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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09화 (109/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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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109화

    5

    칼리나는 긍지 높은 쿠쿠차족의 족장 우스레스의 딸이었다. 쿠쿠차족은 여우족의 한 갈래로 빙하 지역에 서식하는 무리이다.

    존재 자체가 전설이 될 정도로 개체수가 적고 신비감에 쌓여 있어서 예부터 이들을 사냥하려는 인간이 많았다.

    시간이 갈수록 종족의 숫자가 줄어들고 인간을 피해 척박한 지역으로 내몰리다 보니 생활은 점점 힘들어졌다.

    결국 최후에 남게 된 것은 칼리나 자신을 비롯한 두 자녀뿐.

    종족의 대가 끊기게 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칼리나는 카나비스산에 있다는 또 다른 쿠쿠차족을 찾아 나섰다.

    고행의 연속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여행을 하던 길에 그녀는 바위틈에 난 조그만 샛길을 발견하게 됐다.

    추운 날씨에 허기까지 지다 보니 그 길이 어디로 통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채 따뜻한 기운에 이끌려 하염없이 걸어 들어갔다.

    “엄마, 여기가 어디예요?”

    아들의 물음을 듣고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빙하가 깔린 넓은 평원.

    자기가 살던 고향과 비슷하지만 뭔가 달랐다.

    왔던 길을 되짚어 가려고 해보았지만 웬일인지 자신들이 들어왔던 길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나가 사라졌다!’

    칼리나는 자신에게 생긴 결정적인 변화를 깨달았다. 이상한 곳에 오게 됐다는 자각을 한 뒤로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능력이 몽땅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이어진 불행.

    “저거 뭐야? 못 보던 몬스턴데?”

    “엄청 희귀해 보이는데 죽으면 레어템 나오는 거 아니야?”

    처음 보는 복장과 생김새를 한 인간들이 자신들을 공격했다. 끈질기게 계속된 그들의 공격 때문에 급기야 아들과 딸이 죽고 말았다.

    ‘내 마나만 남아 있었어도!’

    절망한 칼리나는 인간들을 피해 숨어 다녔다.

    이곳에는 몬스터들도 함께 서식했는데 적어도 그들은 자신을 공격하지 않았다.

    “아…….”

    몇 날 며칠을 고생한 그녀는 결국 출구를 찾아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그곳은 더욱 적응이 되지 않는 곳이었다. 더구나 기후까지 급격하게 바뀌는 바람에 허약해진 그녀로서는 오래 버틸 수가 없었다.

    밤이 되기를 기다려 관리소 쓰레기통에서 음식을 찾아냈다.

    그런 식으로 조금씩이나마 기력을 회복하며 던전 안에서 숨어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어? 이거, 얼음 여우 아니야?”

    음식을 잘못 먹는 바람에 병을 앓게 된 그녀는 몸을 말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들려온 목소리에 기겁을 했다.

    ‘이곳에는 인간들이 오지 않았는데?’

    자기 나름대로는 인간이 다니지 않는 길을 찾아 숨어 있었던 것인데 어떻게 된 일인지 한 무리나 인간들이 자신을 발견했다.

    마법사 의상을 입은 남자와 금발머리 여자, 그리고 붉은 머리 꼬마 여자아이와 한 마리 고양이.

    그녀는 몸을 일으켜 필사적으로 달아났다.

    아무리 기력이 없어도 달리는 능력 하나는 인정받는 쿠쿠차족이다. 신출귀몰한 움직임으로 멀리 달아나려 애쓰는데, 뒤에서 빠르게 쫓아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점박이 맹수 하나가 경이로운 속도로 쫓아오고 있었다.

    ‘아, 안 돼!’

    가공할 속도의 맹수는 곧 자신을 따라잡고 몸통을 들이받았다.

    강한 충격은 아니었다. 다만 몸이 약해져 있었던 터라 순간적으로 현기증을 느껴 실족을 하고 말았다.

    후두두둑-

    언덕으로 굴러 떨어지며 그녀는 생각했다.

    ‘끝이구나…….’

    족장이었던 아버지의 얼굴과 친구들, 그리고 지켜주지 못한 자식들의 얼굴이 차례로 스쳐 갔다.

    ‘이제 만날 수 있어.’

    생각했던 것보다 죽음이라는 것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포기하고 죽음을 택하는 거였는데.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칼리타는 눈을 떴다. 당장 보이는 것은 낯선 천장이었다. 적어도 이곳은 사방이 빙하로 막혀 있던 던전은 아닌 것 같다.

    불쑥.

    시야 안으로 누군가의 얼굴이 나타났다.

    붉은 머리칼의 여자아이.

    “어? 오빠! 여우 일어났어!”

    “그래?”

    칼리타는 절망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하나하나 눈에 들어온다. 금발머리 여자, 고양이, 그리고 마법사 옷을 입고 있었던 남자.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무슨 일을 당할까, 자신의 많은 부족원이 그랬던 것처럼 산 채로 심장이 꺼내질까?

    마나만 있었더라면 적어도 한 놈의 목줄기는 끊어놓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들을 하는데 갑자기 의외의 말이 들렸다.

    “고생이 많았던 것 같은데, 괜찮아?”

    눈을 들어 바라본 남자는 따뜻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깐이지만 그의 얼굴이 먼저 떠난 남편의 것과 겹쳐 보였다.

    6

    NPC를 찾아 던전에 들어간 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암젤도 말하기를 이전에 다른 NPC들을 만날 때와는 느낌이 다르다고 했다.

    익숙하기는 하지만 미약한 반응. 하지만 무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최대한 그 느낌을 찾아 움직여 보았다.

    우리는 결국 바위 틈새에 몸을 말고 있는 은색 여우 한 마리를 발견했다.

    눈처럼 투명하고 고혹적인 자태를 지닌 여우.

    독특한 아우라가 은은히 뿜어 나오는 이 녀석이 평범한 여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애초에 그냥 여우였다면 던전 안에 들어올 수도 없었을 테니까.

    게다가 던전에는 여우형 몬스터가 출몰하지 않는다.

    가는 숨을 몰아쉬며 잠을 자고 있는 녀석을 보면서 나는 왠지 모르게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떠오른 한 가지.

    “어? 이거, 얼음 여우 아니야?”

    얼음 여우는 가상현실 게임에 등장하는 여우족의 한 갈래였다.

    ‘이름이 쿠쿠차였던가?’

    쉬운 이름이 아니었더라면 부족 이름을 떠올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는 가상현실 게임 안에서 이 여우족을 만난 적이 딱 한 번밖에 없다.

    특수한 조건을 달성하여 ‘쿠쿠차 일족 구하기’라는 퀘스트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이 얼음 여우들과 함께 전투를 했는데, 이들의 특별한 능력에 감탄을 했었다.

    이왕이면 부족 중 한 마리가 파티로 들어오는 이벤트가 생기길 바랐지만, 이들은 고맙다는 말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왜 여기에 얼음 여우가 있는 거지?’

    코어로 탐색을 해서 찾아낸 것이 바로 이 여우다. 나는 얼음 여우를 파티원으로 둔 적도 없고, 게다가 생김새로 보아 그때 만났던 녀석도 아니었다.

    여우는 내 목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그것을 암젤이 치타를 소환해서 쫓았다. 얼음 여우의 빙판 달리기는 꽤 인상적이었지만 결국은 치타에게 따라잡혔다.

    언덕에 굴러 떨어져 정신을 잃은 그녀에게 포션을 먹이고 티코이네 집으로 데려왔다.

    번쩍.

    그녀가 정신을 차린 것을 가장 가까이에 있던 트레앙이 먼저 발견했다.

    “어? 오빠! 여우 일어났어!”

    “그래?”

    나는 여우의 얼굴을 신중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고생이 많았던 것 같은데, 괜찮아?”

    내 물음에 여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은 여우가 아니었다.

    티코이가 그렇듯 얼음 여우도 인간형으로 변신할 수 있다.

    도도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은발의 미녀.

    신비한 눈빛을 마주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굴러 들어온 여우 주제에 주인님을 유혹하지 말라옹.”

    흠칫.

    여우가 놀라더니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하얀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이름이 뭐야?”

    “……칼리타.”

    “그렇게 경계할 거 없어. 너에게 해코지를 하려는 게 아니니까.”

    “그런 말을 하고 결국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내는 걸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어차피 죽일 거면서 기만은 하지 마라.”

    “으음…….”

    나는 단단히 입을 다문 여우를 보며 난감한 마음에 빠져들었다.

    ‘이걸 어째야 되지?’

    내가 알던 NPC가 아닌 터라 동료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던전에 다시 데려다 놓을 수도 없고.

    고집스러운 태도가 달랜다고 해서 금방 풀릴 것 같지도 않았다.

    잠깐 생각하던 나는 스킬 한 가지를 떠올렸다.

    ‘효과가 있으려나?’

    인간을 상대로 하는 거면 모르겠지만 여우족을 상대로 하려니 확실치가 않았다.

    그래도 지금은 인간형이니 통할지도 모르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스킬을 사용했다.

    ‘유혹.’

    “칼리타,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너에게 해를 끼치려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너희들의 수법이 이미 알…… 헙!”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 칼리타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어딘지 모르게 경직되었지만 시선을 피하지는 않는다. 서서히 그녀의 볼이 붉게 물들어 갔다.

    “너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주지 않을래?”

    “나, 나는…….”

    나와 NPC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칼리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한 시간 가까이 이어졌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쳇, 여우 주제에 나보다 더 고생하다니 인정할 수 없다옹.”

    “칼리타 씨, 정말 고생이 많으셨네요.”

    “이 언니 불쌍해!”

    “허허.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입니다.”

    칼리타는 이야기를 마치고 고개를 푹 떨구었다.

    “흥! 어차피 죽일 거면서 구질구질하게 사연을 털어놓게 하다니, 정말 악질이구나.”

    그러면서도 부끄러운 얼굴로 나를 흘긋흘긋 쳐다보았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너를 죽이지 않아. 우리 동료들 중에는 너처럼 여우족도 있어.”

    나는 티코이를 가리켰다. 그러자 티코이가 여우 귀를 쫑긋 내밀고 까딱까딱 움직였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테아족 티코이라고 해요. 당신 부족의 슬픈 사연은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나서 정말 다행입니다.”

    “테아족…….”

    칼리타의 눈빛이 흔들렸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가상현실 게임에서 본 적도 없는 여우족이 던전에 나타나 NPC들에게 감지되는 파장을 발산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말대로라면 그녀가 온 곳은 이계다.

    가상현실 게임의 환경이 이계와 많이 닮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녀의 종족이 게임 안에 구현되어 있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 연결점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느냐 하는 것.

    나는 아직 유혹의 효과가 가시지 않은 그녀의 몽롱한 눈빛을 바라보며 말했다.

    “칼리타, 나와 계약을 맺지 않을래?”

    “……!”

    “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방법도 모를 텐데. 혼자 이곳에 살기는 힘들잖아. 우리랑 함께 있으면 더 안전하게 살 수 있어.”

    “맞아, 언니. 우리랑 같이 살자.”

    “밖에 나가면 고생입니다. 주인님 말씀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나는 반대다옹.”

    암젤을 제외한 모든 NPC들이 권유하자 완강해 보이던 그녀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만…….”

    ‘오!’

    나는 그녀의 말에 희열을 느꼈다.

    가상현실 게임에서 얻을 수 없었던 쿠쿠차족 파티원을 현실에서 만나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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