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독식왕 : 클리어러 110화
간략한 의식이 거행되었다.
“저 칼리타는 조건이 허락하는 날까지 주인님의 명을 따르겠나이다.”
“나 역시 정성을 다해 너를 돌보겠다.”
[칼리타와 주종 계약을 맺었습니다.]
[칼리타는 NPC에 준하는 존재로 파티의 일원으로 인정됩니다.]
‘되는구나!’
설마 했는데 그녀 역시 동료가 되는 것이 가능했다. 따지고 보면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수보타도 결투의 탑에 따라왔던 것을 동료로 받아들인 거니까.
[메인 퀘스트 [동료] - ‘4. NPC 1인 영입’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히든 클래스 ‘점프의 달인’을 얻었습니다.]
[패시브 스킬 ‘점프+++’를 얻었습니다.]
[스킬의 기억이 활성화됩니다. 스킬 ‘점프+++’의 레벨이 Max가 되었습니다.]
‘점프의 달인?’
나는 내심 웃음을 지었다.
‘검은’ 시리즈와는 달리 ‘점프의 달인’ 클래스는 알고 있는 것이었다. 다른 것 없이 그냥 점프를 잘하는 클래스이다.
패시브 스킬 ‘점프’는 다른 루트로도 구할 수 있는 스킬인데, ‘점프의 달인’ 클래스를 얻으면 이것의 초강화판인 ‘점프+++’ 스킬이 생긴다.
마나 소모 없이 고속으로 도망가거나 높은 곳에서 추락해도 대미지를 받지 않는 등, 의외로 효용이 높은 기술이었다.
그건 그렇고.
나는 새로 동료가 된 칼리타의 정보가 궁금했다.
이름 : 칼리타
성향 : 주인의 성향을 따름
스킬 :
거대화 – 거대한 여우로 변신해 적을 공격한다. 레벨이 오를수록 더욱 강력한 형태로 변신.
얼음 폭풍 – 폭풍을 일으켜 날카로운 얼음을 날려 보낸다. 레벨이 오를수록 폭풍의 규모가 커진다.
길 찾기 – 숨겨진 길을 찾아내는 능력. 본능적인 감각에 가깝지만 레벨이 오를수록 자각도가 상승한다.
이력 : 쿠쿠차족의 족장 우스레스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영애로 자랐지만, 곧 이계인들 사이에 쿠쿠차 여우의 심장이 수명을 연장하는 특효약이라는 소문이 돌아 일족이 몰살당하는 불행을 겪는다.
카나비스산에 있다는 또 다른 쿠쿠차족을 찾아 나섰다가 우연히 이계로 들어서고 만다. 거듭된 불운으로 자식까지 잃은 그녀는 절망의 끝에서 새로운 삶을 찾게 된다.
‘거대화’나 ‘얼음 폭풍’은 가상현실 게임에서도 본 적이 있는 스킬이다. 다만 ‘길 찾기’라는 스킬이 생소하고 특이했다.
설마 이 능력 때문에 이쪽 세상에 흘러든 건가?
‘어쩌면…….’
나는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그녀의 능력이라면 티켓을 사용하지 않고도 이계로 통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낼지 모른다.
나는 그녀와 만나게 된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칼리타가 갑자기 탄성을 내질렀다.
“왜 그래?”
“잃어버렸던 제 마나가 복구됐어요. 아니, 전보다 훨씬 커졌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나는 그녀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그녀도 아마 다른 NPC들이 그런 것처럼 이쪽 세상으로 오면서 일종의 초기화를 겪은 듯했다.
그랬던 것이 나와 파티를 맺으면서 레벨이 맞추어졌다. 그리고 지금 레벨이 본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수준보다 더 높은 거겠지.
어쩌면 이계의 군주들이 직접 이쪽 세상으로 오지 못하는 게 바로 이 초기화와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능력이 초기화되는 것을 막으려고 자기와 마나가 호응하는 대리인을 찾는 것인지도.
Chapter 33 - 새로운 적
1
미셸은 한국에 들어온 뒤 바로 피스&호프 한국 지부장에 취임하지 않았다. 그녀는 길드장인 니콜라스가 자신을 이곳에 보낸 이유가 따로 있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했다.
노아 알렌을 견제하고 그와 손을 잡은 조성오를 처리하기 위해서.
‘무턱대고 나설 수는 없지.’
그녀는 한국 지부장이었던 데이비드 정이 저지른 실수와 부길드장인 피터 샌드버그가 한 실수를 보았다.
그들은 모두 조성오라는 게이머를 얕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노출된 모든 정보를 취합하면 조성오는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는 게이머였다.
각성한 지도 얼마 안 되고 등급도 이제 겨우 B급이 되었을 뿐이다.
물론 기록대로라면 성장 속도가 가공할 만하지만 그를 처리하는 데 고려하는 것은 잠재력이 아닌 현재의 수준이니까.
그들이 한 잘못을 자신도 반복해서는 안 된다.
‘피터 녀석이 실패한 건 쌤통이지.’
그녀는 노아가 빠진 부길드장 자리에 자신이 취임하게 되리라고 믿고 있었다.
피터 샌드버그 같은 기회주의자가 떡하니 그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속으로 분을 삼켰다.
자신은 피스&호프의 초창기 멤버이다. 니콜라스와 노아가 길드를 일구는 것을 거의 처음부터 보았다.
형인 니콜라스는 냉혹한 성정을 가진 남자였고, 노아는 부드럽고 따뜻한 성정을 가졌다.
게이머 유형은 다르지만 두 사람 다 최고 수준의 능력을 가진 터라 길드는 그야말로 초고속으로 성장을 했다.
그녀는 처음에 노아에게 끌렸지만 곧 자신에게 내재된 본능은 니콜라스의 것과 더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오스 게이머 닷컴을 처음 만든 것은 노아이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개척한 것은 니콜라스의 힘이다.
피스&호프에 노아는 없어도 되는 존재지만 니콜라스가 없는 피스&호프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니콜라스와 자신의 관계는 점점 단단해졌다.
이제는 연인보다도 더 깊은 신뢰가 쌓였다고 생각했다.
서로 눈빛만 봐도 생각하는 것을 파악할 정도가 됐으니까.
그래서 자신이 아닌 피터를 부길드장 자리에 앉힌 걸 보고도 참을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니콜라스가 그린 큰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
피터 샌드버그는 기회주의자에 음흉한 성품이라, 자신이 부길드장이 되지 못하면 어떤 방식으로 조직에 해를 끼칠지 몰랐다.
이미 조직 내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키운 그인지라 마냥 무시하지 않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려 한 것이다.
이번에 한국에서의 일을 처리하라고 이중으로 지시한 것도 결국은 피터보다는 자신을 더 믿는다는 뜻이다.
피터의 계획이 실패하리라는 것을 알고 자신을 한국 지부장 자리에 내정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자신에게 큰 기회가 된다.
이곳의 일을 정리하고 돌아갔을 때 부길드장이 자연스럽게 바뀔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는 것이다.
‘내가 너무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텅 빈 사무실에서 미셸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의 스킬을 발동시켰다.
두 손바닥을 마주 보게 한 채 마나를 집중하자, 그 안에 검은색 구체가 생겨났다.
하나, 둘, 셋…….
검은색 구체는 손바닥 안에서 저네들끼리 빙글빙글 회전을 했다.
어느 순간 딱 멈추더니 영상을 내비쳤다.
던전 안의 풍경.
바로 피터가 조성오 일당을 죽이기 위해 보낸 자들의 뒤를 추적한 영상이었다.
처음에는 세 개가 같은 화면을 내비쳤지만 이내 하나씩 다른 상황을 중계했다.
하나는 던전 입구, 두 번째는 1층 세이브 존, 그리고 마지막은 2층 세이브 존.
구체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을 보며 미셸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졌다.
‘뭐야, 이게…….’
던전 입구와 1층 세이브 존의 싸움은 각 한 명씩의 게이머가 정리했다.
그들의 신분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었다.
노아의 심복이자, 이번에 그가 길드를 나가며 함께 데리고 나간 게이머들.
그들의 활동은 길드 내에서도 비밀에 싸여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전력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이번에 그들이 싸우는 장면을 보게 된 것은 큰 소득이라고 할 만했다.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노아가 자신들의 심복을 붙여 도움을 줄 만큼 조성오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
하지만 더 중요한 장면은 2층에서 보였다.
조성오와 그의 무리들.
그들은 생전 보지 못한 기술들을 사용했다.
모습도 이례적일뿐더러 조성오에게 과도한 충성심을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미셸은 이 장면들을 분석하느라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노아가 얼마 전에 했던 기자회견을 떠올렸다. 그는 그 자리에서 왜 자신이 조성오라는 인물에 관심을 갖고 같이 활동하기로 했는지 밝혔다.
물론 자신은 조성오가 카오스 게이머 닷컴을 통해 상품을 판매한 전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길드 내에서도 꽤 반향이 있기는 했지만 자신이 관심을 가져야 할 만큼 큰 사건은 아니었다.
조성오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도 노아가 그를 만나기 위해 길드를 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이다.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맞물리며 상상력을 부풀렸다.
‘대체 뭐 하는 놈이지?’
전력을 파악한 뒤 죽이겠다는 단순한 계획이 더 이상 단순하지 않게 되었다.
2
노아는 TV 화면을 보며 심각해져 있었다.
지금 화면에서는 피스&호프 한국 지부에 새로 취임한 지부장의 인터뷰가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미셸을 한국에 보내다니.’
자신이 미셸을 보아온 시간은 길다. 피스&호프 초기 때부터 알았던 여자니까.
함께 보낸 시간이 많다 보니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동료로서 친절하게 대했던 것뿐이지만 그녀의 생각은 달랐는지, 어느 날은 자신에게 고백을 하기도 했다.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그 후로 그녀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노골적으로 자신보다는 형과 가까워지려는 모습을 보였다.
여자가 자존심이 상하면 그럴 수 있다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둘의 모습을 계속 보는 중에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니콜라스와 닮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의 본모습이 어떤 것인지 깨달았다.
그 뒤로는 형을 멀리하듯 그녀도 멀리했다.
그녀가 한국에 왔다는 것은 니콜라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분신을 보낸 것이나 다름없다.
TV 안에서 미셸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저희 피스&호프는 한국을 아시아의 새로운 중심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앞으로 꾸준히 투자와 관심을 늘릴 계획입니다. 전도유망한 한국의 게이머들과 함께 던전을 적극적으로 탐사하고, 그 수익이 한국 사회에 환원될 수 있게 적극 힘쓰겠습니다.
그녀는 이미 한국말도 유창하게 했다.
리포터는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한국에서는 최근 OG라는 길드가 새로 발족했습니다. 부길드장을 맡은 노아 알렌은 얼마 전까지 피스&호프의 부길드장이었는데요. 때문에 일각에서는 피스&호프 길드장이신 니콜라스 알렌과 불화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시 여기에 대해 말씀해 주실 게 있나요?
-그건 잘못 알려진 사실입니다. 길드장이신 니콜라스와 노아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노아가 길드를 나간 것은 백 퍼센트 개인적인 사정 때문이며, 우리는 언제든 OG와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근시일 내 실제 접촉을 할 계획이 있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