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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26화 (126/245)

# 126

독식왕 : 클리어러 126화

이건 또 웬 복잡한 시츄에이션?

나는 눈을 찡그렸다.

내 반응과 달리 수보타는 기뻐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 만다툼의 영지였군요!”

“왜? 좋아해야 할 일이야?”

“만다툼은 68위 군주입니다. 정말 다행이군요.”

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제껏 퀘스트가 늘 그래왔듯 이번에도 급진전 없이 차근차근 진행이 되는 모양이었다.

C급 던전에 통로가 생기고, 그것이 68위 군주의 영지로 이어진 것이 누군가의 교묘한 세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은 베루니를 섬기고 있다는데 그건 누구야?”

수보타는 턱을 매만지며 한참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생각났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아! 만다툼은 군주 자리에 오른 지 오래 되지 않은 인물입니다. 기껏해야 이백 년이 채 되지 않죠. 왕위 쟁탈전으로 대륙이 어지러운 틈에 반란을 일으켜 군주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때 군주였던 자의 이름이 아마 베툴루였을 것입니다. 동맹을 돕기 위해 출진했다가 빈 성을 빼앗긴 것이죠. 베툴루는 전쟁으로 목숨을 잃고, 그 가문이 만다툼 세력 안에 흡수되었습니다. 베루니는 아마도 베툴루 가문의 일원이 아닐까 싶은데요?”

수보타의 설명에 노인의 입이 떡 벌어졌다.

“다, 당신은…… 누구요?”

수보타가 가슴을 펴고 대답했다.

“조성오 님을 보좌하고 있는 수보타라고 하오.”

“조, 조성오……?”

노인은 경이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물어보았다.

“토누크 부락에는 왜 가시려는 겁니까?”

“왜긴요. 볼일이 있으니까 가려는 거지.”

“이 일대는 토누크족의 대표 서식지입니다. 부락만 해도 스무 개가 넘지요. 경계 안쪽으로는 죄다 토누크 부락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네?”

나는 그런 사실은 전혀 몰랐기 때문에 놀랐다. 설마 그 많은 토누크 부락은 전부 다 점령하라는 것은 아니겠지?

그때 메시지가 나타났다.

[던전 안의 코어와 이면의 코어는 서로 공명을 합니다.]

[‘코어 탐지 기능’을 활성화하면 소유 던전의 코어와 공명하는 코어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코어 탐지 기능’을 활성화하겠습니까?]

나는 메시지를 보고 생각이 났다. 아까 본 퀘스트의 목적이 단순히 토누크 부락을 점령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곳의 코어를 확보하라는 것이었음을.

‘이런 게 있었으면 진작…….’

나는 불친절한 시스템 메시지에 새삼 혀를 차며 대답했다.

“그래.”

[탐지 기능을 발동할 코어를 선택하십시오.]

허공에는 홀로그램으로 표현된 코어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이것들은 모두 한 번 이상 본 적이 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구분하기 어렵지 않았다.

나는 C-001 던전의 코어를 선택했다.

[코어 탐지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큐웅-

갑자기 묵직한 진동이 전해져서 나는 그 느낌을 좇아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먼 곳의 하늘에 일직선의 빛이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감각으로 그것이 C-001 코어와 공명하는 코어가 있는 장소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이 사람들 붙잡고 입씨름할 필요가 없었는데.’

나는 노인에게 말했다.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네? 그냥 가신다고요?”

그는 허둥지둥하더니 옆에 있는 젊은 마법사에게 말했다.

“토비, 너는 이분들을 따라가거라. 나는 베루니 님에게 가서 보고를 드려야겠다. 용무가 끝나면 이분들을 모시고 함께 오도록 해라.”

“네?”

토비는 갑작스럽게 맡겨진 임무에 화들짝 놀랐다.

노인은 이번에는 나에게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용무를 마친 뒤에 저희 마을에 들러주십시오. 베루니 님에게 조성오 님을 꼭 소개하고 싶습니다.”

나는 미간을 찡그리고 노인을 바라보았다. 얼핏 귀찮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달성해야 할 퀘스트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코어를 확보한 뒤에 어떤 퀘스트가 주어질지 모르는데, 여지를 남기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네, 그렇게 하죠.”

나중에 퀘스트가 오픈됐을 때 ‘베루니’라는 자와 관련이 없다면 토비라는 젊은 마법사를 혼자 돌려보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노인은 내 말에 크게 기뻐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먼저 가서 베루니 님에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러시지요.”

노인은 황망하게 고개를 숙이더니 만족스러운 몸짓으로 떠나갔다.

이곳에는 순진한 눈을 끔벅거리는 젊은 마법사 하나만 남았다.

“음…… 저…….”

“잠깐만.”

나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등을 돌렸다.

빛이 솟구치고 있는 장소는 얼핏 보아도 상당히 멀어 보였다.

이 경계지를 넘어가면 토누크 부락이 있다고 하는데, 저기까지 가는 길에도 여러 개의 부락을 지나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부락을 하나하나 점령하면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몬스터를 죽이면 그게 모두 경험치로 환산되니까.

하지만 퀘스트 달성 시한은 72시간으로 정해져 있었다.

‘최대한 싸움을 피하면서 이동해야겠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토비라는 마법사에게 물었다.

“혹시 이곳 지리를 잘 알고 있어?”

“네? 아! 물론이지요. 저는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토누크족이 이곳에 집단으로 서식한 지는 불과 십 년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 전까지 이곳은 저와 제 친구들의 놀이터나 마찬가지였죠.”

“그럼, 저기까지 토누크들에게 들키지 않고 가는 법도 알아?”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지점을 바라본 토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숲을 이용하면 토누크 놈들의 눈을 피할 수 있을 겁니다.”

“잘됐네. 그럼 네가 길안내를 해줘.”

“알겠습니다.”

토비는 자기가 할 일이 생겼다는 게 기쁜지 밝은 얼굴로 앞장섰다. 우리는 그의 뒤를 따라 토누크 군락지로 들어갔다.

6

베루니는 노신하의 보고를 받고 깜짝 놀랐다.

“뭐라고요? 이계인?”

“네, 저도 처음에는 토비 그 녀석이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자들이 직접 자기 입으로 지금은 사라진 바위틈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자들이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이랍니까?”

“그냥…… 올 수 있어서 왔다고 하는데…… 제 느낌으로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놀랍게도 무리 중 하나는 이곳의 정보를 소상히 알고 있기도 했습니다. 베툴루 님과 만다툼 사이에 있었던 과거의 일까지 직접 언급했습니다.”

“아버지와 만다툼 사이에 있었던 일을?”

“네, 그 일에서 베루니 님이 베툴루 가문의 일원이라는 사실까지 유추해 냈습니다.”

“그건…… 좀 위험하지 않겠소?”

“베루니 님, 저는 지난 수백 년간 베툴루 가문을 보좌해 왔습니다. 여러 명의 군주를 직접 제 눈으로 본 경험이 있습죠. 감히 장담컨대 조성오라는 자는 카오스 성향의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토누크는 죽이면서도 저희들에게는 손끝 하나 위해를 끼치지 않았죠. 잘만 하면 저희에게 도움을 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마법사는 말을 하면서도 혹시 자신이 베루니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눈치를 보았다.

그는 베툴루 가문을 오래도록 보좌해 왔기에 알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만다툼같이 저급한 자에게 군주 자리를 빼앗겼지만, 가문에 대한 자긍심과 무를 숭상하는 기상만은 어떤 군주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렇기 때문에 선대인 베툴루도 만다툼의 계략에 넘어간 것이다. 곧음이 지나치면 고지식함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하지만 베루니는 아버지와 달랐다. 그는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자조적으로 말을 했다.

“확실히 현재 우리의 운명은 바람 앞에 촛불과도 같소. 지금이라도 만다툼이 쳐들어온다면 막아낼 도리가 없지. 신민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나는 그들을 지킬 힘이 부족하오.”

노신하는 안심하며 밝은 얼굴로 진언했다.

“꼭 베루니 님 혼자 강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의 신민들은 만다툼의 폭정에 지치거나, 베툴루 님이 군주였던 시절의 평화와 안정을 잊지 못해 모인 사람들이죠.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힘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런 위급한 시기에 조성오 같은 인물이 나타난 것은 분명 신의 계시일 것입니다.”

“신?”

베루니는 열정적인 눈빛을 띤 노마법사를 바라보았다.

“신이 우리 편이라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만약 신이 존재하고 그가 공정하다면 만다툼 같은 자를 내버려 둘 리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순리대로 돌아갈 것이라 믿습니다.”

“음…….”

베루니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조성오라는 그 이계인을 만나보도록 하지.”

7

코어가 있는 장소는 생각보다도 더 멀었다. 토비는 자기가 했던 말대로 마치 놀이터를 누비듯 길을 잘 찾아갔다.

그럼에도 토누크의 시야에서 완벽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해, 몇 번인가는 정찰병의 눈에 띄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소란이 일으키기 전에 먼저 해치워 버려서 큰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꼬박 하루를 이동해 우리는 토누크 군락의 심장부, 즉 코어가 있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거 꼭 던전이랑 비슷하네.’

나는 토누크 부락이 형성되어 있는 모양이나 그 규모가 C급 던전에서 겪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이것을 그대로 이면의 세상에 옮겨놓은 것이 던전이 아닐까 여겨질 정도였다.

‘관련이 있어.’

던전에도 코어가 있고, 이곳에도 코어가 있으며 두 개가 쌍둥이처럼 공명을 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이번 퀘스트를 수행하면 궁금한 것들이 여럿 밝혀지게 될 것이다.

“여기서 밥 먹고 가자.”

나는 파티원들을 돌아보고 말했다.

내 말에 파티원들뿐만 아니라 토비도 크게 기뻐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무리에 섞여 자리를 잡았다. 다른 파티원들은 다소 대하기 어려운 탓인지 늘 아린의 옆에 있기를 선호하는 그였다.

티코이와 수보타가 식사를 차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이계로 넘어오기 하루 전에 한 일은 될 수 있는 한 많은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파티원이 모두 대식가였기 때문에 그 작업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렇다고 단순히 양만 많이 준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고급스러운 취향대로 맛있는 음식들을 가져왔다.

풀밭에 낮은 테이블이 놓이고, 착착 음식들이 세팅되었다.

인벤토리에 넣으면 음식의 온도가 변하거나 상하지 않는다.

토비는 이미 여러 번 우리와 식사를 했음에도 또 한 번 크게 놀랐다.

“이계의 음식은 정말 맛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게 맛있는 음식이 존재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말을 들은 수보타가 쯧쯧 혀를 찼다.

“자네가 서민으로만 살았기 때문에 모르는 거야. 군주의 성 안에는 이보다 더 맛있는 음식들도 많아.”

“네? 그럴 리가요. 저는 못 믿겠습니다.”

서민 토비는 누가 빼앗아 가기라도 할까 봐 열심히 음식을 입에 집어넣었다.

식사가 마무리되고, 나는 꿀물을 마시며 산 아래 부락을 내려다보았다.

빛이 솟구치는 장소는 누가 보아도 토누크킹의 거처가 분명했다.

지금까지는 별로 싸움을 할 일 없이 여기까지 왔는데, 적어도 이 부락 하나만큼은 점령을 해야 했다.

‘간만에 몸 좀 풀겠네.’

나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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