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
독식왕 : 클리어러 140화
Chapter 40 - 새로운 동맹(3)
1
쌍둥이 던전의 테마는 단순하다.
하나는 땅속으로 뚫려 있고, 다른 하나는 하늘에 떠올라 있으니 ‘지하’와 ‘하늘’이 테마인 것이다.
같은 테마라도 디테일한 면에서 차이가 있고 그로 인해 상당히 다른 유형의 던전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던전의 개성을 가름하는 첫 번째는 테마이고,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등급과 등장 몬스터이다.
테마는 게이머 당사자들보다도 일반인의 인식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일반인들은 직접 사냥을 하지 않으니, 사냥을 하며 부딪치게 되는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던전을 바라보는 관점은 ‘와! 하늘에 떠 있네! 왕신기!’와 같은 것이나, 어떤 길드가 더 빨리, 그리고 더 높은 등급의 던전을 공략하느냐 하는 것 따위이다.
이를테면 영화를 볼 때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에 더 집중을 하고, 같이 작업하기에 얼마나 편한 인물이냐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과 같다.
반면 게이머들은 사냥을 하는 당사자이기 때문에 던전의 겉모습 이외에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다.
어느 정도 수준의 몬스터가 등장하느냐, 그 몬스터와 길드의 상성은 어느 정도냐 하는 것 등.
그런 면에서 나는 다른 게이머에 비해 확실한 강점을 갖고 있었다. 나 스스로 여러 개의 클래스를 아우를 수 있고, 속성도 하나가 아닌 여러 개를 다룰 수 있으니까.
거기에 파티원들의 개성을 어떻게 녹여내느냐가 전술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상세한 부분까지 조정하며 공략을 하지 않았다.
모든 던전이 쉬웠다는 게 아니라 아직 테마에 맞추어 전술을 짜기보다 레벨로 밀어붙이는 공략이 더 주효한 단계이기 때문이다.
‘레벨이 깡패다’라는 말은 게이머들의 세계에서는 절대명제나 다름없다. 아무리 상성이 좋지 않아도 등급이 높으면 그 자체로 몬스터를 압살하는 것이 가능하니까.
이론이 그렇지만 현실 던전 공략에서 자기 등급이 높다고 아무 던전이나 마구잡이로 공략하는 게이머는 거의 없다. 누구든 투자 대비 효용의 관점에서 의사선택을 하게 마련이니까.
공략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면 같은 노력을 들여서 더 쉽고,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공략을 선호하는 게 당연하다.
때문에 실력이 높고 유명한 길드일수록 ‘주 사냥터’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게이머의 수준이나 던전이 분포된 양태를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이다.
게이머의 등급도 그렇고 던전의 등급도 피라미드 구조니까.
양쪽 다 전 세계에 고루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실력 있는 길드들은 자기 지역에 있는 높은 등급 던전을 전용 사냥터로 삼고 있었다.
당연히 자주 공략한다고 해서 법률적인 소유권까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게이머 당사자나 일반인들의 관점에 주 사냥터는 특정 길드의 전용이나 다름없다는 인식이 박혀 있었다.
이것은 하나의 이슈를 낳기도 했는데, 바로 던전도 일반 부동산처럼 개인이나 단체가 소유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국가 입장에서는 당연히 개인에게 소유권을 넘기지 않는 편이 유리했으므로 국민안전 보장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모든 던전을 국가 소유로 하고 있었다.
혹자는 던전을 길드가 소유하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며, 오히려 초점은 던전 소유의 우선권을 그곳을 주사냥터로 삼고 있던 길드에 주어야 하느냐, 만약 그렇다면 그 우선권에 가격을 할인받을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어야 하느냐 라고 보았다.
국가와 게이머 간의 협상과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일반인들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닿지 않은 문제라 큰 관심이 없었다.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누가 소유하든 공략만 잘해서 안전만 보장되면 문제될 게 없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다수의 국민 정서는 던전 문제에 보이는 국가의 태도가 이기적이라고 보았다. 하는 것도 없이 이익만 독점하고 있으니까.
반면 게이머는 대체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집단이기 때문에 결과적인 승자는 그들이 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나는 지하에서 올라오는 음습한 공기를 맡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던전에 들어오든 내가 가장 먼저 느끼는 감각은 익숙함이다.
현실과 가상현실 게임에서 보낸 시간은 양으로 따지면 비슷하지만, 현실 경험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치중되어 있고 너무 오래전이다.
그에 반해 가상현실 게임 공간은 성장기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나 다름없었다. 그곳과 같은 느낌을 주는 던전은 내 입장에서는 현실보다 더 친숙했다.
맞는 표현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마치 ‘고향에 온 기분’이랄까.
저절로 기분이 고양되고 전투 의욕이 솟구친다.
“수보타.”
내 부름에 쥐를 닮은 이계인이 얼른 고개를 딴 데로 돌렸다. 나는 피식 웃음을 지은 뒤 처음보다 엄격한 말투로 그를 호출했다.
“수보타?”
그제야 모른 척하던 수보타가 얼른 달려왔다.
“주인님.”
“목소리 기어들어 가는 거 봐라. 너 아직 약 안 먹었지?”
“몇 개 남지 않았으니 아껴 먹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공략에서는 저를 제외하시는 게…….”
“헛소리는 집에 두고 왔어야지.”
단호한 내 표정에 수보타가 마지못해 인벤토리에서 물약을 꺼냈다. 조금 주저하다가 눈을 질끈 감고 그것을 목에 들이 부었다.
“호루라기는?”
“네……. 착용하겠습니다.”
수보타는 유혹의 호루라기를 꺼내어 자기 목에 걸었다.
뒤쪽에 있던 아린이 하프를 타기 시작했다. 특별한 효과가 담긴 연주는 아니었지만 그것은 자연스럽게 파티원들의 마음에 녹아들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의욕을 고양시킨다.
“찌지직!”
“찌직!”
지하 1층에서 처음 나타난 몬스터는 ‘두알리’라는 놈들이었다. 두더지형 몬스터로 평상시에는 땅 속으로 움직이다가 침입자를 만나면 튀어나와 공격하곤 한다.
가뜩이나 어두운 던전에서 땅 속으로 다니는 몬스터를 상대하는 일이라 쉬운 싸움이 아니었다.
놈들은 독특한 감각 체계로 우리 위치를 알 수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놈들이 어디로 움직이는 건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두알리를 상대로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미리 생각했던 게 아니라 놈들의 특성을 고려하자 갑자기 떠오른 발상이었다.
‘두알리’는 신중한 성격을 지닌 몬스터이다.
지형적, 상황적으로 유리한 입장이더라도 결코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놈들에게는 상대의 위치를 추적하는 감각 이외에도 상대의 감정을 감지하는 능력도 있었다.
침입자가 경계를 하거나 긴장한 상태일 때는 공격해 오지 않는다. 방심하거나 긴장이 풀어진 순간을 귀신 같이 알고 달려들었다.
던전 안으로 삼백 미터 정도 들어가는 동안, 스무 마리가량의 두알리가 꼬였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일부러 여유 있는 목소리로 파티원들에게 말했다.
“여기서 좀 쉬었다 갈까?”
“네? 벌써요?”
수보타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모두 내가 말한 의도를 알아차렸다.
암젤이 수보타를 향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라옹.”
나는 아린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연주 소리를 한층 크게 키웠다. 아름다운 선율이 귀에 꽂히자 의도하지 않고도 각자의 마음이 이완되었다.
편안함이 공간을 가득 지배하던 바로 그때.
쑤욱-
상황을 살피고자 얼굴을 내민 두더지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놈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을 굴리며 우리들의 행동을 살폈다.
나는 곁눈으로 놈의 위치를 확인하고 재빨리 스킬을 발동시켰다.
‘추적.’
마나덩어리가 손바닥 안에 모여들었다. 스킬의 위력 자체가 강해진 것은 아니지만 내 수준이나 마나양이 처음 스킬을 얻을 때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향상되었기에, 스킬을 쓰기가 매우 수월해졌다.
나는 마나 조각을 두알리를 향해 튕겼다.
찰싹.
마나가 들러붙는 게 내 눈에는 분명히 보였지만 두더지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처음 놈과 마찬가지로 뒤이어 고개를 내미는 놈들이 여럿 있었다.
신중한 몬스터이기 때문에 탐색을 하는 것도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성의 있게 여러 마리의 선발대가 우리의 동향을 살폈다.
눈을 말똥거리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보타를 제외하고, 모두들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내민 두알리에게 모두 추적 스킬을 걸었다.
잠시 후.
“찌지직!”
“찌직!”
여기저기서 두알리가 땅을 박차고 튀어나왔다. 날카롭게 번뜩거리는 손톱으로 할퀴는 품새가 꽤 살벌했다.
파티원들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모두 경계를 하고 있었으므로 각자 그 공격을 피해냈다.
다만 수보타만 두더지의 발톱에 얼굴이 할퀴어졌다.
“으아악!”
실제론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서 펄쩍 뛰며 허우적댄다.
‘용기의 물약을 먹었으면서 저 정도라니. 설마 내성이 생겼나?’
이쯤 되면 실제 자기감정과 무관하게 반사적으로 겁쟁이처럼 반응하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수만 년 동안이나 슬라둠에게 구타를 당하며 움츠리고 살았으니 놀라고 겁먹은 모습을 보이는 게 습관으로 굳어질 만도 하다.
파티원들은 피하기만 할 뿐 반격을 하지 않았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반격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레벨은 우리가 당연히 높지만 워낙 빠르고 은신에 능한 놈들이라 움직임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패하지 않을 당연하지만 놈들을 잡으려면 상당히 진을 빼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가장 안쪽에 선 채로 추적 스킬을 계속 사용했다.
‘전부 스물세 마리인가?’
이내 모든 두알리에게 추적 스킬을 거는 데 성공했다. 추적 모드로 들어가 공간 안에 있는 두더지들을 모두 시야 안에 담았다.
‘되는구나.’
깨진 폴리곤처럼 보이긴 하지만 땅 속에서 움직이는 두더지들의 위치가 정확하게 드러나 보였다.
‘다음은 쉽지.’
나는 두더지들의 움직임을 파악해 파티원들에게 알려주었다.
“칼리타! 네 쪽에서 한 놈 튀어나올 거야!”
“암젤! 이번엔 네 쪽이야!”
“트레앙! 1초 뒤에 나간다. 준비해!”
내 지시에 파티원들은 일사분란하게 대처했다.
칼리타는 튀어나오는 두더지를 낚아챈 다음 가슴에 손톱을 꽂아 넣었으며, 암젤은 소환수로 하여금 두알리를 물어뜯게 했다.
트레앙은 도끼로 인정사정없이 몬스터의 머리통을 내려찍었다.
“찍!”
“찌익!”
“찌지직!”
그런 식으로 절반가량이 퇴치되자, 두알리가 가진 또 하나의 습성이 발동되었다.
놈들은 자기네가 가진 은신 능력이 효과가 없으면 그냥 달아나거나, 이판사판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공격하는 두 가지 행동을 보인다.
하지만 이곳이 던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자는 선택지에 없었다. 던전 안의 몬스터는 무조건 게이머를 공격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으니까.
쑥!
쑤욱!
십여 마리 두알리가 땅 속에서 움직이는 전술을 포기하고 모두 밖으로 나왔다.
그것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수보타! 네 차례야!”
“네에?”
눈을 동그랗게 뜨기는 했지만 명령을 이행하는 데 인색한 녀석은 아니다. 곧 자기 목에 걸린 호루라기를 물고 힘차게 불어젖혔다.
삐이익-!
삐빅-!
날카로운 소리에 모두 눈살을 찡그렸지만 그중에서도 몬스터의 반응이 가장 격렬했다.
놈들의 성난 눈길이 수보타에게 몰리고 곧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엄마야!”
수보타가 뒷걸음치는 사이, 파티원들이 손쉽게 두더지들을 공격했다.
나는 처음부터 한자리에 선 채로 싸움에 일체 가담하지 않았다.
얼핏 시간을 가늠해 보니 스물세 마리 두알리를 잡는 데 약 십오 분이 소요되었다.
‘나쁘지 않네.’
아울러 기분 좋은 메시지 하나가 추가되었다.
[레벨 111이 되었습니다. 스탯 포인트 3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