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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46화 (146/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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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 클리어러 146화

지하 던전의 가장 심층부를 차지하고 있는 인간형 몬스터 토플이 튀어나왔다. 괴상하고 끔찍한 몰골을 하고 있는 놈들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바로 눈이 없다는 점이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가 움푹 꺼져서 퇴화한 흔적을 보면 처음부터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서식하는 곳이 어두운 지하 던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필요가 없어진 것일 터.

대신 그런 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납작한 코를 벌름거려서 냄새를 맡고, 축 늘어져서 쭈글쭈글한 피부로 적의 기척을 알아낸다.

신장은 150센티미터 정도에 불과해 인간의 평균 신장보다 작다. 다만 레벨이 70대에 달하고, 서너 마리가 무리지어 다니는 것이 보통이라서 만만히 볼 수 없는 몬스터였다.

마법사 서클이 4가 되면서 사용할 수 있게 된 기술이 하나 있다.

파이어 인챈트.

기본적으로 무기에 불 속성을 넣는 건-그것도 그냥 불이 아니라 지옥불을- 전부터 가능했지만, 파이어 인챈트를 사용하면 그 수준이 확연히 달라진다.

속성을 부여하지 않은 경우의 위력이 1이라면, 불 속성을 부여하면 1.2나 1.3이 되고, 파이어 인챈트 스킬을 쓰면 1.5에서 2까지 위력이 상승한다.

그냥 마법사가 아니라 웨펀 마스터까지 겸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대단히 유용한 스킬인 셈이다.

물론 소모되는 마나의 양이 꽤 크지만, 익숙해지면 수시로 위력을 조절하면서 마나소모량을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다.

“쿠구구국!”

“쿠구국!”

마치 비웃는 듯 기분 나쁜 입소리를 내며 토플 세 마리가 달려왔다.

최전방은 수보타와 트레앙, 칼리타가 맡고 있다.

그중에서도 어그로 담당인 수보타는 적어도 감각이 발달한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특출한 존재감을 자랑했다.

그가 부는 유혹의 호루라기는 시각 이외의 감각이 유독 발달한 토플을 괴롭게 한다.

거기다 수보타는 겁이 많기 때문에 본능이 발달한 몬스터들에게 자연스럽게 ‘먹잇감’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고작 쉬운 먹잇감밖에 안 되는 존재가 짜증스러운 소리를 내고 있으니 몬스터들의 신경이 더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삐이익! 삐익!

수보타는 애탄 마음으로 시끄럽게 호루라기를 불어댔다.

‘오지 마! 이놈들아! 히이익!’

토플들은 다른 파티원에게 신경 쓸 여력 없이 수보타에게만 집중했다. 그중 한 놈이 훌쩍 도약해 수보타의 연약한-그러나 실제로는 이빨이 박히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했다.

쐐애액-

놈의 등을 향해 지옥불이 장착된 화살이 날아갔다. 동급 최강의 무기라고 할 수 있는 바키움의 시위에서 튀어나간 화살은 정확히 토플의 등판을 꿰뚫었다.

“쿠아악!”

기회를 포착한 트레앙이 도끼를 휘둘러 놈의 머리통을 쪼갰다.

남은 몬스터 두 마리에게는 칼리타가 얼음 폭풍을 쏟아냈다.

우두둑-

얼어붙은 몬스터들이 제자리에 굳은 채로 덜덜 떨어댔다. 암젤이 사자를 소환해 놈들을 간단히 부숴 버렸다.

지하 던전 최하층은 자체가 완만한 내리막으로 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강력하고 사나운 토플이 등장했지만 어느 순간이 되자 몬스터의 등장이 딱 멈추었다.

내리막의 끝에는 넓은 평지가 있었다. 중앙 무대를 중심으로 배경이 희미해지고, 정교한 연출처럼 안개가 피어올랐다.

쿠르릉.

발밑이 흔들렸다. 두알리가 나타날 때처럼 잘고 미약한 떨림이 아니라 훨씬 묵직한 진동이다.

게다가 신중하기 짝이 없는 두더지 몬스터와 달리 지금 나타날 녀석은 굳이 자기 존재감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던전에서 이런 오만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마스터 말고는 없다.

멀리서 보이던 땅의 융기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자갈들이 튕겨 나가며, 마치 물살을 가르는 식인상어처럼 접근해 왔다.

나는 입고 있던 의상을 바꾸었다.

“모르돈.”

투박하지만 견고한 내구성을 자랑하는 소달루스 세트가 진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대마법사의 로브로 바뀌었다.

‘파이어 볼트!’

꽈르릉!

지하 던전 안에 불벼락이 떨어졌다. 바닥이 파헤쳐지며, 그 안에 흉물스럽게 꿈틀거리는 암갈색의 머리통이 드러났다.

굵은 원통형의 몬스터가 꿈틀거리며 치솟았다. 지렁이는 벌레로 취급될 만큼 하등한 생물이지만 크기가 이 정도로 커지면 문제가 달라진다.

단순한 만큼 강력한 존재.

게다가 레굴라는 결코 하등한 생물이 아니다. 녀석의 코어는 정령이고, 정령은 기본적으로 영리한 존재이다. 본능적으로 방해자를 떨쳐 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거대 지렁이의 몸을 빌리고 있다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대단히 강력한 힘을 지닌 정령이라는 뜻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본질이 흐려져 몬스터가 되었지만, 어쨌든 그 능력은 정령의 신비한 힘에 기인하고 있다.

넓은 빈 터가 몸길이 15미터의 지렁이가 등장하면서 갑자기 좁아졌다.

레굴라를 상대할 때는 특별한 요령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어설프고 단순한 전략은 통하지 않는다.

어중간한 공격은 튕겨 나오게 마련이고, 놈이 경계를 해서 몸뚱이를 강화시키면 상황은 더 어려워질 뿐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면의 곡.

아린이 연주하는 스킬 중 하나이다.

지렁이는 기본적으로 활동적인 생물이 아니다. 아무리 정령이 그것을 조종한다고 해도 본능을 숨길 수는 없는 법이다. 애초에 땅의 정령도 안정을 기본 속성으로 하고 있으니 그다지 활동적이라고 볼 수 없다.

수면 마법이 거대 몬스터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움직임을 느리게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반응을 늦출 수도 있다.

긴박하게 흘러가는 전장에서는 몇 초만 반응이 느려져도 많은 것이 꼬이게 되어 있다. 수면 마법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결국 레굴라는 몸을 움직이기가 무겁고 귀찮다고 여기게 될 것이고, 그럴수록 우리가 놈을 쓰러뜨리기는 점점 쉬워진다.

따로 지시를 하지 않았음에도 아린은 자기 역할을 알고 연주를 시작했다.

황금색 하프에서 흘러나오는 수면의 곡이 공간을 조금씩 채워 나갔다.

그녀의 연주는 같은 편에게는 의욕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한다.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예술의 영역에 속하고, 예술이라는 것은 결국 마음과 마음의 협응이다.

그녀의 따뜻하고 긍정적인 마음이 음악이 되어 동료의 마음을 북돋아주었다.

반면 마법 스킬은 정확하게 적을 대상으로만 발현된다.

아린은 현실로 나온 뒤 보았던 어떤 순간보다도 진지하게 하프를 퉁겼다. 금발 미녀를 중심으로 강력한 마나가 넘실댔다.

힘 있게 꿈틀거리던 레굴라가 달라진 공기를 감지했다. 숨을 쉬듯 몸통을 꿀렁거리며 조용히 변화의 원인을 추적한다.

나는 수보타에게 소리쳤다.

“수보타! 너는 아린을 지켜!”

마법사의 최대 약점은 영창을 하는 순간이다. 강한 마법을 발현하고자 할수록 영창이 길어지고 적에게 무방비로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진다.

아린의 클래스는 악사이지만, 넓게 보면 마법 스킬을 쓰는 유형에 속한다. 영창을 하지 않더라도 스킬을 쓰려면 기본적으로 연주를 해야 했기 때문에 그 모든 순간이 마법사가 영창을 하는 것과 비슷했다.

혼자서는 큰 힘을 발휘하기 힘든 타입이고, 따라서 보호해 줄 동료가 필요하다. 특히나 지금처럼 온 힘을 다해 연주를 할 때는 그런 존재가 더욱 필수적이다.

수보타는 흉물스러운 던전 마스터의 등장에 기겁을 하고 있다가 내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의 임무는 어그로를 끄는 것이지만 던전 마스터를 상대로 그렇게 했다가는 패닉에 빠져 기절을 할지도 모른다.

내가 그를 굳이 사냥에 동참시키는 이유는 두려움에 적응하고 빨리 제 역할을 해내길 바라서였다. 만약 무리한 요구를 해서 그 두려움이 커진다면 당연히 목적과는 반대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던전 마스터를 상대로 어그로를 끄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아린을 지키는 것 정도는 충분히 맡겨볼 만한 임무였다.

“아, 아린 말씀입니까요……?”

수보타는 얼른 고개를 돌려 후방에 있는 아린을 찾았다.

그녀는 여느 때와 같이, 아니, 여느 때보다 훨씬 집중해서 연주를 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 이마에 땀까지 송골송골 맺혀 있는 것이, 극도의 몰입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침 그녀를 향해 레굴라가 토해낸 돌덩이가 날아갔다. 돌덩이는 크기도 크기지만 레굴라의 몸속을 거치며 독성으로 코팅되었다.

수보타는 어금니를 깨물고 아린에게 달려갔다. 돌덩이가 날아가는 속도를 감안하면 망설일 틈이 전혀 없었기에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를 냈다.

눈을 질끈 감고 돌덩이를 향해 몸을 날렸다.

뻐억!

“컥!”

커다란 돌덩이와 몸이 반토막이 날 정도로 강하게 부딪혔다. 반사적으로 소리를 지르긴 했지만 물론 통증을 느끼지는 않는다. 신체 강화 스킬을 얻었기 때문에 몸의 형태가 변형되지도 않았다. 다만 독성이 몸에 침투하여 혈류가 느려지고, 피부가 부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마저도 불사의 몸을 가진 그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날뛰던 독성이 스스로 지쳐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에.

“괜찮아?”

수보타는 부어오른 입술로 아린에게 물었다. 하지만 아린은 연주에 집중한 나머지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

수보타는 그녀의 모습에서 일종의 경이를 느꼈다. 이 정도로 집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동료를 믿는다는 뜻이다.

그 동료 중에는 물론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새삼스러운 눈으로 파티원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

전에는 그저 그들이 자신과 다르다고, 사람마다 잘하는 게 따로 있고 자신이 몬스터와 싸우는 현장에 있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전장을 바라보는 감회는 평소에 느끼던 것과 사뭇 달랐다.

주인님이나 다른 동료들이 처음부터 저렇게 강했던 것일까?

동료를 믿고 용감하게 싸운 결과 결국 지금과 같은 강함을 손에 넣었을 것이다.

‘주인님이 나를 괴롭히기 위해 여기 데려온 것은 아니지.’

전에 모셨던 슬라둠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겠지만, 지금 모시는 주인은 아니다. 표면상으로는 주종관계지만 마치 친구처럼, 어쩔 때는 가족 같은 태도로 대해준다.

그는 자기 안에서 무언가가 근본적으로 바뀐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 이 파티의 일원으로서 싸운다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동료들과 함께라면 자신의 단점 따위야 금방 덮이고도 남는다. 오히려 이 파티의 일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불끈 주먹을 쥐고 전방을 주시했다.

때마침 자신에게 날아오는 또 하나의 돌덩이가 보였다.

“끄아아악!”

‘사람은 쉽게 변하는 게 아니구나!’

저절로 새어 나오는 비명에 좌절감을 느낀 수보타는, 그러나 자기가 아린을 지키기 위해 서 있던 곳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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