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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41화 (141/245)

# 141

독식왕 : 클리어러 141화

2

예상대로 쌍둥이 던전 공략은 순조로웠다. 지하가 테마인 던전답게 등장하는 몬스터는 대개 땅과 어둠 속성을 가진 놈들이었다.

나는 코리우스의 검에 빛 속성을 부여해서 싸웠다. 무기에 속성을 부여하는 것은 쉽지 않은 기술이지만, 하다 보니 점점 능숙해졌다.

웨펀 마스터가 됐다는 것은 무기술에 관한 한 최고의 경지에 다다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내 능력과 상관없이 시스템 상으로 모든 무기술에 통달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의미.

만약 가상현실 게임 안에서 100레벨에 웨펀 마스터가 되었다면 상당한 이질감을 느껴야 했을 것이다. 시스템상으로는 웨펀 마스터지만 경험과 스탯은 거기 따라주지 않으니까.

스킬이야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더라도 그 간극을 메꾸려면 꽤 고생을 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가상현실 게임 안에서 겪은 십 년간의 경험이 고스란히 축적되어 있다.

능력에 비해 스탯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느낌은 있어도, 그걸 감안한 상태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 노련하다.

무기술의 범위에는 당연히 속성을 부여하는 것도 포함된다. 시스템상으로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고, 내게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면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돌개 보드를 얻고 난 뒤 던전을 공략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각 층에서 달성해야 하는 최소한의 퀘스트만 달성하고 쌩 날아가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공략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물론 천천히 공략할 때의 이점이 있기는 하다. 그만큼 꼼꼼히 경험치를 얻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보다 메인 퀘스트를 빨리 달성하고 얻는 이점이 더 컸다.

일반적인 기준이라면 한 개나 두 개 층을 공략하고 멈추었어야 하지만, 오늘 우리는 네 개 층을 돌파했다.

그런데도 오히려 하나나 두 개 층을 공략했을 때보다 덜 피곤했다.

돌개보드를 타고 날아갈 때는 그만큼 휴식을 취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달리다시피하며 던전을 돌파할 때보다 체력적인 세이브가 많이 되었다.

돌아가기 전에 상점에 들러 포션을 보충했다.

던전에서 나가 관리소 쪽을 흘긋 보았더니 아침에 보았던 직원은 퇴근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가 호들갑을 떨던 모습이 떠올라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익숙해져야 하나……?’

아직까지는 언론 노출을 피하고 있어서 피부로 느끼지 않았지만 어차피 나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아야 할 운명이다.

물론 귀찮은 일은 최대한 피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면 내 태도를 바꾸는 게 더 빠를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지.”

이런 태도는 내게 매우 익숙하다. 가상현실 게임에서 무려 십 년 동안이나 이 생각으로 버텼으니까.

3

집에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식사를 하던 나는 티코이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주인님.

“무슨 일이야? 티코이.”

-혹시 오늘 누구를 만나셨습니까?

“누구? 오늘 던전에 들어갔던 것밖에 없는데?”

-주인님의 팬카페에 어떤 남자가 자랑질을 해놓았습니다. 자기가 일하는 던전 관리소에 주인님이 왔었다면서요. 몰래 사진도 몇 장 찍은 모양입니다. 뒷모습이나 흐릿한 사진밖에 없기는 하지만 다른 파티원들 사진도 찍혀서 지금 한창 난리가 났습니다.

“팬카페?”

나는 눈을 찡그렸다. 하지만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난리라니? 무슨 소리야?”

-전부터 OG 멤버들이 미녀라고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그게 오늘 사진 유출로 확인이 된 셈이죠. 내일 꼭 실물을 보겠다고 벼르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지방에 살고 있는 팬카페 회원들은 이미 서울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그보다 큰 문제는 일반인들 중에 기자나 파파라치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예상컨대 실물이 찍혀서 보도가 되기라도 한다면 일이 상당히 복잡해질 겁니다.

“맙소사.”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젓가락을 탁 놓았다.

“왜 그러니? 성오야?”

같이 밥을 먹던 어머니가 크게 놀라셨다. 늘 식사 때마다 전투적으로 임하는 아들이 갑자기 젓가락을 놓았기 때문에.

나는 전화기를 막고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티코이에게 지시했다.

“오늘 갔던 던전 관리소 직원이 사진을 찍은 것 같아. 혹시 글을 올린 회원 정보를 추적하는 것도 가능해?”

-물론이죠. 모든 회원의 개인 정보는 이미 확보해 두고 있습니다. 문자로 전송해 드리겠습니다.

“오케이. 지금 식사 중이니까 이따 계속 얘기하자.”

-넵, 주인님. 즐거운 식사 하십시오.

슬슬 유명세에 적응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물론 일시적인 해프닝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가면 그만이기는 하다.

하지만 파티원들의 정보가 노출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그들의 신분이 거짓이기 때문.

일반적인 관심에 노출된 정도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만 정도가 심해지면 더 자세히 알려고 하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국가나 길드의 정보망은 호락호락하지 않을 테니까,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 괜한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 될 수 있었다.

4

‘이런 게 있었다니.’

나는 티코이가 알려준 블로그에 접속을 했다. 아직 회원 수가 많지 않지만 분명히 그곳은 내 팬카페였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카페를 탐색해 보았는데, 노출된 정보가 적기 때문인지 유의미한 자료는 게시되어 있지 않았다.

등급이 빠르게 올랐다는 점이나 실제 전투 능력도 뛰어나는 얘기가 있기는 해도, 그저 ‘설’일 뿐이지 카페 내에서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른 바 팬카페 회원이라는 사람들도 확신을 못 하는 걸 보면 일반인들은 나에 대해 아는 것이 훨씬 적다는 의미다.

‘인터뷰에 응하지 않길 잘했네.’

마찬가지로 밝혀지지 않은 OG 멤버들이 절세미녀라는 것도 소문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늘을 기점으로 그것은 더 이상 소문으로 그치지 않게 되었다.

사이트의 게시물과 분위기를 둘러보는 동안 이 사이트가 만들어진 목적이 미지의 OG 멤버들, 즉 미녀들의 존재를 파헤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순수하게 나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지지하려는 목적을 가진 회원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이러니 반응이 열광적일 수밖에.’

그동안 소문에만 떠돌던 OG 멤버들의 실체가 드러나게 생겼으니 회원들의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은 당연했다.

나는 티코이가 보내온 문자를 확인했다.

오늘 던전 관리소에서 NPC들의 사진을 찍어 팬카페에 공개한 남자, 그자의 정보가 문자 안에 담겨 있었다.

이름은 이병우. 나이는 28세.

사는 곳은…….

‘가깝네?’

생각보다 거리가 가까웠다. 차를 타고 가면 십 분이면 도착할 거리다. 원룸에서 혼자 자취를 하며 사는 모양이었다.

나는 당장 외출 준비를 했다.

“어디 가는 거냐옹?”

침대 위에 엎드려 자고 있던 암젤이 벌떡 일어나 물었다.

“같이 갈래? 드라이브나 하고 오자.”

“오! 그거 좋다옹.”

암젤은 침대에서 내려와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펑!

“드라이브 가자는데 왜 변신을 하는 거야?”

의상을 따로 입고 있지 않은 상태여서 그녀의 옷차림은 매우 적나라했다. 속옷 같지도 않은 조그마한 천 조각이 겨우 중요 부위만 가리고 있을 뿐이다.

‘역시 들키면 곤란하겠네.’

귀엽고 요염한 분위기의 미녀가 살짝 경직된 내 옆으로 다가와 팔짱을 끼었다.

“뭐하면 드라이브는 나중에 하고 둘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있다옹.”

나는 팔을 빼면서 말했다.

“까불면 두고 간다.”

“쳇.”

암벨은 자기 인벤토리에서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그것은 전투 전용 의상이 아닌 평범한 옷이었다.

NPC들의 현실 적응 기간이 길어지면서 여자 멤버들은 자연스럽게 이곳의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직접 쇼핑을 하러 가지는 않지만 티코이의 도움을 받아 몇 벌의 옷을 구입한 모양이었다.

보라색 원피스에 하이힐까지 꺼내 신었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그 모습이 마치 화보에서 걸어 나온 것 같았다. 아니, 그 이상의 특별한 매력이 있다.

아마 사진작가가 이곳에 있었다면 참지 못하고 마구 셔터를 눌렀을 법한 독특한 매력.

내 생각은 더욱 단호하게 굳어졌다.

이런 매력을 지닌 NPC들이 공개가 된다면 당연히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단지 외모만으로 팬덤이 형성될 것이고, 그녀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외투를 입은 나는 방문을 나서며 말했다.

“가자, 암젤.”

어머니는 외출을 하고, 누나는 일을 나가서 아직 들어오지 않았으니 암젤이 인간형으로 변신했다 하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1층에서 열리는 순간 막 귀가한 누나와 맞닥뜨리고 말았다.

“어? 성오야, 어디 가니?”

“응, 잠깐 나갔다 올게.”

누나의 눈이 자연스럽게 내 옆에 있는 암젤에게 향했다. 그녀는 내 한쪽 팔을 꼭 잡고 있는 상태였다.

“이분은…….”

“아아…… 일하면서 알게 된 게이먼데 상의할 일이 있어서 잠깐 만났어.”

“집에서?”

“음……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누나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얘는? 뭐 어떠니? 너도 이제 어른인데.”

시선을 옮겨 암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쩜, 정말 미인이시네요. 우리 성오 여자를 많이 안 만나 봐서 많이 서툴러요. 아무쪼록 잘 부탁드려요.”

“걱정 마세요, 언니.”

암젤은 능청스럽게 내 팔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매일 봤으면서 못 알아보는구나.’

혹시 나중에 누나가 암젤이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오해하지 마. 이분이 친화력이 좋아서 이러는 거니까. 누나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 아니야.”

“어머, 얘는? 내가 무슨 생각을 했다는 거니?”

누나는 웃으면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그러면서 나한테 작게 속삭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잘해봐. 파이팅.”

암젤이 닫힌 엘리베이터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언니 참 좋은 분이시다옹. 이 모습으로 종종 이야기를 나눠야겠다옹.”

“꿈도 꾸지 마.”

허름한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은 면적이 매우 좁았다.

연식이 오래된 구식 자동차들 사이에서 내 슈퍼카는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좁은 주차장에 다닥다닥 자동차들이 붙어 있지만 내 차 주위에만 일정한 간격이 벌어져 있다.

부가티에 올라탄 나는 문자에 적힌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했다. 그것을 보고 암젤이 불만을 터뜨렸다.

“드라이브한다고 했지 않냐옹.”

“아무렴 어때. 그게 그거지.”

“흥.”

암젤은 다시 고양이로 변신했다.

펑!

몸 위로 쏟아진 원피스 밖으로 기어 나와 내 무릎 위로 올라왔다.

“맞다옹. 아무려면 어떠냐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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