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
독식왕 : 클리어러 113화
Chapter 34 - 카오스 게이머
1
덕수는 오두막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던 그는 습관적으로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뭐가 이렇게 오래 걸려?”
가슴은 흥분으로 뛰고 있었다. 그가 직접 던전을 공략한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자기를 제외한 오성 길드 멤버들은 던전에 들어가는 일을 나름 즐기는 모양이었지만 자신은 처음 들어갔을 때부터 몬스터를 보고 기겁을 했다.
집에서 편안하게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현장감.
자기 수준보다 훨씬 낮은 몬스터를 상대하면서도 오금이 저려 도망치기 일쑤였다.
오성 길드 멤버들은 모두 어렸을 때부터 안면이 있는 사이다. 누가 더 낫다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한가락씩 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터라 자연스럽게 성장을 같이 했다.
겁이 많은 그는 다섯 명 사이에서 늘 놀림의 대상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그런 일이 줄어들었는데, 던전 안에서의 사건이 그것을 다시 촉발하는 사건이 되었다.
수치심을 느낀 그는 멤버들과 던전 공략을 가는 일을 피하고 자기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몬스터를 보고도 겁을 먹지 않게 혼자서 연습을 하기로 한 것.
자기 소유의 산에 오두막을 지어놓고 동물을 상대로 스킬 연습을 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개나 고양이 같은 작은 동물이 대상이었고, 나중에 양이나 돼지, 말과 같은 커다란 동물로 넘어갔다.
그는 그 일을 하면서 뜻하지 않는 쾌감을 깨우쳤다.
그리고 자신의 기호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절대적 강자의 입장에서 약한 상대를 괴롭히는 일이 몹시 즐겁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몬스터 사냥을 위한 연습 목적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단순한 유희로 변해갔다.
동물을 상대로 한 유희가 지루해질 즈음 자연스럽게 인간을 대상으로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뭐, 어때? 나는 인간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던전에 들어가는 게이머인데? 어차피 인간들도 게이머가 없으면 다 몬스터에게 죽임을 당할 운명이잖아?’
말도 안 되는 논리로 합리화하며 자신의 욕망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동물을 괴롭히는 데서는 결코 느끼지 못할 쾌감을 인간을 대상으로 느꼈다.
“후우! 후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초조해졌다.
“무능한 새끼들이 대체 언제까지 기다리게 하는 거야?”
화를 내며 테이블을 내려칠 때였다. 드디어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준비됐습니다. 나오십시오.”
“흐흐. 그래.”
언제 화가 났었냐는 듯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던전에 들어가기 위해 구입한 최고급 방어구를 착용했다. 물론 이 방어구를 실제 던전에서 입은 적은 거의 없다.
“후우, 후우.”
‘어떻게 괴롭힐까? 불로 지질까? 아니면 구멍을 뚫을까?’
매지션인 그는 맨손으로도 사람을 얼마든지 괴롭힐 수 있었다.
덜컥.
스스로 사냥터라고 이름 붙인 방의 문을 열었다.
“……응?”
그런데 어쩐지 방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어서오라옹, 돼지.”
아래를 내려다보니 고양이 한 마리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웬 고양이…… 그보다, 고양이가 말을 했어?”
“나는 네가 죽인 고양이들의 원혼이다옹. 뒈질 준비나 하라옹, 돼지.”
“히익!”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목소리가 들린 곳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자기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남자였다.
얼굴이 어디서 본 것처럼 익숙하다.
“조성오?”
그도 일단은 정치인의 아들이기 때문에 시사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얼마 전 한국에 새로 발족한 길드 OG.
현재 게이머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관심을 받는 길드였다.
노아 알렌을 부길드장으로 두고 길드장의 자리를 차지한 한국인 게이머.
“당신이 왜 여기에…….”
“왜냐고? 듣고 싶어?”
덕수는 가슴이 싸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곳에 배달되기로 한 여자는 보이지 않는다.
‘이래서 오래 걸렸던 거야?’
“자, 잠깐만. 당신이 뭔가 오해했나 본데. 잠깐만 이야기를 하지. 그러면 당신도 내 사정을 이해할 거야.”
“이해는 개뿔.”
나는 이덕수라는 놈의 정보창을 보았다.
이름 : 이덕수
레벨 : 74
성향 : 오더(Order) - / 카오스(Chaos) C = 카오스(Chaos)
업적 : -
랭킹 : 40,929위
스탯 : 근력 38 /체력 22 /민첩 46 /행운 76
스킬 :
액티브 – 라이트닝 볼트(B, Lv30), 파이어 볼트(B, Lv30)
패시브 – 마나 리커버리(B, Lv30)
이력 : 국회의원 집안에서 외아들로 태어난 이덕수는 가족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공부에 재능을 보이지 못해 집안의 애물단지가 되었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지역구를 물려줄 생각으로 양자까지 들였고, 그는 더욱더 가족의 관심에서 멀어져 자신의 친구들과 비행을 저지르는 데 몰두했다.
사정이 바뀐 것은 이덕수가 어느 날 각성을 하면서였다. 장래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직업군이 게이머라는 사실을 아는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처음으로 기대를 갖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영향력 있는 집안의 2세들로 이루어진 오성 길드가 만들어졌다.
소심한 성격의 이덕수는 몬스터를 사냥하는 연습을 하겠다는 핑계로 오두막을 만들고, 그곳에서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동물들을 괴롭혔다. 그 일로 뜻하지 않게 자신의 변태 성향을 발견하고, 급기야 인간까지 납치해 죽이기에 이른다. (타입 : 매지션)
약점 : 몬스터 사냥 경험이 거의 없어 자기 능력을 발휘하는 게 서툴다. 무작위로 날리는 마법 스킬만 조심하면 간단히 제압할 수 있을 것.
보상 : 라이트닝 볼트(60-40%), 파이어 볼트(60-40%), 마나 리커버리(55-35%), 행운 5(60-45%)
“금수저. 변태. 끝.”
“…….”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 덕수가 재빨리 몸을 돌려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암젤이 먼저 소환수를 불러냈다.
“어흥!”
덩치 큰 호랑이가 문 앞을 막아선다.
“히끅!”
나는 오늘 이곳에 암젤만 데리고 왔다. 다른 NPC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로 힘든 상대가 아닐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역시나 그 예상은 맞았다.
덕수가 눈을 질끈 감더니 자기 양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꽈과광!
방 안에 굵은 번개가 떨어졌다. 나는 ‘점프+++’ 패시브를 이용해 훌쩍 뛰어 그것을 피해냈다.
번개가 떨어졌는데도 방은 크게 망가지지 않았다. 아마도 특별한 설계를 해둔 모양이었다.
‘역시 금수저…….’
나는 진심으로 덕수에게 주어진 능력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주인을 잘못 만난 능력은 제대로 개발되지도 못하고, 몬스터를 사냥하는 본래의 목적에 쓰이지도 못했다.
‘놈이 죽으면 다른 사람에게 가겠지.’
대체로 게이머들의 숫자는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된다. 한 명의 게이머가 죽으면 어디선가 새로운 각성자가 나타나는 것이다.
덕수는 자기 스킬이 맞았는지 보지도 않고 계속해서 마법을 발사했다.
꽈광! 화르륵-!
방이 넓지 않다 보니 피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많지 않았다. 나는 덕수의 스킬이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스킬을 걸었다.
‘미끄럼!’
벌렁-
덕수의 뚱뚱한 몸이 허공에 붕 떴다. 그 위로 3서클짜리 마법 스킬을 떨어뜨렸다.
‘파이어 볼트!’
콰지직-!
전격 모양을 한 시커먼 불꽃이 덕수의 몸을 꿰뚫었다.
“끄아아악!”
바닥에 떨어진 덕수가 자기 몸을 안고 데굴데굴 굴렀다. 방어구의 성능이 좋기 때문인지 생각만큼 큰 대미지를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놈이 엄살을 부리는 틈에 또 한 번의 스킬을 떨어뜨렸다.
‘파이어 볼트!’
콰과각-!
“으아아악!”
세 방 째를 떨어뜨렸을 때 그의 몸에서 결정석이 튀어나왔다.
‘파이어 볼트!’
“끄아악!”
또 하나의 결정석.
짜릿한 손맛은 다음 한 방으로 끝이었다. 결정석도 총 세 개가 나왔다.
스킬을 떨어뜨릴 때마다 들썩거리던 덕수의 몸이 축 늘어졌다.
[카오스(Chaos) 성향을 가진 게이머가 죽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45,000, GP +130,000을 얻었습니다.]
[질서에 기여하여 오더(Order) 성향을 부여받았습니다.]
역시나 덕수의 시체도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튀어나온 결정석 세 개를 확인했다.
블러드 스톤 두 개와 콜드 스톤 한 개.
스킬 두 가지는 ‘라이트닝 볼트’와 ‘마나 리커버리’였다.
둘 다 내게는 없는 스킬이고 매우 유용한 기술이기도 했다.
특히 ‘마나 리커버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일정량의 마나를 지속적으로 회복시켜 주는 패시브다.
스탯 스톤으로는 행운 5를 얻었다.
“자, 한 놈 처리했고.”
나는 손을 탁탁 털고 암젤과 함께 오두막을 나갔다.
2
이덕수가 실종된 사건은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정치가 아들에 길드 멤버이기는 하지만 그리 유명한 길드도 아니었고, 자세히 보도될수록 그의 아버지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구리구리한 놈이라서 이건 편하네.’
나는 결과에 만족했다.
강남의 어느 주점.
구석의 대형 룸에 네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오성 길드의 멤버들이었다.
“덕수 놈 진짜 죽은 거야?”
“실종이라고 하지만 놈이 어디로 사라졌겠어? 그냥 뒈졌으니까 안 보이는 거지.”
“병신이 뭘 하는지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이게 무슨 꼴이야?”
“됐고, 이름이나 바꾸자. 이제 오성은 안 되잖아?”
친구이자 길드 멤버 하나가 실종됐는데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근데 오늘 우리 왜 모인 거지?”
“그 사람이 모이라고 했다는데? 김양호인가?”
“김양호? 던전 사고 처리반?”
“시발. 그 사람이 감히 우리더러 오라 가라 할 입장이야?”
그들이 그런 얘기를 주고받고 있을 때, 룸의 문이 열렸다.
안에 들어선 것은 초췌한 얼굴의 김양호였다.
“개새끼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아저씨 왔어요?”
“야! 어른한테 개새끼가 뭐냐? 시발 새끼면 몰라도.”
“하하!”
그들의 막나가는 언행을 보며 김양호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가 오늘 이 자리에 온 것은 사생결단을 내기 위해서였다.
“아저씨, 왔으면 앉아야지 뭘 그러고 서 있어? 무슨 대단한 일이 있기에 우리한테 모이라고 한 거야?”
김양호는 말없이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덕수는 살해당했습니다. 시체는 안 남았어도 정황상 틀림없습니다.”
“그거야 우리도 다 아는 거고. 놈이 혼자 잘못한 게 있으니까 죽었겠지.”
“……이덕수가 죽기 전에 저한테 약속한 게 있습니다.”
김양호가 그렇게 말했을 때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오성 길드의 리더인 박태민이 물었다.
“그게 뭔데?”
“제 앞길을 보장하겠다고…….”
“하하하!”
네 명의 게이머는 배를 붙들고 죽는다고 웃었다.
“그래서? 놈이 죽었으니까 우리한테 아저씨 앞길을 보장해 달라고?”
“만약…… 제 부탁을 안 들어주면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을 공개하겠습니다. 심지어 이덕수는 저한테 제물로 삼을 사람을 구해 달라고 했습니다. 당신들이 한 일도 결코 그보다 못하지 않죠. 당신들이야 잃을 게 없지만 당신들 아버지는 그렇지…… 않을걸요?”
“이 새끼가!”
콱!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리더인 태민이 자기 앞에 있던 술잔을 집어 던졌다.
김양호는 그것을 얻어맞고 두개골이 꿰뚫려 즉사했다.
태민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버러지가 누굴 협박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