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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34화 (134/245)

# 134

독식왕 : 클리어러 134화

“동맹이…… 더 있다고요?”

나를 만나고 난 뒤 놀랄 일을 많이 겪은 베루니가 또 한 번 동공에 지진을 일으켰다.

“네.”

나는 술기운으로 얼굴이 벌게진 베루니에게 지금껏 내가 만난 군주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베루니는 허탈한 감정이 생기는지, 커다란 몸에서 힘을 빼고 의자에 기대었다.

“제가 변방으로 물러나 있는 사이에 그런 일들이 생긴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 베루니 님도 명실상부 군주입니다. 그 말은 싫든 좋든 변화의 조류에 몸을 실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음…….”

베루니는 복잡한 얼굴이 되었다. 그의 성정대로라면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군주라는 자각을 하면서 생각이 많아진 것 같았다.

영지인들이 그에게 몰려들어 만다툼과 대립하게 되었을 때도 걱정이 끊이지 않았을 텐데, 그게 끝나고 나자 이번엔 더 큰 스케일의 사건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베루니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따지기 이전에 영지인들에게 최선이 무엇일지 생각했다.

아버지는 영지인들에게 많은 지지를 얻은 성군이었지만, 딱 하나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호방한 기질 탓에 상황을 깊이 따지지 않고 본인이 옳다고 생각한 것에 무모하게 몸을 던지곤 했다는 점이다.

영지를 내버려 두고 동맹에 참가한 탓에 만다툼에게 어이없이 군주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물론 만다툼은 그 전까지 속내를 감추고 필요 이상으로 저자세를 보였던 자이다.

그 의중을 정확하게 헤아리기 어려웠다고 해도 만약에 있을지 모르는 불상사에 대비해 최소한의 대책은 마련해 두었어야 했다.

베루니의 고민이 깊어졌다.

나는 그를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대답을 기다렸다.

솔직히 조금 지루했기 때문에 인벤토리에 있는 게임기를 꺼내서 그가 생각을 마칠 때까지 게임을 하고 있을까 잠깐 생각했다.

하지만 그 전에 베루니의 입이 먼저 열렸다.

“조성오 님이 결성한 그 동맹에 저도 참가하겠습니다.”

예상한 대답이지만 나는 그가 고민했을 부분들을 존중해서 다시 한 번 물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저는 누가 뭐라든 제 아버지의 자식입니다. 저 스스로가 아버지의 성정을 닮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요. 만약 만다툼이 군주 자리를 빼앗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아버지가 전장에서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저는 제 핏속에 흐르는 문제를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가 제게 남겨주신 자랑스러운 기질을 따르되, 그것에 완전히 휘둘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언제든 영지와 영지인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조성오 님도 그것만큼은 알아주십시오.”

“물론이지요. 훌륭하신 생각입니다. 저도 동맹의 목적을 이루는 길에 쓸 데 없는 희생이 발생하지 않게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베루니의 딱딱했던 표정이 풀어졌다.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떠날 때 떠나시더라도 오늘만큼은 저와 함께 취해주십시오.”

나는 베루니의 말이 곤혹스러웠다. 이 말을 반라의 미녀에게 들었다면 느낌이 달랐을 텐데.

Chapter 39 - 새로운 동맹(2)

1

아침이 밝았다. 나는 창문으로 새어드는 햇살에 눈을 떴다.

원래 술을 마신 경험이 적기는 하지만, 그런 내 기준에도 괴상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맛을 내는 토누크 특제 술을 진탕 마셨다.

영지인들도 그 술을 좋다고들 마셨으니까 크게 잘못될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깜짝 놀랐다.

옷이 벗겨진 채 속옷만 입은 꼴이 되어 있었고, 그런 내 옆에 두 명의 여자가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그녀들의 옷차림도 나와 마찬가지로 속옷 차림이었다.

자는 동안에는 느낄 수 없었던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느낌이 취기를 싹 달아나게 했다.

“음냐, 주인님. 일어났냐옹? 어제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라옹. 주인님이 바깥 일로 바빠도 아이는 내가 잘 키우겠다옹.”

“뭐?”

암젤이 므흣한 눈길로 자신의 매끈한 복부를 쓰다듬는 것을 보며 나는 패닉에 휩싸였다. 경험이 없으니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던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암젤은 그쪽에 본능적인 소질이 있는 것 같으니까 잠든 내 몸을 이용해 제 목적을 달성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그렇다고 해도…… 설마…… 아이라니!

그때 옆에서 부스럭거리며 반대편에 자고 있던 아린이 깨어났다.

“암젤, 헛소리하지 마. 주인님 걱정마세요. 제가 저 고양이가 헛짓을 하지 못하게 밤새 막아드렸습니다.”

“흥, 핑계도 좋다. 그러면서 나보다 주인님 몸을 더 만지작거렸으면서.”

“뭐? 내가 언제!”

나는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NPC들이 투닥대는 모습을 보니 우려했던 상황은 일어나지 않은 듯했다.

‘2세를 잉태시키기엔 아직 너무 젊지!’

나는 NPC들 사이에서 내 몸가짐을 더 조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암젤과 아린에게 말했다.

“너희들도 준비해. 집에 가자.”

어제 베루니와 대화를 끝마치고 나자 퀘스트를 달성했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예상대로 하위 퀘스트는 세 번째가 마지막이었다. 차원의 통로가 완성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이런 메시지도 떠올랐다.

[‘차원의 통로’는 소유주의 허락 없이 누구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곧 차원의 통로 이용 여부는 모두 내가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아울러 이런 메시지도 이어졌다.

[‘차원의 통로’에 부정한 목적으로 접근하거나, 그것을 몰래 이용하려는 행위가 적발되면 소유주가 바로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안전책까지 확실히 마련된 셈이다. 솔직히 누가 허락 없이 통로를 이용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차원의 통로는 안으로 내 소유인 C급 던전에 위치해 있고, 밖으로는 내 명을 따르는 토누크 부락과 동맹인 베루니의 영지에 속해 있다.

꽤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첫 이계 나들이에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든든한 동맹을 얻고, 무엇보다 언제든 이계를 오갈 수 있는 통로를 갖게 되었으니까.

더구나 통로가 속한 던전 주변에는 OG 길드의 주거지가 있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저절로 눈썹이 찡그려졌다.

‘잠깐만…….’

다 하고 보니까 아귀가 들어맞는 게 꼭 누군가가 짜놓은 각본대로 움직인 느낌이 든다.

“쳇!”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각본이 짜여 있더라도 결국 그것을 플레이한 것은 나니까.

되레 좋은 게임 시나리오를 만든 개발자에게는 칭찬을 해주는 게 맞겠지.

밖으로 나가자 여기저기 술에 취해 널부러진 토누크와 영지인들이 보였다. 모두 사이좋게 개가 되어 있는 모습이, 앞으로 이들의 관계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지개를 켜는데, 저쪽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한 무리의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수보타와 NPC들, 그리고 토비도 있었다.

나를 발견한 티코이가 쪼르르 달려왔다.

“주인님, 드십시오.”

그가 내민 것은 플레지 꿀물이었다. 시원하게 들이켜자 남아 있던 숙취가 완전히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티코이, 나도 한 잔 달라옹.”

고양이로 변신한 암젤과 옷을 입은 아린도 밖으로 나와 합류했다.

나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조용히 말했다.

“다들 자고 있는 틈에 빨리 가자. 눈에 띄면 송별회다 뭐다 핑계 삼아 또 한 번 술파티를 열지도 모르니까.”

그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토비를 보고 물었다.

“너는 왜 여기 있어?”

“그…… 저…… 작별인사를 하려고요.”

나이 어린 초급 마법사가 머뭇대며 말을 했다. 그의 얼굴에는 아쉬움을 넘어 슬픈 감정이 담겨 있었다. 눈에는 살짝 눈물이 맺혀 있다.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야. 곧 보게 될 테니 작별인사는 할 필요 없어.”

“정말요?”

언제 슬퍼했냐는 듯 밝아진 토비를 보며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으으으…….”

갑자기 누군가가 뒤척이는 소리가 났다.

나는 얼른 파티원들에게 말했다.

“얼른 가자. 더 발목 잡히기 싫으니까. 토비, 잘 있어. 베루니에게도 안부 전해 주고.”

이제는 군주가 된 베루니를 친구처럼 말하는 내 말에도 토비는 거부감 없이 대답했다.

“네! 조심히 가십시오. 얼른 다시 뵙기를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나는 파티원들과 함께 나는 듯이 차원의 통로가 있는 곳으로 갔다.

완전히 막혀 있는 바위 앞에 도착하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차원의 통로를 이용하시겠습니까?]

“그래.”

내 말에 바위틈이 벌어지며 예의 신비한 빛이 새어 나왔다.

나를 필두로 파티원 모두가 차원의 통로를 통과했다.

반대편으로 나오자 바위틈은 깨끗하게 다시 합쳐졌다.

‘들킬 염려는 없겠네.’

애초에 나 또한 칼리타의 ‘길 찾기’ 스킬 덕분에 차원의 통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귀환서를 이용해 던전 밖으로 나왔다.

쨍하고 내리쬐는 햇살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2

이계로 건너가기 전에 주위 사람들에게는 나름의 핑계를 대 두었다.

어머니와 누나에게는 일 문제로 외국에 다녀와야 한다고, 바쁘면 연락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고, 노아에게는 당분간 던전 공략에 집중할 테니 연락은 문자로만 해달라고 말해두었다.

빈틈이 많은 핑계이지만 내가 하는 일이 특수하다 보니 어머니와 누나는 이해를 해주었다.

다만 노아는 의심 어린 시선을 보냈는데, 그가 그런 눈으로 날 바라보는 것은 익숙한 터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나와 암젤은 곧장 집으로 왔고, 나머지 파티원들은 티코이네 집으로 갔다.

집에 들어가니 누나는 없고 어머니만 계셨다. 어머니는 열흘 만에 갑자기 나타난 아들을 보고 매우 놀라셨다.

“연락도 없이 오면 어떡하니? 미리 말했으면 밥이라도 차려놨을 텐데!”

“피곤하니까 일단 좀 잘게요. 밥은 일어나서 먹구요.”

“그래, 얼른 씻고 쉬어라. 그동안 뭘 했는지 얼굴이 반쪽이 됐네. 엄마가 일어나면 먹을 수 있게 밥 해놓을게.”

나는 행복한 기분으로 샤워를 했다. 그리고 근 열흘 가까이 누워보지 못한 내 침대로 다이빙했다.

암젤도 내 옆에 몸을 말고 함께 잠을 잤다.

3

토누크 부락에서도 잠을 안 잔 게 아닌데, 그동안 쌓인 피로가 컸는지 집에서 장장 열두 시간이나 잠을 잤다.

방문을 열고 나오자 거실에서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겼다.

누나도 퇴근하고 와 있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함께 밥을 먹었다.

식사 중에 누나가 불쑥 내게 물었다.

“대체 어디 갔었기에 연락 한 번 없었니? 전화기도 계속 꺼져 있던데.”

“사업 준비 때문에 던전 들어가서 실험을 했거든. 누나도 알잖아. 거기서는 핸드폰 안 터지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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