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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96화 (96/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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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096화

    스케이트보드처럼 길고 평평하게 생겼지만 모양이 독특하다. 게이머 중 일부가 이것을 본다면 무엇을 닮았는지 눈치 챌 것이다.

    몸통을 회전시키며 공격해 오는 거북형 몬스터의 등판.

    꽁지에는 돌풍 제조기가 달려 있었다.

    기자들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생전 처음 보는 물건에 집중했다.

    성격이 급한 몇몇이 빠르게 질문을 던졌다.

    “그게 무엇인가요?”

    “그 물건이 조성오 씨와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노아는 미소를 지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는 보드를 바닥에 놓고 그 위에 올라갔다. 그의 표정은 은근히 굳어 있었다.

    브레인형 게이머인 그는 전투능력이 특화되어 있지 않다.

    일반인보다 높은 스탯을 가지고 있기는 해도 몸을 쓰는 일에는 익숙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인터뷰 회장은 매우 넓었다. 일부러 기자들도 뒤로 물렸다.

    그는 성오가 알려준 사용법을 되새겼다.

    ‘발을 굴리면 된다고 했지?’

    사용법은 간단하다. 완벽한 진공상태가 아니라면 발을 굴리는 것만으로 보드를 타고 나는 게 가능하다고 했다.

    탁.

    가볍게 땅을 차고 앞으로 밀어보았다.

    둥실.

    대번에 허공에 떠오르는 바람에 그는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재밌는데?’

    사용하기 전에는 살짝 겁이 났지만 막상 보드가 허공에 떠오르자 가슴에 흥분감이 들어찼다.

    그는 이번엔 더 적극적으로 발로 땅을 굴렀다.

    스으윽-

    미끄러지듯이 보드가 날아갔다. 벽에 부딪치기 전에 방향을 바꾼 뒤 다시 한 번 발을 굴린다.

    휘이잉- 휘잉-

    꽁무니에서 돌풍이 나오며 보드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우와!”

    기자들은 질문을 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들의 눈은 반사적으로 노아를 따라 좌우로 움직였다.

    오 분쯤 시연을 마친 노아가 돌개 보드를 멈추고 내려섰다.

    “어떻습니까?”

    잠시 조용했던 약간의 짜증을 담아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그게 어디에 쓰는 물건입니까?”

    “조성오 씨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노아는 돌개 보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말했다.

    “이 물건은 바로 조성오 씨가 만든 돌개 보드라는 아이템입니다.”

    그제야 기자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졌다. 눈치 빠른 이들은 그 말이 지닌 의미를 이해했다.

    노아가 보여준 제품은 일반적인 기술로는 제조할 수 없는 물건이다. 몬스터의 사체 일부를 재료로 하여 만든 게이머용 아이템.

    “용도를 더 정확히 알려주시겠습니까?”

    “게이머들은 던전 안에서 얘기치 못한 일을 자주 만납니다. 만약 위험에 처하게 돼서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고 합시다. 그럴 경우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귀환석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아실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귀환석이라는 아이템이 굉장히 고가입니다. 만약 귀환석이 없다고 한다면 다른 게이머의 구조를 기다려야겠죠. 하지만 이조차도 부담이 큰 일입니다.

    대개 게이머들은 던전 안에서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기 때문에 남을 돕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죠. 따라서 상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상황은 도움을 받는 쪽도 주는 쪽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 돌개 보드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가 시연해서 보여주었다시피 간단한 조작만으로 몬스터들의 방해 없이 빠르게 던전을 통과할 수 있죠.

    물론 소모품이기는 합니다만 귀환석과 이 아이템 중에 무엇이 더 가성비가 높을지는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노아는 말을 이었다.

    “돌개 보드는 다른 상황에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던전은 등급이 올라갈수록 층의 넓이가 넓어지죠. 때로 그 안에서 식사를 하고 잠을 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돌개 보드를 사용하면 던전 공략 속도를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비슷한 상황으로 필요한 만큼만 공략을 하고 출발 지점으로 돌아가거나 세이브 존으로 이동하고자 할 때도 사용할 수 있겠죠.”

    “와…….”

    기자들 입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처음의 목적을 잃고 인터뷰는 신상품 소개를 위한 자리가 되어버렸다.

    기자 중 하나가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했다.

    “조성오 씨는 전투형 게이머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통 아이템을 제작하는 것은 노아 씨처럼 브레인형 게이머가 하는 일 아닙니까? 어떻게 조성오 씨가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거죠?”

    “거기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노아가 웃음을 지었다.

    “말씀하셨다시피 전투형 게이머와 브레인형 게이머는 확실하게 구분되어 왔습니다. 두 가지 능력이 한 몸에 발현되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죠. 거기에 조성오의 특별함이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가 만든 아이템은 설령 레시피를 안다 해도 누구도 똑같이 만들 수 없습니다. 이런 능력은 대단히 유니크해서 저조차도 흉내 낼 수 없습니다.“

    기자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잠잠해졌다.

    세계 수위급 브레인형 게이머인 노아조차 조성오의 능력을 흉내 낼 수 없다니.

    “조성오 씨가 만든 아이템이 더 있습니까?”

    “물론이죠.”

    노아는 이차원의 주머니에서 귀화제와 리에고 등불을 꺼냈다.

    5

    노아가 하는 기자회견이 백 퍼센트 조성오를 대변하기 위한 것이었음은 기자들도 예측하지 못했다.

    인터뷰가 시작하고 30분이 흘렀을 때 이 안에 있는 모두가 조성오가 얼마나 희소성 높은 능력자인지 깨달았다.

    그동안 모락모락 피어올랐던 억측들이 이 한 번의 인터뷰로 완전히 가라앉은 것이다.

    “한국에 와서 길드를 만들자고 한 것은 제가 조성오에게 한 간청이었습니다. 귀화를 한 것도 성오의 의견이 아닌 제 결정이었죠.

    저는 게이머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호기심을 갖고 있습니다. 성오의 능력이 경직된 게이머계에 얼마나 큰 변화를 몰고 올지.

    저희는 조성오를 단순히 한 개인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귀중한 자원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의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곧 이 세상의 발전과 직결되기 때문이죠.”

    기자들의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한국에 이런 대단한 게이머가 있었다니.

    역시 노아 같은 인물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 이유가 있었어.

    그들은 번개 같은 속도로 노트북을 두드리고 핸드폰을 터치해 기사를 작성해 갔다.

    “저는 이 기회에 한 가지 더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한 노아가 입을 열었다.

    “제 친구는 최근 한 회사의 횡포에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손가락을 멈추었다. 그들은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가 지금까지 들었던 이야기 못지않게 중요한 것임을 직감했다.

    “성오의 가족은 과거 아들이 혼수상태에 빠진 상황에서도 게임회사의 책임 회피적 태도와 명백한 보복성 조치로 큰 불행을 겪었습니다. 얼마 전 그 회사의 오너가 TV에 나와서 말했죠. 자신들은 책임이 전혀 없고 병원비를 지불한 것으로 도적적 책무를 다했다고요.

    아울러 마치 제 친구가 게임 중독에 빠진 부족한 인간인 것처럼, 그 부모님은 자식을 망치고도 그 책임을 다른 곳에 전가한 몰지각한 사람으로 매도했습니다.

    이 사건을 제대로 조사한 분들이 과연 한국에 있기는 한가요? 저는 고작 며칠간 과거 자료를 되짚어 보는 과정에 V-스타일이 범한 명백한 범죄 행위를 발견했습니다.

    성오의 아버지는 몇 년간 지속된 극도의 스트레스와 충격이 원인이 되어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이 사건에 대해 재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게임기기 자체의 불량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기업의 횡포와 그것으로 희생된 한 가족의 불행을 공평하고 정직한 관점에서 다시 수사해 달라는 것입니다.”

    노아의 말이 인터뷰 회장에 엄숙하게 울렸다.

    기자들은 이미 조성오가 얼마나 희소성을 가진 게이머이며, 그가 앞으로 대한민국을 위해 얼마만큼 국위선양을 할 수 있을지 알고 있었다.

    V-스타일의 횡포를 지적하는 말을 듣자 자기도 모르게 분노가 치솟았다.

    기자들의 손가락이 더욱 빨라졌다.

    6

    “내 이럴 줄 알았지. 박중철 생긴 것만 봐도 뺀질뺀질 거짓말 잘하게 생겼잖아?”

    “혀 차면서 손가락 흔드는 거 볼 때마다 손가락을 분질러버리고 싶더라.”

    “연기도 못하면서 꿋꿋하게 자기 회사 CF에 나오는 건 뭐야?”

    “난 솔직히 그 인간 TV 나올 때마다 채널 돌렸었다.”

    노아가 과거 사건을 조사했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사실 한국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그 일에 관심을 갖고 나름의 방식으로 조사를 했었다.

    그는 성오에게 V-스타일과 박중철을 고소하게 하고 조사 자료를 검찰에 넘겼다. 그 자료는 단순히 조성오 가족에 저지른 부정뿐만 아니라 사업과 관련된 비리도 포함된 것이었다.

    카오스 게이머 닷컴은 자신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기업, 정치인, 그리고 공무원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들이 배신을 할 경우에 대비해 모은 협박용 데이터.

    그 안에 V-스타일의 자료도 있었다.

    제시된 자료가 워낙 구체적이었기 때문에 검찰의 조사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머지않아 박중철 개인의 마약 복용, 매춘 등의 문란한 사생활과 회사 자금 횡령, 하청 기업과 다수의 불공정 계약을 맺은 것 등 많은 범죄 사실이 확정되었다.

    V-스타일의 불매 운동 또한 온라인, 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빠르게 번져 갔다.

    “고마워요.”

    나는 진심으로 노아에게 감사를 표했다.

    “별것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사과를 해야죠. 결과적으로는 성오 씨의 뒷조사를 한 게 되니까요.”

    “이 마당에 그걸 따지면 제가 염치가 없는 거죠.”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또 뭐가 남았나요?”

    “V-스타일은 한국에서 사업을 정리하고 일본으로 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사건과 무관하게 오래전부터 진행이 되어온 모양이더군요.

    게임기기 제작 업체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는 일본으로 사업 기반을 옮기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한국의 자랑스러운 기업이라는 둥 이미지를 포장해서 성장한 기업이 뒤로 그런 일을 꾸미고 있었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겠죠.”

    “어떻게 하실 거죠?”

    “이미 처리했습니다. V-스타일은 새 사업을 시작하면서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상황이었거든요. V-스타일에 자금을 대고 있는 투자자들에게 제가 손을 썼습니다.”

    “어떻게요?”

    “V-스타일 대신 저희한테 투자하라고 했죠.”

    “……그 말을 듣던가요?”

    “지난번 인터뷰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조성오 씨의 이름과 가치는 이미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누가 OG처럼 유망한 투자처를 두고 V-스타일 같이 망해가는 기업에 투자하겠습니까?”

    노아는 쉽게 말하지만 나는 이것이 그가 가진 영향력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얼마 전에 사업을 너무 큰 규모로는 키우지 않겠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어쨌든 사업에 관한 한은 나는 노아에게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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