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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11화 (11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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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111화

    -그게 정말인가요?

    리포터가 반색했다. OG는 이미 장차 국위선양을 할 유망한 길드라는 이미지가 씌워져 있었다.

    세계적인 길드인 피스&호프가 OG를 좋게 평가하자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항간에는 걱정이 담긴 의견도 많았다. 니콜라스와 노아 두 형제가 사이가 나쁘면 피스&호프가 한국을 등한시할지 모른다는 것.

    그런 기우가 이번 인터뷰로 말끔히 지워졌다. 피스&호프는 더욱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계획이 있기 좋아하시네. 누구 맘대로?”

    노아는 미셸의 일방적인 인터뷰에 입술 끝을 비틀었다.

    3

    나는 슬슬 한계라고 생각했다. 다름 아닌 티코이네 집의 정원이.

    칼리타까지 동료로 들어오게 되면서, 넓은 줄만 알았던 티코이네 집도 방이 꽉 차게 되었다.

    직접 내색은 하지 않지만 이쯤 되자 티코이도 꽤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

    나 역시 티코이네 집에 건너가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럴 때면 그야말로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나는 결국 노아에게 이 일을 상의하기로 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노아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 특이하군요. 길드원이 모두 같은 집에서 살다니. 정말 사이가 좋은가 봐요.”

    “아…….”

    나는 내가 꺼내놓은 이야기가 남들이 봤을 때는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다행히 노아는 더 문제 삼지 않았다. 이런 태도를 볼 때면 다 알면서 넘어가 준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지 않아도 성오 씨에게 상의하려고 했습니다. 부지를 알아보다가 적당한 곳이 나와서요. 성오 씨만 괜찮다고 하시면 바로 계약을 할까 하는데요.”

    “어떤 곳인데요?”

    “C급 던전 부근에 있는 부지인데요. 원래 아파트 단지가 있던 곳이라 면적이 꽤 넓은 편입니다. 작년에 이 공간에 저희처럼 사업체와 주거 시설을 조성하려던 회사가 있었습니다.

    길드 간 협상이 어그러지고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는 바람에 공사가 도중에 중단되고 말았죠. 이미 기초 공사가 이루어진 곳이라 주거 시설 정도라면 개보수를 하는 정도로 빨리 입주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아, 그런 곳이 있었어요?”

    “직접 보시고 싶다면 오늘이라도 저랑 같이 가시죠.”

    “아니요. 이런 일은 노아가 저보다 더 잘 알 테니까요. 알아서 진행해 주세요. 혹시 부지 구입비랑 공사비로 제가 얼마나 드려야 하나요?”

    “하하! 성오 씨는 회사를 통해 돈을 버셔야 할 분입니다. 투자 문제는 신경 쓰지 마세요. 이미 여러 곳에서 필요 이상의 자금이 공급되고 있고, 자랑은 아니지만 저도 자산이 꽤 되거든요.”

    “……그래요? 그래도 죄송해서.”

    “미안하면 길드장으로서 품위 유지에 더 신경 쓰시는 건 어때요? 조성오 씨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길드의 얼굴이지 않습니까? 좋은 옷도 입고, 좋은 차도 몰고. 요즘 너무 던전 공략에만 몰두하시는 것 같던데.”

    “음, 일리가 있는 지적이군요.”

    “그러면 부지는 당장 계약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사를 어떻게 진행할지는 나중에 자료로 보내드리죠.”

    “네, 고맙습니다.”

    노아와 통화를 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그나저나 공사비로 꽤 많은 지출이 있을 줄 알았는데 내 돈은 필요가 없다니,

    파트너가 부자라서인지 신세계를 경험하는 기분이다.

    그건 그렇고 방금 통화를 하면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품위 유지.

    ‘나 지금 품위 유지가 안 되고 있는 건가?’

    하긴 지금도 제법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많고 앞으로 그런 경우가 더 많아질 텐데, 나는 그런 것을 전혀 생각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사는 곳도 여전히 다 무너져 가는 아파트다.

    지금 내 통장 안에는 수백억이 있고 아직 처분하지 않은 결정석도 수십억 어치는 된다.

    집 문제는 어차피 공사가 돼야 해결될 것 같으니까.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자동차?’

    지금도 먼 곳의 던전에 갈 때는 택시를 타거나, 티코이의 차를 얻어 타고 있다.

    자동차가 있으면 편하긴 하겠지.

    지금 아파트는 주차 시설이 미흡하지만 앞으로는 주거지도 바뀔 테니까.

    ‘그래, 면허를 따자.’

    그 얘기를 나는 티코이네 집에서 꺼냈다.

    “티코이, 운전하는 거 어려워?”

    “아니요.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주인님이라면 금방 따실 거예요. 제가 가까운 학원에 등록해 드릴까요?”

    “그래주면 고맙지.”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주인님이 면허를 따면 나도 딸 거다옹.”

    암젤이 예상 밖의 말을 했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NPC들도 같은 의견을 보였다.

    “저도 운전을 할 수 있으면 편할 것 같습니다.”

    “오빠, 나도! 뭔지 모르지만 나도 딸래!”

    “운전? 그 네모난 상자를 운반하는 것 말입니까?”

    칼리타는 뭔가 개념을 잘못 잡고 있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그녀도 다 같이 따겠다는 그 면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가자.”

    지금은 그렇게 급한 상황도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시기에 면허를 따두면 나중에 편하겠지.

    4

    민아는 유명 기획사의 연습생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시작한 연습생 생활이 올해로 6년 차로 접어들어, 슬슬 연습생 자체가 자신의 직업이 아닐까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매니지먼트 이름을 대고 연습생 신분이라고 말하면 모두가 동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어머, 어쩐지 너무 예쁘다 했어요.”

    “그럼 이제 곧 TV에서 보겠네요?”

    선망과 동경을 독차지하는 생활은 운전면허 학원에서도 이어졌다.

    대학 동기 몇과 함께 등록한 이곳에서 그녀는 지루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동기들이 누군가를 발견하고 수선을 피우기 시작했다.

    “어머, 저 사람 조성오 아니니?”

    “조성오가 누군데?”

    “요즘 TV에 자주 나오잖아. 노아 알렌이랑 길드 만들었다는 사람. 심지어 조성오가 길드장이고 노아가 부길드장이라던데?”

    “뭐? 진짜? 그럼 엄청 대단한 사람이잖아.”

    그녀들의 시선이 대기실에 앉아 있는 젊은 남자에게 향했다.

    노아와 길드를 만들었다는 후광이 없었다면 그저 평범한 남자였다. 옷차림도 수수하고, 반듯한 외모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연예인에 견줄 정도로 잘생기지도 않았다.

    “어쩜, 나이도 엄청 어린 것 같은데? 길드장이면 돈 많이 벌겠지?”

    “당연하지. 얼굴도 잘생기지 않았니? 기럭지도 모델 같고.”

    동기들이 떠들어 대는 소리에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던 민아도 관심을 가졌다.

    급기야 옆자리 동기들은 저네들끼리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내가 가서 말 걸어볼까? 나이도 우리 또래니까 편하게 접근하면 될 것 같은데.”

    “아니야. 내가 갈래.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지.”

    결론이 나지 않자 그녀들은 가위바위보를 했다.

    “가위바위보!”

    “아! 비겼다!”

    “가위바위보!”

    “씨! 또 비겼네?”

    민아는 그녀들이 쓸데없는 다툼에 빠져 있는 사이 천천히 조성오라는 남자를 스캔했다.

    ‘잘생긴 건가?’

    워낙 회사에서 잘생기고 옷 잘 입는 남자를 많이 봐서 느낌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다른 요소에 눈이 갔다.

    아무리 봐도 이제 막 성인이 되었을 법한 얼굴인데, 노아 알렌과 길드를 만들었다고 한다.

    노아라면 그녀도 익히 알고 있었다.

    할리우드 가십지에서 여배우 킬러라는 기사로 많이 다루어졌던 셀럽이다.

    자신 역시 기사를 보며 그와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는 공상을 하곤 했었다.

    ‘최소 노아를 만날 수 있는 다리가 생긴단 말이지.’

    그녀는 아직도 승부를 못 내고 있는 동기들에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내가 가 볼게.”

    “뭐?”

    “네가?”

    친구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아무리 그래도 유명 기획사 연습생 신분인 민아와 자신들이 경쟁이 될 리 없다.

    그녀들은 시무룩한 얼굴로 짧았던 희망을 거두었다.

    “그래, 적어도 너 정도는 돼야 어울리겠지.”

    “잘해봐, 민아야. 파이팅!”

    “파이팅은 무슨.”

    민아는 도도하게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 몸을 일으켰다.

    어려서부터 엄격한 식단과 운동으로 관리하고 의학의 힘까지 빌린 터라 그녀의 외모는 일반인과 비교되지 않는 아우라가 있었다.

    구두 소리를 또각또각 울리며 맞은편에 앉은 남자에게 걸어갔다.

    자신이 코앞에 당도할 때까지 남자는 핸드폰을 들여다본 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저기요.”

    그제야 그가 자신을 쳐다본다.

    “네?”

    “혹시 조성오 씨 맞으세요?”

    “네…….”

    귀찮다는 듯이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민아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동기들을 의식하고 다시 말을 했다.

    “저는 JG에서 음반 준비하고 있는 이민아라고 해요.”

    “……그런데요?”

    민아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는 그때,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붉은 머리칼을 지닌 이국적인 외모의 여자. 키가 크고 몸매가 탄탄했다. 표정은 천진난만하지만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아우라가 흘러나왔다.

    ‘예, 예쁘다!’

    자신이 여자를 보고 예쁘다고 감탄해 본 게 얼마 만인가?

    그녀가 대뜸 성오의 팔짱을 끼었다.

    “놀아줘! 나 심심행!”

    “어허! 오빠 바쁘잖아.”

    민아가 멍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 트레앙이 고개를 들었다.

    “오빠, 이 여자 누구야? 이 여자랑 놀아도 돼?”

    “그게 무슨 소리야.”

    성오가 다시 한 번 물었다.

    “혹시 사인 필요하세요?”

    민아는 자신의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자리로 돌아온 그녀에게 동기들이 위로한답시고 한마디씩 했다.

    “역시 여자 친구가 있었네.”

    “아무리 민아 너라도 여자 친구 있는 남자면 어쩔 수 없지.”

    ‘젠장!’

    민아는 속으로 부끄러움을 삼켰다.

    ‘별것도 아닌 주제에 날 무시하다니!’

    하지만 그녀의 평가는 시간이 갈수록 바뀌어 갔다. 조성오 옆에 미녀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두 번째로는 늘씬하고 여성스러운 금발 미녀가 나타났다. 세 번째는 은발의 차가운 미녀.

    마지막엔 요염하고 신비한 분위기가 감도는 여자였다.

    마지막에 나타난 미녀가 갑자기 자신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시선을 떨어뜨린다.

    ‘주위에 무슨 예쁜 여자가 저렇게 많지?’

    심지어 그녀들은 조성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꽃밭에 묻혀 있는 남자를 보니 자연스럽게 평가가 달라진다.

    ‘이제 보니 조금 잘생긴 것 같기도…….’

    새삼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게 되었다.

    ‘열심히 해서 올해는 꼭 데뷔해야지!’

    그리고 그다음엔…….

    민아가 조심스럽게 남자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얼굴에 저절로 홍조가 떠오른다.

    물론 이번에는 부끄러움이나 자존심 때문이 아니었다.

    멋진 남자를 보았을 때 나타나는 스무 살 여자아이의 자연스러운 반응.

    민아의 가슴에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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