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왕 클리어러-118화 (118/245)
  • # 118

    독식왕 : 클리어러 118화

    칼리파는 일주일 동안 한국에 머물렀다. 그 기간 동안 노아와 나는 매일 저녁 그와 만났다.

    만나서 특별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차나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전부였다.

    칼리파는 알면 알수록 순수한 젊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부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그로 인해 깨어졌다.

    그도 나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나자 나는 그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별 선물로 돌개 보드 하나와 함께 그 동안 비축해 둔 추그니다킹 뿔 스무 개를 주었다.

    “성오 씨!”

    칼리파는 매우 감격했다.

    “우리의 우정이 영원하길 바랍니다.”

    그가 내 몸을 꽉 끌어안았다.

    칼리파를 태운 자동차가 멀어지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거부와 친해지다니, 현실도 가상현실 게임 못지않게 흥미롭네.’

    5

    연일 계속된 던전 공략으로 7일 차에는 10층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하루에 한 개 층씩 공략했지만 유독 공략이 빨리 끝난 날은 한 개 층을 추가로 공략했다.

    10층은 두 번째 데미 마스터가 나오는 층이었다.

    이 던전에서 데미 마스터라고 하면 독특한 의미가 있다. 전술적 행동이 가능한 토누크이니 만큼 더욱 뛰어난 지능을 가진 리더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곳은 시작부터 특이했다. 놈들이 거대한 장치를 끌고 나타난 것.

    투석기 한 대가 설치되어 후방에 위치하고, 중간에 궁병들, 맨 앞에는 맹수 등에 올라탄 돌격대가 위치했다.

    “골치 아픈 놈들이다옹.”

    암젤도 이번 싸움이 호락호락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한마디 했다.

    나는 모르돈 마법사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런 대규모 군단을 상대할 때는 경험상 근접 전투보다는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

    우리 쪽 진형은 자연스럽게 짜여졌다. 수보타가 가장 먼저 앞으로 나가면서 어그로를 끌었다.

    “야! 못생긴 놈들아! 여기다! 내 쪽을 봐라!”

    의외로 얄미운 역할을 잘 수행해서 몬스터들은 어김없이 그에게 집중 공격을 퍼붓곤 했다. 물론 아무리 공격을 당해도 수보타는 대미지를 입지 않는다.

    “으악! 나 죽네! 주인님! 살려주십셔!”

    본인은 통증과는 무관하게 꽥꽥 비명을 질러대기는 했지만.

    트레앙과 칼리타가 전방 공격을 주도했다. 그 사이사이의 공간을 암젤의 소환수들이 메꾸었다. 아린은 방패의 곡을 연주하여 전방에서 싸우는 NPC들을 보호해 주었다.

    나는 미들레인지 포지션을 잡았다. 마법을 떨어뜨려 적들에게 대미지를 입혔다.

    ‘파이어 볼!’

    ‘라이트닝 볼트!’

    가끔은 다른 마법을 섞어서 사용하기도 했다.

    ‘미끄럼!’

    벌렁!

    쿠당탕탕!

    여러 마리 몬스터가 한데 몰려 있을 때 ‘미끄럼’을 사용하면 한꺼번에 쓰러질 때가 있었다.

    놈들을 넘어뜨리고 그 위에 마법 스킬을 떨어뜨렸다.

    ‘파이어 볼트!’

    화르르륵-

    “캬아악!”

    “캬악!”

    어지러운 전투는 다섯 시간 넘게 계속되었다. 포션과 마나 포션이 없었더라면 체력이 남아나지 않았을 싸움.

    칼리타가 투석기를 향해 스킬을 내뿜었다.

    ‘얼음 폭풍!’

    우두두두-

    조잡한 형태의 투석기가 얼어붙자 트레앙이 그것을 도끼로 깨부수었다.

    쾅-!

    놈들에게 최후의 보루였던 투석기마저 망가지자 토누크 잔당이 동요를 일으켰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무리 사이에서 리더를 찾아냈다.

    뚱뚱한 몸집에 창을 들고 있는 토누크킹.

    나는 의상을 바꾸었다.

    “소달루스!”

    근접전 전용의 방어구를 입고 데미 마스터에게 돌진했다. 앞을 막아서는 놈들은 돌풍으로 날려 버렸다.

    ‘토네이도 스피어!’

    콰과과곽!

    “키악!”

    “키에엑!”

    토누크킹이 돌진하는 나를 발견했다. 후퇴가 용납되지 않는 던전 안의 싸움답게 놈도 자신의 커다란 창을 꼬나 쥐고 마주 달려왔다.

    콰각!

    두 개의 창이 맞부딪치자 불꽃이 튀었다. 놈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으나 내 상대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접전은 십 분을 넘기지 않았다. 패색이 짙어진 놈에게 내가 최후의 일격을 꽂았다.

    ‘백 개의 창!’

    꽈과과광!

    “크아아악!”

    [레벨 100이 되었습니다. 스탯 포인트 3을 얻었습니다.]

    이번 싸움은 내게 기념비적인 일전이었다.

    드디어 레벨이 100에 도달한 것!

    이는 일종의 통과 지점이었다. 레벨 100을 넘어서며 나는 전보다 진일보한 게이머가 되었다.

    [기존 클래스를 진화하거나 새로운 클래스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마법사 클래스를 4서클로 진화시키는 대신 새로 선택 가능해진 클래스를 골랐다.

    [‘웨펀 마스터’가 되었습니다!]

    [무기를 이용한 스킬 구사 시 위력이 100퍼센트 증가합니다.]

    [무기를 이용한 공격 적중 시 크리티컬 확률이 20퍼센트 상향됩니다.]

    [무기술을 이용해 적을 처치할 시 추가 경험치 10퍼센트를 얻습니다.]

    [모든 무기의 숙련도가 최고도가 되었습니다.]

    기분 좋은 일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메인 퀘스트 [지위] - 4. ‘랭킹 10,000위 안에 진입’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보상 상자(세트 아이템 전용)를 얻었습니다.]

    “좋아.”

    힘든 공략이었던 만큼 오늘은 이 이상 전진하지 않고 여기에서 멈추기로 했다.

    6

    이틀 뒤.

    드디어 뜻깊은 날이 왔다. 운전면허증이 발급된 것.

    파티원 전원이 한 번에 도로 주행까지 합격을 했다.

    학원에서 면허증을 교부받고 티코이네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 앞에 못 보던 자동차가 한 대 세워져 있었다.

    그것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자동차가 아니라 은색 보디의 슈퍼카였다.

    때마침 울리는 핸드폰.

    발신자는 노아였다.

    “여보세요?”

    “축하합니다, 성오 씨. 혹시 보셨나요?”

    “뭘요?”

    “영호 씨 집 앞에 세워둔 자동차 말입니다. 성오 씨 아파트 앞에 세워두려고 했는데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럼 혹시…….”

    “네, 그 자동차는 성오 씨께 드리는 제 선물입니다. 면허를 따고 자동차를 구입하려고 하면 시간이 걸릴 테니까 제가 미리 주문을 해두었죠. 두루 몰아본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부가티가 승차감이 제일 나은 것 같더군요.

    물론 자동차야 사람마다 취향이 다 다른 거니까 성오 씨 생각은 다를지 모르지만요. 다른 길드원들 자동차도 나중에 지급해 드릴 계획입니다.

    지금 생활하시는 집에는 주차 공간이 충분치 않은 것 같아서요. 나중에 이사하면 한꺼번에 지급할 생각입니다.“

    “고마워요, 노아.”

    “뭘요. 성오 씨 덕분에 저도 300억이나 공짜 돈이 생겼는데요.”

    전화를 끊자 자동차 문이 벌컥 열렸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단단한 체격을 가진 외국인이었다.

    “카일.”

    “오랜만입니다.”

    그가 내게 자동차 키를 건네주었다.

    “제 취향은 람보르기니입니다만 부길드장님은 부가티를 선호하시더군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람보르기니도 꼭 몰아보십시오.”

    “네,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한국말이 많이 느셨네요.”

    “그런가요?”

    내 칭찬에 카일이 어울리지 않게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네, 나중에 봐요.”

    카일은 길 반대편으로 건너가더니 그곳에 주차되어 있는 또 한 대의 슈퍼카에 탑승했다.

    조수석에 올라타자 운전석 유리창이 내려가며 여자 운전자가 얼굴을 드러냈다.

    그녀는 바로 캐미였다.

    “길드장님, 바이 바이~”

    손을 흔든 뒤 창을 닫고 곧장 차를 몰고 떠나갔다.

    나는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시선을 돌려 눈앞에 있는 자동차를 바라보았다.

    이게 내 차라고 생각하고 보니 기분이 색달랐다.

    얼마 전까지 운전면허 학원의 고물 자동차로 도로 주행을 했었는데, 그야말로 격차가 하늘과 땅 만큼이라고 할 만하다.

    나는 카일에게 건네받은 키를 움켜쥐었다.

    ‘한번 몰아볼까?’

    문을 여는 것부터 운전 학원의 차와는 완전히 느낌이 달랐다. 티코이의 고급 세단과도 비교가 안 된다.

    “음…….”

    좌석에 앉자 저절로 뿌듯함이 밀려왔다.

    부웅-

    엔진 소리가 절로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이래서 남자들이 자동차에 열광하는 거구나.’

    물론 모든 남자가 슈퍼카를 모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한 시간 동안이나 시운전 삼아 동네를 뱅글뱅글 돈 다음에야 제자리로 돌아와서 자동차를 주차했다.

    7

    C급 던전 공략 15일 차.

    예정보다 5일 빨리 우리는 최상층에 도달했다.

    이곳의 분위기는 시작부터 달랐다. 어떤 층이든 좌우로 깎아지를 듯한 계곡이 서 있었는데 이번 층에서 우리를 맞이한 것은 광활한 벌판이었다.

    조용한 벌판을 삼십여 분 동안 전진했을 때 멀리 조그마한 부락이 나타났다. 그것을 보자마자 던전 마스터가 있는 최상층의 구조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깨달았다.

    이곳에서의 목표는 부락을 점령하는 것일 터.

    부락에서 던전 마스터를 중심으로 토누크들이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마을의 규모는 상당히 컸다.

    그리고 얼핏 보아도 지금까지 등장했던 모든 병종과 병기가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쉽지 않겠군.’

    나는 오늘 모든 힘을 쏟아부을 각오를 했다.

    다섯 시간 뒤.

    끈질기게 버티던 던전 마스터가 내 화살에 목숨을 잃었다.

    마을은 폐허가 되고, 생존한 몬스터들은 한 마리도 볼 수 없게 되었다.

    [C-002 던전의 마스터가 되었습니다.]

    [메인 퀘스트 [영토] - 4. ‘C급 이상 던전 한 개 획득’을 달성했습니다.]

    [PHASE 4의 모든 퀘스트를 달성했습니다.]

    [‘차원문의 열쇠’ ×1을 얻었습니다.]

    유난히 길었던 PHASE다.

    내가 뿌듯한 기분으로 NPC들에게 돌아가자고 말하려 했을 때, 갑자기 칼리타가 소리쳤다.

    “주인님, 이쪽에 이상한 통로가 있습니다!”

    “응?”

    목소리가 들린 곳에는 칼리타가 혼자 서성이고 있었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커다란 바위틈에서 반짝이는 빛이 새어 나왔다.

    나는 그곳으로 걸어가 빛이 흘러나오는 지점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한 틈새였다.

    칼리타가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이게 혹시……. 다른 세상으로 가는 통로인가요?”

    “글쎄…….”

    나는 칼리타가 가진 스킬 중에 ‘길 찾기’가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무려 이계로 갈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다.

    레벨 100이 되어서 스킬이 강해진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인 건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충분히 의심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이었다.

    나는 통로 쪽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주인님, 조심하세요!”

    칼리타가 경계하며 말했다.

    그녀는 수수께끼의 통로로 들어섰다가 이쪽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계의 삶에서도 고생을 했지만 던전에서 보낸 며칠은 더욱 끔찍한 악몽이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들, 딸을 잃은 게 그녀로서는 비할 데 없는 아픔이었을 터.

    나는 적당한 거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보았다.

    손끝이 빛에 닿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이계의 통로’를 발견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