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왕 클리어러-90화 (90/245)
  • # 90

    독식왕 : 클리어러 090화

    대놓고 아라돈의 대리인을 찾으라는 퀘스트.

    물론 특수 퀘스트는 달성하지 못했을 때 페널티도 없고 진행에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내게는 그냥 간과할 수 없는 문제처럼 여겨졌다.

    수보타에게 들은 대로라면 이계에 오더 성향을 지닌 군주는 많지 않다.

    물론 내가 압도적으로 실력을 키워 카오스 군주들을 다 쓸어버리면 될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지나친 자만이다.

    만에 하나를 위해 아군을 많이 확보하고, 그들이 이쪽 퀘스트를 수행하는 데도 도움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라돈과 연결하는 것은 대리인을 통해야만 된다고 하니까, 대리인을 찾지 못하면 이계에 동맹이 있다고 해도 활용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찾느냐 이 말이지.’

    나는 일단 메뉴를 열어보았다.

    과연, ‘new’가 붙은 새로운 메뉴가 있었다.

    ‘동맹자’.

    나는 그것을 터치해 보았다.

    열거되는 이름은 하나뿐.

    이름 : 아라돈 / ???

    서열 : 71위

    레벨 : 62

    스탯 : 근력 55 /체력 50 /민첩 50 /행운 35

    이력 : 아라돈의 가문은 대대로 평화와 질서를 중시해 왔다. 초기에는 이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실력을 쌓고 세력을 키우는 데 무관심해 점차 변방으로 밀려나 순위도 최하위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오더 성향의 군주들 사이에서도 결벽이 심하다는 이미지가 있어 화합하려는 세력이 딱히 없다. 자체로 전쟁 의지가 없기 때문에 다른 군주들도 굳이 창을 맞대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생각과 의지를 달리하여 가문의 부활을 도모하고 있다. 슬라둠이 사라지면서 생긴 공백지를 아르돈이 직접 점령한 것이다.

    약점 : 레벨이 낮은 게 흠이지, 딱히 약점이라고 할 부분은 없다. 지나치게 정직한 성격이 문제라서, 그를 상대로는 트릭을 쓰거나 함정에 빠뜨리는 방법을 추천한다.

    ‘최근에 생각과 의지를 달리하다니.’

    그 변화를 이끌어낸 게 나라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겨우 하루가 지났는데 벌써 슬라둠의 땅을 점령했다고 한다.

    원래 빈 땅이긴 했지만 하면 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다.

    아라돈 이름 옆에는 슬래시가 하나 붙어 물음표 표기가 되어 있었다.

    ‘아라돈 / ???’

    물음표를 터치하자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나타났다.

    [대리인이 없습니다.]

    그것을 확인하자 ‘동맹자’ 메뉴 안에 하위 메뉴로 ‘대리인 찾기’가 생성되었다.

    나는 그것을 열어보았다.

    아라돈 - [조건], [탐색]

    조건 : (오더), (신체 강화형, 웨펀형, 변신형), (남자), (레벨 55~65), (연령 30~60), (마나 호응도 80% 이상)

    조건을 보고 나자 유진이를 대리인으로 생각했던 것 자체가 쓸모없는 일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성별은 무조건 같아야 하는 모양이다.

    거기다 각성자 타입에도 제한이 있고, 레벨과 연령 제한도 있었다.

    이 정도라면 군주들이 대리인을 찾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지만 마지막에 있는 마나 호응도라는 것이 색달랐다.

    아마도 이것 때문에 애를 먹고 있는 거겠지.

    나는 생각보다 조건이 까다롭다는 사실에 낙담했다.

    이번에는 두 번째 하위 메뉴인 ‘탐색’을 터치해 보았다.

    [탐색을 On으로 설정해 두면 적합자가 나타날 경우 자동 표시됩니다. 설정을 On으로 해두시겠습니까?]

    “그래.”

    [대리인 탐색 모드가 활성화되었습니다.]

    “후우…….”

    뭔가 했더니 그냥 탐색 모드를 켜는 것에 불과했다.

    적합자가 나타나면 자동 표시된다니, 결국 대리인을 찾기 위해서는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는 얘기다.

    ‘골치 아프네.’

    PHASE 3의 메인 퀘스트 두 개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레벨 80 이상의 게이머 죽이기, C급 던전 획득하기.

    내 실력으로 레벨 80 게이머를 죽이는 것은 큰 문제가 안 되겠지만 카오스 게이머를 특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눈을 부릅뜨고 다니다가 아무나 찾아서 죽일 수도 없는 노릇.

    이왕이면 지난번처럼 자연스럽게 먹잇감이 나타나면 좋겠지만.

    게다가 C급 던전은.

    ‘얼마 전에 D급을 공략했는데…….’

    던전이 한 등급씩 올라갈 때마다 난도가 급격히 상승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절대 쉬운 퀘스트가 아니었다.

    결국 C급 던전을 공략하는 것도 레벨을 올려야 가능한 일이다.

    ‘다른 D급 던전에 들어가야 하나?’

    아니라면 카오스 게이머를 죽이고 레벨과 결정석을 얻는 방법도 있겠지.

    “으음.”

    나는 뒷머리에 깍지를 끼고 소파에 기대었다.

    “오빵! 놀자! 놀아줭!”

    갑자기 트레앙이 펄쩍 뛰어 내 몸 위로 다이빙했다.

    빠악!

    “헉!”

    불시에 당한 공격이라 복부에 강한 충격이 밀려들었다. 트레앙의 무릎이 다른 곳도 아닌 급소를 가격한 것이다.

    “오빠! 왜 그래? 죽는 거야?”

    내 얼굴이 파래진 것을 보고 트레앙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아린이 놀라서 내게 다가왔다.

    “주인님! 괜찮으신가요?”

    “쯧쯧.”

    암젤이 혀를 찼다.

    “순진한 것들. 남자 몸은 여자랑 구조가 다르다옹. 남자가 작은 타격에도 고통을 호소하는 부위는 딱 한 군데밖에 없다옹. 주인님, 바지 벗어보라옹. 내가 치료해 주겠다옹.”

    암젤의 혀는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있다.

    나는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되기 전에 얼른 하급 포션 하나를 꺼내 마셨다.

    “후우, 죽다 살았네.”

    그것을 보고 암젤이 혀를 찼다.

    “쳇, 목석 같으니.”

    2

    결국 D급 던전을 공략해 레벨을 올리는 게 낫겠다 싶어 대상 던전을 물색하고 있던 차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모르는 번호였기에 처음엔 받지 않았는데, 집요하게 다시 연락하고, 거기다 문자까지 보냈다.

    “던전 사고 처리 전담반 이한호 과장이라고 합니다. 여쭤볼 것이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던전 사고 처리 전담반?’

    나는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름에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아아~”

    처음 던전에 들어가 외국인 게이머들을 죽였을 때, 이 사람에게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때가 언제라고 지금 나한테 연락하는 거지?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지금껏 던전 안에서 적지 않은 수의 카오스 게이머를 죽였다.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피스&호프 한국 지부에 들어갔던 적도 있지.

    ‘설마…….’

    살인자로 검거된다면 퀘스트고 뭐고 할 수 없게 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겨우 4만 위권의 게이머일 뿐이다. 나 하나가 국가 경찰력에 맞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고민을 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마음을 강하게 먹기로 했다. 어차피 증거는 없을 테니까, 뻔뻔하게 나가면 억지로 잡아넣을 수는 없겠지.

    “여보세요.”

    “조성오 씨? 갑자기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던전 사고 처리 전담반 이한호 과장입니다.”

    분명 처음 만난 날은 반말을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엔 말투며 목소리가 깍듯했다.

    “네, 기억합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조사와 관련된 일은 아니니 오해는 마십시오. 저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이 있어서입니다.”

    “아, 그런 거라면 제가 좀 바빠서…….”

    “앗! 끊지 마십시오!”

    목소리가 다급했다. 하지만 나는 굳이 시간을 내서 그의 얘기를 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노아와 인터뷰를 하고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가 한두 통이라야지.

    하지만 이한호가 한 다음 말이 계속 핸드폰을 들고 있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런 말씀까지 드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병수라고 알고 계시죠? 얼마 전에 던전에서 실종된 게이머 말입니다. 그날 성오 씨도 같은 던전에 있으셨더군요.

    알아보았더니 두 분은 동창인 데다 불미스러운 일까지 있으셨더라고요. 오지게 동영상. 거기 이병수랑 같이 팔씨름했던 게이머가 조성오 씨 아닙니까?”

    “……조사와 관련된 일은 아니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아, 물론 그 일을 문제 삼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성오 씨가 저를 만나주지 않는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겠죠. 길드 발족을 앞두고 계시던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명백히 협박하는 것인데, 말투에는 악의가 담겨 있지 않았다. 그보다 단순히 나를 만나고자 하는 의지가 절실해 보였다.

    “……알겠습니다. 만나죠.”

    “감사합니다.”

    이한호는 오늘 당장 시간이 되느냐고 물었다. 딱히 바쁜 일이 없고, 예정과 다른 일은 빨리 해치워 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나는 그의 요구에 응했다.

    3

    “야옹.”

    암젤이 내 무릎 위에서 털을 곤두세운 채 한호를 노려보았다.

    “그 고양이 처음 조사받을 때도 옆에 있었죠? 그러고 보니 오지게 동영상에도 나왔던 것 같은데.”

    한호는 암젤의 예쁜 외양에 홀린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캬악!”

    “윽!”

    “말씀 안 드렸는데 이 고양이, 각성수입니다.”

    “아…….”

    한호가 암젤에게 물릴 뻔한 손을 감싸 쥐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성질이 못되서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요.”

    종업원이 커피 두 잔을 가지고 왔다. 이한호는 일부러 조용한 카페로 약속 장소를 잡았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옛날 다방식 분위기의 카페였다.

    커피 값이 싸고.

    “음~”

    맛도 좋았다.

    전형적인 설탕 크림 커피.

    왜 이런 전통적인 맛을 버리고 쓰디쓴 아메리카노 따위를 마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갑자기 연락드려서 놀라셨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예의 차릴 것 없습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시죠.”

    한호는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을 꺼내길 기다리며 나는 그의 정보창을 보았다.

    이름 : 이한호

    레벨 : 74

    성향 : 오더(Order) B / 카오스(Chaos) - = 오더(Order)

    업적 : -

    랭킹 : 37,836

    스탯 : 근력 72 /체력 65 /민첩 70 /행운 28

    스킬 :

    액티브 - 수인화(A, Lv50)

    패시브 - 간파(B, Lv30)

    이력 : 과거 게이머를 하며 파티를 이끌기도 했던 이한호는 던전 안에서 벌어진 게이머 간의 싸움으로 약혼녀를 잃게 되고, 그 일로 게이머를 그만두게 되었다.

    범인에게 손댈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여 스스로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하고 던전 사고 처리반에 들어갔다. 하지만 공무원이 되어서도 그의 고민은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타입 : 변신형)

    약점 : 수인으로 변신하여 뛰어난 신체 능력을 발휘한다. 고른 스탯에 공격 능력도 뛰어나지만, 오랫동안 사냥을 하지 않아 감각이 무뎌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외로 어렵지 않게 쓰러뜨릴 수 있을 것.

    보상 : 수인화(55-40%), 간파(50-35%), 근력 7(75-60%), 체력 6(60-50%), 민첩 7(60-50%)

    오랜만에 오더 게이머의 정보창을 보았다는 것이 신선했다. 더구나 오더 등급이 B였다.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건데…….’

    레벨도 나보다 높았다. 그야말로 공무원을 하기엔 아까운 능력이다.

    정보창을 보고 나니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더 궁금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