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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44화 (144/245)

# 144

독식왕 : 클리어러 144화

8

나는 병우 일을 처리하는 것은 이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 이상 하는 것은 그에게 너무 안된 일이다.

특별히 다른 동기를 가지고 한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앙심을 품거나 반격을 할 리도 없었다.

다만 처리해야 할 문제가 한 가지 더 남아 있기는 했다. 병우의 아이디로 사진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사과글을 게시하기는 했지만, 그걸 보고 모든 회원이 포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기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특히 개중에 기자처럼 정보를 파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손해 보는 셈 치고 더 적극적으로 파헤치려 할 수도 있다.

만약 진실로 밝혀지지 않더라도 ‘이런 해프닝이 있었다’라는 식의 기사를 쓰는 것도 가능할 터.

그것 역시 내 입장에서는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당장 머릿속에 여러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고작 스무 살이고, 게이머가 된 지도 몇 달 되지 않지만, 내 안에는 십 년이 넘는 경험이 고스란히 축적되어 있다.

학교에 다니고 친구를 사귀는 등의 평범한 경험이 아니라 몬스터를 죽이고, 퀘스트를 공략하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한 경험이 각인되어 있는 것.

머릿속에 착착 떠오른 방법들 중에 나는 가장 온건하고 뒤탈이 없을 만한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 방법은 이계에 갔을 때 한 번 써먹은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하루 던전에 나가지 않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지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모든 위험 가능성을 제거할 수단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뭔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올지 모르니까. 조금만 수고를 한다면 가장 나은 결과를 얻는 것이 가능하다.

나는 계획을 완벽히 수행하기 위해 또 한 명의 브레인에게 상의하기로 했다.

티코이만큼 친밀하지는 않아도 내 비밀에 상당히 근접해 있고, 또 그것을 감추어주려는 의지도 지닌 인물이다.

노아는 내 연락을 받고 매우 반가워했다.

“오! 성오 씨! 이 시간에 웬일입니까?”

다시 느끼지만 그의 한국어는 현지인보다 더 능숙했다.

“노아, 혹시 지금 바쁜가요? 상의할 일이 있는데?”

“성오 씨가 상의할 일이 있다는데 그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괜찮으니 편하게 말씀하세요.”

전화기 밖에서 ‘자기, 누구야?’ 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이머의 날카로운 청력으로 판단컨대 TV에서 자주 들었던 목소리 같다. 쇼 프로그램보다는 암젤이 즐겨보는 드라마에서 들었던 것 같았다.

‘역시 스케일이 다르구나…….’

할리우드 스타들과 수십 건의 염문을 뿌렸던 남잔데 한국 연예계 정도는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간단히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성오 씨에게 불편한 일이 생기지 않게끔 나름 신경 쓰고 있었는데, 오늘 그런 일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네요.”

나는 노아의 말을 듣고 살짝 놀랐다.

나한테 불편한 일이 안 생기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고?

개인적으로는 매스컴 노출을 꺼렸기 때문에 정보가 많이 새어 나가지 않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정보를 캐내는 데 집요한 언론에서 그 정도로 단념했다는 것이 이상했다.

정확한 방법은 모르겠지만 노아가 나와 OG에 관한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게끔 수를 쓰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이 정도 수완이 있으면 자기 스캔들 기사 좀 신경 쓸 일이지.’

미국 언론은 한국 언론보다 더 유능한 건가? 그걸 떠나 노아 자신이 스캔들 기사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머리가 좋은 인물이니 가십에 치중하다 보면 더 중요한 정보는 쉽게 감출 수 있다고 판단한 건지도.

어찌 됐든 지금 내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노아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 말투로 물었다.

“제가 어떻게 돕기를 바라세요, 성오 씨?”

나는 그 말에서 노아도 나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알아서 처리해 주세요’라고 하면 금방 그렇게 해줄 것이다.

하지만 부하 직원에게 일을 시키는 것처럼 그렇게 말하고 싶진 않았다.

“이미 게시글을 지우고 대신 사진이 가짜라는 사과글을 올렸습니다. 다만 내일 던전에 찾아올지 모르는 사람들이 걱정이에요. 그 문제도 제가 처리할 수 있긴 한데 그래도 최대한 깔끔한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렇군요. 혼자서 처리할 수 있으시다고요…….”

노아의 말투가 의미심장했다. 그가 이렇게 말할 때는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아 이상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쾌한 기분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모로 적이 아닌 동료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인물이다.

우리는 몇 마디 얘기를 더 나누었다. 노아가 해줄 일은 솔직히 큰일이 아니었다. 그냥 자그마한 도움 정도.

더욱이 노아 정도의 재력과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라면 더 쉬운 일이다.

“준비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고마워요. 하던 일 방해해서 미안하고요.”

내 농담에 노아가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 저는 이런 일이 프라이버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뜻밖에 성오 씨는 여자 문제는 엄격한 것 같더군요. 혹시 상의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하세요. 형으로서 상담해 드릴 테니까.”

“든든하네요.”

전화를 끊은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노아가 여자 문제를 상담해 준다면 정말 든든할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원래부터 타고난 미남인데다 재력까지 좋은 인물이 평범한 남자의 연애 상담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 역시 이미 평범과는 거리가 멀다.

본의 아니게 십 년이나 가상현실 게임에서 지내면서 미녀 NPC들이 내게 충성을 다하는 게 익숙해져 버렸다.

그게 한 명이 아닌 다수라는 점에서, 자유로운 연애관을 가진 노아야말로 내게는 제격인 연애 상담자일지도 모른다.

9

다음 날.

나는 함께 던전을 공략할 파티원들을 모두 노아가 지정해서 알려준 장소로 보냈다.

오늘 나는 그들과 따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입구로 한꺼번에 들어간다면 호기심에 나온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좋은 먹잇감을 던져 주는 셈이 될 테니까.

부가티를 타고 갈까 하다가 올 때는 멤버들과 같이 와야 한다는 생각에 택시를 탔다.

슈퍼카를 두고도 마음껏 못 모는 처지라니.

얼른 주거지를 옮기고 파티원 전원에게 자동차가 지급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던전에 도착하자 아니나 다를까 적지 않은 사람이 그 앞에 모여 있었다.

지정 범위 안은 민간인 통제 구역이기 때문에 허가 없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그 경계에서 한가하고, 호기심에 충만한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여자는 한 명도 없다. 카메라를 목에 건 사람들이 많아서 누가 기자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만약 어제 병우의 아이디로 조작이라고 글을 올리지 않았더라면 방송국에서 정식 촬영을 내보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정도로 화제가 될 만한 사안이니까.

사람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게이머에 대해 관심이 많았지만 그 수요를 모두 충족시킬 만큼 기삿거리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마치 경기가 없는 기간에 축구팬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수많은 찌라시 이적 기사가 범람하는 것과 같다. 뭐라도 물리면 철저하게 털어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물론 내가 그 가십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사양이었다.

유유자적한 걸음으로 나타난 나를 보고 몰려 있던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들의 표정을 읽는 것은 아주 쉬웠다.

호기심, 그리고 실망감.

절반 이상이 따라오는 멤버가 없나 내 뒤를 보면서 확인했다.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내 귀에 일행에게 타박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봐, 본인이 조작이라고 했는데 굳이 그걸 확인하러 올 필요가 뭐가 있어?”

“여기 안 왔어도 할 일 없었잖아. 그래도 조성오 실물을 봤으니까 시간 낭비는 아니야.”

“조성오 실물은 개뿔!”

나를 본 것만으로는 절대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을 보면서 내심 실망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 역시 남자이기 때문에 이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가까워지는 나를 보고 누군가가 소리쳤다.

“조성오 씨! 팬입니다!”

목에 걸려 있는 사진기에 손을 가져가는 사람은 없었지만 어쨌거나 내게 어느 정도의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굳이 말하자면 그 호기심 중 상당 부분은 호감과 동경이라고 할만 했다.

택시를 타고 나타나는 모습에서 그런 감정이 조금 반감되기는 했겠지만.

나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다른 사람이 물었다.

“오늘 혼자 오셨나요?”

“네, 왜요?”

내 반문에 스무 명 이상 되는 남자의 입이 다물어졌다. 실망감이 역력한 얼굴들.

시간 낭비를 했다는 낭패감이 노골적으로 보인다. 누군가가 포기할 수 없다는 듯 의문을 제기했다.

“C급 던전을 혼자서 공략하신다고요? 제가 알기로는 조성오 씨는 B급 게이머인데, 그사이 등급이 더 오르기라도 하셨나요?”

상식적으로 A급 게이머라 하더라도 C급 던전을 혼자 공략하러 오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파티를 구성해 더 높은 등급의 던전을 공략하는 것이 효율적이니까.

남자들의 시선이 그야말로 먹잇감을 포착한 이리처럼 번뜩거렸다. 하기야 애초에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니 평일 오전에 미녀 게이머들을 확인한답시고 이 자리에 나온 거겠지.

뭐라도 붙잡고 늘어지고 싶은 기분일 터.

나는 일부러 천진하게 되물었다.

“안 되나요?”

남자들이 또 한 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물론 안 될 건 없지.

의심이 가지만 더 이상 캐물을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때 또 한 명이 나섰다. 허름한 재킷을 입고 뿔테 안경을 쓴, 하지만 복장과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 카메라를 목에 건 인물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가 전문가라고 느꼈다. 이 상황에서 전문가라 함은 기자를 뜻하는 것이다.

검지로 안경을 끌어 올린 남자가 날카롭게 물었다.

“물론 안 될 건 없습니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상식에 어긋나는 일인 것만은 틀림없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베일에 싸여 있는 OG 멤버들의 실물을 확인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혹시 혼자만 나타나신 게 그녀들을 공개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그러신 건 아닌지요.”

‘오오…….’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정공법인 동시에 아주 예리한 질문이다. 더구나 이자는 OG 멤버를 지칭하며 일부러 ‘그녀들’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한마디로 남성들의 의욕이 다시 한 번 충전되었다.

누군가 대표로 목적을 밝힌 덕분에 굳이 더 이상 감추려 할 필요도 없어졌다.

그래, 우리는 절세미녀라는 OG의 여자 게이머들을 확인하기 위해 왔다. 우리는 여자 아이돌보다 미녀 게이머가 훨씬 레어 하다고 생각해!

의욕이 충만한 나머지 이유 없이 카메라에 손을 대는 사람도 있었다.

“하아…….”

갑자기 내쉰 내 한숨에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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