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왕 클리어러-97화 (97/245)

# 97

독식왕 : 클리어러 097화

7

연일 방송에서 박중철과 그의 회사 V-스타일의 비리를 보도하고 있었지만 나는 어쩐지 개운치 않은 기분을 느꼈다.

‘안 좋은 버릇이 몸에 밴 것 같은데.’

십 년 동안 살았던 가상현실 게임에서 나는 내게 대항하는 적들을 철저히 응징해 왔다.

응징이란 말 그대로 무력을 사용해 끝장을 내는 것.

하지만 현실에서 악당을 상대할 때는 그런 방법만 사용할 수는 없었다.

노아에게 배웠고 그의 도움으로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던 박중철을 말 그대로 끝장냈다.

검찰 소환 조사를 앞두고 있는 그는 이대로 가면 최소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게 될 것이다.

‘5년…….’

아버지를 죽음까지 이르게 하고 가족을 불행에 빠뜨렸던 놈에게 합당한 벌일까?

물론 그 이상의 형벌을 바라는 것은 내 욕심일 수 있다.

그래도 5년은 너무 적다고 여겨졌다.

더구나 그 같은 인물은 사회적 관심도가 적어진 틈에 어떻게든 형량을 줄여 출소일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음…….’

나는 장고를 했다.

노아는 절대 감정적으로 일처리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더구나 이미 얼굴이 팔릴 데로 팔리고 회사까지 무너진 그는 사회적으로 죽음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부족해.’

사회적으로 죽음을 당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업이 망했다고 해도 출소 후에는 일반인들보다 잘 먹고 잘 살 것이 틀림없다.

얼굴이 팔린 것도 5년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겠지.

내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심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이한호였다.

“형.”

“성오야, 알려줄 게 있어서 연락했다.”

“알려줄 거?”

“응, 나한테 걸린 첩보 하나가 있어. 오늘 밤 박중철이 평택을 통해 밀항을 할 수도 있대.”

“밀항?”

“응, 아마 중국으로 가서 잠적하겠다는 의도겠지. 만약 진짜면 가족도 버리고 가는 건데 진짜 지독한 놈이지.”

“오늘 밤이라고……?”

“어디로 가는지 짚이는 데가 있어. 나랑 같이 갈래?”

망설일 이유가 없다. 나는 즉시 대답했다.

“응.”

8

암젤만 데리고 아파트 앞으로 나가 한호를 기다렸다. 30분 뒤에 온다더니 시간에 맞추어 도착을 했다.

암젤이 먼저 탑승해서 뒷좌석으로 가고, 나는 조수석에 탔다.

이한호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아파트를 올려다보고 말했다.

“너 돈 많이 벌지 않냐? 왜 이런 데서 살아?”

“안 그래도 곧 이사 갈 거야. 건물이 완성되면.”

“건물?”

나는 노아에게 들은 계획을 그에게 들려주었다.

“대단하구나. 나도 공무원 그만두고 네 길드에 들어갈까? 받아줄래?”

“형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지.”

한호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 봤는데 내가 던전 사고 처리반에 있어야 너한테 더 도움이 될 것 같아. 아무래도 이 안에 있으면 여러 가지 정보가 들어오거든. 오늘만 해도 내가 이 얘길 듣지 않았으면 박중철을 놓쳤을 거 아니야.”

“확실한 거야?”

“메시지 앱으로 대화를 나눈 흔적이 있어. 암호식으로 얘길 나누던데, 그 정도 파악하는 것은 일도 아니지.”

“메시지 앱? 그런 거 해킹하면 불법 아니야?”

“하하.”

한호는 웃음을 흘렸다.

“카오스 게이머 닷컴 놈들을 쫓는 거 자체가 목숨을 건 일이야. 내가 그런 거 신경 쓸 거 같아? 던전 사고 처리반이 좋은 게, 다들 일을 제대로 안 해. 내가 무슨 일을 해도 들킬 염려가 없다는 거지. 아마 알아도 간섭하기 귀찮아서 아무 말 안 할걸?”

“심각하네.”

“그치?”

한호는 웃을 일이 아닌데도 웃음을 지었다. 나는 느낌상으로 그가 아라돈의 대리인이 된 다음에 뭔가를 털어낸 듯 편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감당하기 힘든 비밀을 많이 알게 되면 보통은 중압감을 느끼겠지만 한호는 되레 반대되는 성향인 듯했다.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자체에 활력을 느끼는 것 같았다.

9

나와 한호는 장시간 자동차를 타고 평택항에 도착했다.

우리는 인근 편의점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서 차에 돌아와 대기했다.

“놓치지는 않겠지?”

“여기 항구가 큰 것도 아니고, 우리 시력이면 어두워도 충분히 잡아낼 수 있어.”

게이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나는 한호에게 ‘간파’ 스킬이 있다는 것을 기억했다.

간파는 일종의 직감과 같은 능력인데 상대의 속내를 파악해 낸다거나 여럿 중에 섞인 진짜를 골라낸다든가 하는 유용한 능력이었다.

나는 직업이나 성격을 감안했을 때 그와 잘 어울리는 스킬이라고 생각했다.

본인이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니 잘될 거라는 안심이 생겼다.

“그나저나 5년 형량이 싫어서 밀항을 하다니, 대단한 놈이다.”

내 말에 한호가 히죽 웃음을 지었다.

“아버지 재산을 물려받아서 인맥으로 사업 시작한 놈이잖아. 감옥에는 단 한 시간도 들어가 있기 싫겠지.”

나는 기다리는 중에도 계속 고민을 했다. 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잡아다 경찰에 넘기는 것이 옳은 선택지겠지만 여전히 망설임이 남았다.

며칠 전에 어머니와 누나가 방에서 흐느끼던 소리가 메아리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차 안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기다렸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나는 새삼 내가 아버지의 일을 마음의 짐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놈을 처리한다고 해도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시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었다.

팔짱을 끼고 두꺼운 점퍼에 몸을 파묻고 있던 한호가 갑자기 몸을 추켜세우며 말했다.

“왔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안내를 받아 허겁지겁 움직이고 있는 인영이 보였다.

전방을 비치는 손전등 불빛만 있어서 정확히 모습을 인지할 수 없지만, 한호는 확신을 갖고 말을 했다.

“가자.”

한호가 차문을 열려는 것을 내가 붙잡았다.

“차에 있어. 나 혼자 다녀올게.”

“……정말?”

“응.”

내 대답에 한호가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그래, 네가 알아서 해.”

내 귀에는 그 말이 놈을 죽이든 말든 상관 않겠다는 것처럼 들렸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암젤이 재빨리 따라 내렸다.

“너도 차에서 기다려.”

“싫다옹.”

암젤이 눈을 치켜뜨고 단호하게 말했다. 평소에는 그래도 내 말은 잘 듣는 편인데, 주인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상관 않고 걷는 속도를 빨리 해 박중철로 보이는 인영을 따라갔다.

놈도 긴장을 했는지 거리가 가까워져도 누군가 뒤를 쫓는다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십 미터 정도로 가까워진 뒤에야 휙 고개를 돌렸다.

앞서가던 사람도 뒤돌아보고 손전등 불빛을 우리에게 비추었다.

암젤이 소환수를 불렀다.

“어흥!”

호랑이가 나타나자 안내인은 질겁하며 손전등을 던졌다.

“으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친다.

박중철은 차마 달아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누, 누구……?”

“나다.”

내가 한 발짝 앞으로 가까워지자 박중철은 눈을 찡그리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발 새끼.”

그는 나를 알아보자마자 욕지기를 내뱉었다.

“주인님, 어떡할까옹? 이 녀석한테 먹어버리라고 할까옹?”

암젤이 화난 얼굴로 물었다.

박중철은 고양이가 말을 했다는 부분에서 한 번 놀라고,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 거대한 호랑이의 신형에 또 한 번 놀랐다.

“왜, 왜 날 쫓아온 거냐? 설마 죽일 생각이야?”

곧 죽어도 센 척하는 타입이다.

나는 놈의 정보창을 확인했다.

이름 : 박중철

레벨 : 2

성향 : 오더(Order) - / 카오스(Chaos) C = 카오스(Chaos)

업적 : -

랭킹 : 198,245

스탯 : 근력 3 /체력 4 /민첩 2 /행운 4

스킬 :

액티브 – 고스트(D, Lv2)

이력 : 대학 동창과 함께 동업자 형식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곧 동창을 내쫓고 그의 기술을 훔쳐 V-스타일을 설립한다. 고소를 한 동창을 사람을 사서 죽이고, 변호인단의 도움을 받아 기술을 완전히 자기 소유로 만든다.

사업은 순조롭게 커갔지만 기본적인 인성이 오만해, 자기를 조금이라도 무시한 자는 끝까지 기억한 다음 해를 가했다.

조성오의 아버지가 발병한 것도 그가 몰래 음식에 독을 넣으라고 지시했기 때문. 직접 손을 더럽히지 않지만 그의 직, 간접 지시로 죽거나 불구가 된 사람이 열 명이 넘는다.

약점 : 개미를 죽이는 데도 약점을 필요한가?

“……역시 너는 개새끼구나.”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병에 걸린 이유를 알았다.

“애새끼가 누구한테 욕이야? 지 애비를 닮아서 개념을 시궁창에 내다버렸냐?”

누가 봐도 바짓가랑이를 잡고 빌어야 할 형국인데 자존심이 얼마나 센지 끝까지 센 척을 했다.

“너같이 하찮은 놈 때문에 아버지가…….”

“니 애비는 네 잘못으로 죽었잖아. 게임에 눈이 돌아가서 나대다가 지 애비까지 죽게 해놓고 어딜 와서 지랄이야?”

나는 고민이 일시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직접 손을 더럽히지 않았다고 해도 자기 자존심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불행에 빠뜨리는 놈은 해충이나 다름없다.

“암젤, 더 작은 놈으로 불러내.”

“알았다옹.”

암젤이 호랑이를 소환 해제한 다음 대신 살쾡이 다섯 마리를 불러냈다.

“캬르릉…… 캬르르릉…….”

살쾡이들이 슬금슬금 박중철에게 다가가며 암젤의 지시를 기다렸다.

박중철이 덜컥 겁을 집어먹고 말했다.

“야, 이 새끼야. 어린놈이 겁도 없이 무슨 짓이야? 살인을 하고도 네가 무사할 것 같아?”

“물으라옹.”

암젤의 지시에 살쾡이들이 달려들었다. 소환수들은 박중철의 목숨을 끊지는 않고 각자 사지를 물어뜯었다.

“으악! 으아아악!”

박중철의 고통에 찬 비명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나는 놈을 절대 편하게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고요한 평택항에는 그가 비명을 질러도 누구 하나 오는 사람이 없었다.

어쩌면 아까 도망친 안내인이 호랑이를 소환한 능력자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전파한 것인지도 모른다.

삼십 분 동안 이어진 고문.

“주…… 죽여…… 줘.”

온몸에 뜯겨 나간 채로 박중철의 입에서 애걸이 흘러나왔다.

나는 히루도의 창을 꺼냈다.

겨우 목숨 줄만 붙어있는 그의 심장을 무심하게 찔렀다.

[카오스(Chaos) 성향을 가진 게이머를 죽였습니다.]

[오더(Order) 성향을 부여받습니다.]

[경험치 +300, GP +500을 얻었습니다.]

박중철은 죽고 나서도 결정석을 남기지 않았다. 그만큼 레벨이 낮은 게이머였기 때문.

그의 시체가 조금씩 녹아내렸다. 나는 그 사실에 의아함을 느꼈다.

피스&호프 한국 지부에서도 사체가 녹아서 사라졌는데,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때는 퀘스트를 통해서 카오스 게이머를 죽여 그런 거라고 여겼지만 종합적으로 판단컨대 내가 카오스 게이머를 죽이면 무조건 그 사체가 사라지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던전 안이든 밖이든 내가 죽이는 카오스 게이머는 사체를 남기지 않고 녹아버리는 것이다.

‘편리하네.’

나는 녹아내리고 있는 박철중의 사체에서 등을 돌렸다.

만약 그를 죽이는 일이 생긴다면 조금은 찜찜한 마음이 남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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