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
독식왕 : 클리어러 116화
점프를 하는 중에도 창을 휘둘러 화살을 쳐 내야 했기 때문에 저항이 강해졌다. 하지만 몸을 스치는 강한 바람이 느껴질 정도로 고속의, 그리고 높은 도약이었다.
나는 속도가 늦춰지는 순간에 맞추어 다시 한 번 벽을 밟고 도약했다.
단 두 번. 계곡 위에 닿기까지 점프 횟수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내가 계곡 위로 불쑥 솟아오르자 활을 든 토누크들이 당황했다.
“키익!”
“키이익!”
높은 소리로 저네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저놈이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지?’ 같은 내용이겠지.
나는 창을 비껴들고 놈들에게 달려갔다.
‘토네이도 스피어!’
‘건샷 스피어!’
‘백 개의 창!’
활을 든 놈들은 대체로 전투 능력이 떨어진다. 근접전이 아닌 오로지 활을 쏘는 데만 특화된 놈들이기 때문.
파괴신의 룬이 장착된 창으로 내쏘는 스킬에 놈들은 마치 볼링핀처럼 쓰러져 갔다.
계속 위에서의 내 활약으로 아래에 있는 NPC들도 여유를 되찾았다. 그들은 다시 언덕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계곡의 한쪽 면에 있던 토누크들을 모조리 쓰러뜨린 뒤, 건너편 계곡 위를 바라보았다.
놈들은 여전히 아래를 겨누고 화살을 날리는 중이었다.
나는 무기를 바꾸었다.
히루도의 창에서 바키움으로.
아래에서 위를 겨눌 때는 역부족이었지만 평행한 높이에서는 너비 십 미터를 가로지르는 것이 어렵지 않다.
나는 반대편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유도살!’
‘연사!’
날카롭게 날아간 화살이 어긋남 없이 몬스터들을 맞추었다.
“캬악!”
“캬아악!”
놈들은 제자리에서 쓰러지기도 하고 비틀거리다가 계곡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
계곡 위를 장악하자 공략은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쉬워졌다.
NPC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언덕을 뛰어 올라가 토누크 놈들을 따라잡았다.
“맛 좀 봐라! 이놈들아!”
“감히 잔머리를 굴려? 죽어봐라!”
내가 굳이 내려갈 필요도 없을 만큼 일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잠시 숨을 돌리던 내 눈에 무리 중 가장 뒤쪽에 서 있는 키 큰 토누크 한 놈이 들어왔다.
다른 놈들보다 1.5배가량 신장과 덩치가 큰 놈.
찢어진 눈을 가진 녀석은 목청을 돋우어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놈을 향해 활을 겨누었다.
“킥!”
감이 좋은 녀석인지 고개를 치켜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놈이 뭔가 행동을 취하는 것보다 바키움의 시위에서 화살이 떠나는 것이 더 빨랐다.
‘하트 브레이커!’
S등급의 스킬이 허공을 찢고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퍼억-!
정확하게 몬스터의 심장을 꿰뚫었다.
“캬아아악!”
[레벨 95가 되었습니다. 스탯 포인트 3을 얻었습니다.]
두목이 쓰러지자 싸움은 한층 우리 쪽에 유리하게 흘러갔다.
1층 공략을 모두 마치고 세이브존에 이르렀을 때는 파티원들이 모두 어느 정도씩 지쳐 있었다.
비록 상처는 모두 포션으로 회복했지만 이 이상 공략을 계속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멤버들에게 말했다.
“잘했어. 오늘은 이만 하고 돌아가자.”
Chapter 35 - 먼 나라에서 온 고객님
1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넓고 화려한 방에 앳된 외모의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커다란 모니터를 보고 계속해서 마우스를 클릭해 댔다.
“어? 어디 갔지?”
그가 접속하고 있는 사이트는 카오스 게이머 닷컴.
주문을 넣어둔 추그니다킹 뿔의 배송 상황을 확인하려던 그는 상점 자체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제 보니 자신 앞으로 메일이 와 있었다. 선금을 반환한다면서, 자기네가 사정상 카오스 게이머 닷컴에서 철수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철수를 해?’
남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OG는 자신이 가장 눈여겨보고 있던 상점이다.
돈이야 넘쳐 나기 때문에 쇼핑에 흥미를 느끼던 시기도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다.
그나마 관심을 갖고 있던 것이 카오스 게이머 닷컴을 통해 새로운 상품을 찾는 일이었다.
이쪽도 이미 상당히 고착화되어 있기 때문에 암거래 사이트라 해도 눈에 띌 만한 상품이 나오는 일이 드물었다.
그러다가 알게 된 상점 OG.
그곳에서 파는 상품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OG가 맨 처음 개발한 귀화제는 실로 오랜만에 보는 새로운 아이템이었다. 카오스 게이머 닷컴은 상품을 내놓을 때 먼저 검증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사이트에 올라왔다는 것은 이미 백 퍼센트 확실한 물건이라는 뜻이다.
관심이 생겨 상점에 들어가 봤더니, 웬걸 이번엔 정말 특이한 상품을 볼 수 있었다.
추그니다킹 뿔.
그는 각성자는 아니지만 게이머들과 던전에 대해서는 마니아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추그니다가 어떤 몬스터인지 잘 알고 있고, 온전한 추그나다킹의 뿔이 얼마나 멋있는지 또한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온전한 뿔을 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그것을 얻은 사람들은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상품은 유통량 자체가 매우 적기 때문에 돈이 있어도 구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구입할 가치가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장식품으로서의 추그니다킹 뿔은 그런 이유로 애매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었다.
마니아인 자신 같은 사람이나 존재를 알고 있는 정도.
그런데…….
OG에서 팔고 있는 추그니다킹 뿔은 지금껏 보았던 어떤 물건보다 완벽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상점 자체가 크게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관심도가 적은 모양이지만 입소문이 난다면 충분히 다른 마니아들이 흥분할 만한 물건이다.
돈으로 경쟁하는 것이야 두렵지 않지만 이놈이 팔리기 전에 어서 차지해야 된다는 조바심이 일었다.
때문에 즉시 구매를 하겠다고 의사를 전달했다.
물건을 손을 넣은 뒤 그는 친한 몇몇에게 자랑을 했다. 그들은 역시나 자신처럼 추그나디킹 뿔에 지대한 관심을 내비쳤다.
부자들은 자신들의 집을 평범한 물건으로 장식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완벽한 모양의 추그니다킹 뿔이라면 필시 유통되는 수량도 적을 것.
너도나도 갖고 싶다고 난리였다.
득의만만하게 그들을 대신해 주문을 넣었다.
그리고 몇 달.
그동안은 일 때문에 카오스 게이머 닷컴에 들어가 볼 여유가 없었다.
당연히 집에 돌아오면 상품이 배달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암거래를 할 때 선금까지 돌려주었다면 일단 사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관계없이 공허감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지인들에게는 뭐라고 설명한단 말인가?
속 좁은 놈들은 자기만 멋진 물건을 독점하려고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음…….’
엄밀히 말해 그런 것들은 사소한 이유다. 자신이 지금 공허함을 느끼는 더 큰 이유는 OG라는 상점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귀화제 다음으로 개발하여 예판을 한 것은 ‘리에고 등불’이라는 아이템이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유니크한 아이템이라는 말인가?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낸 것은 단순히 아이템을 제조한 것 이상의 충격을 주었다.
추그니다킹 뿔이 문제가 아니라 이들이 앞으로 개발해서 출시할 아이템이 무엇일지 기대가 무척 컸다.
“흐음…….”
그는 핸드폰으로 수행 비서를 호출했다.
멀지 않은 곳에 대기하고 있던 비서 수하일이 냉큼 그가 있는 방으로 왔다.
“부르셨습니까? 칼리파.”
칼리파라고 불린 남자가 사정을 설명했다.
“OG 말씀이신가요?”
수하일은 뜻밖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응, 알고 있는 게 있어?”
“물론이죠. 지금은 꽤 유명해진 사람들입니다.”
“유명해졌다고? 어떻게?”
칼리파는 비서가 하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암거래 상인이 유명해졌다면 카오스 게이머 닷컴 안일 텐데, 그들은 이미 판매를 중지하고 상점을 철수시켰다.
“OG라는 이름 그대로 길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곧, 온라인 판매 사이트를 개설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길드?”
“네, 노아 알렌이 한국으로 날아가 그에게 길드 창설을 권유했다고 합니다. 동시에 그가 개발한 상품을 독점 판매하는 사이트를 개설할 예정이기도 하고요.”
“노아 알렌…….”
대부분의 사람은 모르는 일이지만 칼리파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카오스 게이머 닷컴의 창시자이자 실질적인 운영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피스&호프를 나왔다는 얘기는 얼핏 들은 것 같은데, 그가 향한 곳이 한국이었다니…….
그것도 OG 개발자와 함께 길드를 만들었다고?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며 머릿속이 밝게 깨는 것을 느꼈다.
영영 꺼져 버린 줄 알았던 희망이 더 크고 화려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 기분.
“더 자세히 말해봐.”
수하일은 자기가 모시는 칼리파가 게이머계의 동향과 던전에서 나오는 아이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늘 어지간한 정보는 머릿속에 담아두었다.
설명이 이어질수록 칼리파의 표정에 생기가 더해졌다. 이야기가 끝나자 냉큼 말한다.
“나 당장 한국 갈래. OG에 연락하고 약속 잡아.”
“네? 하지만 칼리파 님, 지금 스케줄 여유가…….”
“두 달이나 바빴으면 됐잖아. 일주일은 쉴 거니까 스케줄 다 취소하고 말한 대로 해.”
“……네.”
칼리파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인터넷 창을 띄웠다. 이번에 접속한 것은 포털 사이트.
검색란에 OG를 입력해 넣었다.
주욱 나열되는 기사들.
사진 창에는 노아 알렌과 OG 길드장 조성오의 얼굴도 있었다.
“헉! 어리잖아?”
자기도 어린 주제에 눈이 동그래진다.
기사의 대부분은 수하일이 말해준 정보보다 못한 것들이었지만 그는 신나게 기사들을 읽고 또 읽었다.
2
노아는 호텔 방에서 서류를 보며 사업 진행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겨서 투자금이 늘었지만 이 이상 투자처를 찾을 생각은 없었다.
투자라는 것은 결국 기브 앤 테이크.
돈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 아닌데 투자를 받은 것은 성오의 복수를 위해 택한 방편이었다.
온라인 아이템 판매 사업은 규모 자체를 크게 키울 생각이 없었다. 자신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고착화된 게이머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것.
돈은 평생 사치를 해도 남을 정도로 벌었기 때문에 수익은 내려는 목적은 전혀 없다.
‘그래도 손해는 안 보겠지.’
제작자가 조성오 한 명이기에 대량 생산은 불가능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격에 더욱 프리미엄이 붙을 것이다.
그의 성장세로 보아 갈수록 더 뛰어난 아이템이 나올 텐데, 나중에는 결국 돈을 주고도 갖지 못할 아이템을 만들지도 모른다.
그때쯤 되면 싫어도 OG는 더 큰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노아는 가슴이 뛰었다.
‘그래, 인생은 이래야지!’
돈도 좋지만 꿈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지금껏 몸담았던 피스&호프는 니콜라스의 꿈을 위한 조직이었다. 그것도 불쾌하고 기분 나쁜 꿈.
노아는 서류를 덮고 기지개를 켰다.
때마침 테이블 위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