검은색으로 변했다. 마치 굵은 밧줄의 끝에 크고 묵직한 쇠구슬이 달린 것 같은 모양새이다.

몸을 비틀어 그것을 우리에게 휘둘러 왔다.

쿠웅!-

머리가 부딪친 곳에 구멍이 뚫리며 돌조각과 먼지가 날렸다. 파티원 중에는 그런 단순하고 무식한 공격에 쉽게 당할 만큼 움직임이 느린 멤버는 없었다.

다만 이 공간은 던전 마스터에게 유리하게 짜인 곳이다. 몸의 절반 이상을 땅속에 감추고 머리 부분만 휘둘러 댔기 때문에 반격을 하기가 상당히 애매했다.

이대로 던전 마스터가 계속 벽을 부수다 보면 쌓인 돌덩이로 인해 공간이 점점 협소해질 뿐이다.

반격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놈이 발광하듯 움직이는 것을 멈추게 해야 했다.

“스칼라!”

내 외침에 스칼라는 대답도 하지 않고 자기 역할을 인지했다.

날카로운 발톱을 땅에 박아 단단하게 몸을 고정한 그녀가 무시무시한 얼음폭풍을 쏟아냈다.

콰드드드득-

레벨 70대인 토플을 상대할 때만 해도 간단히 통하는 공격이었지만 역시 레벨 100이 넘는 던전 마스터를 상대로는 쉽지 않았다.

부분적으로 얼어붙었더라도 강한 힘으로 그것을 떨쳐 냈다.

나는 스킬 ‘분신’을 발동시켰다.

나를 꼭 닮은 두 명의 분신이 나타났다.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소달루스 세트를 착용한 두 명이 레굴라의 좌우로 흩어지더니 코리우스의 검을 들어 스킬을 뿜어냈다.

엑스 자 파동. 각자의 검에 워터 속성을 장착한 터라 새하얀 섬광 대신 강력한 물줄기가 터져 나갔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물줄기가 레굴라의 긴 목에 뿌려졌다.

나는 마법 스킬을 떨어뜨렸다.

“라이트닝 볼트!”

파지지직-!

강한 대미지가 박히는 것과 동시에 레굴라의 몸이 경직되었다. 스칼라가 다시 한 번 얼음폭풍을 쏟아내자 몸통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얼어붙었다.

날뛰던 레굴라가 움직임을 멈추자 멤버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공격을 했다. 트레앙이 나무를 베어내듯 도끼질을 하고, 암젤이 소환한 맹수들도 던전 마스터의 몸통을 마구 할퀴었다.

게이지가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레굴라에게 확실히 대미지가 쌓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직에서 풀려난 레굴라가 성난 모습으로 머리를 휘저어 댔다. 머리끝의 석화가 풀리며 대신 아래쪽 3분의 1 지점이 쩍 벌어졌다.

입을 벌리자 그 안에 수없이 박혀 있는 잘고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쿵! 쿵! 쿵! 쿵!

레굴라가 쏟아낸 충격파가 몸을 덮쳐왔다. 인지가 불가능한 영역에서 쏘아지는 파동이 방어구를 뚫고 몸속을 울렸다.

이럴 때는 그저 몸을 웅크리고 버티는 수밖에 없다.

막거나 반격이 불가능한 공격이지만 한편으로 대미지가 크지 않은 공격이기도 했다. 대신 레굴라의 파동에는 ‘경직’과 ‘공포’ 속성이 내포되어 있다.

다행인 점은 멤버 중 누구도 속성 공격에 당할 만큼 레벨이 낮은 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동안 파동을 날리던 레굴라가 지친 모습으로 흐느적거렸다.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 체력을 회복하는 것이 이 녀석의 패턴 중 하나였다.

하지만 레굴라가 완전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트레앙이 놈의 움직임을 붙들었다. 그녀가 있는 힘을 다해 내려찍은 도끼날이 레굴라의 몸에 단단히 박혔다. 그 상태로 밖으로 끄집어냈다.

트레앙의 근육이 불긋불긋 솟아나고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났다. 줄다리기를 하듯 힘차게 거대 지렁이를 땅에서 뽑아냈다.

이어지는 또 한 번의 집중 공격.

도마 위에서 펄떡이는 활어처럼 레굴라가 몸부림을 쳤다.

11

레굴라와의 싸움은 시간이 갈수록 쉬워졌다. 아린의 연주는 그녀가 마나 포션을 복용하는 중간중간 멈추기는 했지만, 계속해서 던전 마스터의 몸에 영향력을 누적시켰다.

처음엔 기세 좋게 움직이던 레굴라도 점점 움직임이 게을러졌다.

그럴수록 우리 쪽에선 공격하기가 더 수월했고 대미지도 더 잘 들어갔다.

싸움이 끝을 향해 달려가자, 나는 의상을 다시 소달루스 세트로 바꾸었다. 코리우스의 검에 지옥불을 흘려 넣고 지렁이의 몸통을 마구 베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칼질을 멈추고 레굴라와 거리를 띄웠다.

스킬 ‘이글 아이’를 발동시켰다. 이 스킬을 사용하면 일정 시간 시력이 상승한다. 단순히 먼 곳을, 자세히 볼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던 것까지 간파하는 것이 가능하다.

나는 레굴라의 몸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혹시나 해서 사용한 스킬이었는데 뜻밖의 결과가 나타났다.

레굴라의 몸 특정 부위에서 희미한 빛이 일렁이고 있었던 것. 자그마한 빛이 움직이며 특정한 형태를 자아냈다.

‘그렇군.’

가상현실 게임에서도 정령이 빙의된 몬스터는 많았다.

그럴 경우 유형은 크게 두 가지였다.

몬스터에 더 가깝거나, 정령에 더 가깝거나.

전자는 말 그대로 정령의 자아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다. 조금 특별한 몬스터. 그 이상의 의미가 없는 경우.

반면 후자는 아직 정령의 자아가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경우이다. 다시 말해 자기감정이나 에너지에 잠식당하지 않고 몬스터를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정신력이 강한 놈이라는 뜻.

‘이상한데?’

사실을 알게 되자 위화감이 생겼다. 던전이라는 것은 결국 게이머를 양성하고 이쪽 세상과 이계를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에 불과하다.

던전 마스터에게 자아가 남아 있는 정령이 붙어 있다는 것이 기이하게 여겨졌다.

혹시 정령도 몬스터 역할을 하며 죽고 살아나고를 반복하는 것일까?

잠시 생각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정령은 일반 몬스터와는 다르다.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몬스터와는 전혀 다른 시스템으로 존재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정령이 몬스터화한 경우는 있어도 둘을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뭔가 비밀이 있는 것 같은데.’

그리고 그것이 이번 페이즈에서 쌍둥이 던전을 공략하도록 유인한 이유 같기도 했다.

나는 체력이 거의 바닥난 레굴라를 향해 활을 겨누었다.

‘하트 브레이커!’

활을 사용해 구사할 수 있는 최강의 스킬.

포탄처럼 날아간 화살이 향한 곳은 던전 마스터의 몸속에서 빛이 일렁이는 곳이었다.

외형과 무관하게 코어가 자리한 곳이다. 자기를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보고 빛이 움찔대며 이동하려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그런 식으로 레굴라의 몸 안에서 움직이며 대미지를 피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화살은 목표를 놓치지 않았다. 내가 설정한 탄착 지점은 레굴라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정령이다. 정령의 움직임에 맞추어 화살도 궤적을 바꾸었다.

쿠앙!

스킬이 연약해진 레굴라의 몸을 꿰뚫었다. 빛 덩어리가 화살 끝에 꿰어져 밖으로 튀어나왔다.

내 눈에는 열심히 버둥거리는 정령이 똑똑히 보였다.

희한하게 생긴 정령이었다. 몸의 절반은 황토색이고, 나머지 절반은 흰색이다. 그리고 흰색 부분에는 날개가 달려 있었다.

‘임퓨어?’

정령은 대개 한 가지 속성을 가지게 마련이지만 드물게 몇 가지 속성을 한 몸에 지닌 놈들이 있었다.

그 녀석들은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처음부터 별종으로 취급받는다.

그중 절반가량은 방황을 하다 사멸하고, 나머지 절반은 각각의 에너지를 다른 정령에게 빼앗기고 만다.

하지만 극히 일부는 끈질기게 살아남기도 했다.

이놈들은 당연히 처음부터 굳은 심지와 강한 능력을 갖고 태어난 놈들이며, 아마 퓨어였더라면 정령들 사이에서 꽤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것도 가능했을 녀석들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루트로 인정받지 못한 탓에 백이면 백 비뚤어지고 마는 타입이기도 했다.

가슴에 화살이 박힌 정령이 날 매섭게 노려보았다.

두 손으로 화살대를 붙잡자 그것이 녹아서 사라져 버렸다.

홱 몸을 돌리더니 비틀대며 날아갔다. 나는 놈을 쫓지 않았다. 예상대로라면 이제 곧 자연스럽게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본체가 빠져나간 레굴라는 온몸이 하얗게 굳어버렸다. 곳곳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퀘스트 ‘여섯 시간 안에 던전 마스터 물리치기’를 달성했습니다.]

[경험치 +40,000, GP +70,000을 얻었습니다.]

[레벨 120이 되었습니다. 스탯 포인트 3을 얻었습니다.]

[기존 클래스를 진화하거나 새로운 클래스를 얻는 것이 가능합니다.]

나는 이번에도 마법사 클래스를 한 단계 더 올렸다.

[C-003 던전의 마스터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지하 던전과 하늘 던전이 세트더라도 던전 마스터가 되는 것까지 묶여 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것은 곧 하늘 던전을 공략하면 PHASE 5의 영토 퀘스트를 클리어하게 될 거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상이 맞다면 아까 레굴라의 몸에서 빠져나간 정령은 하늘 던전까지 장악하고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에게 패하면서 자신의 터 절반을 빼앗기게 된 것.

얼굴이 확실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꽤 분한 기운이 느껴졌다.

녀석도 내가 평범한 방문객이 아니라는 것은 느꼈을 것이다. 아마 던전에 처음 발일 디딘 순간부터 그걸 느꼈을지 모르고, 싸우면서는 더욱 확실하게 깨달았겠지.

안개가 거두어지고 안쪽에 있는 단상이 드러났다.

나는 멤버들을 돌아보고 말했다.

“좀 쉬었다 가자.”

멤버들이 지친 몸을 추스르며 내 옆에 와 앉았다. 나도 그렇고 각자가 포션을 꺼내 소모된 체력과 마나를 보충했다.

수보타가 눈치껏 자기 인벤토리에서 간식을 꺼내 세팅했다.

꽤 지치기는 하지만 이대로 집에 돌아갈 수는 없었다. 지금 돌아가면 20층짜리 하늘 던전을 처음부터 다시 공략해야 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떠나 나는 강한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아까 보았던 임퓨어 정령. 그가 어떻게 이곳 던전에서 마스터 역할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다니까.’

정령이 있는 곳에는 늘 예측 못할 스토리가 기다리고 있다. 나는 수보타가 만든 샌드위치를 베어 물며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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