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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81화 (81/245)

# 81

독식왕 : 클리어러 081화

7

나는 집에 돌아오고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누나 옆에서 떼어놓아야 하는 건 알겠는데 방법이 여의치 않았다.

놈이 전투형 게이머라면 던전에 따라 들어가는 방법도 있을 수 있겠지만, 던전 공략도 하러 다니지 않는 일반인을 처리하는 문제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자칫하다간 내가 범죄자가 될 수 있으니까.

게임기를 손에 들었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노트북을 켜 둔 채로 인터넷 서핑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누나를 기다렸다.

밤 열한 시가 되어서야 현관문 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지금 같은 기분으로 이야기하면 괜히 죄도 없는 누나를 추궁하게 될 것 같아 가만히 있으려고 했다.

그런데 먼저 누나가 내 방을 노크했다.

“성오 있니?”

“응, 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누나.

왠지 평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어쩌면 요즘 들어 계속 달랐는데 내가 감지를 못 한 것일 수도 있다.

누나에게 의자를 건네고 나는 침대에 앉았다.

“할 말 있어?”

“그게…….”

굉장히 어려운 말을 꺼내기 위해 망설이는 것 같다. 나는 우리 사이에 그럴 일이 있나 싶어 의아했다.

“왜? 할 말 있으면 편하게 해.”

“오늘 레스토랑에서 본 사람 말이야. 그 사람이 내 남자 친구야.”

“음…….”

나도 모르게 불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태수 씨가 그…… 사업을 하고 있는데 급하게 사채를 조금 빌려 썼대. 다음 주까지 갚지 못하면 큰일 난다고 해서…….”

“그 얘기를 왜 나한테 하는데?”

누나가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미, 미안.”

미안하다고 했지만 대화를 그만둘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나는 누나의 눈 속에 들어 있는 이질적인 안광을 포착했다.

‘역시…….’

당연한 얘기지만 누나에게 접근하기 위해 놈은 스킬을 사용했을 터다. 누나뿐만 아니라 접근한 모든 여자에게 아낌없이 스킬을 사용했겠지.

저항력이 제로인 일반인이 게이머의 스킬에 당하면 벗어날 도리가 없다.

누나의 말이 이어졌다.

“네가 좀 도와주면 안 될까?”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필요한데?”

“30억…….”

‘많이도 불렀네.’

나는 내심 혀를 찼다. 스킬이 걸린 누나를 상대로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내일 처리해 줄게. 걱정하지 말고 누나는 들어가서 쉬어.”

“정말이니?”

누나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화색이 돌았다. 내 손을 덥석 잡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응, 걱정 마.”

“고마워, 성오야.”

누나는 안심한 얼굴로 안방으로 돌아갔다. 남겨진 나는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이 새끼가…….’

침대에 납작 엎드려 있던 암젤이 몸을 일으키고 내게 물었다.

“주인님, 왜 그러냐옹? 이렇게 화난 모습은 오랜만에 본다옹.”

나는 암젤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생각을 했다.

“음…….”

박귀남에게 걸어둔 스킬. 그것은 ‘추적’이었다.

나는 지금 그것을 활성화했다.

거칠게 형성화된 길을 따라 박귀남이 있는 장소를 추적한다.

그는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혼자는 아니다. 바텐더와 시시덕거리고 있었으니까.

가게의 위치와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암젤, 가자!”

“어디를 가자는 말이냐옹?”

“네 도움이 필요해.”

암젤의 눈이 반짝 빛났다.

“알았다옹.”

8

강남에 위치한 지하 바.

박귀남은 오늘의 성공을 자축하고 있었다.

‘시발, 그년 동생이 조성오였을 줄이야. 행색이 초라해서 적당이 벗겨먹고 마려고 했는데.’

1, 2억쯤 뽑아내면 다행일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부족하면 적당히 꿰어내 팔아버리는 방법도 있지.

이미 자기 스킬에 도취된 그에게 도덕적 개념 따윈 없었다.

“오빠, 저도 먹고 싶은 양주 있는데 가져와도 되요?”

젊고 요염한 바텐더가 기분이 좋아 보이는 그에게 넌지시 작업을 걸었다.

‘이년이 누구를 호구로 보고.’

박귀남의 눈이 반짝 빛났다.

“물론 되지.”

순간적으로 바텐더의 몸이 무너질 것처럼 휘청거렸다.

“네 돈으로 마셔. 이 술값도 네가 계산하고.”

인형처럼 벌어지는 입술.

“네, 오빠.”

알코올이 들어가고 배리어가 약한 상대라 스킬이 쉽게 먹혀든다.

반면 조성오의 누나 같은 경우는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굳이 벗겨먹을 것도 없는 여자에게 그렇게 한 것은, 그 동안의 경험으로 어려운 대상에서 스킬을 걸어야 자신의 최면이 더욱 강력해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일반 게이머들이 몬스터를 잡고 등급을 올리는 것과 같다.

‘아! 기분 째지네!’

지금쯤 그년이 자기 동생에게 돈 얘기를 하고 있겠지.

노아 알렌과 사업까지 한다는 놈인데 설마 하니 그 정도 돈에 몸을 사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 가게 문이 열렸다. 규모가 작은 시크릿 바였기 때문에 이곳에는 손님이 많이 오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귀남의 고개가 돌아갔다.

‘헉! 뭐야. 이건…….’

그는 술잔을 쥔 채로 경직되었다.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름다운 여자가 가게로 들어서고 있었다.

키는 크지 않지만 균형 잡힌 몸매와 풍만한 볼륨감이 절로 탄성이 나오게 한다.

얼굴은 또 어떠한가? 전체적으로 앳되고 귀여운 인상이지만, 묘하게 풍겨 나오는 요염함이 보는 순간 마음을 빼앗기게 했다.

그는 직감했다. 자신이 이제껏 살아온 경험이 오롯이 이 한 순간을 위해서였음을.

“후우~”

심호흡을 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는 바에 자리를 잡고 앉은 여자의 옆자리로 이동했다.

“안녕하세요.”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본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나 알아요?”

쌩하고 찬바람이 부는 태도가 남자의 가슴에 더욱 불을 지른다.

“아니요. 처음 뵙습니다. 다만…… 처음 보는 순간 이성이 마비돼서 저도 모르게 옆자리로 오고 말았습니다. 실례가 되었다면 미안합니다.”

미안하다고 해도 자리를 옮기지는 않았다.

“그래서요?”

“하아…….”

박귀남은 심호흡을 했다. 가슴이 정신없이 방망이질 친다. 자신이 여자 앞에서 이런 기분을 느껴본 게 얼마 만인가? 몹시 당황스러웠다.

원래라면 몇 마디 말을 더 나누고 배리어를 무너뜨린 뒤 작업에 들어가지만 지금은 그럴 여력이 없었다.

‘유혹!’

“처음 본 순간 마음을 뺏겼습니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상대 여성을 바라본다. 지금껏 한 번도 실패해 본 적이 없는 기술.

스킬이 걸려야 다음 단계를 기약할 수 있다.

“너구나옹, 못생긴 놈.”

“네?”

‘방금 말끝에 옹을 붙였어?’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환해지면서 코끝에 향긋한 냄새가 났다. 마치 어디선가 꽃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네 기술에 네가 당한 기분이 어떠냐옹?”

“하아! 못 참겠습니다. 저와 함께 가시죠!”

귀남이 암젤의 손목을 잡으려고 했다. 암젤은 그것을 가볍게 피했다.

“네가 나를 따라오라옹.”

“네! 넵!”

암젤이 가게를 나가고 귀남이 그 뒤를 허겁지겁 따라갔다.

“오빠! 어디 가!”

술병을 들고 돌아온 바텐더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9

나는 깨어날 생각을 못 하고 있는 박귀남의 뺨을 때렸다.

철썩!

“으…… 응?”

귀남이 천천히 눈을 뜬다. 흐릿한 그의 시야에 보이는 것은 캄캄한 공간.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 저 멀리…… 줄을 타고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커다란 거…… 거미?

그는 화들짝 놀라 한순간에 정신을 차렸다.

“이제 정신이 드냐옹? 못난이?”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떨어뜨리자 그곳에 예쁘게 생긴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응?”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불현듯 생각이 났다.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하기 전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

바에 들어온 묘령의 여인에게 마음이 뺏겨 그녀를 졸래졸래 따라 나왔다.

갑자기 뒤통수에 충격을 받고 정신을 잃어…….

“헉!”

고개를 들자 자기 앞에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훤칠한 인상의 남자는 어제 저녁 레스토랑에서 본 그 사람이었다.

“조, 조성오……?”

“그, 이 새끼야.”

나는 귀남의 배를 걷어찼다.

퍽!

“으악!”

정말 가볍게 걷어찬 것인데 귀남은 곧 죽을 것 같이 뒹굴거리며 괴로워했다. 그는 바닥에 납작 몸을 숙이고 소리쳤다.

“누나 일 때문이라면 죄송합니다! 돈은 안 주셔도 됩니다. 누님에게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당연한 거고.”

나는 인벤토리에서 창을 꺼냈다. 겨우 이런 피라미에게 쓰기에는 아까운 무기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어영부영 다루어서는 안 되겠지.

“여자를 꼬시는 기술이 생겨서 좋았어?”

박귀남이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뭔가 오해를 하셨나 본데 저는 순수한 마음으로 누님과 사귀었던 겁니다. 돈 얘기를 꺼낸 것은 워낙 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고요. 형님께서 오해를 하실 만한 일은 전혀 없습니다.”

“누가 네 형님이야?”

빠악!

창을 가볍게, 정말 가볍게 휘둘러 귀남의 머리를 후려쳤다.

“끄악! 으아악!”

귀남은 또다시 땅바닥을 뒹굴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이 새끼, 엄살 봐라.”

나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암젤에게 눈짓을 했다. 암젤이 알아듣고 소환수 한 마리를 불러냈다.

“어흥!”

덩치 큰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바닥을 구르던 귀남이 일순 정지했다. 지금 상황이 꿈이라고 믿고 싶지만 아릿아릿한 머리가 생생한 통증을 전달했다.

“시, 시발…….”

“뭐? 시발?”

퍽!

“끄아악!”

“길게 추궁할 생각은 없다. 쓰레기랑 얘기해 봤자 내 입만 더러워지니까.”

“혀, 형님!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스킬 하나가 생겨 그것을 안 좋은 일에 사용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맹세코! 죄 없는 사람들을 해코지할 목적으로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용돈이나 벌고자 하는 마음에 거짓말 몇 번 한 것뿐입니다.”

“너 때문에 다섯 명이 자살했는데 해코지할 마음이 없었다고? 뚫린 입이라고 그런 말이 나오냐?”

귀남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그걸 어떻게…… 헉!”

자신도 모르게 인정하고 서둘러 입을 막았다.

“설마 저를 경찰에 넘기시려고…….”

“아니? 미쳤다고 경찰에 넘기냐?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날 게 뻔한데. 어차피 법은 과거나 지금이나 힘 있는 놈들을 위해 있는 거니까.”

그리고 지금 세상에 가장 힘 있는 부류 중 하나가 게이머이다.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있다고 해도 현실은 악당들이 우글거리는 가상현실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피스&호프 같은 길드가 천사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잘나가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그러면…….”

불길한 예감을 느낀 귀남이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포기해. 포기하면 덜 아플 거야.”

그렇게 말하고 나는 귀남이 다시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이번에는 좀 세게.

빠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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