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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25화 (12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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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125화

    나는 한 가지가 더 생각나 이번에는 ‘USER’창으로 옮겨갔다. 그곳의 진열대를 살피다 보니 역시나 찾던 물건이 입고되어 있었다.

    ‘유혹의 호루라기’.

    명칭에 유혹이 붙었다고 해서 이성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다거나 하는 물건은 아니었다.

    몬스터를 상대할 때 이 호루라기를 불면 주목을 끌 수 있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이 호루라기 소리를 들으면 몬스터들이 짜증을 내기 때문에 어그로를 끌기에는 제격인 물건이었다.

    나는 유혹의 호루라기를 수보타의 목에 걸어주었다.

    “앞으로도 힘내다오, 수보타.”

    “네? 네……. 물론이지요, 주인님.”

    모든 파티원에게 새 장비를 사주고 나니, 상당량 쌓여 있던 GP도 이제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나는 나머지 GP는 모두 포션과 마나 포션을 사는 데 썼다.

    상점을 나와 포션과 마나 포션을 티코이와 수보타를 제외한 모든 파티원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우리는 단상으로 걸어가 함께 최상층으로 이동을 했다.

    5

    최상층에는 토누크족의 군락이 형성되어 있다. 지금은 게이머들의 공략이 진행되고 있지 않은지 군락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조용했다.

    비밀 통로를 이용해 최상층으로 가면 던전 마스터의 방 앞으로 전송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나타난 곳은 군락의 뒤편이었다.

    이계의 통로로 가기 위해서 마을로 진입하는데 그곳을 지키고 있던 토누크 병사 두 놈이 우리를 발견했다.

    “킥!”

    “키익!”

    그들은 내가 던전 마스터임을 알아보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너희들에게 볼일이 있어 온 것은 아니다. 계속 수고해.”

    “키익!”

    토누크 병사들이 벌떡 몸을 일으키고 괴상한 동작으로 경례를 했다.

    이계의 통로가 있는 장소에 도착한 나는 아뿔싸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무너뜨렸던 바위벽이 완벽히 복원되어 있었던 것이다. 통로는 그대로 드러나 신비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생각이 짧았네.’

    이것은 다시 말해 이계의 통로는 발견과 함께 적절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것을 시사했다.

    구멍을 막는 게 불가능하다면 통로를 완성시켜 이계인의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 그쪽에서 사용해도 통로가 사라지고 이쪽으로 건너온 이계인의 능력은 초기화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떤 방식으로 악용될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반대로 차원의 통로를 잘만 사용하면 내게 매우 유용한 일이 될 터였다.

    꼭 대리인이 있지 않더라도 이계의 동맹자들을 만날 수 있고 그쪽의 사정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역시 통로를 완성하라는 퀘스트를 괜히 준 게 아니었어.’

    나는 파티원들을 돌아보고 말했다.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가자.”

    앞장서서 먼저 구멍으로 걸어갔다. 차원의 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어두운 바위틈을 통과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기분.

    반짝이는 빛도 입구 부분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다소 어둡기는 하지만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리에고 등불을 꺼내지는 않았다.

    십 분쯤 걸어가자 반대쪽에서 빛이 새어들어 오는 것이 보였다.

    ‘저기를 지나면 이계구나…….’

    결투의 탑에 갈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다. 탑은 결국 중계지에 불과하니까.

    ‘어떨까? 내가 이계에 처음으로 발을 딛는 인간이려나?’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는 밖으로 나갔다.

    화악-

    나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짐짓 놀랐다. 통로 이쪽과 저쪽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붉은 모래가 깔려 있고 계곡들이 보인다.

    심지어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다. 건물들과 자동차가 보이지 않지만 그것은 도심을 벗어나면 어차피 마찬가지니까.

    ‘어디로 가야 되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뒤에서 수보타가 말했다.

    “주인님! 구멍이 사라졌습니다!”

    수보타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과연 우리가 나온 통로가 깨끗이 막혀 있었다.

    [‘이계의 통로’가 봉쇄되었습니다.]

    [조건을 충족하면 ‘차원의 통로’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나는 왜 용어가 ‘이계의 통로’와 ‘차원의 통로’로 구분되는지 궁금해졌다. 잠깐 생각하고 나서 나름의 결론을 얻었다.

    ‘이계의 통로’는 한쪽에서 사용하면 사라져 버리는 통로를 뜻하고, 이것을 완성하여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차원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아마 맞겠지.’

    나는 퀘스트창을 열어보았다. 하나뿐인 특수 퀘스트를 길게 터치하자 하위 목록이 열렸다.

    [특수 퀘스트 : C-001 던전에 생성된 ‘이계의 통로’를 완성하라.]

    1. 차원의 통로 주변을 확보하라.

    2. ???

    주변을 확보하라는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어 그것의 세부 정보도 열어보았다.

    [1. 차원의 통로 주변을 확보하라.]

    기한 : 72시간.

    내용 : 차원의 통로 인근에 있는 토누크 부락을 찾아가 코어를 획득하라.

    1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는 것을 보니 달성해야 하는 하위 퀘스트는 이게 전부가 아닌 것 같았다. 아마도 하나를 달성하면 다음 것이 열리는 구성이겠지.

    ‘토누크 부락이라…….’

    여기까지 와서 하는 일이 결국 또 몬스터 사냥인 셈이다.

    인근이라는 말로 짐작컨대 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왔다.

    “거짓말이기만 해봐라, 요놈.”

    “베루니 님에게 먼저 보고해야 하지 않습니까?”

    “베루니 님이 그렇게 한가한 분인지 아느냐? 네 헛소리에 일일이 신경을 쓸 만큼?”

    “너무하네요. 제 말이 사실이면 어쩌시려고.”

    “사실은 무슨 사실이야? 순찰하다가 존 거겠지. 그러니까 착실히 돈을 모아 제대로 된 지팡이를 사라고 했지 않느냐.”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 내용이 똑똑히 들리는 것으로 보아 거리가 멀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곧 로브를 입은 두 남자가 나타났다.

    한 사람은 나이가 지긋해 보이고, 한 명은 기껏해야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그들이 우리를 발견했다.

    “아이쿠!”

    “깜짝이야!”

    기겁하듯이 놀라서 오히려 이쪽이 당황스러울 정도다.

    “무례한 놈들이다옹.”

    암젤이 눈을 찡그리고 불평을 했다.

    나이 많은 남자가 경계심을 한껏 드러내며 말했다.

    “다, 당신들은 누구요?”

    “우리들은…….”

    나는 대답할 말이 궁해졌다. 다른 세상에서 건너왔다고 하면 믿어주려나? 그 증거가 되어야 할 통로로 이미 사라져 버렸는데.

    갑자기 나이 어린 이계인이 소리쳤다.

    “앗! 구멍이 사라졌습니다!”

    “그건 네가 순찰하면서 조느라고 잘못 본 거고!”

    나이가 많은 쪽이 나이 어린 남자의 머리통을 지팡이로 후려쳤다.

    퍽!

    “아얏!”

    나는 그것을 보고 대화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의 말은 사실입니다. 저희가 그 구멍을 통해서 나왔거든요.”

    “네? 뭐라고요?”

    “그것 보세요! 확인도 안 하고 때리기부터 합니까?”

    나이 많은 이계인이 한층 큰 경계심이 담긴 시선으로 우리를 찬찬히 보았다.

    “그 구멍이 어디로 통해 있던 겁니까? 왜 지금은 사라져 버렸죠?”

    나는 딱히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아 사실대로 말했다.

    “이계로 통해 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왔습니다.”

    “뭐라고요!”

    처음 우리를 보고 놀랐던 것의 딱 두 배만큼 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보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나는 귀찮은 생각에 화제를 옮겼다.

    “이 근처에 토누크 부락이 있습니까?”

    “그건 왜…….”

    거기까지 얘기했을 때 갑자기 변고가 일어났다.

    우리 사이에 화살이 떨어져 내린 것.

    퍽! 팍! 퍽!

    나는 화살이 떨어진 절벽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그곳에 활을 겨누고 있는 토누크들이 보였다.

    다시 날아오는 화살들.

    퍽! 팍! 퍽!

    그것은 모두 아린이 만들어낸 방패에 막혀 사라졌다.

    “킥!”

    “키이익!”

    이어서 다른 몬스터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과 방패를 든 토누크 놈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숫자는 약 열 마리 정도.

    나는 NPC들에게 말했다.

    “절벽 위에 있는 놈들은 내가 맡을 테니 너희들은 저놈들을 처리해 줘.”

    “알았다옹.”

    “맡겨주십시오, 주인님.”

    나는 방어구를 다른 것으로 바꾸었다.

    “점퍼.”

    소달루스 세트가 점퍼 세트로 바뀌었다. 이것을 입으니 정말 날아오를 것처럼 몸이 가벼워졌다.

    무릎을 한껏 굽혔다가 힘차게 위를 향해 점프했다.

    쐐애액-

    바람이 전에 점프했던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몸을 스쳤다. 십 미터가 훨씬 넘는 벽이었지만 중간에 재도약을 할 필요가 없었다.

    등에 달린 날개를 한 번 떨치자 다시 힘을 얻어 쭉 위로 솟구쳤다.

    터억.

    내가 절벽 위에 올라서자 활을 든 토누크들이 화들짝 놀랐다.

    “킥?”

    “키익?!”

    나는 방어구를 다시 바꿀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히루도의 창을 힘껏 휘둘러 몬스터들을 처리했다.

    파악! 팍!

    단말마도 내지르지 못하고 허리가 두 동강 난 몬스터들.

    단 두 번의 공격에 세 마리 토누크가 죽었다.

    [경험치 +3,000을 얻었습니다.]

    [경험치 +2,800을 얻었습니다.]

    “오!”

    이계에서 몬스터들을 죽여도 그것이 경험치로 환산되었다.

    퀘스트를 수행하는 중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시스템인지 모르겠지만.

    할 일을 마친 나는 절벽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날갯짓 몇 번을 하자 떨어지는 속도가 저절로 느려졌다.

    타악.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대부분의 토누크 놈이 정리되어 있었다. 마지막 한 놈의 목을 트레앙이 도끼를 휘둘러 베어버렸다.

    퍽!

    “아!”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탄성을 내뱉었다. 토누크 놈들에게 부락으로 안내하게 하면 되는 거였는데, 다 죽여 버리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앞을 보았더니 마법사 두 명이 창백한 얼굴로 덜덜 떨고 있었다.

    ‘아직 안 갔네?’

    나이든 마법사가 의연한 표정으로 지팡이를 내밀었다.

    “티보! 도망가라! 나는 이미 살 만큼 살았으니 더 미련이 없다. 가서 베루니 님에게 보고를 드려!”

    “그럴 순 없습니다. 저도 싸우겠습니다!”

    나는 이자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누가 죽인다고 했나?

    나는 히루도의 창을 인벤토리에 되돌렸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토누크 부락이 어디에 있죠?”

    “응? 네……?”

    만약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더 이상 이자들을 상대하지 않고 떠났을 것이다.

    “에휴.”

    암젤도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노인이 내 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고 다시 반문을 했다.

    “당신들은 이곳에 무슨 목적으로 온 것입니까?”

    차원의 통로를 완성하기 위해 왔다는 말은 할 수 없어 나는 적당히 대답했다.

    “그냥 올 수 있어서 왔습니다.”

    뒤에서 수보타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주인님! 이곳이 누구의 영지인지 물어보십시오.”

    “아! 그래.”

    나는 수보타의 말을 노인에게 그대로 옮겼다.

    “여기는 누구의 영지입니까?”

    노인이 지팡이를 되돌리더니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군주를 말하는 거라면 만다툼이요. 하지만 우리는 그의 신민이 아닙니다. 베루니 님을 섬기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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