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
독식왕 : 클리어러 095화
3
정상적으로 길드 등록을 마치고 난 뒤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어디서 취재가 된 것인지 모르지만 노아와 내가 만든 길드가 정식 발족했다는 소식이 TV전파를 타고 흘러나온 것이다.
그 사실을 언론에 알린 게 누구인지는 금방 밝혀졌다.
자기를 청장이라고 소개했던 오영숙이라는 여자.
과시욕과 권력욕이 줄줄 흐르는 그녀의 얼굴이 TV에 나왔다.
“길드원분들이 오셔서 겸손하고 질서 있는 태도로 등록을 마치고 갔습니다. 한국인이 된 노아 알렌 씨의 이번 방문은 저희 구청으로서도 대단한 영광이었습니다. 아울러 저희 구청은 언제나 게이머들의 복지에 만전을 기하고 있으며…….”
나이에 직함에 어울리지 않게 젊고 잘생긴 게이머에 집착하는 꼴이라니.
이제 구청에 볼 일이 있어도 영숙이 아줌마가 있는 곳에는 다시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보도가 재미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나에 대한 관심이 재점화되며 쓸 데 없게도 십 년간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 재조명받은 것이다.
이번에는 얼마 전 불거졌던 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로 이어졌다.
그때는 단순히 인터뷰일 뿐이었지만 이제 실제로 길드가 발족한 것이니까.
스무 살짜리 B급 게이머에 불과한 조성오가 어떻게 세계적인 셀럽인 노아 알렌을 구워 삼았을까. 궁금증은 꼬리를 물고 증폭되어 급기야 억측들을 낳기 시작했다.
내 핸드폰은 다시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들의 전화로 밤낮없이 울려댔다.
‘어쩌지? 인터뷰를 한 번 더 해야 하나?’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곧 잠잠해지겠지.’
지난번처럼 적당히 떠들어 대다가 지치면 그만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내 생각은 순진한 기대였다.
어이없게도 이번에 나선 것은 가상현실 게임기기 제작 업체인 ‘V-스타일’이었다. 이 회사는 과거 가상현실 게임기기를 최초로 개발하면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한국에서 시작하여 일본과 미국 기업의 투자를 받으며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한 V-스타일.
초기에 그들의 성장세에 작게나마 발목을 잡은 일이 바로 내가 게임에 접속한 뒤 혼수상태가 된 사건이었다.
아버지가 그들을 상대로 대립하다가 결국 회사가 무너지고, 가산까지 탕진하게 되었다.
내가 병원에 누워 있게 된 게 시작이었다면 아버지의 죽음은 우리 가족이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진 결정적인 이유였다.
V-스타일이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또다시 그 일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자기네 회사에 불똥이 튈까 봐.
그들은 현재 중요한 사업적 기로에 있었다. 가상현실 게임기기 제작을 넘어 게이머용 훈련 시설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며 주가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대규모 투자를 기대하는 상황이었기에 조그마한 악재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재밌게도 이 회사가 게이머용 훈련 시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작년에 기업 오너인 박중철이 각성을 하면서였다.
이미 돈은 부족함 없이 벌던 그였기에 직접 던전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다만 각성한 뒤로 대단한 자신감을 얻어 방송에 자주 얼굴을 비쳤다.
작년부터 V-스타일의 모든 광고에 직접 출연하기도 하는 그였다.
이번에도 직접 시사 토크쇼에 얼굴을 디밀었다.
사회자가 질문을 던졌다.
“귀사의 제품을 사용한 뒤 혼수상태가 되었던 조성오 씨가 노아 알렌과 길드를 만들면서 대단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때 사건이 귀사의 기기 불량이 아니었나 하는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는데요. 기업 오너로서 어떻게 보십니까?”
“쯧쯧.”
박중철은 자신이 밀고 있는 제스처를 취했다. 혀를 차며 검지를 흔든 것.
“말도 안 되는 억측입니다. 그 일은 이미 십 년 전에 철저한 검증으로 의혹이 해결된 바 있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조성오는 게임 중독으로 하루 수면 시간이 두세 시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어리석게도 시험을 잘 보면 가상현실 게임기기를 사준다는 부모 말을 듣고 단기간에 무식하게 공부를 해서 성적을 올리기도 했죠.
여기까지 들으면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초등학생의 머리로 그만한 과부하를 겪었으니 당연히 언제 고장 나도 이상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아마 가상현실 게임기기에 접속한 흥분이 이미 고장 나 있던 머리에 결정적 신호로 작용했을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게 기기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게다가 우리는 병원비까지 지급하면서 굳이 안 해도 되는 도덕적 책무까지 다했습니다.”
박중철이 말을 마치자 게스트로 참석한 중견 탤런트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대표님 말씀을 들으니까 잘 이해가 되네요. 게임 중독인 자식한테 성적을 올리면 게임기를 사주겠다고 하다니, 저도 부모 된 입장에서 말하는데 정말 형편없는 부모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알기로는 적반하장으로 대표님 회사에 클레임을 걸고 방송에 나가 악의적인 인터뷰를 했다고 하던데, 맞나요?”
박중철이 침중한 표정을 대답했다.
“네, 물론 자식이 혼수상태에 빠지면 그 괴로움을 어디로든 분출하고 싶어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런 관점에서 좋게 해결하려고 했지만 명백히 도를 넘긴 행동이었죠.”
이쯤에서 사회자가 결론을 맺었다.
“게이머는 괴수들로부터 민간인을 지키는 존중받아 마땅한 직업이지만, 각성이 무작위로 이루어지는 탓에 도덕적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게이머들이 활동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조성오 씨가 어떻게 노아 알렌과 길드를 함께 만들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이번 일이 그러한 사례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방송을 보는 내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동안 한 편으로 미뤄두었던 일.
아버지를 죽음까지 몰아넣고 우리 가족을 불행하게 만든 사건.
정확히 말하면 가상현실 게임기기에 이상이 없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사실만 정확히 밝히면 되었을 일을 끝까지 몰아붙여 아버지 사업을 무너뜨렸다.
정확한 증거만 제시하고 설득했다면 아버지는 그런 상황에서도 충분히 납득을 하셨을 것이다.
박중철을 TV에서 보자 나는 믿고 싶지 않은 가정이 사실이었음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죽음 이면에는 기업 오너라는 자의 오만함이 있었다.
나도 마음이 괴롭지만 더 걱정되는 것은 바로 어머니와 누나의 반응이었다. 이 방송을 보면 뭐라고 생각할지.
그런 내 우려는 그날 저녁 사실이 되었다.
내 앞에서 뭐라고 내색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날 밤 두 사람이 안방에서 조용히 흐느껴 우는 것을 들었다.
‘시발 놈이…….’
나는 감정이 들끓었다.
게임을 진행할 목적을 벗어나 순수하게 누군가를 파멸시키고 싶은 욕구가 슬금슬금 가슴 위로 차올랐다.
방 안을 서성이는 나를 암젤이 불안하게 쳐다보았다.
“주인님, 왜 그러냐옹.”
가상현실 게임의 무대. 그 광활한 공간에서 나는 절대자로 군림했었다. 누구도 나를 거역하지 못하고 만약 그런 자가 있다면 철저히 응징했다.
“후우…….”
내 감정이 격해진 이유가 아버지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안다. 지금도 나는 간절하게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적어도 아버지의 명예에 누가 되는 일은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내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자 암젤이 대신 들여다보고 말했다.
“주인님, 노아다옹.”
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냉정하자.’
이곳은 가상현실 게임이 아니고, 나는 그때처럼 절대자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갖고 있는 박중철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다.
‘노아!’
나는 때마침 걸려온 전화에 머리가 어느 정도 깨는 것을 느꼈다.
“여보세요?”
“성오 씨.”
노아의 음성에는 불안과 걱정이 담겨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듣고 내 심장에 붙었던 불도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웬일이세요?”
“방송 보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성오 씨 사정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습니다.”
“방송에 나온 내용은 진실이 아닙니다. 저는 그것을 바로 잡고 싶습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일단은 억측을 잠재우기 위해 내일 제가 기자회견을 할 것입니다. 그 후의 일은 같이 논의를 하도록 하죠. 절대 먼저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네.”
“제가 전에 성오 씨를 형제처럼 여긴다고 했던 것은 진심입니다. 성오 씨가 느끼는 것의 백분의 일도 안 되겠지만 저도 이번 일로 슬프고 화도 많이 납니다. 다만 이런 일은 감정으로만 해결하려 들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그것의 부정적인 사례를 많이 보았어요.”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노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 인간 하나 고꾸라뜨리는 것에는 수백 가지 방법이 있으니까요.”
“…….”
전화를 끊은 나는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노아 알렌은 신뢰가 가는 인물이다. 특히 마지막에 했던 말은 내게 믿음을 주었다.
‘서두르지 말자.’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암젤이 얼른 내 무릎 위로 올라와 자기 머리를 비볐다.
4
전화로 말해준 대로 노아는 다음 날 기자회견을 했다.
길드 발족 소식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언론에서는 그에게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노아 알렌이 한국인으로 귀화한 것은 큰 이슈였다. 단순히 국가에 유능한 게이머 하나가 늘었다는 사실 이상으로 그가 가져올 경제적인 부가가치가 매우 컸기 때문에.
이 일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들은 길드를 만든 것보다도 그가 한국에서 시작한다는 사업에 더 관심을 가졌다.
그의 재산 총액은 투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재산의 대부분이 카오스 게이머 닷컴을 통해 얻은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었다.
개인 자산 규모로 보면 그는 당장 한국인 중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일 것이다.
당연히 이런 인물이 한국인이 되었다는 것은 한국으로서는 굉장한 득이요, 미국으로서는 크나큰 손실이었다.
그 많은 자산으로 한국에서 어떤 사업을 벌이려는 걸까.
그것에 관련된 내용이 이번 인터뷰에서 밝혀지길 바랐다.
그리고 그런 기대는 정확히 적중되었다.
“저는 근래 제 친구인 조성오에 대해 좋지 않은 풍문이 많이 떠돈다는 것을 알고 실망을 했습니다. 물론 억측이 벌어지는 것은 여러분에게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겠죠. 이 부분을 지난번 인터뷰에서 충분히 밝히지 못한 것은 제 불찰이었습니다.”
현란한 한국어 솜씨로 말문을 연 노아.
그가 테이블에 올려놓은 것은 이차원의 주머니였다.
그 안에 손을 집어넣어 기다란 보드를 쑥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