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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08화 (108/245)
  • # 108

    독식왕 : 클리어러 108화

    이름 : 로치온

    서열 : 70위

    레벨 : 189

    스탯 : 근력 180 /체력 202 /민첩 185 /행운 68

    이력 : 로치온의 가문이 가장 빛을 본 것은 그의 아버지인 락시움 대였다. 헤레디투스와 맞먹을 정도의 세력을 규합하여 한때 승리 직전까지 가기도 했지만, 배수의 진을 친 돌격은 그만큼의 반동을 만들어냈다.

    락시움이 죽고 난 뒤 가문은 겨우 이름만 유지하는 수준으로 몰락하고, 로치온은 왕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갖추고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홀연히 모습을 감춘다.

    이백 년간의 수련을 통해 로치온은 전과 비교도 되지 않는 능력을 손에 넣었다. 그의 비밀스러운 목표는 아버지를 죽인 헤레디투스를 왕좌에서 끌어내리는 것이다.

    약점 : 기술이 다양하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기본기의 궁극에 달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레벨 차가 크다면 섣불리 그를 이기려고 생각하지 말자.

    똑같이 근접전으로 맞붙으려는 생각을 버리고, 원거리 공격과 마법 계열 스킬로 공략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다.

    ‘레벨이 189라고?’

    나는 기겁을 했다. 전에 만난 군주들보다 무려 100 이상 차이나는 레벨.

    만약 그 전에 군주들을 만나지 않고 70위 군주의 레벨이 이 정도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포기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못 이긴다.’

    이 정도 차이라면 설령 요행을 바라기도 어렵다. 더구나 내 오랜 전투 경험으로 보건대 로치온은 완벽형에 가까운 전사였다.

    무력과 마나, 그리고 지력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검은 소환수 두 마리를 부숴 버린 로치온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그의 창이 다시 한 번 무심하게 들어 올려진다.

    스윽-

    순간이동 같은 속도로 접근해서 창을 내려쳤다.

    콰앙-!

    로치온은 자기 창에 반토막이 나는 상대의 신형을 보았다. 하지만 무기를 든 손에는 특별한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 조성오가 활을 겨누고 서 있었다.

    ‘하트 브레이커!’

    두꺼운 마나가 코팅된 화살이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콰악-!

    “윽!”

    대단한 위력의 스킬이지만 그저 심장 부근의 갑옷을 조금 우그러뜨린 것에 불과하다.

    나는 궁사 클래스의 궁극기라고 할 수 있는 하트 브레이커마저 통하지 않는 것을 보고 어금니를 깨물었다.

    방금 전 로치온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마법 스킬 ‘분신’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어떡해야 하지?’

    결투의 탑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

    싸워서 쓰러뜨리든가 아니면 동맹을 맺는 것.

    적어도 지금까지 보여준 로치온의 태도는 후자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때 갑자기 로치온이 가만히 자신의 가면을 벗었다.

    그리고 뜻밖에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합니다.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당신의 실력을 가늠하고 싶었습니다.”

    “…….”

    나는 갑자기 바뀐 그의 태도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당신을 죽게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우리에겐 당신이 유일한 희망인데 그럴 짓을 할 리 없죠.”

    “아무리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이런 식으로 행동을 하면 곤란하죠.”

    “네, 다시 한 번 사과하겠습니다. 저는 처음 본 당신의 모습이 무방비하다는 사실에 실망했습니다. 아라돈에게 제 얘기를 듣고, 제가 당신께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겠지만 모든 상황에는 변수를 가정해야 하는 법입니다. 적어도 왕이 될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요.”

    나는 로치온의 마지막 말에 움찔했다.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다른 곳도 아닌 결투의 탑에 오면서 평상복을 입고, 게다가 전투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가정을 1퍼센트도 하지 않았다니.

    아무리 수보타와 아라돈을 신뢰했다 하더라도 목숨을 건 게임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취해야 할 태도는 아니었다.

    “제가 너무 안일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당신이 백 퍼센트 아군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세상에 백 퍼센트는 없습니다. 더구나 군주들을 상대하는 입장에서 그런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다름없죠.”

    화를 내야 할 상황 같은데 왠지 모르게 그의 말에 저절로 납득하게 된다.

    “내 얘기는 어느 정도 들으셨을 겁니다. 그래서 지금은 당신에게 아라돈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이백 년간의 수련을 끝내고 돌아온 것은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죠.

    당신 입장에서는 내가 강하다고 여겨질지 몰라도 내 기준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 헤레디투스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강했고 또 지난 이백 년간 더 강해졌을 겁니다.

    내 목표는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끝내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루는 것이죠.”

    로치온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아버지의 목표는 왕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쟁과 분란이 끊이지 않는 땅에 질서와 평화를 안착시키는 것이었죠.

    오더 성향을 지닌 군주들을 규합했던 것도 그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혼자 수련을 하면서 제가 가진 한계를 깨달았습니다. 내 역량으로는 헤레디투스를 왕좌에서 끌어내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당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아라돈에게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창을 맞대고자 했던 건 당신의 잠재력을 가늠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내가 깰 수 없었던 벽을 깰 수 있는 인물인지 아닌지.”

    “그래서……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직접 말씀해 보시죠. 저보다 강해질 자신이 있습니까?”

    “네.”

    0.1초도 고민하지 않은 내 대답에 로치온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만족스럽게 웃음을 지었다.

    “사실 저는 판단을 할 수 없었습니다. 나름 통찰안이 생겨 어느 정도 싸우면 상대의 그릇을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당신에게는 그런 걸 느낄 수가 없더군요. 하지만, 좋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믿기로 하지요.”

    나는 로치온이 지금까지 만났던 군주들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70위권이 아닌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강하고 까다로운 인물들이 포진해 있지 않을까 하는.

    단순히 카오스 군주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동맹을 맺을 가능성이 있는 오더 군주들도 나를 약하다고 판단하면 손을 잡지 않으려 할 것이다. 되레 나를 데리고 자신의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려 들 테지.

    내 생각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로치온이 말했다.

    “앞으로 양쪽 세상을 독식하는 왕이 되겠다는 말은 함부로 입에 담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 말 자체가 당신을 함정에 빠뜨릴 겁니다. 다만 저는 당신의 말을 믿고 같은 길을 가겠습니다. 저와 동맹을 맺어주십시오, 조성오.”

    예상치 못한 상황을 겪었지만 어쨌든 결론은 처음 생각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맺어졌다.

    “좋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나중에 다시 한 번 싸워주십시오. 제가 그러자고 할 때.”

    “하하. 알겠습니다. 약속하죠.”

    나는 오늘 그에게 당할 뻔한 것이 못내 분했다. 만약 가상현실 게임에서 가졌던 실력이라면 쉽게 이길 수 있었을 텐데.

    우리는 악수를 했다.

    [70위 군주 로치온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동맹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파기하지 않는 한 지속됩니다.]

    로치온이 물었다.

    “당신이 이계의 대리인를 찾아줄 수 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네, 하지만 당신의 대리인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네요.”

    그것은 사실이었다. 로치온과 마나 호응도가 높은 게이머라면 분명 레벨이 아주 높은 게이머일 테니까. 게다가 이 특이한 캐릭터도 그렇고.

    “시간이 걸려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도모하는 일은 시간이 걸리는 일 아닙니까?”

    말을 마친 로치온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다음에 또 뵙지요.”

    그가 사라지자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차원문이 생성되었다.

    암젤이 투덜거렸다.

    “기분 나쁜 놈이다옹.”

    “그러게.”

    동맹자를 얻었지만 기분이 썩 개운치는 않았다. 확실한 것은 더 빨리 강해져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

    어쩌면 그런 기분을 느꼈다는 것만으로 오늘 만남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4

    결투의 탑에서 로치온을 만나고 온 뒤, PHASE 4 메인 퀘스트가 열렸다.

    [부] - 4. 100억 벌기

    [명예] - 4. Lv70 이상의 카오스 게이머 다섯 명 처치하기

    [지위] - 4. 랭킹 10,000위 안에 진입

    [영토] - 4. C급 이상 던전 한 개 획득

    [동료] - 4. NPC 1인 영입

    혹시 이번에도 특수 퀘스트로 로치온의 대리인을 찾으라는 게 있을까 걱정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에게 했던 말대로 로치온의 대리인을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특수 퀘스트야 꼭 달성하지 않아도 된다지만 그래도 막상 퀘스트로 나와 있는 걸 보면 저절로 달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게이머의 마음이란 게 늘 그런 거니까.

    ‘어디부터 손을 댈까.’

    확실히 PHASE를 더해 갈수록 조건이 까다로워졌다. 특히 ‘부’ 퀘스트의 경우 나중엔 돈을 얼마나 더 벌라고 할지 걱정됐다.

    고작 PHASE 4에 요구하는 금액이 100억인데, 나중에는 조 단위까지 올라가는 건 아니겠지?

    나는 실현 가능성이 높은 추측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엔 거꾸로 가 볼까?’

    얼마 전에 C급 던전을 공략했으니 그곳 코어를 이용하면 더 넓은 지역을 탐색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탐색은 그냥 앉아서 할 수 있는 것이니 어렵지 않다. 없으면 포기하고 던전을 공략한 뒤 다시 탐색하면 된다.

    나는 메뉴로 들어가 던전의 하위 메뉴에서 ‘주변 탐색’을 실행시켰다.

    홀로그램 형태로 떠오른 동그란 코어.

    C급 코어는 이 전 단계의 코어들보다 한층 깊고 오묘한 빛깔을 띠고 있었다.

    “으음…….”

    주위의 의식이 차단되고 수십 개의 가지가 뻗어 있는 예의 탐색 모드가 시작됐다.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고 경험상 단시간에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

    탐색을 시작하자마자 뭔가 반응이 느껴졌다. 이전에 NPC들을 찾았을 때와는 이질감이 있기는 했지만 분명히 호응하는 파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소는…….

    얼마 전 클리어한 C급 던전 안이다.

    ‘하나가 아닌데?’

    집중해서 찾다 보니 반응하는 파장이 하나가 아니었다.

    하나, 둘, 셋…….

    뭐야, 이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혹스러웠다. 여러 명의 NPC를 한꺼번에 찾는 것도 가능한 건가?

    하지만 세 개의 반응 중 두 개는 아주 미약했다. 금방 꺼져 버릴 것처럼.

    보통 NPC는 이곳에 나와 던전 마스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왜 지난번에 마주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곳에 나온 게 얼마 되지 않는 건가?’

    어쨌든.

    가장 먼저 수행할 퀘스트가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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