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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85화 (85/245)

# 85

독식왕 : 클리어러 085화

내 입가에는 절로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소달루스 세트는 지금 내게는 대단히 유용한 방어구이다.

모르돈 세트는 차치하고 무기를 사용할 때 입곤 하는 피오리오 세트와 아르바난 세트는 지금 레벨 수준으로는 조금 아쉽다고 볼 수 있었다.

유니크급 무기까지 얻게 된 지금은 더욱 그렇다. 소달루스 세트는 체술이나 무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능력자에게 범용으로 쓰이는 방어구이다.

그리고 그런 범용 방어구 중에서 최고급에 속하는 아이템이기도 했다.

이것 하나를 얻음으로써 피오리오 세트와 아르바난 세트 두 가지는 모두 입을 필요가 없어졌다.

‘어떡하지? 팔아야 하나?’

가상현실 게임에서는 더 좋은 장비로 바꾼 다음에는 미련 없이 상점에 팔거나 해체하여 다른 아이템을 제작하는 재료로 쓰곤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장비들의 처리를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당장 GP가 부족해서 허덕이는 입장도 아니고, 왠지 놔두면 쓸 데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자, 이제.’

마지막 하나의 보상만 남았다.

‘영토’ 퀘스트를 달성하고 얻은 스킬 에그.

A급 이상의 스킬을 보장한다는 아이템이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달걀을 꺼냈다.

[스킬 에그(A급 이상 보장)를 사용하시겠습니까?]

“그래.”

쩌적!

달걀에 금이 간 뒤에, 꽃가루가 날리며 쪼개졌다.

퍼엉!

[액티브 스킬 ‘미끄럼’을 얻었습니다.]

[스킬의 기억이 활성화됩니다. ‘미끄럼’의 레벨이 Max가 되었습니다.]

‘이야…….’

이것으로 로또가 내 바람을 이루어준다는 추측이 더욱 높은 신뢰도를 얻게 됐다.

[미끄럼]

타입 : 액티브

등급 : S

레벨 : 100/100(Max)

효과 : 특정 지점의 마찰 계수를 0으로 만들어 대상을 미끄러뜨린다.

1서클 마법은 쓸 만한 게 많지 않다. 하지만 그중에서 그나마 활용도가 높은 마법이라면 방금 얻은 ‘미끄럼’이나 ‘정지’ 정도가 될 것이다.

서클이 높아져야 위력이 커지지만, 일단은 S급에 레벨도 만렙이다.

분명히 실전에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티코이.”

“네, 주인님.”

“새로 장비를 얻었는데 이것부터 좀 손봐줄래?”

“물론이죠.”

티코이가 기쁜 표정으로 내게서 무기와 방어구를 받아 갔다.

“갈수록 장비의 수준이 높아지는군요. 저도 작업할 맛이 납니다.”

“잘 부탁해.”

PHASE 2 퀘스트를 모두 달성하고 보상도 확인했겠다, 다음에 할 일은 당연히 차원문의 열쇠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물론 오늘 당장 사용할 생각은 없다. 장비의 업그레이드가 끝나면 내일쯤 결투의 탑에 갈 생각이었다.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나는 걸레로 유리창을 닦고 있는 수보타를 호출했다.

“수보타, 얘기 좀 하자.”

“네! 주인님!”

수보타가 걸레를 든 채 내게로 달려왔다. 그리고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나는 슬라둠이 아니야. 옛날 버릇은 버려.”

수보타는 혀를 쏙 내밀고 자기 머리를 때렸다.

“아코!”

“귀여운 척도 하지 말고.”

“네…….”

수보타가 맞은편 소파로 옮겨왔다.

“하실 얘기가 무엇이죠?”

“우리는 내일 결투의 탑에 들어갈 거야.”

“네?”

수보타의 동공이 커졌다. 너무 놀란 나머지 수염이 쑥 하고 튀어나왔다. 그가 놀란 이유는 대결의 탑에 간다는 자체보다도 내가 ‘우리’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곧 자기도 같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나는 생각을 해보았다. 대결의 탑은 구름을 뚫고 높이 치솟아 있었다. 층수를 세어본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72개 층으로 이루어졌겠지.

그곳에서 나와 이계의 군주를 소환하여 대결을 벌이게 한다.

지난번 1층에서는 72위 군주인 슬라둠을 대적했으니까, 자연스럽게 이번에는 2층으로 올라가 71위 군주를 상대하게 될 것이다.

나는 수보타에게 물었다.

“71위 군주에 대해서 아는 대로 말해봐.”

“71위 군주 말씀이십니까?”

수보타는 뜻밖에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와 싸우실 생각인가요?”

“응, 왜?”

“저야 물론 주인님의 결정에 무조건 따를 테니까 상관없지만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시다시피 제가 모셨던 슬라둠은 포악한 군주였습니다. 포악한 데다 어리석고 오만까지 하늘을 찔렀죠.”

이제는 자기 군주가 아니라서인지 수보타는 슬라둠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슬라둠이 가장 집착했던 것이 바로 아라돈과의 영토 쟁탈이었습니다.”

“아라돈?”

“71위 군주의 이름이지요.”

슬라둠이 아라돈과의 전쟁에 집중했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됐다. 자기 지위가 72위니까 71위 군주를 쓰러뜨려 지위를 높이려고 한 거겠지.

수보타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도 그런 맥락이었다.

“슬라둠은 어떻게든 빼앗긴 자기 지위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영지가 가깝기도 하고, 가장 만만할 거라고 생각한 아라돈의 영지를 침범했던 거죠.

하지만 뜻밖에 싸움은 쉽게 결과가 나지 않았습니다. 병력으로 치면 거의 열 배나 많고 객관적인 전력도 슬라둠이 훨씬 우위에 있었지만, 아라돈은 현명함과 기지로 자신의 영지를 잘 방어했습니다.

슬라둠은 자존심이 상해 점점 더 큰 병력을 동원하여 싸움을 걸었고 그럴수록 아라돈과 슬라둠의 격차는 좁혀졌습니다. 아라돈은 그저 방어를 했을 뿐이지만, 슬라둠이 병력을 크게 잃었기 때문이죠.”

“그건 잘 알겠는데 그 얘기를 하는 이유가 뭐지?”

군주가 자기네들끼리 싸우고, 이기든 지든 나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일이다.

전의 대결로 미루어 보아 군주가 자기 병력을 모두 데리고 결투의 탑으로 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아라돈 자신의 능력과 정예 병력의 전투력 정도이다. 수보타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주변을 도는 감이 있었다.

“아, 사설이 길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라돈이 결코 호락호락한 군주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계에서는 드문 오더 성향을 지닌 군주입니다.”

“뭐?”

성향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흥미가 동했다.

“아라돈이 오더 성향의 군주라고?”

“네, 제가 알기로는 그의 가문이 한 번도 성향을 바꾼 적이 없습니다. 이계는 대대로 오더 성향보다는 카오스 성향을 가진 군주의 세력이 컸죠.

오더 성향을 지닌 군주들이 영토 정복과 지위 향상에 상대적으로 흥미가 적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전체 세력 구도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지분이 작다 보니 서로 협력하여 힘을 키우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아라돈은 평화와 정의를 숭상하는 군주로서, 일신이 가진 능력과 무관하게 다른 군주들과는 전혀 전쟁을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에 세력이 작고 순위도 늘 꼴찌에 밀려 있었죠.

저도 속으로는 그를 무시했었습니다만 전쟁을 겪을수록 달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제 군주 슬라둠은 자질으로는 그를 꺾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그래?”

나는 수보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점점 의심이 돋기 시작했다.

나를 각성시킨 이가 자기를 대리하여 내게 정의를 실현하려는 목적이 있는 줄 알았다.

게이머들을 처치하는 퀘스트들도 모두 카오스 게이머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고 대결의 탑에서 만난 슬라둠도 결코 좋은 녀석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수보타의 말대로 다음에 상대할 군주가 오더 성향에 지금껏 정의를 실천해 온 인물이라면 그 가정이 완전히 무너지는 셈이 된다.

수보타가 처음에 의문을 가졌던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계에도 오더 성향의 군주가 있었다니.’

그야 물론 상식적으로 이계의 군주 전체가 악인은 아니겠지만 단순하게 그들 모두와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 입장에서는 혼란이 생기는 부분이었다.

“저는 주인님이 슬라둠처럼 나쁜 놈들만 상대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느낌이지만 수보타가 약간 실망한 것처럼 보였다.

게임의 딜레마.

그것은 주인공이 선인이든 악인이든 무조건 정해진 스토리대로 플레이해야 한다는 데 있다.

악인이 주인공인 게임도 나쁘지는 않다. 그만큼 신선한 경험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내가 하는 게임은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내가 악인을 대리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악인이 되어버린다는 뜻이다.

“음…….”

생각지도 못한 고민이 생겼다. 나는 보다 현실적인 질문을 해보았다.

“수보타 네 생각엔 나와 아라돈이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아?”

“주인님이요.”

“응?”

0.1초 만에 나온 대답에 놀랐다. 아까까지만 해도 아라돈의 능력이 훌륭하다고 칭찬하던 놈 아니었나?

“아라돈이 아무리 자질이 훌륭하다고 해도 71위 군주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슬라둠에 밀리기도 했었고요. 그에게 진 것은 어디까지나 슬라둠이 멍청했던 탓이 큽니다. 하지만 주인님은 결코 어리석은 분이 아니거든요.”

“그래?”

‘자식.’

나는 흐뭇한 시선으로 수보타를 바라보았다.

단순한 아부 같지는 않았다. 이놈이 아부를 잘했다면 수만 년 동안이나 슬라둠에게 스트레스 해소용 샌드백이 되지는 않았을 테니까.

물론 불사의 약을 마셔 버린 원죄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대결의 탑에 가 보기 전에는 이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다.

방금 대화를 통해 생긴 물음은 내 가슴에 진지한 파장을 남겼다.

Chapter 26 - 대리인

1

다음 날.

티코이의 연락을 받고 아침 일찍 그의 집으로 건너갔다. 그는 웃는 얼굴로 내게 업그레이드된 장비를 내밀었다.

작업을 하며 밤을 샜는지 눈 밑이 까맸다.

“그렇게 급하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서둘렀어?”

“알고 있지만 즐거워서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장비를 만지는 것은 자체로 제게 큰 도움이 되니까요.”

하긴, 티코이에게는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곧 자신의 성장과 직결되는 일일 터다.

단순한 충성심에서 서둘렀다고 보기는 어렵다.

[바키움+]

등급 : 유니크

효과 : 근력 +36, 민첩 +30, 행운 +36, 활을 이용한 스킬 사용 시 마나 증폭 +90%, 관통력 ×370%, 시위를 당겼을 때 시력 ×370%

부가효과 : 크리티컬 확률 +25%, 즉사 확률 +23%

[소달루스의 건틀릿+]

등급 : 레어

효과 : 근력 +13, 체력 +13, 체술, 무기 스킬 사용 시 마나 증폭 +37%, 연속 공격에 의한 효과 ×200%

[소달루스의 부츠+]

등급 : 레어

효과 : 근력 +12, 민첩 +12, 체술, 무기술 스킬 사용 시 마나 증폭 +40%, 회피율 ×250%

[소달루스의 갑옷+]

등급 : 레어

효과 : 근력 +19, 체력 +19, 체술, 무기술 스킬 사용 시 마나 증폭 +60%, 크리티컬 효과 +18%

[소달루스의 바지+]

등급 : 레어

효과 : 체력 +12, 민첩 +12, 체술, 무기술 스킬 사용 시 마나 증폭 +50%, 튕겨내기 효과 +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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