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독식왕 : 클리어러 112화
5
운전 연습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보통 초보자들은 운전대를 잡는다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게이머인 나는 만약 사고가 나도 다치지 않는다는 대담함이 있어서인지 장난감을 만지는 것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운전했다.
솔직히 자동차는 처음이지만 가상현실 게임에서는 이런저런 환수를 많이 조종해 보았다.
용을 모는 것에 비하면 운전을 하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지.
아무리 한국의 면허 시스템이 간소하다고 해도 면허증을 손에 쥐기까지는 적어도 몇 주라는 시간이 걸렸다.
나는 이 몇 주간을 모두 면허를 따는 데만 소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퀘스트는 계속해야지.’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던전을 공략하는 것이 가장 쉽고 간단하게 택할 수 있는 퀘스트였다.
더구나 ‘영토’ 퀘스트만큼은 PHASE 3보다 더 어려워지지 않았다.
똑같이 C급 던전 하나를 획득하는 것.
‘어디가 좋을까…….’
생각하다 보니 문득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아가 회사 부지로 사들였다는 땅. 그곳이 C급 던전과 인접한 곳이라고 했지.
전에 다른 회사가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터를 다지다가 여러 가지 문제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왕이면 그 부지 근처의 C급 던전을 공략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집과 회사가 안전하려면 아무래도 근처의 던전을 내가 소유한 편이 나을 테니까.
그런 생각으로 가장 빠른 예약일이 언제인지 알아보았다.
“열흘 뒤?”
나는 스케줄을 보고 미간을 찡그렸다. 던전 예약이 밀리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등급이 높은 던전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아마도 특정 길드가 일정 기간을 독점하고 던전을 털 계획을 세운 것 같았다.
‘어쩌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놀아도 되지만 왠지 그러기에는 좀이 쑤셨다.
어렸을 때 게임에 중독되었을 때 무슨 게임이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했던 것처럼.
조금이라도 게임 진행에 관련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 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이한호.
“성오야, 뭐 하니? 바빠?”
“아니, 사실 너무 안 바빠서 고민이야.”
“바쁘지 않은 게 무슨 고민이야? 너도 참 특이한 놈이다.”
한호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곧 본론을 꺼냈다.
“그럼 시간 괜찮겠네. 오늘 저녁에 만나서 술 한잔할까?”
“술?”
나는 잠깐 생각을 했다. 술을 많이 마셔본 게 아니라서 아직 어색한 느낌이 있었다.
지난번에 마셨을 때는 의외로 잘 맞는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나도 성인이니까 익숙해져야지.’
“응, 그래.”
6
저녁때가 되어 나는 택시를 타고 약속 장소로 갔다. 암젤은 티코이네 집에 놀러 가서 집에 없었다.
한호와 만난 곳은 한적한 동네에 있는 치킨 호프집이었다.
전에 다방에서 만난 것도 그렇고 한호는 사람 많은 곳을 별로 안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여기 조용해서 좋지? 원래 시끄러운 거 싫어하지 않았는데 전에 그 일을 겪고 나서는 왠지 심사가 꼬여서. 친구나 연인들끼리 웃는 걸 보면 좀 마음이 그렇더라고.”
“아…….”
그의 대답에 절로 숙연해졌다. 사연이 있다고는 생각지 못하고 그냥 취향의 문제라고 여겼었다.
“그냥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사소한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치킨과 맥주가 서빙되었다.
치킨을 먹은 뒤 맥주를 마신 내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캬아! 이래서 치맥치맥하는 거구나!”
“하하! 자식. 널 보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맥주 500㏄를 모두 비운 뒤에야 한호가 오늘 만나자고 한 이유를 꺼내놓았다.
“네가 하는 일 중 한 가지가 카오스 게이머를 처리하는 거라고 했지?”
조심스러운 이야기라서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낮아졌다.
“응, 그런데 놈들이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는 게 아니라서 찾기가 힘드네.”
사실 정보창을 보면 이력까지 자세히 알 수 있지만 그렇다고 발로 뛰면서 카오스 게이머들을 찾아다닐 수도 없는 일이라 곤란함을 겪고 있었다.
“그런 정보라면 내가 줄 수 있어.”
나는 곧바로 깨달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이 던전 사고 처리 전담반 공무원이라는 사실을.
지난번에 그는 범죄자들을 잡아들이지 못하는 현재 상황에 불만을 토로했었다.
“살인 의뢰를 하는 것 같아 직업적 양심에 걸리기는 하지만.”
“…….”
“농담이야. 생각 같아서는 내 손으로 잡아다 다 죽이고 싶다.”
“나야 정보를 주면 좋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몬스터를 죽이는 것보다 게이머를 죽이는 게 성장에 더 도움이 되긴 하지?”
“굳이 비교하자면 그렇지. 스킬과 스탯을 얻을 수 있으니까.”
“지난번에 네가 내게 줬던 그거, 큰 도움이 됐어. 그런 기회가 아니라면 어떻게 나한테 딱 맞는 스킬을 얻을 수 있었겠어?”
한호는 자기 앞의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켜고 말을 이었다.
“처리해야 할 놈들은 한둘이 아니야. 그중에서도 상당히 악질인 놈들이 있는데…… 혹시 오성 길드라고 아니?”
“글쎄? 유명해?”
“생긴 지는 일 년쯤 됐는데 길드 자체의 규모나 실력이 뛰어나다기보다는 다른 의미에서 좀 유명하지. 주요 멤버가 다섯 명이라서 오성인데, 놈들이 다 금수저거든.”
“금수저?”
“정치가 아들, 고급 공무원 아들, 그리고 재계 주니어까지. 그런 놈들이 모여서 만든 길드야.”
“특이하네. 돈 있는 게이머들은 보통 던전에 잘 안 들어가지 않아?”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은 돈만이 아니니까. 누가 보더라도 앞으로의 세상을 주도하는 것은 게이머이기 때문에, 사실 놈들의 아버지들이 자식들을 이용해 인맥을 만들려는 수단으로 길드를 만든 거지.”
“그렇군.”
“원래 금수저로 태어난 데다 각성까지 했으니, 놈들은 자기들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알아. 어이없게도 등급까지 높아서 다섯 명이 모두 B급이야.”
“놈들이 악질 범죄자라는 거야?”
“응, 몬스터를 사냥하다 보니 간덩이가 부은 건지 점점 희한한 짓들을 하고 있어.”
“어떤 짓?”
“일단 한 녀석을 예로 들어볼게. 놈은 매지션 게이머인데 사냥 연습을 한답시고 산 속에 개인 오두막을 지어놓고 거기서 동물들을 죽이고 있어.”
“뭐라고? 그러면 불법이잖아.”
“신고가 몇 번 접수된 모양인데 그때마다 증거가 나오지 않아 흐지부지됐어. 실제 증거를 안 남긴 것도 있지만, 아버지가 뒤를 봐준 것도 무시할 수 없지.”
“음…….”
나는 상황이 조금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재미로 동물들을 죽인다면 자체로 카오스 게이머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직접 나서서 죽여야 할 정도냐 하면 그것은 조금 망설여졌다.
내 입장에서도 살인을 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바를 알아챘는지 한호가 말했다.
“동물들만 죽이다 보니 그걸로는 성이 안 찼나 봐.”
“응?”
나는 엉겁결에 반문했다가 곧 한호가 말하는 게 무엇인지 이해했다.
“설마 사람을……?”
“응, 얼마 전에 한 명을 납치해서 죽였어. 가만 놔두면 점점 더 희생자가 많아지겠지.”
거기까지 듣고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놈이라면 당연히 없어져야지.”
6
강남에 위치한 어느 호텔 룸.
방 안에서 두 남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둘 중에 나이가 많은 쪽은 다름 아닌 던전 사고 처리반의 반장인 김양호였다.
그의 맞은편에는 키가 작고 덩치가 큰 남자가 앉아 있었다.
이름은 이덕수.
얘기를 나누는 중에도 쉴 새 없이 음식을 입안에 밀어 넣었다.
“부탁한 건 가져왔나요?”
나이가 훨씬 많고 한 기관의 기관장이기도 한 사람 앞에서 마치 아랫사람을 부리는 듯 거침없는 태도였다.
“네…….”
김양호는 자신의 가방에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것을 들이미는 손이 덜덜 떨렸다.
덕수는 음식을 나르는 손을 멈추지 않고 턱을 까딱했다.
그러자 김양호가 봉투 안에서 문서를 꺼내어 그가 잘 보이게 놓아주었다.
덕수가 그것을 쓱 읽어보고 말했다.
“흠…… 귀엽게 생겼네. 고아에 정신지체가 있는 여자라고요?”
“네……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겁니다.”
“정신지체면 멍청해서 자기가 무슨 일을 당하는지 모를 텐데? 그러면 재미없는데…….”
“……당장은 이게 최선입니다. 다음에 더 신경 써서 준비하겠습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수고했어요, 김영호 씨.”
“김양호입니다.”
“네, 아무튼요.”
“아버님께는 말씀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요. 걱정 마세요. 아버지는 제 얘기라면 무조건 들어주니까. 영호 씨 앞길은 쫙 열렸다고 생각해요.”
“……고맙습니다.”
7
김양호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생각하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발단은 오성 길드 멤버 중 하나가 던전 안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참고인이 되면서였다.
그의 배경을 알게 된 김양호는 그자를 따로 만나 접대했다. 당시 비리 문제로 감사를 받던 입장이라 어딘가 꼭 댈 수 있는 줄이 필요했기 때문에.
오성 길드 멤버가 연루된 사건의 조사를 중지해 준 대가로 그는 기관 내에 불거진 비리 문제를 흐지부지 넘길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김양호와 오성 길드의 주고받는 식 거래는 계속되었다.
주로 주는 쪽이 김양호고 오성 길드는 받는 쪽이었지만 김양호는 이러한 관계가 자신의 출세에 반드시 도움이 되리라고 믿었다.
‘설마 사람까지 요구할 줄이야…….’
오늘 만난 이덕수라는 놈은 아버지가 3선 국회의원이었다. 게이머인 주제에 던전에는 잘 들어가지 않고, 오두막 안에서 동물들을 묶어놓고 죽이는 것을 즐겼다.
물론 심각한 돌아이 짓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 터라 증거를 없애는 데 나름 도움을 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가 얼마 전 사람을 요구했다.
죽여도 증거가 남지 않는 제물을 구해 달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지만 만약 부탁을 안 들어준다면 관계를 끊고 지금까지 비리를 모두 까발리겠다고 협박했다.
김양호는 차라리 자수를 할까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은 찰나에 지나갔다.
“대신 아버지에게 제 얘기를 해주십시오.”
그 전까지는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면 이제는 더 적극적으로 요구를 했다.
덕수는 문제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요. 공무원으로 출세하든 정치를 하든 김양호 씨 앞길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겁니다.”
김양호는 오성 길드 멤버들이 하나같이 든든한 배경을 등에 업고 있다는 것을 되새겼다.
그들에게 줄을 대려고 하는 공무원이나 기업가는 셀 수 없이 많이 있다.
자기가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하게 될 일.
‘이렇게 된 김에 반드시 출세를 하겠다!’
김양호는 결심했다. 출세를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