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독식왕 : 클리어러 123화
Chapter 37 - 차원의 통로
1
‘이계로 들어간다라…….’
나는 이것이 간단히 생각할 문제가 아님을 알았다. 이계의 환경이 이곳과 얼마나 차이가 날지 모르니까.
그곳에 얼마나 오래 머물게 될지 모르는데 만약 음식이 입에 맞지 않기라도 한다면, 혹시 그곳 기후가 이곳의 인간에게 심각한 풍토병을 일으키기라도 한다면.
그렇게 생각했다가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없지.’
나를 각성시키고 퀘스트를 부여하고 있는 인물은 어디까지나 나로 하여금 이계의 카오스 군주들을 물리치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적응을 할 수 없는 지역에 아무런 대책 없이 나가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게다가 나를 포함해 모든 파티원은 평범한 인물이 아니다. 겨우 음식이나 기후가 맞지 않다는 이유로 적응을 못 하지는 않겠지.
나는 거실에 파티원을 모두 모았다. 나를 포함해 일곱 명이 한 자리에 모이자 무슨 명절날처럼 거실이 북적북적해진 느낌이 들었다.
‘빨리 이사를 가야겠다.’
나는 이 순간에도 열심히 공사가 진행 중일 우리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떠올렸다.
베버리힐즈 풍 펜트하우스.
현장소장의 말을 듣고 검색을 해보았는데 물론 그런 양식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상당히 럭셔리하고 이국적인 집이 탄생할 듯했다.
파티원들 개개인에게 지금 티코이의 집보다도 크고 근사한 집이 생기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흐뭇하군.’
“주인님,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티코이의 물음에 나는 짧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다른 게 아니고 말이야.”
나는 퀘스트 때문에 이계로 나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계라고요?”
다들 그런가 보다 하며 수긍하는 분위기였지만 티코이만은 깜짝 놀라 여우 귀를 쫑긋 세웠다.
“이번에 가시면 얼마나 있다 오시는 건가요?”
나는 그가 보이는 격한 반응이 혼자 남겨질 상황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티코이는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근원적인 불안감이 있는 NPC다.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내 탓이 크긴 하지만.
나는 그에게 말했다.
“이번엔 너도 같이 갈 거야, 티코이.”
“네? 정말인가요?”
“응, 이번 퀘스트는 던전에 들어가거나 카오스 게이머를 죽이는 것과는 다른 일이잖아. 네가 없으면 우리 파티가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으니까.”
내 말에 파티원들 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티코이가 빠지면 안 되지.”
“싸움은 못하지만 그럭저럭 쓸 만한 녀석이다옹.”
“티코이도 같이 같다! 신난다!”
티코이의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나는 분위기가 의도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느끼고 얼른 화제를 옮겼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방비를 잘 하도록 하자. 일단 음식은 넉넉히 챙겨야지.”
“맡겨주십시오.”
집사 수보타가 대답했다. 이어서 그는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이계의 환경은 이곳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적응하는 데 힘이 들지 않으실 거예요. 다만 통로가 이계의 어느 곳과 연결돼 있는지는 신경이 좀 쓰이네요. 이계의 대부분 영토는 72군주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느 군주의 영지로 들어가느냐가 최대 관건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음…….”
나는 수보타의 말이 맞다고 여겼다. 만약에 순위가 높은 카오스 군주의 영지로 나가게 된다면…….
차원의 통로는 한 번 사용하면 사라져 버린다고 한다.
조건이 충족되어야 다시 생성된다고 했지.
그 말은 곧 한번 이계로 나가면 집에 돌아올 길이 막혀 버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퀘스트가 주어진 양상을 보면 모든 일이 단계별로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그런 어이없는 급전개는 없을 거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언제 출발하는 건가요?”
티코이가 물었다.
나는 잠깐 생각하고 대답했다.
“모레.”
어차피 지금 주어진 퀘스트는 이것 하나뿐이니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없다. 내일 가자고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2
이계. 68위 군주 만다툼의 영지.
이곳은 조금 특이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영지 안에서 반란이 일어나 일부 세력이 독립하게 된 것.
그들은 조그만 영토를 차지하고 반기를 들었지만, 정작 군주 만다툼은 거기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다른 군주들과 마찬가지로 이계의 상황을 주시하며 그곳으로 넘어갈 방법을 고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반란 세력이라 봐야 별것도 아니다. 군사를 동원하면 하루 이틀 사이에 짓밟아버릴 수 있을 정도.
오히려 이것은 기회였다. 자기 영지 내의 잠재적 반란 인자를 색출해 낼 수 있는.
반란 세력에 가담하는 숫자가 충분히 늘어나길 기다렸다가 일망타진하면 후환을 제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될 것이다.
“젠장. 마땅한 놈이 없어.”
만다툼은 마법 구슬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이계의 왕 헤레디투스는 정복욕을 가진, 그리고 잠재적으로 자신의 왕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군주에게 이계로 진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과거 이계 진출이 숱하게 시도되었다가 좌절된 이유는, 이계로 넘어가는 동안 일신의 능력이 사라져 버리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계로 넘어가자마자 능력을 잃게 된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는 일.
그것 때문에 생각한 방법이 이계인들을 각성시킨 뒤, 던전에서 성장시키는 것이었다.
이계의 각성자들 중 마나가 호응하는 자를 찾아 그를 통해 안전하게 이계로 넘어가는 방법이다.
아직까지 이 방법이 성공했다는 얘기는 없었다.
하지만 모든 군주가 가능성이 생겼다는 자체만으로 군침을 흘렸다.
이계는 그야말로 새로운 땅. 미개척지니까.
자신들의 야욕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을 뿐이지 모든 군주가 이계 진입을 성공하지 못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누가 경쟁자들에게 중요한 정보를 흘리겠는가?
선점하는 자가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될 터인데.
군주들은 몇 가지 방법을 사용해 자신의 대리인을 색출하고 있었다. 갖가지 마법 도구로 이계인들의 면면을 살피는 작업인데, 여기에는 조건이 필요했다.
대륙 각지에 퍼진 신성 지역을 장악하여 코어를 손에 넣는 것.
코어는 이계에 생성된 던전과 연결되어 있다.
그것을 통해 던전에 들어오는 게이머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과 호응하는 대리인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했다.
신성 지역은 모든 대륙에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한 군주가 장악할 수 있는 숫자는 정해져 있었다. 그 이상 손에 넣으려면 다른 군주의 영지를 침범해야 한다.
하지만 헤레디투스가 말하기를 타 군주의 영지에 있는 코어로는 자신과 호응하는 대리인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굳이 다른 영지를 침범하여 더 많은 코어를 확보하려는 군주가 없었다.
만다툼은 지금껏 세 개의 코어를 확보했다.
그것과 마법 구슬을 연결하여 이계를 들여다보았지만 여태 성과를 얻지 못했다.
혀를 차면서 마법 구슬에서 시선을 떼었을 때 신하 하나가 전언을 보냈다.
-군주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뭐냐.”
-탐색병들이 또 하나의 신성 지역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신성 지역이라는 표현은 그곳에 코어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기 영지에 몇 개의 코어가 있는지 정확히 아는 군주는 없다. 때문에 ‘탐색’을 하는 것도 군주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일 중 하나였다.
“그래? 그럼 빨리 가서 코어를 확보해야지.”
-그것이…… 이번에 발견한 장소가 베루니 놈들의 지역에 있다고 합니다.
“뭐?”
베루니는 반란을 일으킨 세력의 우두머리였다. 그가 장악한 지역에 코어가 있다면 필연적으로 놈들을 먼저 진압해야 할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는군.”
만다툼은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어차피 해야 할 일. 한꺼번에 두 가지를 할 수 있다면 더 잘된 일이지.’
그는 명령을 내렸다.
“병사들을 모아라. 사흘 뒤에 그곳으로 진격할 것이다.”
-네! 군주님!
3
만다툼에게 반기를 들고 조그마한 영토를 차지한 베루니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 때문에 경계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탐색 능력을 가진 마법사들에게 명령해 24시간 영토 주위를 경계하게 했다.
순찰 임무를 맡은 티보는 마법 지팡이를 들고 걷다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마법 지팡이 끝에 박힌 수정이 녹색 빛을 띠고 떨리기 시작한 것.
침입자나 적의를 띤 대상이 나타나면 붉은빛으로 반짝이게 되어 있었다.
마법 능력이 보잘것없는 그는 이런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뭐지?”
그는 신기한 기분으로 지팡이가 이끄는 감각을 따라가 보았다. 처음에 희미했던 녹색 빛은 점점 밝은 색을 띠고 지팡이의 떨림도 거세어졌다.
덜덜덜.
지팡이의 반응을 견디지 못해 결국 그것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땅에 떨어진 지팡이가 마치 자석에라도 이끌리듯 어딘가로 확 날아가 버렸다.
“잠깐! 기다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법 도구 중 유일하게 쓸 만한 물건이었기에 그는 필사적으로 지팡이를 쫓아갔다.
딱.
지팡이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것은 벽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가 빛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티보는 얼른 달려가 지팡이를 주웠다.
“어휴, 큰일 날 뻔했네.”
고개를 든 그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이상한 현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벽이 갈라져 그 안에서 희미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
갈라진 틈은 사람이 지나다녀도 될 정도로 충분히 컸다.
홀린 듯이 그 안으로 몇 발짝 들어갔다가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어디로 통해 있는지도 모르는데 못 나오게 되기라도 하면 큰일이지.’
게다가 이곳은 몬스터 출몰 지역이었다.
“캬아아웅~~”
때마침 먼 곳에서 날카로운 짐승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돌아가서 보고를 하자.’
티보는 바위의 구멍에서 도망치듯 떠나갔다.
4
이틀 동안 나는 티코이에게 코리우스의 검과 점퍼 세트의 업그레이드를 맡겼다.
티코이의 손을 거쳐 그것들을 크게 성능이 향상되었다.
퀘스트를 수행하기로 한 날 아침에 다같이 C-001 던전으로 갔다.
던전을 공략하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관리소로 갈 필요는 없었다. 되레 목적지는 던전 입구와 정반대되는 위치에 있었다.
비밀 통로.
던전 마스터에게만 허락된 또 다른 입구.
아무것도 없는 벽을 두 번 두드리자 우르릉! 소리를 내며 벽이 갈라졌다.
그 안에 드러난 공간.
한쪽에 귀환서가 놓인 단상이 덩그러니 있었다.
차원의 통로는 최상층에 있지만 곧바로 그곳으로 갈 생각은 없었다. 처음 가는 이계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준비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나는 동료들을 데리고 상점이 있는 1층 세이브 존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