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왕 클리어러-79화 (79/245)

# 79

독식왕 : 클리어러 079화

3

인터뷰가 행해질 장소는 노아의 호텔룸이었다. 나는 캐주얼한 차림인 그를 보고 겸연쩍어졌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는데 나는 정장으로 쫙 빼입고 왔으니까.

처음 입어보는 정장인 탓에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티코이 말로는 명품 브랜드 제품이라고 해서 원단은 좋은 것 같다만.

노아는 활짝 웃음을 지으면서 환영했다.

“와, 성오 씨. 멋있는데요?”

“편하게 입어도 되는 거였으면 그냥 오는 건데 부끄럽네요.”

“아닙니다. 제가 워낙 격식을 따지지 않아서 그렇죠. 방송사에서도 말끔하게 입는 쪽을 더 선호할 겁니다. 실은 성오 씨가 이런 일에 경험이 없어서 맞추겠다는 생각에 저도 심플하게 입은 겁니다만.”

“아…….”

초보를 위해 배려를 해주다니, 역시 노아는 인성이 괜찮은 친구였다.

그가 피스&호프 부길드장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만났다면 아마 짐작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노아는 와인 두 잔을 따라왔다.

“가볍게 알코올이 들어가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긴장도 풀 겸.”

나는 빛깔이 고운 와인을 받아 한 모금 삼켰다.

‘윽!’

잊고 있었다. 나는 술을 먹는 게 처음이었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노아가 놀랐다.

“입에 맞지 않으신가요? 한국에서는 원하는 와인을 찾을 수 없어서 제가 직접 주문한 건데.”

“아니요. 제가 술을 잘 못 해서 그렇습니다.”

아마 굉장히 고급 와인일 텐데 내 저렴한 혀가 가치를 모르는 거겠지.

나는 도전하는 마음으로 잔에 남은 와인을 쭉 들이켰다.

여전히 썼지만 은은하게 과일향이 올라오는 게 볼도 후끈거리고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래서 술을 마시는 거구나.’

첫 잔에 그 맛을 알다니, 어쩌면 내게 주당이 될 기질이 있는 것인지도.

둘만 있는 방 안에서 노아가 물었다.

“성오 씨 계좌 번호 좀 알려주시겠어요?”

“계좌는 왜요?”

“사업을 함께 시작하기로 했으니까 저도 성의를 보이고 싶어서요. 동업 개념이기는 해도 저는 판매 대행을 하는 입장이고 실제 아이템 공급은 성오 씨가 하니까요. 일종의 계약금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은데.”

“계약금이요?”

내게는 반가운 소리였다. 카오스 게이머 닷컴에서 거래를 중단한 이후 수입이 많이 줄어들었다.

결정석을 쌓아두기는 했지만 그것을 한꺼번에 처분한다고 해서 메인 퀘스트의 달성 요건인 50억을 채우기는 힘들 것 같았다.

나는 일단 그에게 계좌 번호를 알려주었다.

어차피 사업 관련으로 돈이 오가는 것이기 때문에 쓸데없는 인사치레는 하지 않기로 했다.

“잠깐만요.”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갔다. 그곳에서 나는 메뉴를 불러내 퀘스트를 열었다.

[메인 퀘스트 [부] - 2. ‘50억 이상 벌기’를 수락하시겠습니까?]

“그래.”

퀘스트를 수락하고 화장실에 온 김에 소변을 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가 떴다.

[메인 퀘스트 [부] - 2. ‘50억 이상 벌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보상 상자(유니크급 장비 제한)를 얻었습니다.]

“응?”

그 말은 곧 노아가 내게 50억 이상의 돈을 송금했다는 뜻이다. 내친김에 핸드폰을 꺼내 방금 입금된 돈을 확인했다.

200억 원.

‘무슨 계약금을…….’

나는 완전히 예상을 초월한 액수에 깜짝 놀랐다.

‘부자라서 그런지 돈 개념이 다르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부 퀘스트를 초과 달성 했다는 것.

거실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분주한 발소리를 내며 방송 팀이 들이닥쳤다.

익숙한 방송사 로고가 보이고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들어와 넓은 호텔룸이 금세 꽉 채워졌다.

메이크업을 하고 마이크를 다는 등, 분주한 준비 작업이 이루어졌다. 웃는 얼굴로 노아와 얘기를 나누던 PD가 갑자기 물었다.

“저분은 누구신가요?”

그가 말하는 저분이란 바로 나를 일컬었다.

노아가 대답했다.

“말씀 못 들으셨나요? 오늘 인터뷰는 제가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하고 길드를 만든다는 발표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부길드장을 맡는 거고요. 이분이 새로 발족할 길드의 길드장이 되실 겁니다.”

“네?”

PD의 표정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눈알이 쏟아질 것처럼 놀란 얼굴을 보며 나는 방금 전에 가졌던 불쾌감을 거두었다.

그는 재빨리 내게 몸을 돌리고 물었다.

“한국인 맞으시죠?”

“네.”

“이것 참…… 죄송합니다만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조성오입니다.”

“조성오 씨…….”

그는 심각한 얼굴로 일어나 다른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작게 속닥거렸지만 내 귀에는 그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이 똑똑히 들렸다.

“야, 이거 큰일이잖아. 그냥 노아가 방한 인터뷰하는 거 아니었어?”

“피스&호프에서 나와서 다른 길드를 만든다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 길드를 만든다는 얘기인 줄은…….”

“조성오라고 들어봤어?”

“아니요. 처음 듣는데요.”

여자 스태프가 조심스럽게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마주 보자 얼른 고개를 돌리고 얼굴을 붉혔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노아가 그 밑으로 들어갈 만큼 거물이라는 건데?”

“그러는 PD님도…….”

“거참…….”

인터뷰의 사전 준비 시간이 길어졌다. 어차피 생방송이 아니니까 시간이 급한 것은 아니지만, 가만 보니 인터뷰의 포커스나 내용을 대대적으로 수정하는 모양이었다.

노아는 은은하게 미소를 짓고 있고, 나는 점점 불안해졌다.

‘이거 겉절이로 끝날 분위기가 아닌데?’

나로 말하자면 불과 얼마 전까지 C급 라이선스를 가지고 평화롭게 던전 공략을 다녔던 몸이다. 어쩐지 그 평화가 오늘을 기점으로 깨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종 여유 있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노아에게 물었다.

“혹시 이렇게 될 줄 알았나요?”

“미안합니다. 한국 언론이 국위 선양 하는 자국인을 어떻게 다루는지 제가 미처 생각을 못했네요.”

싱글거리는 얼굴이 결코 생각을 못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랜 기다림 뒤에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인터뷰는 처음 기획과는 다르게 나를 중심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빼입고 오길 잘했네.’

그것 한 가지만 제외하면 시간이 엄청나게 안 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곤혹스러운 사건이었다.

4

방에서 휴대용 게임기로 게임을 하고 있는데, 현관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방문이 벌컥 열렸다.

“야, 조성오! 너 뉴스에 나오는데?”

“그래?”

내가 어제 했던 인터뷰는 바로 그날 아홉 시 뉴스에 나왔다. 단독 보도라는 타이틀을 달고서.

그 뒤로 핸드폰을 꺼놔야 할 정도로 많은 전화와 문자가 왔다. 대부분이 언론사였고 내용은 인터뷰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TV에 내 얼굴이 나오는 게 신기했지만 슬슬 질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반응이 격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누나는 평소 뉴스를 안 보기 때문에 다음 날이 되어서야 바깥에서 TV를 보고 내가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된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네가 노아 알렌이랑 사업을 한다던데, 이건 무슨 소리야?”

“그렇게 됐어.”

누나는 묻고 싶은 게 많은 것 같았지만 나는 더 상대해 주지 않았다.

이 인터뷰가 반향을 일으킨 이유는 노아 탓이 크다. 그는 세계 3대 길드의 부수장으로서 최근에 그 직을 내려놨고, 곧 새로 길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브레인형 게이머 중 하나이며 셀럽으로도 유명을 떨치고 있는 그이기에 당연히 이것은 큰 뉴스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가 당연히 새 길드의 수장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껏 가족 관계에 얽매여 형 밑에 있었으니까. 제력도, 능력도, 인기도 당연히 한 길드의 수장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 그가 길드를 만든다면 그 길드는 단숨에 초대형 길드로 떠오르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2인자를 자처하다니.

그것도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한국인 게이머 밑으로 들어간단다. 심지어 그 길드에 속하기 위해 한국으로 귀화를 한다고 했다.

그야말로 핵폭탄급 선언!

미국 입장에서는 대어를 놓치는 셈이고 한국 입장에서는 호박이 넝쿨째로 들어오는 것이다.

당연히 세간의 관심은 노아를 한국으로 귀화하게 만든 조성오라는 게이머가 누구인지에 모아졌다.

밝혀진 사실 자체는 별것 없었다.

내가 게이머가 된 것은 불과 몇 달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이제 겨우 C급 게이머이고 던전의 최고 공략 등급은 D다.

당연히 사람들이 이 정도 사실로 납득할 리가 없다. 뭔가 더 있을 거라고 캐내다가 내가 십 년 간 혼수상태에 있다 깨어난 게이머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지금은 한창 그것을 가지고 입방아를 찧어대는 중이었다.

파생된 추측 중에는 놀랍게도 혼수상태로 자는 시간이 길었으니까 더 높은 능력으로 각성했고, 지금 그것이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상태일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그것을 노아 알렌이 꿰뚫어 보고 같이 길드를 만들기로 했다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감탄할 만한 추론이었지만 객관적으로 구멍이 많은 의견이었기 때문에 공론화되지는 못했다.

나는 적당히 기사를 보다가 관심을 접었다. 당장 내 생활을 변화시키거나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호들갑을 떠는 누나를 내버려 두고 조용히 집을 빠져나왔다.

그런 내 뒤를 암젤이 졸졸 따라왔다.

“주인님, 갑자기 너무 유명해진 것 아니냐옹?”

“그러게. 쓸데없이.”

“유명해져도 나 버리면 안 된다옹.”

“뭔 소리야?”

“주인님의 매력을 이곳의 많은 여자가 알게 된 거지 않냐옹. 아린 관리하기도 힘든데 참 곤란하게 됐다옹.”

“네가 자꾸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내가 곤란하다.”

“주인님이 모르는 것 같아서 말하는데 나는 주인님이 모르는 여러 가지 기술을 가지고 있다옹. 언제든지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 말만 하라옹.”

나는 암젤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요염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휴.”

근데 솔직히 그 기술이 무엇일지 궁금하기는 했다. 가상현실 게임 안에서도 묘족은 그쪽으로 유명했으니까.

티코이네 집에 가자 세 명의 NPC가 나를 반겼다. 나는 집사 수보타가 내온 차를 마시면서 티코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곤란하게 갑자기 얼굴이 팔렸어.”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노아가 의미 없이 주인님이 주목을 받도록 한 게 아닙니다. 노아와 연결돼서 주인님이 유명해지는 바람에 피스&호프에서는 함부로 나올 수가 없게 되었죠. 무엇보다 지금은 놈들의 흉수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음…….”

확실히 그건 티코이의 말이 맞다.

‘어쨌든.’

나는 당장의 유명세에는 관심을 끄고 할 일을 하기로 했다.

부 퀘스트까지 완료되었으니까 PHASE 2 메인 퀘스트 중 남은 것은 이제 하나뿐이다.

동료 NPC를 찾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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