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
독식왕 : 클리어러 105화
티코이네 집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아직 확인하지 않은 메인 퀘스트 보상을 여는 것이었다.
스킬 에그(A급 이상 보장).
이번에도 보상을 열기 전에 로또 스킬부터 사용했다.
[축하합니다! 로또 4등에 당첨되었습니다.]
[1분간 모든 스탯이 40퍼센트 상향됩니다.]
쩍-
금이 가기 시작한 스킬 에그가 꽃가루를 뿌리며 열렸다.
[액티브 스킬 ‘전언’를 얻었습니다.]
[스킬의 기억이 활성화됩니다. ‘전언’의 레벨이 Max가 되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상의 결과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전언’은 말 그대로 멀리 떨어져 있는 상대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마법 스킬이다. 3서클 마법이고, 따라서 레벨 90이 넘으면서 마법사 클래스 3서클에 도달한 내가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기도 했다.
[전언]
타입 : 액티브
등급 : A
레벨 : 50/50(Max)
효과 : 특정한 대상을 지정하여 은밀하게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 등급과 레벨이 오를수록 더 멀리 있는 대상에게,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
“이젠…….”
70위 군주 아메리오와 싸우러 갈 차례이다.
‘부디 아무 일이 없기를.’
이왕이면 아라돈이 아메리오를 물리쳐서 3층을 프리패스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그런 상황이 됐더라면 아라돈이 먼저 한호를 통해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리고 3층이 프리패스될 경우 대뜸 69위 군주를 만날 수도 있다.
그것 역시 적절하다고는 볼 수 없는 상황.
나는 NPC 파티원 전원을 모았다.
어제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던전 공략을 한 탓에 피로감을 느낄 만도 한데 그들은 전부 의연한 얼굴이었다.
심지어 수보타도 투덜거리지 않았다. 얼굴이 떨떠름한 게 반쯤 체념한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간다. 준비됐지?”
“준비됐다옹.”
“오빠! 빨리 가! 나 빨리 가서 싸우고 싶어!”
나는 인벤토리에서 열쇠를 꺼냈다.
[차원문의 열쇠를 사용하시겠습니까?]
“그래.”
[이차원의 공간에 들어가면 최소 몇 시간은 돌아올 수 없습니다. 입장하기 전에 준비를 갖출 것을 권유합니다. 정말 지금 사용하시겠습니까?]
“응.”
하얀빛이 티코이네 집 거실에 차원의 문을 만들었다. 그것에 열쇠를 꽂아 넣고 우리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이 세 번째이기 때문에 절차는 익숙하다. 길을 걷다 보니 소우주처럼 생긴 아공간이 다가와 우리를 집어삼켰고 단숨에 결투의 탑이 있는 곳으로 전송되었다.
3
아라돈은 적이 침입해 온다는 말을 듣고 수성 준비에 들어갔다.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영지와 슬라둠의 영지였던 땅은 인접해 있으며 슬라둠의 영지가 두 배 정도 더 컸다. 자신이 수성하는 곳은 본래 가지고 있던 영지였다. 슬라둠의 성은 아들이 맡아서 방어를 준비하고 있다.
두 개의 성이 앞뒤로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아메리오는 자신의 성을 먼저 공격하고, 슬라둠의 영지로 진입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작전은 2단계로 세웠다.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만약 자신이 수성에 실패할 경우 뒷문을 통해 슬라둠의 성으로 후퇴할 생각이었다.
그곳에서 남은 병력을 합친 뒤 2차 수성에 들어간다.
“음…….”
멀리서 아메리오의 군세가 밀려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듣기로 그는 결국 어떤 군주와도 동맹을 맺지 못했다고 한다.
모든 군주가 이곳보다는 이계에 진입하는 일에 더 관심을 둔 상황이라 그의 동맹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메리오 역시 군주들 사이에서는 무시를 당하는 축에 속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서열상 가장 하위권인 70위였으니까.
어떤 군주가 이계에 진입하는 거사를 앞두고 70위권 군주들의 싸움에 관심을 갖겠는가?
굴욕적이기는 해도 어쨌든 그것 자체는 자신에게 약이 되었다.
‘그래도…….’
아라돈은 까맣게 밀려오는 아메리오군의 병력에 마른침을 삼켰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하기는 했지만, 자신들의 병력은 아메리오군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그에 반해 지켜야 할 영지는 대단히 넓다.
원래대로라면 성문을 열고 나가 항복을 해야 마땅한 상황.
‘동맹자여, 아직 멀었는가…….’
아라돈이 가장 바라는 일은 조성오가 지금이라도 아메리오를 결투의 탑에 불러내 쓰러뜨리는 것이다.
하지만 적이 목전까지 당도한 상황에 그것을 바라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생각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병력 기르는 일에 힘을 쏟을 것을.’
조성오의 설득이 없었다면 아직도 자신은 성 안에서 자족하며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생각을 바꾼 것이 후회되지는 않았다.
자신이 슬라둠의 땅을 차지하기로 하고, 앞으로는 군세를 확장하겠다고 말했을 때, 자식들, 그리고 신하들이 보인 반응은 전에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그들의 사고는 이미 자신의 방침과 멀어져 있었는데 혼자서 고집을 피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달았다.
냉정히 돌아보면 지난 세월은 치욕의 시간이었다.
최하위나 다름없는 71위에 처져 작은 땅덩어리에 만족하고 적이 쳐들어오면 방어만 할 뿐, 반격이나 복수는 생각지도 않았다.
어쩌면 평화는 싸움에 지친 선조가 만들어낸 핑계거리에 불과했는지 모른다.
어차피 이곳은 평화가 허락되지 않는 땅.
빼앗지 않으면 뺏길 수밖에 없고, 지금 뺏기지 않아도 나중에 결국 뺏길 수밖에 없는 운명.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라도 늘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것을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아메리오 따위의 군세에 겁을 먹지 않아도 됐을 텐데.
“궁병들은 준비하라!”
그의 일성에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이 분주하게 화살을 장전했다.
아메리오가 이끄는 병사, 그리고 마수들이 가까워짐에 따라 심장은 더욱 크게 고동쳤다.
그런데.
“응?”
갑자기 아메리오군이 형세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큰 변화가 아니었지만, 이내 길이 쭉 갈라지며 병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검은 말에 올라타 창을 휘두르는 자는 해골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해골 모양의 가면을 썼다.
무심하게 창을 휘두를 때마다 십 단위의 병졸이 날아간다.
단순히 무기술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마력을 운용해 싸우는 것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저 가면…….’
아라돈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옛 기억에 빠져들었다.
이백 년 전, 딱 한 번 오더 성향의 군주들이 합심을 했던 적이 있다.
락시움의 강력한 카리스마가 좀처럼 왕위 쟁탈전에 나서지 않는 오더 군주들을 결합시켰다.
역사를 통틀어 단 한 번도 오더 군주가 왕이 되었던 적이 없다. 하지만 당시에는 최초로 그 일이 가능할지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해골 가면을 쓴 군주, 락시움이 마치 사신처럼 적을 도륙하고 길을 뚫으면 연합의 함성 소리는 마치 천지를 흔들 듯 높아지곤 했다.
‘락시움…….’
지금 아메리오의 군세를 유린하는 자는 그와 닮아 있었다.
하지만 락시움이 저곳에서 싸움을 하고 있을 리가 없다.
이미 이백 년 전에 죽임을 당했으니까.
부활의 마법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락시움이 죽고 난 뒤 왕은 직접 그의 사체를 불사르고 저주를 걸었다.
‘락시움이 아니라면 대체…….’
곧 머릿속에 그려지는 하나의 그림이 있었다. 아버지의 옆에서 용맹하게 싸우던 젊은이.
락시움의 오른팔이자 오더 진영의 돌격 대장 역할을 했던 남자.
“로치온?”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죽은 뒤 홀로 모험을 떠났다고 했다. 그가 사라진 것과 궤를 같이 하여 오더 군주들도 뿔뿔이 흩어져 다시는 규합하지 않았다.
‘정말 그란 말인가?’
의심은 점차 확신으로 바뀌었다. 마치 락시움이 현신한 것처럼 싸울 수 있는 이는 세상에 그 말고는 없으니까.
아라돈은 아까까지만 해도 가슴속에 자라나던 절망의 싹을 거두고 목청을 높여 명령했다.
“궁수들은 활을 거두어라!”
“성문을 열고 진군 준비를 하라!”
“와아아!”
아메리오는 자신의 등 뒤가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뿌연 먼지가 날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군졸들이 마치 바람 맞은 낙엽처럼 튀어 오르고 있다.
“무슨 일이냐!”
당황한 그가 소리쳤다. 두껍게 쌓여 있던 진영이 갈라지며 긴 창을 휘두르며 달려오는 한 사내가 보였다.
검은 해골 가면을 쓴 그는 마치 사신 같았다.
“로, 로치온!”
아메리오의 겁에 질린 동공이 확 커졌다.
“친우여! 당신이 왜!”
“그 더러운 주둥이로 친우라는 말을 함부로 내뱉지 마라!”
로치온의 창이 대기를 갈랐다.
거대해진 창날에서 황금빛 마나가 폭발하며 예기가 땅을 가르며 뻗쳐 왔다.
“으아아악!”
아메리오는 미처 피하지도 못하고 시야가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분명 진심이었을 텐데!’
범 무서운지 모르는 하룻강아지는 자신의 스킬이 분명 상대에게 통했던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콰가각-!
무시무시한 스킬이 대지를 훑고 지나갔다. 단 한 번의 기술에 백여 명에 가까운 병졸과 마수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 폭풍이 군주 아메리오까지 휩쓸었을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로치온은 눈을 의심했다.
아메리오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그가 타고 있던 말만 바닥에 뒹굴고 아메리오의 사체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적어도 군주의 자리에 있던 자인데, 무명 병졸처럼 스킬을 맞고 녹아버리지는 않았을 터.
만약 그랬더라도 정면을 주시하고 있던 자신의 눈에는 그것이 똑똑히 보였을 것이다.
“와아아!”
성문을 열고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선두에 선 것은 바로 아라돈이었다.
이미 로치온이 한바탕 헤집어놓은 뒤라 그 위를 덮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직 병력의 숫자에서 차이가 나지만, 지휘관을 잃고 기습까지 당한 아메리오군은 우왕좌왕하며 아라돈의 병사들에게 유린당했다.
아라돈은 해골 가면을 쓴 사내에게 다가갔다.
“……로치온? 자네 맞나?”
“아라돈 님…….”
로치온이 가면을 벗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반가움보다 의혹이 더 짙게 깔려 있었다.
“무슨 일이 있나?”
“아메리오가 사라졌습니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아라돈은 처음에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곧 로치온이 궁금해하는 일이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 깨달았다.
“하하하! 걱정하지 말게. 아메리오는 차원의 틈에서 내 동맹자에게 죽임을 당할 테니.”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설명해 주겠네. 그 전에 먼저 싸움을 끝내세.”
“네.”
아라돈과 로치온은 말머리를 돌리고 다시 적진 안으로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