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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37화 (137/245)

# 137

독식왕 : 클리어러 137화

일단은 조성오가 입장한 또 다른 통로의 존재를 밝혀야 했다. 하지만 직접 찾아가 본 그 장소에는 문이 존재하지 않았다.

조성오가 했던 대로 벽을 두드려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팀을 꾸려 C급 던전 최상층에도 들어가 보았지만, 같은 장소에 빛이 새어 나오는 바위 따위는 없었다.

‘착각일 리는 없어.’

스킬로 만들어낸 구체에 분명히 영상이 남겨져 있고, 무엇보다 조성오는 그곳에 들어간 뒤 열흘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았다.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다.

답답함을 느낀 미셸은 자신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고 결론 내렸다.

바로 조성오를 직접 만나는 것.

하지만 그 일은 간단하지 않다. 한국의 대부분 길드는 자신과 한 번이라도 만나기 위해 혈안이었지만 적어도 조성오는 아니니까.

OG는 명백히 피스&호프와 적대관계다.

피스&호프 역시 조성오에게 감정이 좋을 수는 없었다. 소모품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손에 적지 않은 길드원이 죽었으니까.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피스&호프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 감정을 일시적으로 누를 수 있지만, 조성오는 절대 그러지 않으리라는 점이었다.

미셸은 인상을 찡그렸다가 문득 코웃음을 쳤다.

‘내가 뭘 고민하는 거지?’

길드의 초창기 멤버로서 그녀는 피스&호프의 성장과 관련된 많은 사건에 직접 가담했다.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에 옮긴 일도 적지 않다.

노아에 대한 감정을 접고 니콜라스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계기도 그 일들을 겪으면서였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격.

니콜라스와 자신은 놀랍도록 비슷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다.

오늘날의 피스&호프가 있기까지 적지 않은 불법이 자행되었다. 그것들 중 상당수가 살인, 폭력과 같은 범죄였다.

니콜라스의 비서로 일하면서 주로 합법적인 업무를 담당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셸은 마음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도 참…….’

처음에는 인정하기 어려웠지만 자기 안에는 타인을 핍박하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본능이 내재되어 있다.

그것을 간파했기에 누구도 믿지 않는 니콜라스가 자신을 최측근에 둔 것이었다.

피스&호프에 있으면 어느 곳보다 안전하게 폭력적 본능을 발산할 수 있으니까.

그것만 충족된다면 자신이 길드를 배반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 것이다.

미셸은 테이블 위에 백지 한 장을 놓고 펜대를 굴려 계획을 짰다. 그리고 곧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지부장님.

“저를 위해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녀는 전화를 받은 상대방에게 자신이 방금 전에 짠 계획을 이야기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돼요. 다만 실수가 없게 진행해 주세요.”

-걱정 마십시오, 지부장님.

전화를 끊은 미셸은 입술 끝을 비틀었다.

‘가급적 직접 건드리고 싶진 않았는데…….’

처음 구슬에 기록된 영상을 본 뒤 조성오를 천천히 두고 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었다.

그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불가사의한 일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생각보다도 빨리 인내심이 바닥나고 말았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라고 했지.’

이전 피스&호프 한국 지부장이었던 데이비드 정은 보고를 할 때 조성오를 그렇게 비유했다.

그것은 물론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다른 의미로 조성오를 그리 표현하고 싶었다.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존재.

가능한 한 그가 얼마나 많은 수수께끼를 토해낼지 기다리고 싶었지만, 결국 그전에 배를 가르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했다.

‘대단해.’

한 명의 게이머가 피스&호프라는 거대 길드에 끼치는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과거 수년 동안 길드와 행보를 함께해 온 그녀이기에 이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를 통해 다른 국가나 길드가 범접하지 못한 새로운 진실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그것을 길드의 이익에 이용할 수 있다면…….

그동안 자신이 바라마지 않았던 니콜라스 곁에 나란히 서는 일이 가능하게 될지 몰랐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허락하지 않는 남자.

그를 사랑하게 된 운명을 저주했지만,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그녀의 가슴속에 은근히 피어올랐다.

7

나는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퀘스트를 확인했다. 이전에 치렀던 퀘스트는 차원의 통로를 완성하라는 다소 예외적인 것이었다.

그런 주제에 난이도는 다른 퀘스트에 비해 결코 쉽지 않았다.

메뉴를 실행시키고 퀘스트 항목을 터치치자 눈앞에 목록이 떠올랐다.

PHASE 5

[영토] - C급 던전을 두 개 이상 공략하라.

[명예] - 레벨 100이 넘는 카오스 게이머를 한 명 이상 처치하라.

*[특수 퀘스트] - 대리인을 한 명 이상 구하시오.

‘이번에는 세 개밖에 안 되네…….’

가벼운 마음으로 퀘스트를 훑던 나는 특수 퀘스트에 이르러 눈살을 찡그렸다.

‘대리인을 구하라고……?’

차원의 통로를 완성하라는 것은 특이한 경우였지만 일반적으로 특수 퀘스트는 달성하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는 퀘스트다.

나는 이 퀘스트가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게 주어지는 퀘스트에는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의지가 담겨 있다.

이 타이밍에 대리인을 구하라는 퀘스트가 주어진 이유는 결국 하나밖에 없다.

유진이를 미리스의 대리인으로 만들라는 것.

나는 잠시 멍하게 있다가 천장을 올려다보고 말했다.

“싫은데?”

그녀와 식사를 하며 생각했던 대로 나는 친구를 굳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사투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내 이런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은 퀘스트에 화가 났지만, 따지고 보면 대리인을 구하는 것이 특수 퀘스트로 주어진 것은 이 일이 내 선택에 달린 문제지, 강제성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후우…….”

그럼에도 찜찜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아 날 각성시킨 이는 나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 속에는 나조차 제어하기 힘든 클리어 욕구가 있다. 자연스럽게 게임 중독이 되었을 만큼 아주 지독한 본능이라고 할 수 있었다.

클리어하지 않아도 진행에 불이익이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이미 이런 퀘스트가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이상 나는 어쩔 수 없이 클리어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낀다.

‘안 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게임이 좋다지만 친구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면서 거기 집착하고 싶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자제력이 부족해 결과적으로 가족을 불행에 빠뜨리고 말았지만, 지난 십 년간의 시간이 내게는 큰 교훈이 되었다.

얼굴을 문질러 미련을 떨쳐 낸 나는 나머지 두 개의 퀘스트에 시선을 던졌다.

C급 던전 두 개를 클리어하라는 ‘영토’ 퀘스트와 레벨 100 이상인 카오스 게이머를 처치하라는 ‘명예’ 퀘스트.

이 중에서 먼저 골라야 할 퀘스트가 무엇인지는 자명했다. 당장 레벨 100이 넘는 카오스 게이머는 주위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굳이 찾으려고 노력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이제까지 흐름으로 보아 자연스럽게 그자가 내 앞에 나타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 해도 영토 퀘스트를 먼저 클리어하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C급 던전 두 개라…….’

내게 더 이상 C급 던전은 어려운 대상이 아니었다. 지금의 파티 전력이라면 어렵지 않게 공략을 할 수 있다.

나는 문득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껏 공략할 던전을 찾기 위해 잦은 검색을 했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던전의 정보는 대략 머릿속에 담겨 있었다.

‘그걸 공략하면 되겠네.’

남산 부근에는 독특한 던전이 하나, 아니, 두 개가 있다.

C급 던전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어서 쌍둥이 던전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여기에는 특별한 비밀이 숨어있었다.

둘 중 하나를 먼저 공략하면 곧바로 다음 던전의 최상층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 말은 곧 연속해서 두 번의 마스터전을 치러야 한다는 얘기인데, 이것이 꼭 강제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회가 한 번뿐이라서 실력이 되고, 도전 욕구가 강한 게이머들은 곧잘 두 번의 마스터전을 치르는 선택지를 택하곤 했다.

처음 선택의 순간을 흘려 버리면 쌍둥이 던전 중 두 번째는 다시 1층부터 착실하게 공략해야 한다.

C급 던전에 도전할 정도면 대개 대규모 파티, 아니면 길드 단위의 게이머이기 때문에 대체로 이런 사실에 큰 감흥을 느끼지 않았다.

던전 공략 하루 이틀 할 게 아니니까.

시간을 들여서라도 안전하게 공략하는 것이 우선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지.’

나는 쌍둥이 던전의 존재를 알았을 때부터 꼭 한 번, 두 번 연속 이어지는 마스터전을 치러보고 싶었다.

게다가 지금은 마땅한 동기까지 주어졌다.

과연 최상층을 공략하는 것만으로 던전을 완전히 공략한 것으로 쳐 줄는지 의심스럽지만, 왠지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퀘스트 자체가 쌍둥이 던전을 공략하라고 만들어졌다고 해도 무방하니까.

“음…….”

왠지 이번에도 낚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굳이 엇나갈 필요는 없겠지.

“속아준다.”

나는 이번에도 허공을 보며 말했다.

일이 잘 풀리려고 그런 것인지 쌍둥이 던전은 당장 모레 예약이 가능했다.

보통 이런 경우는 전에 예약을 했던 게이머들이 사정이 생겨 취소를 한 경우에 해당한다. 대기자가 있다면 바로 그쪽으로 순서가 돌아가지만 이번엔 그것도 아닌 듯했다.

나는 예약을 마친 뒤, 유진이를 만나러 가진 전날 밤을 새워 했던 게임을 실행시켰다.

한나절 만에 이미 3분의 2 이상 공략을 했고, 세 시간 정도만 더 하면 엔딩을 볼 것 같았다.

‘‘아주 어려움’으로 했는데 이 정도라니…….’

예전엔 게임들이 더 어려웠던 것 같은데…….

나는 한탄 섞인 한숨을 내쉰 뒤, 금방 게임에 빠져들었다.

8

‘대체 무슨 일이야.’

유진은 의아함을 느끼며 길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소집 메시지가 온 것은 밤 열두 시가 넘어서였다.

그것도 바로 다음 날 아침 아홉 시까지 길드에 나오라는 메시지가.

애초에 게이머들을 이렇게 긴급하게 소집할 일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던전에서 몬스터가 걸어 나오지 않게 된 지도 이미 수년이 흘렀으니까.

대개의 일은 적어도 며칠의 여유를 두고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길드에 새바람이 불기 시작한 후로 합동 공략 스케줄이 전혀 잡히지 않았으니까, 이런 갑작스러운 소집은 두 배로 이상한 일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더니 아는 얼굴 두 명이 다가왔다.

현아와 혜리.

그녀들의 얼굴에도 짜증이 한가득 묻어 있었다.

“유진아!”

“응, 언니들 왔어?”

“대체 무슨 일이라니?”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묻고 싶은데.”

“어휴, 빨리 여길 나가든가 해야지.”

현아가 한숨을 토해낼 때, 혜리가 이야기했다.

“혹시 기존 멤버들더러 나가라고 하려는 건 아닐까? 해고 통지를 문자로 하면 아무래도 예의가 아니니까 직접 나오라는 한 거 아니야?”

그 말에 세 명의 여자는 침묵했다.

상식에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추측이지만 현재 길드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들은 인상을 더욱 찌푸린 채, 열린 엘리베이터 문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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