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독식왕 : 클리어러 102화
합성 모드에 들어가자 나는 ‘검은 공예술’ 직업을 얻으면서 생긴 패시브 ‘손재주’로 합성 능력이 향상되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한꺼번에 합성할 수 있는 수량이 늘어나고 합성 성공률도 높아졌다.
재료는 D급 결정석 열 개.
합성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열거되었다.
[D급 결정석+D급 결정석] ×5
[D급 결정석+D급 결정석+D급 결정석] ×3
[D급 결정석+D급 결정석+D급 결정석+D급 결정석] ×2 + [D급 결정석+D급 결정석]
…….
나는 목록 맨 아래의 것을 선택했다.
열 개의 결정석을 한꺼번에 합치는 것.
물론 재료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성공률이 내려가지만 그리 어렵지 않은 합성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조금 더 리드미컬해진 배경 음악. 그 속에서 나는 열 개의 결정석이 조화를 이루는 단 한순간을 찾아냈다.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D+++결정석을 얻었습니다.]
내 앞에 찬란한 빛을 발하는 하나의 결정석만 남았다.
‘D+++?’
D급 결정석을 아무리 합성한다고 해도 C급이나 B급은 되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열 개의 결정석이 제대로 모두 합쳐진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다섯 개만 합성해도 D+++ 결정석을 만들 수 있는데 너무 많은 재료를 사용한 것은 아닌지.
레시피가 없이 시도한 것이고, 처음 시도하는 조합이다 보니 정확한 기준이 없다.
나는 고심 끝에 카리스의 방패를 녹여 홈을 만들었다. 그 구멍에 D+++ 결정석을 꽂아 넣었다.
뼈다귀에 직접 붙이는 것은 역시 움직임을 방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공예품이 완성되었습니다.]
[검은 공예술을 적용할 수 있는 대상입니다.]
[공예품 ‘카리스+’에 숨결을 불어넣으시겠습니까?]
카리스+.
이름은 같았다. 하지만 이것으로 아직 능력까지 똑같을 거라고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그래.”
내 숨결이 빠져나가 뼈다귀에 스며들자 카리스가 다시 뭉쳐졌다. 기분 탓이겠지만 카리스의 몸짓에서 어쩐지 귀찮아하는 듯한 기색이 느껴지는 것 같다.
“크르르…….”
검은 공예품으로 탄생한 카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자기가 들고 있는 방패를 내려다보았다.
그 한가운데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결정석.
“키익!”
만족하는 표정으로 그것을 높이 쳐든다.
나는 피식 웃음을 짓고 카리스+의 능력치를 확인했다.
이름 : 카리스+
레벨 : 70
스탯 : 근력 62 /체력 55 /민첩 57 /행운 13
남은 시간 : 1시간
“오!”
결정석 열 개를 박아 넣은 카리스+보다 오히려 능력치가 상승했다.
나는 머릿속으로 또 다른 가능성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이런 식이라면 내 스스로 장비를 강화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카리스의 방패에 결정석을 장착한 것처럼 내 장비에 결정석을 장착한다면…….
나는 조금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기각.’
카리스의 뼈다귀는 라이트 속성을 이용해 녹이는 게 가능했지만, 유니크급 장비에 결정석을 장착할 만한 구멍을 뚫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게다가 완성품의 모양새도 나쁘다.
결정적으로 장비에 숨결을 불어넣는 게 가능할 리 없고.
‘역시.’
장비를 가공하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나는 그 일은 계속 티코이에게 맡기기로 했다.
검은 공예술은 몬스터를 아군으로 개조하는 데만 쓰면 되겠지.
꽤 긴 시간을 들인 실험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
나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부서져라.”
“키익?”
와르르…….
단순히 생각해서 검은 공예품을 검은 소환수로 치환하는 방법도 있다. 개량된 몬스터는 또 한 번의 버프를 받을 것이기 때문에 꽤 괜찮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능력으로 그 정도 몬스터를 원하는 대로 컨트롤하는 것은 무리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대안을 고민했던 것도 검은 소환술이 꾸준히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여겼기 때문이 아닌가?
물론 레벨이 더 오른다면 좀 더 자유롭게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그렇다고 사용 시간이 정해진 공예품을 미리 만들어 둘 수도 없다.
한마디로 말해 현장에서 직접 사용해야만 하는 능력인 것이다.
‘재밌네.’
가상현실 게임 십 년 동안 내내 공예사는 서브 직업일 뿐이라고 여겼는데 현실로 와서 이런 히든 클래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상당히 훌륭한 직업이라는 것도 알았다.
매번 똑같은 패턴의 공략만 반복했던 지난 십 년에 비하면 변수가 많은 지금 플레이가 더 재밌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2
이계, 아메리오 궁.
쭉 찢어진 눈을 한 군주가 언짢은 표정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
자신의 부하에게 불쾌한 기분을 담아 묻는다.
“나와 손을 잡으려는 군주가 없다고?”
그 앞에 부복한 신하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외람되게도 그러하옵니다. 현재 군주들의 관심은 이계에 진출하는 것에 쏠려 있습니다. 군주들끼리 전쟁을 벌이고 땅을 뺏는 싸움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습니다. 게다가 아라돈은 알려지기로 영욕이 없는 군주입니다. 슬라둠이 사라진 빈 영토를 삼켰다 하더라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군주가 없습니다.”
“이런 멍청한!”
아메리오는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가늘고 뾰족한 턱을 연신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이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것은 지난 수십만 년 동안 계속 시도되었던 일이다. 하지만 한 번도 성공한 예가 없지. 단순히 왕이 우리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마련한 사책인지도 모르고 그런 것에 놀아나다니.”
신하는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열었다.
“감히 제 생각을 진언하자면, 현재 저희의 전력만으로도 충분히 아라돈을 쓰러뜨릴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그는 슬라둠의 영토까지 진출하여 여력이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이라면 큰 희생 없이 아라돈을 쓰러뜨리는 것이 가능합니다.”
“네놈은 하나만 알지 둘은 모르는구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온지…….”
“아라돈이 영욕이 없는 자인 것은 맞다. 슬라둠이 실종된 지 한참 되었을 때도 그는 그 땅으로 발을 딛지 않았지. 그런 그가 갑자기 생각을 바꾼 데에는 뭔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무엇이지 모른 채로 섣불리 움직인다면 되레 우리가 당할 수 있다.”
신하는 속으로 생각했다.
‘믿는 구석은 뭐가 믿는 구석이야? 괜히 쫄리니까 소심하게 몸을 사리는 거면서.’
“뭐라고?”
아메리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만…….”
“방금 날 더러 쫄보에 소심쟁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헉……!”
“후후후.”
아메리오가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마법의 인이 새겨진 손바닥 안에서 검은 화염이 생성되었다.
화르르륵-!
“끄아아악!”
불에 탄 신하가 금세 재가 되어 흩어졌다. 군주의 좌 양옆에 서 있던 시종들이 잽싸게 나서서 그 재를 청소했다.
“음…….”
아메리오는 신음성을 내뱉었다. 사실 아라돈을 공격하고 있지 않은 것은 그에게 뭔가 다른 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신하가 지적한 대로 그 자신이 걱정이 많고 소심한 성격이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다른 군주의 힘을 빌려 확실한 승리를 쟁취하고 싶었다.
‘빌어먹을, 나와 손을 잡으려는 군주가 하나도 없다는 게 말이 돼?’
그때, 시종이 다가와 말했다.
“지금 문밖에 손님이 오셨다고 합니다.”
“손님?”
아메리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누가 감히 군주의 성에 손님을 자처하고 찾아온다는 말인가?
같은 군주급이 아니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응?’
“그 손님이 혹시 군주더냐?”
“그게…….”
시종의 머리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로치온이라고 하옵니다.”
“로치온?”
아메리오는 시종의 고개가 기울어진 이유를 금방 깨달았다. 로치온은 군주급의 위용을 지닌 자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군주는 아니었다.
이백 년 전 왕위쟁탈전에서 패배해 목숨을 잃은 락시움. 그의 장자였던 로치온은 원래대로라면 아버지의 뒤를 이어야 했다. 하지만 그 자리를 자신의 동생에게 양보하고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다.
실질적으로 락시움이 왕위 쟁탈전에서 선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들 로치온이 그를 잘 보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장 군주가 된다 하더라도 상당한 세력을 일구는 것이 가능했을 터.
소문에 의하면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왕이 될 실력을 갖추어 돌아오겠다고.
그 말을 들은 지금의 왕이 진노하여 수색령을 내렸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이백 년이 흘렀다.
“로치온이라고? 본인 스스로 그렇게 말했느냐?”
“네, 군주께서 동맹을 찾고 계신다는 얘길 듣고 찾아왔다고 합니다.”
“허허, 거참.”
아메리오는 덜컥 겁이 났다. 과거 락시움은 10위 권 내에 있었던 군주다. 감히 자신은 쳐다보기도 힘들 만큼 높은 위치에 있던 군주.
그의 오른팔 역할을 했던 로치온이라면 아버지 못지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을 게 틀림없다.
게다가 모습을 감추었던 이백 년 동안 어떤 식이로든 더욱 강해졌을 터.
‘혹시 내 목을 치고 군주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이 아닐까?’
단순히 의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충분히 할 수 있는 합리적인 추측이다.
“몇 명이서 왔더냐?”
“혼자 왔습니다.”
“……그래?”
아메리오는 자신의 마음속에 피어나던 의심을 지웠다. 아무리 군주 개인의 실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적의 영지에 혼자 찾아온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짓이나 다름없다.
‘동맹을 맺겠다고?’
손을 잡으려는 다른 군주가 없는 현재 자신은 매우 아쉬운 입장이다. 로치온 정도면 충분히 동맹으로 삼을 만한 인물.
그가 합세했다는 사실만으로 아라돈에게 공포를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좋아, 들여보내라.”
“네.”
아메리오는 입술 끝을 들어올렸다.
설사 로치온이 다른 마음을 품고 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금방 간파될 것이다.
자신에게는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으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면 그만이다.
‘손해 볼 건 없지.’
3
로치온은 과거 아버지를 도와 오더 진영을 진두지휘했다.
대대로 이계에는 한 번도 오더 성향의 군주가 왕위를 차지한 적이 없다.
다만 이번에는 오더 진영의 군세가 제법 괜찮은 편이었고 목숨을 잃을 각오로 싸운다면 어쩌면 이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는 죽음을 맞이했고 오더 진영은 뿔뿔이 갈라졌다. 그때 자신은 몸도 실력도 덜 성숙한 상태였지만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더 강해져야 한다!’
그 일념으로 영지를 떠나 모험을 자처했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죽음의 위기를 넘겼고 일신의 힘으로 강력한 몬스터들을 물리치면서 능력을 신장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