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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94화 (94/245)

# 94

독식왕 : 클리어러 094화

2

나와 NPC들 그리고 수보타는 다 함께 게이머 관리 구청으로 갔다.

이 기관은 원래 일반 관공서와 합쳐져 있었지만 게이머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확실한 지위를 확보하면서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오게 됐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공무와 게이머를 대상으로 한 공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것도 한 가지 이유이지만 국가 내 게이머를 잘 관리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말하자면 게이머를 일반인과 분리시켜 성심껏 모시겠다는 뜻.

이러한 의도는 구청의 규모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단순히 신식 건물이라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일반 관공서의 몇 배나 되는 세금을 들여 건물을 지었다.

당연히 내부 인테리어에도 비까번쩍했다.

일반인들은 이러한 사실에 큰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 어차피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직종 중 하나가 바로 게이머이니까.

인구비에서는 비교조차 할 수 없지만 이러한 특별대우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 내면에는 운이 좋으면 언젠가 나도 저런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심리가 깔려 있었다.

“좋네.”

나는 구청에 가야 한다는 사실에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막상 이곳에 오고 나서 생각을 달리 했다.

건물 자체가 그럴듯한 것도 있지만 모든 직원이 우리를 향해 깍듯이 인사를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게이머들에게는 무조건 그래야 된다고 교육을 받은 것 같았다.

이곳에 오는 중에도 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독차지했다.

으리으리한 미녀 셋에 꽃중년 하나, 그리고 스마트한 인상의 큐트 보이.

나를 제외하고도 뿜어내는 아우라가 장난이 아니었을 테니까.

누군지도 모르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았다.

일반인들의 시선이 호기심이었다면 관공서에서 우리를 대하는 태도는 정중함이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길드를 만들려고 왔습니다.”

“아, 혹시 성함이 조성오 씨이십니까?”

“네.”

어떻게 알고 있는지 의아했지만 이유는 곧 밝혀졌다. 안내된 방에서 미리 이곳에 와 있던 노아가 손을 흔들며 반긴 것.

“성오 씨!”

“빨리 오셨네요.”

“네, 복잡한 일들이 대충 정리가 됐거든요. 이제 기다리는 것만 남았습니다.”

며칠 만에 본 게 반가운지 그는 싱글벙글했다.

“동료분들이 여전히 멋지십니다.”

상쾌한 미소를 지었지만 암젤과 아린의 반응은 미미했다. 노아도 그런 사실에 별로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았다.

혹시 그녀들과 나의 관계를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직원이 다가왔다.

“기다리는 동안 간식을 가져다드릴까요? 원하시는 게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마치 식당에 온 것처럼 메뉴판을 내밀었다. 그곳에는 각종 음료와 간식거리 따위가 적혀 있었다.

암젤이 그것을 받더니 탁 닫고 말을 했다.

“성의껏 가져와 보세요.”

대체적으로 오만한 성격을 가진 게이머들을 상대해 온 직원이지만 암젤의 태도에는 슬쩍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직원이 가져온 음료와 간식은 관공서에서 맛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정도로 질이 좋았다.

웬만한 식당에서도 맛보기 힘들 정도로 훌륭하다.

‘구청도 가끔 와줄 만하네.’

라떼를 마시고 있는 내게 노아가 물었다.

“성오 씨는 아지트를 구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아지트요?”

한국 사람보다 더 능숙하게 한국말을 구사하는 노아.

그가 말하는 아지트란 아마 길드 사무소를 말하는 거겠지.

“안 그래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땅을 사서 새 건물을 지으려고요.”

“좋은 생각입니다. 사무실은 길드의 얼굴이나 다름없으니까요. 괜찮으면 제가 도움을 드려도 될까요?”

“도움이요?”

“이왕이면 같은 부지 안에 아이템 제조 시설과 주거지, 그리고 사무실까지 한꺼번에 집어넣죠. 길드라는 건 갈수록 인원이 늘어날 수밖에 없으니까, 이왕이면 처음부터 규모를 크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손에 꼽히는 자산가인 노아가 말하는 크다는 기준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네, 도와주시면 고맙죠. 저는 이런 일이 익숙지 않아서, 아지트 건설 건은 영호랑 같이 상의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알겠습니다.”

노아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반듯하게 정장을 차려 입은 중년 여자 하나가 나타났다. 그녀는 만면 가득 사교적인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청장을 맡고 있는 오영숙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우리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하고 명함을 건넸다. 나는 그녀가 노아와 손을 잡을 때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보았다.

‘역시 노아의 인기는 세대를 가리지 않는군.’

오영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특히 노아를 중심으로 오래도록 늘어놓았다. 이것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노아와 안면을 익히려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였다.

“이 여자 참 시끄럽네.”

결국 암젤이 참다못해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녀다운 언사인 동시에 일반인을 당혹시키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흠흠. 바쁘신 분들을 두고 제가 너무 말이 많았네요.”

노련한 공무원답게 영숙은 표정을 수습하고 몸을 일으켰다.

“절차는 직원이 안내해 드릴 겁니다. 다시 한 번 찾아주셔서 감사하고, 귀하와 좋은 관계를 이어 나갈 수 있길 희망합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직접 등록 절차를 진행할 것도 아니면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고 가다니.

그것도 암젤이 중간에서 끊지 않았다면 더 길어질 뻔했다.

“지루행!”

트레앙도 투정을 부렸다. 그녀는 흥분하면 거인으로 변신하지만 그 중간인 키 180센티미터 정도의 성인 여자로 변신하는 것도 가능했다.

붉은 머리칼을 지닌 터프한 기질의 미녀.

하지만 하는 말이나 행동은 어린아이와 다름없다.

오래지 않아 또 다른 여직원이 태블릿 모양의 기기를 여러 대 가지고 왔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관리소에서 사용한 등급 측정 장치와 동일한 기기. 외견을 보았을 때 관리소에 있는 것보다는 신형 같았다.

역시나 직원은 우리가 거기에 손을 올릴 것을 요구했다.

“길드 등록에 앞서 다시 한 번 정확하게 등급을 측정하려는 것입니다.”

손을 올리자 화면에 등급이 출력되었다.

노아는 A등급이다. 현재의 등급 측정 기준으로 최고 단계이기 때문에 그의 입장에서는 더 기대할 것도 없었다.

나는 이런 방식의 등급 측정이 확실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게이머가 지닌 능력의 다양성과 레벨의 격차를 생각했을 때 지금의 기준은 너무 단순하다.

같은 A급이라도 능력은 천양지차일 것.

일부 언론에서는 일명 구름 위의 존재들을 S급으로 따로 분류하고 있기도 했다.

내 결과치는 B였다. 레벨을 감안하면 충분히 예측 가능했던 결과.

나뿐만 아니라 NPC들과 수보타까지 줄줄이 B급 판정을 받았다.

“수고하셨습니다. 등록 절차가 마무리되기까지는 십 분 정도 걸립니다. 신분증이 갱신되는 과정이니 불편하시더라도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직원이 가지고 온 기기들을 가지고 사라졌다.

나는 이곳에 있는 것이 일반 관공서보다는 훨씬 쾌적하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지루함은 어쩔 수 없었다. 휴대용 게임기를 가져올 걸 그랬다고 잠깐 후회했다.

다행인 것은 이번에 길드 등록을 하고 나면 이곳에 올 일이 거의 없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또각또각.

아까 등급 측정을 해갔던 직원이 십 분이 지나기 전에 빠르게 되돌아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곤란한 감정이 잔뜩 드러나 있었다.

“죄송하지만 신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오류일 가능성이 크지만 직접 여쭈어 보려고 왔습니다.”

그 말에 나는 덜컥 놀랐다.

티코이를 돌아보자 그의 표정도 굳어 있었다.

“노아 씨와 조성오 씨를 제외하면 신분 인증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있네요. 지금 사용하는 이름이 본명 맞으신가요?”

정적이 흘렀다.

나는 이 상황을 모면해야 된다는 다급함을 느꼈다.

갑자기 생각난 스킬 하나.

“다시 보니 참 미인이시네요.”

직원이 당황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동시에 여자 NPC들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눈이 마주친 직원을 향해 스킬을 발동했다.

‘유혹.’

직원의 몸이 살짝 흔들리고 눈동자의 초점이 흐려졌다.

[스킬 ‘유혹’이 발동되었습니다. 스킬 적중률은 91퍼센트입니다.]

나는 부드럽게 다시 말했다.

“실수가 있었을 거예요.”

직원의 볼이 붉어졌다.

“아! 죄송합니다! 다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러실 것 없어요. 바로 길드 등록 절차를 마무리한 뒤에 저희에게 가져와 주세요.”

“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비척비척 걸어가던 그녀는 나를 슬쩍 돌아보더니 이내 얼굴을 붉히고 사라져 갔다.

또각또각.

“음…….”

효과가 좋은 스킬이지만 여성의 마음을 일방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다.

게다가 NPC들의 질투 어린 시선을 감내하는 것도 어렵고.

“무슨 일인가요?”

노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머리가 좋은 그는 자세히는 몰라도 방금 상황을 대충 이해했다.

“멤버분들의 신분이 등록된 것과 다른가요?”

쿨하게 물어보아서 나도 솔직히 대답했다.

“네, 그런데 처리가 깔끔하지 않았나 보네요.”

“죄송합니다.”

티코이가 황송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네…….”

노아는 말했다.

“게이머 신분 관리는 일반인보다 더 엄격합니다. 제가 도와드리죠. 자랑은 아니지만 과거 제가 운영한 사이트에서 이런 일은 아주 쉬운 업무 중 하나였으니까요.”

오 분이 지나지 않아 여자 직원이 갱신된 신분증을 들고 왔다.

그것을 하나하나 나누어주는데, 나는 그녀와 마주 보고 또 하나의 스킬을 걸었다.

‘기억 삭제.’

[삭제하고 싶은 기억을 말씀하십시오. 삭제된 기억은 다른 기억으로 대체됩니다.]

“신분 확인 과정에서 들었던 의문을 삭제해 줘. 내게 반했던 기억도 지워주고.”

[2분 3초 분량의 기억이 삭제되었습니다.]

기억이 삭제된 이후 직원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유혹 스킬을 사용하기 전으로 되돌아왔다.

내 입장에서는 과연 기억 삭제 스킬이 유혹 스킬을 지울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다행히 정상적으로 처리된 것 같았다.

스킬 간에도 서로 상성이 있다. 보통 등급과 레벨이 높은 스킬이 더 강력한 영향력을 갖지만, 일부 스킬은 그것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노아는 나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대놓고 묻지는 않는다.

자기 입으로도 호기심이 왕성하다고 했는데 아마도 지금 묻고 싶은 걸 참느라 힘이 들겠지.

가지고 있는 재력과 명성에도 불구하고 자기 입장만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은 노아의 정직한 성품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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