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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36화 (136/245)

# 136

독식왕 : 클리어러 136화

나는 유진이와 저녁을 먹기로 한 레스토랑 건물로 들어가 자동차를 주차했다.

암젤이 티코이네 집으로 놀러 간 틈에 나왔기 때문에 그녀는 동행하지 않았다.

어머니나 누나가 집에 있는 경우 그녀는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 특히 식사를 할 때는 같은 테이블에 앉지 못했다.

그래서 배가 고프면 더 자주 티코이네 집으로 건너가곤 했다.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자 안쪽 테이블에서 유진이가 반갑게 손을 들어 올렸다.

평소에는 대체로 편한 의상을 선호하는 그녀이지만 오늘은 장소와 어울리게 상당히 여성스러운 옷을 입고 나왔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너 옷 입는 게 갈수록 세련되어진다?”

나는 오늘 캐주얼 정장을 입었다. 물론 직접 산 옷은 아니다.

티코이가 쇼핑을 해서 내게 맞추어 수선을 하고 코디까지 해주었다.

타고난 집사인 수보타도 이쪽 세상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어서, 자신만의 세련된 심미안을 내게 발휘했다.

집에 이런 식으로 코디가 된 옷이 여러 벌 있고, 그중 한 개를 골라 입고 나온 것이었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을 집어 들었다. 게이머가 된 이후로 대식가가 되어서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프다.

게다가 가상현실 게임에서 맛을 느끼지 못한 세월이 길기 때문에 음식에 대한 집착도 많은 편이었다.

“내가 미리 주문했어. 괜찮지?”

나는 웃음을 지으며 메뉴판을 내려놓았다.

“잘했어. 안 그래도 배고팠는데.”

“여기 음식 나오는 데 시간이 좀 걸리거든. 맛은 보장하니까 걱정하지 마.”

“땡큐.”

나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유진이에게 물었다.

“나한테 상의할 일이라는 게 뭐야?”

“응, 그거?”

유진이는 조금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너 길드 새로 만들었잖아.”

“응, 그랬지.”

길드 발족을 하기는 했지만 아직 사업 개시를 안 해서인지 내가 길드장이라는 자각은 약했다. 길드를 만들기 전에도 어차피 파티원들을 데리고 다니며 던전 공략을 했으니까.

실질적으로 바뀐 것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유진이는 머뭇대며 말을 이었다.

“그 길드에 나도 넣어주면 안 돼?”

“응?”

나는 놀란 얼굴로 유진이를 마주 보았다.

마침 음식이 나와서 테이블 위에 차례차례 접시가 놓였다. 내가 많이 먹는다는 것을 파악한 것인지, 주문한 음식의 양이 많았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종업원이 떠나간 뒤에도 내 시선은 유진이에게 꽂혀 있었다. 단순히 길드에 들어오겠다고 해서가 아니다.

내가 놀란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마나 호응도 81%…… Ok. 동맹자 미리스의 대리인이 될 수 있는 적합자입니다.]

[김유진을 미리스의 대리인으로 지정하시겠습니까?]

“어휴…….”

“응? 왜 그래?”

유진이가 빤히 바라보는 내 시선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대리인을 찾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것으로 아는데, 그 기준이 내게는 적용되지 않는 모양이다.

단순히 생각해도 현재 내 인간관계의 범위는 넓지 않은데, 그중 두 명이 벌써 대리인 적합자 판정이 나오다니.

나는 음식에 손대는 것을 잊고 생각에 잠겼다.

대리인을 찾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여태 동맹자의 대리인을 찾은 구체적인 메리트가 밝혀지지 않았다.

이 정도 높은 확률로 대리인을 찾는 게 가능하다면, 그 대상이 꼭 유진이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는 유진이를 대리인으로 만드는 데 심리적인 저항감을 느꼈다.

그녀가 대리인이 되면 필연적으로 내가 처한 상황이나, 이계에 대한 일들까지 모든 정보를 공유해야 할 테니까.

그녀와 무관하게 흘러가도 상관없을 격변에 함께 발을 담글 수밖에 없게 된다.

‘어쩌지……?’

지난번 공략 때도 느꼈지만 유진이에게 던전 공략은 일종의 놀이이다.

내가 게임을 하는 감각으로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처럼, 그녀도 비슷한 감각을 소유하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대리인이 된다면 더 이상 게이머로서의 일상이 놀이가 될 수 없다.

나는 몇 안 되는 인간 친구인 그녀가 그렇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손을 뻗어 유진이의 볼을 쓱 문지르며 말했다.

“여기 뭐가 묻어 있어서.”

내 손길이 닿자 유진이는 화들짝 놀랐다. 그녀의 얼굴에 빠르게 홍조가 피어났다.

나는 순간적으로 지금껏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던 일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 날 좋아하나?’

갑자기 머릿속에 많은 일이 스쳐 지나갔다. 어렸을 때의 기억부터 최근의 일까지.

어렸을 때 친구들은 내가 유진이랑 사귀는 거 아니냐고 숱하게 놀려댔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게임밖에 없었기 때문에 연애 감정 같은 것은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최근에 던전에서 암젤과 아린에게 질투를 느끼기도 했었지.’

“음…….”

NPC들이 내게 호감을 느끼는 것은 반강제적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진이가 나를 좋아한 것은 자연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아주 오래된 일인 듯했다.

그래서 내가 깨어나지 않았을 때 그렇게 오랜 기간 병원에 찾아왔던 거겠지.

나는 내 앞에 놓인 스테이크에 칼질을 하며 생각했다.

‘역시 안 되겠어.’

안타깝게도 내가 유진이에게 품은 감정은 이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내가 처한 상황은 한 여자를 좋아하기에 적절치가 않았다.

어떤 여자가 미모가 특출한 NPC에게 둘러싸인 남자와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시스템적으로 내 관심을 받지 못한 NPC들은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가 있었다.

가상현실 게임에서 직접 경험한 일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나는 진지한 얼굴로 스테이크를 입 안에 넣었다.

“오…… 맛있네.”

내 미식 감각은 티코이와 수보타 때문에 한껏 높아졌다. 그런 내 입맛에도 괜찮다고 느껴질 정도라면 굉장히 맛있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그렇지? 너도 맛있다고 할 줄 알았어.”

나는 상념에서 벗어나 우리가 나누고 있던 본래 화제로 돌아왔다.

일부러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길드를 만든 건 사실이지만 주된 활동은 어디까지나 사업적인 부분에 맞춰져 있어. 너도 알다시피 내가 길드를 이끌 정도의 실력은 안 되잖아. 애초에 전투 멤버는 최소한으로 하고, 던전 공략은 솔플 위주로 할 생각이야. 게다가 사업에 비밀스러운 내용이 많아서, 노아가 새 멤버를 들이는 데 까다로운 기준을 갖다 대기도 하고.”

“그렇구나…….”

유진이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기는 하지만 OG는 여타 길드와 다르다. NPC나 이계인과 함께 사냥을 다녀야 하는데, 일반 게이머를 길드원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안 될 말이다.

나는 이 얘기를 길게 끌지 않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왜 갑자기 길드를 옮기려는 거야? 너 그쪽 멤버들이랑 많이 친한 거 아니었어?”

지난번 D급 던전 공략 때 함께 나온 현아와 혜리를 떠올리면, 사냥실력을 떠나서 세 명이 꽤 호흡이 잘 맞고 사이도 좋아 보였다.

“언니들도 다른 길드로 옮기려고 알아보는 중이야. 우리 길드 분위기가 전과는 많이 달라졌거든.”

“분위기가 달라져?”

“길드장이 독단적으로 길드 규모를 키운답시고 외부 협력을 받기로 결정했어. 거기서 부길드장을 새로 보내 여러 가지로 간섭을 하기 시작했거든. 단순히 협력하는 수준이 아니라 집어삼키려는 의도로 보일 정도야.”

“집어삼킨다고? 협력을 요청했다는 곳이 길드야?”

“응. 너도 알 거야, 피스&호프. 이번에 새 지부장이 오면서 한국 활동에 적극적이 됐거든. 중국이나 일본 말고 한국 지부를 키워서 아시아의 중심으로 삼을 거라나, 뭐라나.”

“…….”

나는 순간적으로 고기가 목에 걸리는 느낌을 받았다.

‘피스&호프라면 당연히 잘 알지.’

잘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쪽 멤버를 여럿 죽이기까지 했다.

유진이가 속한 길드가 협력을 요청한 곳이 하필 피스&호프라니. 일이 이상한 쪽으로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기분이 씁쓸했다. 한동안 세계 3대 길드 중 하나가 적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는데…….

“그런 일이라면 나와야지. 길드가 거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너 정도 실력이라면 와 달라는 곳도 많을 거 아니야.”

“그건 그래. 그래도 1지망이 OG라서 다 보류하고 있었지만.”

나는 결국 스테이크가 목에 걸려 기침을 했다.

“콜록콜록.”

“하하. 걱정 마. 어렴풋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었어. 네가 평범하게 길드를 꾸리는 건 상상하기 어렵기도 하고, 길드 규모를 크게 할 생각이라면 진작 새 멤버를 뽑았을 테니까.”

“이해해 줘서 고마워.”

우리는 복잡한 이야기를 그만두고 다른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당연히 대화의 주 내용은 게임이었다.

‘역시 얘랑은 이 정도가 딱 좋아.’

십 년 만에 현실로 돌아와 가장 아쉽게 느껴지는 점 중 하나는 어렸을 때와 달리 게임 얘기를 진지하게 나눌 상대가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진이는 내게 매우 가치 있는 친구였다.

6

니콜라스의 지령으로 원치 않게 한국 지부장 자리를 맡게 된 미셸은 패닉에 휩싸여 있었다.

‘이게 대체 뭐지?’

그녀에게는 특이한 능력이 있다. 검은 구체를 만들어 던전 안을 탐색할 수 있는 능력.

특정 게이머와 연결시켜 추적하는 것도 가능한 능력이다.

그녀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조성오에게 이 스킬을 사용했다.

처음 사용했을 때도 대단히 놀라운 영상을 보게 됐지만, 이번에 본 것은 그것과 비교도 되지 않았다.

열흘 전 조성오는 자기 동료들을 이끌고 정문이 아닌 다른 곳을 통해 던전 안에 들어갔다.

곧바로 최상층으로 이동을 했는데, 거기 있던 몬스터들이 그에게 마치 대장을 대하듯 깍듯하게 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다음…….

빛이 새어 나오는 바위 앞으로 간 그는 자기 멤버들과 함께 바위틈으로 들어가 사라져 버렸다.

안타깝게도 자신이 만들어낸 ‘추적 구슬’은 거기까지 따라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제껏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다. 대단히 강력한 스킬이기 때문에 던전 안이라면 어떤 곳도 모두 통과할 수 있었으니까.

‘들키지는 않은 것 같은데 말이지.’

조성오가 자신이 스킬을 걸어 미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바위틈에서 작용하는 신비한 힘이 스킬을 차단시켰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그녀는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니콜라스에게 보고를 할 수도 없다. 그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현실주의자라서 어설픈 보고는 되레 자신의 무능으로 비칠 수 있으니까.

가장 좋은 것은 구슬에 기록된 영상을 직접 보여주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미국까지 이것을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구슬의 영상을 녹화할 수도 없었다.

‘더 확실한 증거를 모아야…….’

미셸은 본능적으로 이것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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