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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42화 (142/245)

# 142

독식왕 : 클리어러 142화

5

병우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짜식들이. 거짓말 아니라니까. 사람 말을 못 믿어!”

처음에는 사진까지 공개할 생각은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기보다 자기만의 소중한 컬렉션으로 삼으려 했다.

당분간 조성오가 계속 던전에 오게 될 테니 그때마다 컬렉션을 추가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팬카페에 접속해 오늘 조성오와 OG 멤버들을 본 게시글을 올린 순간, 집중 질타를 받게 되었다.

증거 있느냐면서, 어디서 유언비어에 기름을 부으려는 거냐며 비난이 쏟아졌다.

급기야 허언증 걸린 관심종자라는 말까지 들었다.

울컥한 심정에 올린 사진은 삽시간에 조소 섞인 비난을 잠재웠다. 그뿐 아니라 조회수가 급격히 올라가더니, 심지어 한 시간 만에 팬카페 회원 수가 300을 넘는 숫자에 도달했다.

사진을 다운로드하지 못하게 막아놓아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회원들이 여기저기 퍼 날라 더 큰일이 날 뻔했다.

비난을 하던 회원들은 금세 태도를 바꾸었다.

-죄송했습니다, 형님. 일하시는 곳이 어딘지 알려주십시오.

-사진 한 장만 더 공개해 주면 안 될까요? 굽신굽신.

-조성오가 내일도 그 던전에 오나요?

병우는 우쭐한 마음에 OG 멤버들을 실물로 본 소감과 그녀들이 앞으로 일주일간 자기가 일하는 던전에 올 거라는 얘기까지 털어놓았다.

별생각 없이 신나서 떠들어 댄 거지만 반응은 즉각 나타났다.

-우와! 나 내일 당장 그 던전에 간다!

-뒷모습만 봐도 이런데 앞모습은 얼마나 예쁠까!

-나 인천인데 출발했음요.

-대전도 출발준비 완료! 오늘 모텔에서 자고 눈 뜨자마자 던전으로 갈 거임.

“시발. 엿 됐다…….”

병우는 자기가 불러온 소동에 마음이 아득해졌다.

던전 관리소 공무원의 준칙 중에는 게이머의 활동을 임의로 방해하거나, 정보를 함부로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다.

이것에 민감한 게이머가 많기 때문에 큰일로 불거져 해고된 사례만도 부지기수다.

‘어쩌지?’

남들이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우쭐함으로 저지른 일이지만, 설마 일이 이 지경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

패닉에 휩싸여 있던 그는 한 시간 만에 안정을 되찾았다.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

아무리 유명 게이머라도 익명으로 가입한 팬카페의 개인 정보를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기가 정보를 알리기 전에도 이미 조성오는 유명인이었으니까, 언제 겪어도 겪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니 오히려 자신이 옳은 일을 한 것 같은 착각마저 생겼다.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 수 있으면서 노아 같은 유명인과 친구고, 게다가 미인 게이머들을 대동하고 던전을 공략하러 다닌다.

그게 어떤 기분일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단지 운이 좋다는 이유로 말이지.’

이유 없이 반감이 일었다. 자신이 공무원이 된 것은 각성할 때 능력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게이머는 모두 성장을 하지만, 그것으로 올릴 수 있는 능력의 차이는 크지 않다.

대개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큰 고생을 담보로 해야 한다. 게이머계가 철저한 피라미드 구조로 유지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게이머의 등급을 가르는 가장 큰 요인은 처음에 얼마만큼 높은 능력을 가지고 각성을 했느냐이다.

자신처럼 던전에 들어가 보지도 못할 만큼 낮은 능력으로 각성한 게이머는 공무원이나 되는 것이 최선이었다.

물론 이런 현실에 큰 불만을 갖진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각성하기 전에는 진로가 불투명한 취업 준비생에 불과했으니까.

사람 욕심이 끝이 없다고, 밤낮으로 바라마지 않았던 각성을 실제로 하게 되자 이왕이면 더 높은 등급이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생겼다.

오늘 조성오를 만나서 응원을 해달라고 한 것도 본심이 아니었다. 바보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해서 조성오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은 아주 잘 알고 있다.

다만 관리소에서 일하면서 얻은 경험 상 띄워주는 걸 싫어하는 게이머는 없었다. 그를 방심하게 하고 몇 장의 사진을 얻는 것이 목표였다.

‘거만한 놈이 사진도 거부하고.’

게이머의 귀찮은 점은 유명인인 주제에 일반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예인들은 자기와 관련된 안 좋은 루머가 날까 봐 일반적으로 친절한 태도를 보이는데, 게이머는 그런 것도 없다.

심지어 돈 많은 기업인들도 소비자와 언론의 눈치는 웬만큼 보는데.

‘그래도…….’

병우는 한숨을 쉬면서 의자에 등을 기댔다. 모락모락 머릿속에 피어나는 공상은 게이머의 사회적 지위나 조성오 따위가 아니었다. 오늘 보았던 절세의 미녀들.

늘씬하고 여성스러운 느낌의 서구형 미인과 은색 머리칼을 가진 도도하고 냉정한 인상의 미녀, 그리고 붉은 머리칼의 탄탄한 몸매를 가진 자유분방한 미녀까지.

여성 캐릭터를 잘 만들어내기로 유명한 섬나라 게임을 해도 이 정도 캐릭터들을 한꺼번에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게임으로 접하는 가상 인물과 현실의 인물은 생동감 자체가 다르다.

‘조성오 놈. 그 여자들과 이미 이런 짓, 저런 짓도 하고 있겠지?’

돈이 많고 명성까지 높으니 여자를 안으려고 하면 얼마든지 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보았던 그 미녀들과 가까운 사이라면, 다른 여자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 같았다.

‘게이머 여자들이 그렇게 죽인다던데…….’

상상은 끝도 없이 펼쳐졌다.

그는 결국 모니터에 펼쳐져 있는 조성오 팬카페 사이트를 치우고 찌르레기 폴더를 더블클릭했다.

‘어디 보자…… 최대한 닮은 사람으로…….’

OG 멤버들은 워낙 개성이 강해서 닮은 배우를 찾고자 하면 코스프레물이나 서양 패러디물로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순간 집중력이 최고로 높아진 그때.

띵동-!

갑작스럽게 울린 초인종 소리에 후다닥 폴더를 닫고 추리닝 바지를 끌어 올렸다. 하지만 곧 자신의 행동이 불필요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야?’

공무원이 되고 나서 자취 생활을 시작했는데, 집에 있을 때와 똑같은 버릇이 튀어나와 버렸다.

“아, 씨. 누구야?”

부끄러움이 지나가자 몰입을 방해받은 짜증이 솟구쳤다.

‘오랜만에 만땅으로 흥분했는데.’

매일 하는 행위라도 오늘처럼 특별히 집중이 잘되는 날은 더욱 특별하게 즐길 수가 있다. 그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화가 났다.

병우는 투덜거리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 시간에 찾아올 사람이라면 많지 않다. 집주인 아주머니가 아니면 잡상인, 종교 권유 따위겠지.

몇 걸음 되지 않는 현관으로 가는 동안 다시 한 번 벨이 울렸다.

띵동-!

“간다, 가!”

작게 투덜거린 뒤 현관문에 난 구멍으로 바깥을 확인했다.

“누구세요? 헉!”

병우는 흠칫 놀라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나고 말았다. 문 앞에 생전 보지 못한 대단한 미녀가 서 있었다.

“깜짝이야. 뭐야, 이게.”

‘오늘 무슨 날인가?’

아침에 관리소에서 보았던 OG 멤버들의 영상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데, 거기 결코 떨어지지 않는 수준의,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그보다 뛰어난 미녀가 자신의 집에 찾아와 벨을 누른다.

그녀는 누구냐는 자신의 물음에 아직 대답하지 않았다.

병우는 거짓말 같은 기분이 들어 미녀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 문구멍에 눈을 가져갔다.

그리고…….

“헉!”

바깥쪽에서 미녀가 자신을 마주 보고 있었다. 밖에서 본다고 보이는 구조가 아닐 텐데, 마치 자신과 시선을 맞추려는 의도인 것 같다.

병우는 한순간 머릿속이 강렬하게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찌르르 전기가 통해서 몸 안의 세포가 한꺼번에 바짝 서는 것 같은 느낌.

문 밖의 미녀가 작고 도톰한 입술을 열어 중얼거렸다. 귀에 들리지는 않아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병우 씨, 문 좀 열어줘요.”

말을 마치고 살짝 윙크를 했다. 가슴이 터져 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자가 어떻게 자기 이름을 알고 있는지, 자기 상태가 지금 정상이 아니라는 것 따위의 생각은 할 수 없었다.

홀린 듯이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눈앞에 뜻밖의 광경이 펼쳐졌다.

작은 구멍으로 보았던 미녀는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고, 대신 다른 여자가 서 있었다.

그것이 실망스럽지 않은 이유는…….

“에리나……?”

에리나는 찌르레기 폴더에 있는 동영상 중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배우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의 작품만으로 구성된 컬렉션도 외장 하드로 따로 가지고 있다.

‘은퇴한 배우가 왜 여기에…….’

그녀는 한때 누구보다 많은 작품을 찍으며 연기의 혼을 불살랐다. 그 때문에 몸을 혹사하여 일찍 업계를 떠나게 되었다.

물론 5년이 되지 않는 활동 기간 동안 출연한 작품이 웬만한 배우 십 년 분량을 훌쩍 넘기 때문에 크게 아쉬울 건 없었지만.

“리 상…….”

에리나가 특유의 고혹적이고 수줍은 음성으로 자신을 불렀다.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니 그녀는 메이드복을 입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이 베스트라 꼽은 그 작품에서 입었던 것과 똑같은 의상이다.

‘지금 나이가 30대 중반일 텐데…….’

물리적인 나이와 무관하게 그녀의 모습은 전성기 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아름다웠다.

“여, 여긴 어떻게…….”

“팬의 집에 직접 찾아가는 기획물을 촬영 중이에요. 리 상이 저의 골수팬이라는 말을 오래전부터 들었답니다.”

“그걸 어떻게……. 한국말은 왜 그렇게 잘하세요?”

“리 상을 만나기 위해 배웠습니다. 에리나 힘냈어요.”

에리나는 주먹을 쥐고 무릎을 작게 구부렸다 폈다. 과거 뭇남성들을 녹다운시켰던 시그니처 모션이었다.

후에 다른 배우들이 따라했지만 원조의 느낌은 누구도 재현할 수 없었다.

“헉!”

병우는 재빨리 문 밖으로 나가 주위를 살펴보았다.

“촬영 중이라면서 다른 사람은 안 보이는데요?”

에리나는 수줍은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 사이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어찌나 사이즈가 큰지 핸드폰이 그 안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당연하죠. 리 상과 저만의 프라이비토 비데오를 찍을 건데.”

“허억!?”

에리나는 살포시 병우의 가슴에 기대왔다.

병우는 여성의 살내음 때문에 현기증이 일어났다는 문학적 표현을 몸소 체험했다.

“내게도 이런 날이…….”

불과 몇 분 전까지 조성오를 부러워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에리나가 속삭였다.

“여기서? 아니면 들어가서?”

병우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안 될까요?”

“하이! 저도 병우 상과 여기저기에서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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