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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91화 (91/245)

# 91

독식왕 : 클리어러 091화

“성오 씨는 카오스 게이머 닷컴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풉!”

나는 한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커피를 뿜어냈다. 그 커피를 암젤이 뒤집어쓰고 얼른 일어나 옆자리로 피했다.

나는 한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달리 의도를 갖고 물은 것은 아닌 것 같다.

“네, 알고 있습니다.”

“얼마만큼 알고 계시죠?”

“…….”

내가 대답하지 않고 살짝 표정을 굳히자 한호는 얼른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딱히 속내를 떠보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아는 것을 먼저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나는 살짝 이 자리가 불편해졌다. 내가 죽인 것은 모두 카오스 게이머이지만, 현실 법률적인 관점에서 보면 어쨌거나 살인을 한 것이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것은 던전 사고 처리 기관의 공무원이었다.

한호는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피스&호프, 그리고 카오스 게이머 닷컴은 동일한 집단입니다. 이 사실을 상당수의 정치인, 그리고 고위직 공무원과 재계인들은 이미 알고 있죠. 물론 겉으로 드러내서 말하는 사람은 없고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되어 있습니다.”

“왜 그 얘기를 저한테 하시는 거죠?”

“외람되지만 저는 성오 씨가 게이머가 된 후의 행보를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을 보게 되었죠.”

한호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어 사진 하나를 띄웠다. 그것을 내게 들이밀어 보여주었다.

“……!”

사진에는 내가 찍혀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아린과 암젤, 수보타도 함께였다. 장소는 다름 아닌 피스&호프 한국 지부.

“이다음 장면에서 성오 씨는 완전히 화면에서 사라집니다. 결국 성오 씨와 동료들이 CCTV에 찍힌 것은 불과 몇 프레임밖에 되지 않습니다. 제가 게이머가 아니었더라면 결코 찾을 수 없었겠죠.”

“……이게 어떻다는 거죠?”

“바로 이날 이후 피스&호프 한국 지부장이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움직이던 몇몇 부하도 모습을 감추었죠.”

“…….”

“물론 이것만 가지고는 아무런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흔적이 전혀 남지 않았고, 무엇보다 피스&호프에서도 증언을 거부할 테니까요. 그들은 카오스 게이머 닷컴과 자기네가 조금이라도 연관될 것 같으면 늘 그것을 은밀하게 처리합니다.”

“제가 그 실종과 관련이 있다는 건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단순히 이 사진만 가지고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몇 가지 정황을 더 발견했습니다. 일전에 성오 씨는 카오스 게이머 닷컴 게이머들과 같이 던전에 들어간 일이 있습니다.

또 한 번은 성오 씨가 먼저 들어가 있던 던전에 그들이 다른 이들의 예약을 모두 취소하고 따라 들어간 적이 있죠. 그 뒤로 밖에 나온 것은 성오 씨 하나뿐이었습니다. 모두 비공식으로 이루어진 일이지만 어쨌거나 제가 얻은 정보는 그렇습니다.”

“음…….”

나는 커피 잔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이 자가 왜 이런 일들을 나에게 들먹이는 걸까? 오더 성향을 가졌다고 나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오산이다.

이한호가 하는 일은 던전에서 사고를 일으킨 자를 찾아내 검거하는 것이니까, 되레 오더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자기 일을 더 열심히 할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오해하시는 것 같으니 빨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카오스 게이머 닷컴을 싫어합니다. 단순히 범죄 집단이라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원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건드릴 수 없는 현재 상황에 분통이 터집니다.”

한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뭔가 생각나는 것이 있어 그의 정보창을 다시 보았다. 이력에는 던전 안에서 일어난 싸움으로 약혼자를 잃었다고 적혀 있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공무원이 되었지만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군.’

나는 내막을 알 수 있었다. 약혼녀를 죽인 범인과 카오스 게이머 닷컴이 연관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도 왜 이 얘기를 나한테 하는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성오 씨는 피스&호프 부길드장이었던 노아 알렌과 길드를 만든다고 들었습니다. 노아 알렌은 피스&호프의 길드장인 니콜라스 알렌의 친동생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형인 니콜라스와 노아의 성격은 매우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노아는 형의 방식을 싫어했다고 하죠.

물론 찌라시 수준의 소문이지만, 저는 성오 씨가 했던 일과 이번에 노아와 함께 길드를 만드는 일 사이에 분명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단한 추리력이다. 공무원이기 때문에 일반인보다 정보력이 좋은 것은 알겠지만, 그것을 추적, 취합해 내는 능력이 가히 뛰어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물론 그 추론은 백 퍼센트 맞지 않다. 노아가 내게 접근한 것은 내 아이템 제조 능력 때문이니까.

“만에 하나 과장님이 하신 추측이 모두 맞다고 해도, 그 얘기를 지금 이 자리에서 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한호는 굳은 표정을 지었다. 어금니를 깨물고 나를 몇 초간 마주 보다가 이내 머리를 숙였다.

“도와주십시오. 제 손으로 꼭 죽여야 할 놈들이 있습니다.”

뜬금없는 대사였기 때문에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카페에는 우리 말고 다른 손님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만 말하면 이해가 안 됩니다. 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세요.”

한호는 이번엔 더 상세히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하는 그에게는 비장함과 체념이 함께 묻어났다.

그의 얘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던전 안에서 이한호의 팀에 시비를 걸어 싸움을 일으킨 놈들은 나중에 알고 보았더니 카오스 게이머 닷컴과 연결되어 있었다.

고의로 일반 게이머들을 공격하여 그들에게서 나온 결정석을 카오스 게이머 닷컴에 팔아넘기는 일당이었던 것이다.

카오스 게이머 닷컴은 그런 자들을 특별 관리한다. 게이머에게 나오는 결정석은 매우 값비싸고 귀한 자원이기 때문에.

거래가 잦아지고 신뢰가 쌓이면 관계가 더욱 돈독해져서, 준길드원의 자격까지 주어진다.

이한호의 팀을 공격한 놈들은 이미 그 단계에 가 있었다. 공무원이 돼서 조사를 하려고 해도 이미 손을 댈 수 없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저한테 뭘 기대하시는 겁니까? 노아 알렌은 피스&호프를 나왔습니다. 그들의 정보를 얻는 것은 힘듭니다. 게다가 안다고 해도 그…… 과장님 혼자 해결하기 힘드실 테고요.”

“놈들의 정보는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해외를 왔다 갔다 하는 놈들이라 늘 정보망 안에 둘 수는 없지만, 한국에 왔을 때 사용하는 아지트가 있습니다.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나는 그가 직접 내뱉지 못하는 말을 대신해 주었다.

“그들을 처리하는 걸 도와 달라는 건가요?”

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 힘으로 하고 싶지만 능력이 부족합니다. 전에 팀원이었던 동료들은 모두 그 사건으로 목숨을 잃어서 더 이상 도움을 바랄 곳도 없습니다.”

“음…….”

나는 진심으로 딱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가족이나 NPC 중 누군가가 그런 일을 당한다면 당연히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을 도와주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결정적으로 한호와 내 사이에는 아직 신뢰 관계가 부족하다.

거절을 하려는 찰나에 무언가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이한호의 이마 위에 나열되는 문자.

[성향…… ok, 타입…… ok, 성별…… ok, 레벨…… ok, 연령…… ok, 마나 호응도…….]

‘이게 뭐야?’

멍하게 그것을 보던 나는 불현듯 뭔가를 깨달았다. 아르돈의 대리인을 찾기 위한 조건들.

나열되는 사항들이 정확하게 그것과 일치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나는 대리인을 찾는 모드를 On으로 설정했었다.

‘이럴 수가…….’

남은 조건은 하나뿐이다.

마나 호응도.

아마도 이게 가장 어려운 조건일 것이고, 그래서 군주들이 대리인을 찾기 어려워하는 거겠지.

한호는 테이블 위로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것을 혼자 쥐었다 폈다 하더니, 머리를 내저었다.

“역시…… 안 되겠죠? 무리한 부탁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오늘 드렸던 말은 모두 잊어주십시오.”

그때였다. 마지막 하나 남아 있던 조건에 ok 사인이 들어왔다.

[마나 호응도……89%……ok. 동맹자 아라돈의 대리인이 될 수 있는 적합자입니다.]

[이한호를 아라돈의 대리인으로 지정하시겠습니까?]

[유저가 지정한 대리인을 동맹자가 수락할 경우, 동맹자와 대리인 간의 커넥션이 이루어집니다.]

“잠깐만요.”

나는 몸을 일으키려는 한호를 불러 세웠다. 한호가 혼이 나간 얼굴로 물었다.

“왜 그러시죠?”

“당신은…… 얼마나 각오가 돼 있습니까?”

“각오라뇨?”

“저에게 말한 일, 그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시죠? 저는 믿을 수 없는 사람과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아!”

한호는 얼른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 절절한 음성으로 말했다.

“목숨을 걸겠습니다. 민희를 죽인 놈들에게 복수하게 해주신다면 제 목숨을 성오 씨 것으로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나는 마인드 리더를 작동시켰다.

한호의 머리 위에 떠오른 문자.

[진심]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한호를 아라돈의 대리인으로 지정하겠다.”

[관련 정보가 군주에게 보내졌습니다. 허가가 이루어지면 이한호는 동맹자 아라돈의 대리인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과장님이 부탁한 일. 제가 협력하겠습니다.”

“성오 씨!”

한호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감정이 격해서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놈들이 한국에 오면 알려주세요. 물론 그 전에 필요하면 제가 먼저라도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

이한호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암젤이 투덜거렸다.

“주인님은 왜 그런 귀찮은 일을 돕겠다고 한 거냐옹? 우리가 그렇게 한가하지는 않지 않냐옹.”

“냉정하게 그러는 거 아니야. 사람이 돕고 살아야지.”

암젤이 놀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쪽 세상으로 오더니 사람이 바뀌었다옹.”

나는 암젤이 말하는 것을 이해했다. 가상현실 게임에서 나는 오로지 공략만 위해 질주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때 그렇게 했던 것은 내가 있는 곳이 게임이라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게임 플레이를 잔혹하게 한다 해도 현실에서는 그러지 않는 것이 보통 아닌가?

“이한호는 아라돈의 대리인이 될 자격을 갖추고 있어.”

“아라돈? 대리인?”

나는 간단하게 암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아아~”

내 설명을 들은 암젤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안심했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쩐지.”

“무슨 뜻이야. 그거?”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죽을 때가 된 거라고 들었다옹. 그런 의미에서 안심했다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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