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독식왕 : 클리어러 114화
3
이덕수를 죽인 나는 나름대로 만족했다. 사람을 죽인 자체는 좋을 게 없지만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게이머가 하나 없어졌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다.
‘그나저나 나머지 네 명은 어떻게 하지?’
‘명예’ 퀘스트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직 네 명의 카오스 게이머를 더 처리해야 한다.
다섯 명을 한꺼번에 처리하지 않고 한 명만 죽인 탓에 퀘스트를 깨다 만 기분이었다.
운전면허 학원을 다녀왔을 때 한호에게 연락이 왔다. 전화로 얘기하기는 어렵다는 그의 말에 예의 그 다방식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고생했다. 네 덕분에 여자아이도 무사하고 쓰레기도 죽었으니까.”
“진짜 세상엔 별 놈들이 다 있구나.”
“게이머들이 범죄에 눈을 뜨면 정말 무서운 일이 벌어지는 거지. 지금까지의 수사 기술로는 놈들이 저지른 일을 밝혀낼 수 없으니까.”
“그렇긴 하지.”
한호는 어조를 바꾸어 이야기했다.
“그건 그렇고, 우리 반장이 죽었어.”
“반장?”
“던전 사고 처리반 반장. 오늘 아침 한강에 떠내려 온 시체가 발견됐는데, 직접적인 사인은 두개골 파열이야. 뭔가로 세게 맞았나 보던데, 인간의 힘으로는 그렇게 만드는 게 불가능하대.”
“게이머가 죽였다는 거야?”
“응, 나는 그놈이 잘 죽었다고 생각해. 지금까지 게이머 놈들 범죄를 눈감아주면서 인맥을 만들던 놈이거든. 이덕수에게 여자를 제공한 것도 그 사람이야.”
“와, 공무원들까지 정말 너무하네.”
“그자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강남에 있는 술집인데 거기는 오성 길드 놈들이 단골로 자주 이용하던 곳이야. 그날도 놈들이 거기 있었다는 정보가 있고.”
“오성 길드가 반장을 죽였다는 거야?”
“확실해. 반장이 가장 든든하게 믿고 있는 게 바로 그놈들이었거든. 특히 이덕수와 가까웠지. 덕수가 죽으니까 당황해서 놈들을 만났을 거야. 그런데 놈들 입장에서 반장은 그냥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었거든. 더 윗선과도 연결이 돼 있으니까.”
“오성 길드 나머지 놈들은 어때? 덕수만큼 나쁜 놈들이야?”
“덕수가 끔찍한 일을 했어도 결과적으로 죽인 사람은 한 명이지. 하지만 놈들은 그보다 더 노골적으로 살인을 많이 저질렀어. 그야말로 천둥벌거숭이처럼 세상 무서운 것 없이 까부는 것들이지.”
나는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등급이 B라고 하니까 적어도 덕수만큼의 능력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남은 오성 길드 놈들이 네 명이고, 내가 처리해야 할 70레벨 이상의 카오스 게이머도 넷이니 숫자가 딱 맞는다.
“놈들도 죽이면 되는 거지?”
“너한테 얘기하면 일이 참 간단해지는구나.”
“어디 가면 찾을 수 있어?”
“놈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난 뒤엔 늘 핑계 삼아 던전에 들어가. 며칠 던전을 공략하는 동안 걔네들 아버지가 뒤처리를 해주는 패턴이지.”
“잘됐네. 어디에 들어갔는데?”
한호는 그들이 오늘 들어간 던전이 어디인지 알려주었다.
나는 그것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내가 소유한 E급 던전 중 하나였기 때문에.
“잘됐네.”
4
“와, 씨! 토끼 새끼 표정 더러운 것 봐.”
“똥 싸는 새는 어떻고? 누가 여기 오자고 했어?”
“뭘 그렇게 투덜거리냐? 던전이 다 거기서 거기지.”
오성 길드 멤버들이 공략 중인 곳은 숲이 테마인 E급 던전이었다. 다들 등급은 B급이지만 웬만해선 F급이나 E급만 공략을 했다.
그들의 목적은 돈이 아니기 때문에.
던전에 들어오는 것은 절반이 놀이나 다름없었다.
“얘기 들으니까 덕수 아버지가 아들 실종된 것 때문에 엄청 흥분해 있다던데.”
“그 양반 덕수 살아 있을 때나 좀 잘할 것이지. 병신도 자식은 자식이잖아?”
“지가 병신이니까 병신을 낳지.”
그들은 자기보다 수준이 낮은 몬스터들을 장난처럼 척살하며 걸음을 옮겼다.
처음에는 몸을 풀 겸 1층을 공략했다가 세이브 존에서 휴식을 취한 뒤, 바로 던전 마스터가 있는 7층으로 올라갔다.
“야, 근데 조성오라는 놈 카오스 게이머 닷컴에서 아이템 팔았던 그놈 맞지?”
“맞겠지. 나도 귀화제 하나 샀었는데. 그거 구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럼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얘기잖아. 그놈도 되게 뻔뻔하네.”
“멍청한 거지. 얼굴 안 알리고 카오스 게이머 닷컴에서 돈 버는 게 더 짭짤했을 텐데.”
“돈 좀 벌더니 명예가 고팠나 보지.”
“하하. 배가 불렀네. 흙이 돈 번다고 금이 되나? 금은 타고나는 거지.”
등장 몬스터가 1층과는 달리 강해지자 그들도 더 이상 잡담을 나눌 여유가 줄어들었다.
오성 멤버 네 명은 신체 강화형 하나에 고스트형 둘, 한 명이 매지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덕수 병신 새끼. 그 좋은 공격 마법 가지고 사냥을 못한다는 게 말이 되냐?”
“제일 안전하고 편한 기술 아니야. 나 줬으면 정말 잘 써먹을 건데.”
사냥을 하면 할수록 그들은 뭔가 위화감에 젖었다.
“야, 갑자기 몬스터 숫자가 많아지는 것 같지 않냐?”
“너도 그렇게 생각해? 나는 오랜만에 들어와서 내가 착각하나 했는데.”
몬스터들의 숫자가 갑자기 늘어났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그런 경향은 점점 짙어져서 슬슬 감당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안 되겠다. 돌아가자.”
“오랜만에 보스 좀 잡아볼까 했더니, 뭐 이래? 관리소 놈들은 던전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입으로는 아직 나름 센 척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에서는 공포가 자라났다.
두두두두-
왔던 곳으로 돌아가려고 등을 돌린 그들은 자신들 앞에 펼쳐진 광경에 숨을 멈추었다.
숄트와 추그니다 무리가 까맣게 몰려오고 있었다.
“뒤에서도 와? 뭐야 이게?”
“야! 귀환석 꺼내봐. 얼른 나가자!”
멤버 중 하나가 귀환석을 꺼냈을 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났다.
슈욱-
퍽!
“끄악!”
귀환석을 꺼내던 매지션 게이머가 자기 손을 치켜들며 비명을 질렀다.
그의 손에는 화살 한 대가 꿰어져 있었다.
일이 심각하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오성 길드 멤버들.
그들 앞에 한 무리의 인영이 나타났다.
남자 한 명, 그리고 여자 셋에 고양이 한 마리.
“다, 당신들 뭐야?”
“설마 화살 쏜 게 당신이야?”
나는 바키움을 치켜들며 여유 있게 말했다.
“왜? 불만 있냐? 쓰레기들아?”
차례로 보이는 오성 길드 멤버들의 정보창.
한호의 말마따나 절대 덕수보다 나을 게 없는 쓰레기들이었다.
오성 길드 멤버들은 패닉에 빠졌다. 단순히 아린이 혼란의 곡을 연주했기 때문이 아니다.
수십 마리의 몬스터에게 에워싸이고 자신들보다 강해 보이는 게이머들도 나타났다.
더군다나-분명 착각이겠지만- 마치 몬스터들이 활을 든 남자의 명령을 받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 살려!”
“시발! 누가 좀 살려줘!”
숲으로 둘러싸인 어두운 던전 안에서 카오스 게이머 네 명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짭짤하네.”
나는 카오스 게이머 네 명을 처치하고 얻은 보상을 정산했다.
일단 레벨이 2 올라 94가 되었다.
스킬 스톤 한 개가 나오고, 스탯 스톤은 다섯 개를 얻었다.
스킬 스톤 하나는 ‘신체 강화’였다. 나는 그것을 수보타에게 주기로 했다.
스탯 스톤은 각각 근력 +6, 체력 +6, 체력 +5 민첩 +6, 민첩 +6이었다.
그리고.
[메인 퀘스트 [명예] - ‘Lv70 이상의 카오스 게이머 다섯 명 처치하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보상 상자(넘버링 아티팩트 전용)를 얻었습니다.]
5
게이머 한 명이 사라진 것은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며칠 새 게이머 다섯 명이, 그것도 같은 길드원이 사라졌다면 그것은 더 이상 우연이라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오성 길드 멤버들의 아버지는 모두 사회에서 한가락씩 하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던전 사고 처리반을 뒤집어엎을 것처럼 난리를 피웠다.
하지만 이 기관이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이제까지 그것을 이용하여 얼마나 많은 범죄에서 아들들을 보호해 왔던가?
한호는 매뉴얼 상의 답변만 들려주었다.
“던전 안에서 게이머가 죽는 일이 거의 없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사망률이 0퍼센트가 된 것은 아닙니다. 아드님들이 실종된 것에 상심이 매우 크시겠지만 던전에서 실종된 경우 현실적인 수색 방법을 강구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노여움을 푸시고 기다리면 좋은 소식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확률은 아주아주 작지만요.”
“두 개는 달성했고.”
PHASE 4 메인 퀘스트 중 이제 남은 것은 세 개다.
나는 그중 영토 퀘스트를 달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번에 던전 예약을 했을 때 남은 기간이 열흘이었는데, 이런저런 일을 겪는 사이 시간이 모두 지나갔다.
전에 공략했던 C급 던전은 시간이 촉박했던 탓에 아주 서둘러서 13일 만에 공략을 끝냈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서두를 필요가 없다.
나는 넉넉하게 기간을 잡아 20일 연속으로 예약을 해두었다. 예약 기간 동안 던전에 나타나지 않은 경우 벌금이 부과되지만, 하루 전까지만 취소하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앞으로 나를 비롯한 파티원들의 주거 공간이 될 부지의 공사 진행이 얼마나 됐는지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다.
현장에 도착한 나는 일단 그 규모에 깜짝 놀랐다.
‘아파트 단지였던 곳을 통째로 사들인 거였어?’
“여기는 접근 통제 구역입니다. 관계자가 아니면 돌아가 주세요.”
관리모를 쓴 현장 직원이 그렇게 말하기에 나는 그에게 설명했다.
“지금 공사하는 게 저희 집입니다.”
“네?”
직원은 내 말을 듣고 얼굴을 찡그렸다.
“학생, 장난치지 말고 얼른 가요. 아가씨들도 괜히 여기 있다가 다치지 말고 돌아들 가시고.”
그때 수첩을 든 다른 직원 한 명이 다가왔다.
“이 부장, 사람들 통제 잘하라고 했잖아. 여기가 얼마짜리 현장인지 몰라? 기자들 냄새 맡고 오면 어쩔 거야?”
그는 안전모의 색깔이 다르고 옷이 깨끗한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현장 책임자급의 인물 같았다.
나는 이번엔 그에게 말을 했다.
“앞으로 여기서 살 사람인데, 구경 좀 하게 해주세요.”
“뭐요?”
그는 처음의 직원보다 더 험악하게 인상을 썼다.
“확, 씨. 물어버릴까 보다.”
암젤이 내 뒤에서 중얼거렸다.
나를 정신 나간 놈처럼 바라보던 직원의 표정이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어? 혹시 조성오 씨 아닙니까?”
“네, 맞아요.”
“야! 이 부장! 사장님이 오셨으면 안으로 모셨어야지. 하여간 제대로 하는 게 없어요!”
괜히 머쓱해서 부하 직원에게 한소리 내뱉은 관리소장은 만면에 웃음을 띠운 채 우리에게 말했다.
“오실 거면 미리 연락을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조노아 사장님도 아무 말씀 없으셨는데.”
나와 NPC들은 현장 안쪽에 위치한 관리소로 안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