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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28화 (128/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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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128화

    Chapter 38 - 새로운 동맹

    1

    나는 티보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토누크 말을 알고 있는 거지?”

    “네?”

    티보는 내 물음의 의미를 생각하는 듯 눈을 깜박깜박했다. 곧 나름의 결론을 얻었는지 대답을 해주었다.

    “이계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아주 오래전부터 몬스터들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몬스터는 그렇다 치더라도 토누크처럼 지능이 있는 몬스터들과는 오래전부터 의사소통을 위해 노력해 왔죠.

    저희 영지인들과 몬스터는 근본적인 생활양식에 차이가 있지만, 이 땅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만큼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말이 통한다고 해서 완전히 싸움을 멈추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가끔은 최소한의 대화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모든 영지인이 토누크 말을 할 줄 아는 거야?”

    내 물음에 토비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지는 않아요. 천재가 아닌 한 한 사람이 여러 개의 몬스터 언어를 모두 익힌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각자 전공이 따로 있죠. 저는 어려서부터 이곳에 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토누크 언어를 배운 거고요.”

    “그렇군.”

    몬스터 언어를 익히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면 나도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토비의 말을 듣자니 마치 우리 쪽 세상에서 외국어를 익히는 것만큼 어려운 모양이었다.

    게다가 굳이 몬스터 언어를 익혀야 할 필요성도 크지 않다. 어차피 던전 마스터가 되면 몬스터들은 내게 복종하게 되어 있으니까. 의사소통까지 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었다.

    “내 대신 저자에게 토누크 병사들을 물리라고 해줄래? 그리고 적정한 인원을 선별해 입구의 돌을 치우라고 말해줘.”

    “네.”

    토비는 내가 한 말을 아직 무릎을 꿇고 있는 토누크킹에게 전했다. 내 귀에는 ‘킥킥’거리는 소리로밖에 안 들렸는데, 어쨌든 정확하게 의사가 전달된 모양이었다.

    토누크킹이 일어나서 자기 뒤에 엎드려 있던 무리들에게 뭐라고 지시를 내렸다.

    서른 명 정도가 반파된 마을을 복구시키기 위해 움직이고, 나머지는 바윗덩이에 깔린 입구를 치우기 위해 이동했다.

    나는 생각나는 것이 있어 토비에게 한마디 말을 더 전하도록 했다.

    “저 토누크킹에게 내가 없을 때는 네가 이 부족의 우두머리라고 말해줘.”

    토비가 그 말을 전달하자 토누크킹이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얼른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킥! 키기긱!”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

    “그래그래. 성실한 놈 같아 다행이군.”

    토비가 내게 말했다.

    “감사하다고 하네요. 그리고 자기 이름은 시아이라고 한답니다.”

    “음.”

    나는 존경의 빛을 담뿍 담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토누크킹에게 말했다.

    “잘 부탁한다, 시아이.”

    “킥!”

    방금 한 말은 나도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넵!’이라고 한 거겠지.

    첫 번째 퀘스트가 완벽하게 마무리되었으므로 나는 새로 추가되었을 퀘스트를 확인했다.

    [특수 퀘스트 : C-001 던전에 생성된 ‘이계의 통로’를 완성하라.]

    1. 차원의 통로 주변을 확보하라.(Clear)

    2. 차원의 통로가 속한 영지의 카오스 군주를 물리쳐라.

    ‘뭐?’

    퀘스트 내용은 매우 알아보기 쉬웠다. 그래서 더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그런 대로 수긍할 만했지만 2단계에서 스케일이 확 커진 느낌이다.

    이것은 단순히 생각해도 결투의 탑에서 군주 하나를 쓰러뜨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결투의 탑에서는 군주, 그리고 그가 데리고 나타나는 정예 십여 명만 쓰러뜨리면 되었다.

    그 정도 인원이라면 파티원, 그리고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몬스터와 전설의 인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일이 너무 커져 버리는데…….”

    나는 미간을 찡그리고 이 퀘스트의 의미를 생각했다.

    ‘달성하지도 못할 퀘스트를 주지는 않았을 텐데…….’

    이제까지의 일을 되새겨 보면 내게 퀘스트가 주어지는 방식은 자연스럽게 성장을 유도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얼핏 어려워 보이는 퀘스트도 결과적으로는 내가 뛰어넘지 못할 수준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내 옆에 얌전히 서 있는 토비를 바라보았다.

    노마법사는 그를 내게 붙이면서 함께 마을로 돌아오라고 말했었다. 베루니에게 내 이야기를 해두겠다면서.

    ‘베루니라…….’

    내 머릿속에서 나름의 시나리오가 굴러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퀘스트를 수행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나는 티보에게 말했다.

    “가자, 너희 마을로.”

    2

    스무 마리의 토누크와 트레앙, 칼리타까지 동원되어 완전히 막혀 버렸던 부락의 입구가 다시 뚫렸다.

    여기 올 때처럼 긴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돌개 보드를 꺼내어 나누어 탔다.

    이번에는 네 대를 꺼내어 티코이와 티보도 거기 태웠다.

    티보는 지팡이를 타고 날 수 있지만, 아까 보니 운전 실력이 썩 뛰어나 보이지 않았다.

    그것도 마나를 운용해 부리는 마법일 텐데, 마나양도 그다지 많을 것 같지 않고.

    숲을 통해 은밀히 이동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토누크 부락을 날아서 지나쳤다.

    우리는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베루니가 있다는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흐음…….”

    나는 마을을 보자마자 걱정부터 일었다. 규모만 그럭저럭 클 뿐이지 외관이 매우 허술했다.

    바깥쪽에는 방어벽이 구축되어 있었는데 토누크 부락보다 조금 나은 수준일 뿐, 아무리 보아도 견고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마을 안에 들어가자 상황은 더욱 심각해 보였다. 민간인들은 넘쳐나는데 병사의 수는 매우 적다.

    그나마도 규율이나 명령 체계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티보는 신이 나서 우리를 안내했다.

    마을 중앙에 있는 커다란 건물에 이르러 그곳을 지키는 병사에게 우리가 누구인지 얘기했다.

    그러자 병사는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어주었다.

    “들어가십시오. 베루니 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를 받아 넓은 방에 들어가자 그 안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이미 만난 적이 있는 노마법사와 근엄한 분위기를 지닌 남자.

    나는 단단하고 큰 체구를 가진 그 남자가 바로 베루니라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노마법사가 우리를 보더니 매우 반가워했다.

    “여러분! 이제 오셨군요! 티보, 너도 무사했구나!”

    “네, 토누크 부락에 들어갔지만 이분들이 전부 싸움을 주도하고 저는 할 일이 없었습니다.”

    “역시 토누크 부락에 가겠다고 한 건 놈들과 싸우기 위해서였군요.”

    “말도 마세요. 토누크 부족은 이분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놈들의 우두머리도 조성오 님이 쓱싹 하고 순식간에 죽여 버렸다고요!”

    토비는 마치 스스로의 무용을 자랑하듯 신나는 말투로 이야기했다.

    “조성오…….”

    표정 변화 없이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던 베루니가 입을 열었다.

    “이계인, 그것이 당신의 이름이오?”

    “네.”

    나는 그의 정보창을 보았다.

    이름 : 베루니

    레벨 : 96

    스탯 : 근력 114/ 체력 108/ 민첩 88/ 행운 42

    이력 : 베루니의 가문은 오랫동안 군주 자리를 차지했을 정도로 이계에서 나름의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왕위쟁탈전 때 오더 연맹에 가담한 베툴루가 영지를 비운 틈에, 그에게 억눌려 있던 만다툼이 반란을 일으켰다.

    아직 어린 나이였던 베루니가 그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더구나 베툴루는 영지를 빼앗겼다는 소식도 듣지 못한 채 전쟁 중 사망하게 되었다.

    베툴루의 영지를 차지한 만다툼은 자신의 미약한 세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서열이 높은 다른 군주를 찾아갔다.

    16위 군주 크레도를 주축으로 한 동맹에 가담한 그는, 그로 인해 늘어난 세금 부담을 영지인들에게 전가했다.

    가혹하고 잔악한 성품을 가진 그인지라 자연스럽게 폭정이 이어졌고, 그로 인한 불만은 시간이 갈수록 영지인들 사이에 누적되었다.

    결국 참다못한 과거 베툴루의 신하였던 자들이 영지 구석으로 쫓겨난 베루니를 찾아갔다.

    베루니는 그들의 불행을 모른 척할 수 없어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언제든 만다툼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싸여 위태로운 날들을 보낼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다.

    ‘음…….’

    이력을 읽는 것만으로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원래는 자기가 이어받아야 했던 군주 자리를 빼앗기고, 그의 폭정을 참다못한 신민들과 독립을 선포했지만, 그와 동시에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진 것이다.

    나는 왜 내게 이런 퀘스트가 주어졌는지 깨달았다. 베툴루가 오더 연맹에 가담했었다는 것으로 보아 그 아들인 베루니 역시 같은 성향의 인물일 것이다.

    베루니를 도와 만다툼을 쓰러뜨리고 그가 군주 자리를 되찾도록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일 터.

    그것은 곧 차원의 통로가 안전해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소만, 괜찮겠소?”

    “네, 저도 당신에게 할 얘기가 있습니다.”

    베루니는 노마법사에게 말했다.

    “우리 둘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 자리를 비워주겠소?”

    “물론입니다.”

    노마법사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내 파티원들에게는 함부로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대신 내가 파티원들을 돌아보고 말했다.

    “나는 이 사람과 이야기를 좀 할 테니까 너희들은 밖에 나가 있어.”

    노마법사가 얼른 나서서 말을 보탰다.

    “여기까지 오느라 시장하실 텐데 식사를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같이 가시죠.”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가자 이곳에는 베루니와 나, 둘만 남겨졌다.

    베루니는 내게 한쪽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을 것을 권유했다.

    내가 자리에 앉자 맞은편으로 와서 앉았다.

    “신하에게 말을 듣기는 했지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소. 당신과 당신 친구들이 이계에서 왔다는 건 더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이는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곳에 온 것이오?”

    나는 이 대화가 쓸데없이 길어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두절미하고 단순하게 이야기했다.

    “당신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네?”

    베루니는 상당히 놀란 얼굴이었다. 그는 노신하의 말을 듣고 내심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자신에게는 현재 상황을 타개할 돌파구가 전혀 없기 때문에, 새로 등장한 이계인이 혹 변수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반대로 그것은 매우 순진한 기대이기도 했다.

    이계인이 어떤 목적으로 이곳에 온 것인지도 모르고, 아직은 적이 될지 아군이 될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돕기 위해서 왔다는 말은 물론 반가웠지만, 쉽게 믿기에는 의구심이 남았다.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난 것이오. 왜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당신은 오더 성향의 군주이지요?”

    “……그걸 어떻게…….”

    “내 동료 중에는 이쪽 세상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자가 있죠.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아무튼 저는 카오스 군주들이 우리 쪽 세상을 침범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입장에서는 카오스 군주보다 당신 같은 오더 성향의 인물이 군주가 되는 게 낫다는 거죠.”

    베루니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럼…… 처음부터 이곳에 온 목적이 내가 만다툼을 쓰러뜨리고 다시 군주 자리를 찾는 것을 돕기 위해서였다는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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