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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76화 (76/245)

# 76

독식왕 : 클리어러 076화

Chapter 23 - 돌개 보드

1

나는 피스&호프 지부를 다녀온 다음 날 노아와 만났다. 우려를 했지만 피스&호프 한국 지부에서 지부장이 사라진 일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가벼운 일은 아닐 텐데도 이 정도로 조용한 것을 보면 내부에서 입단속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조용한 게 오히려 불안하기는 하지만…….’

그런 음흉한 집단의 속내 파악 같은 것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나는 노아와 만나기로 한 호텔로 향했다.

오늘은 티코이와 함께였다. 처음보다 경계 지수가 낮아졌으니까 구체적인 사업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내가 노아와 이야기를 나누어도 티코이와 또다시 상의를 할 것이기 때문에 시간을 절약하자는 측면도 있었다.

호텔 1층의 커피숍에 들어가자 노아가 손을 번쩍 들었다.

“조성오 씨, 여깁니다!”

그가 앉아 있는 옆면 창을 통해 햇살이 비치는데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미남은 미남이구나!’

평일 오전이라 커피숍에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여자끼리 앉은 테이블 쪽에서 노아를 흘긋거리며 속닥거리는 게 보였다.

나는 그의 맞은편에 앉은 뒤 티코이를 소개했다.

“이쪽은 최영호라고, 제 동료입니다. 아이템 매매건은 대개 이 친구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오! 그런가요?”

노아는 웃음을 머금고 티코이와 악수했다.

“아이템 제작도 영호 씨가 하는 건 아니죠?”

“네, 그 일은 제가 직접 합니다.”

노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전투형 게이머이기도 하면서 아이템 제조까지 하시다니, 그런 능력자가 있다는 건 들어보지도 못했는데요.”

“하하, 게이머의 세상은 여전히 미스터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대충 얼버무렸지만 나는 처음 노아를 만났을 때와는 또 다른 껄끄러움을 느꼈다. 노아의 표정은 전보다 눈에 띄게 밝고, 또 감정도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무슨 좋은 일이 있으셨나요?”

내 물음에 노아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 얘기 기분 나쁘게 듣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실은 제 동료 한 명에게 몰래 조성오 씨를 도우라고 지시했었습니다.”

“저한테 사람을 붙였다는 말씀인가요?”

그제야 나는 어제 데이비드 정 일행과 싸울 때 겪은 불가사의한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달아나려고 했던 데이비드 정이 누군가에게 막혀 데굴데굴 굴러왔었지.

“죄송합니다. 숨기는 것은 오히려 도리가 아닌 것 같아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나는 조금 생각하고 대답했다.

“아니요. 이해합니다. 제가 실수를 했더라면 상황이 더 복잡해졌을 테니까요. 노아 씨 입장에서는 마냥 믿고 기다릴 수가 없었겠죠.”

“그렇게 쿨하게 말씀하시니까 제가 더 미안해지네요. 저는 그 동료를 통해 조성오 씨 일행이 큰 어려움 없이 데이비드 정을 제압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내용이 무척 인상적이라서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내내 이렇게 기분이 들떠 있었습니다.”

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다른 것보다 노아의 동료라는 자가 우리가 한 일을 얼마나 목격했을지 그것이 문제였다.

하나하나 떠올려 보자니 낭패라는 생각이 더욱 커졌다.

‘이래서 레벨은 올리고 봐야 돼.’

만약 내가 노아의 동료보다 레벨이 높았다면 미행하는 것을 쉽게 눈치챘을 것이다. 감각이 발달한 암젤마저 알아채지 못했다면 은신에 상당히 능한 능력자였다는 뜻이다.

노아의 레벨이 120인 것을 감안하면 그의 동료, 혹은 부하라는 자도 상당한 실력자일 것 같았다.

레벨 66의 데이비드 정도 간단히 제압할 정도니까.

내 안색이 불편해진 것을 보고 노아가 거듭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저는 무엇보다 앞으로 파트너가 될 분의 안위가 걱정됐었습니다.”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어쨌거나 데이비드 정의 일까지 함께 겪은 마당에 결속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됐습니다. 사업 얘기나 하죠.”

“네, 물론이죠.”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던 티코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사이트를 만들 생각이시라고요?”

“네, 맞습니다.”

“아이템 매매 사이트를 말씀하시는 걸 텐데, 어떤 형태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카오스 게이머 닷컴처럼 암거래 사이트는 아닙니다. 그리고 그 정도로 무작위의, 규모가 큰 사이트를 만들 생각도 없고요. 그럴 만한 시스템이나 인력도 없습니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기 거래를 단속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카오스 게이머 닷컴이 다른 경쟁자들을 제치고 압도적인 지분을 차지한 것은 사이트 신뢰도가 높았기 때문이죠. 그것은 곧 사기 거래에 대한 전방위적인 단속을 의미합니다.

그 단속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두 분도 잘 아실 겁니다. 물론 사이트의 신뢰도는 중요한 요소입니다만 저는 범죄를 저지르면서까지 그걸 높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노아의 표정에는 혐오감이 떠올라 있었다. 그가 형인 니콜라스의 방식를 얼마나 싫어했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암거래 사이트가 아니면 정식 사이트를 오픈하신다는 말씀이신가요?”

티코이의 물음에 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규모를 너무 크게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성오 씨가 제공하는 아이템만 전문으로 판매하는 사이트를 만들려는 것이죠.”

나는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사업 규모가 너무 작지 않나요? 아무리 그래도 노아 씨는 카오스 게이머 닷컴 같은 대규모 사이트를 운영했던 사람인데.”

“크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경직된 게이머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싶은 것이니까요. 던전과 게이머로부터 파생되는 아이템과 기술들은 게이머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가슴도 설레게 합니다. 저는 아이템을 파는 동시에 꿈을 팔고 싶은 겁니다.”

“아…….”

나는 할 말이 없어 멍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나 해서 마인드 리더를 작동시켰는데, 노아 머리 위에는 ‘진심’이라는 문자가 떠올라 있었다.

‘진성 덕후구나…….’

티코이의 생각은 나와 꼭 같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시군요.”

감화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노아는 한 단계 높아진 톤으로 말했다.

“단순히 판매 대행만 하지는 않을 겁니다. 아이템에 적용된 기술을 연구하고 그것을 개발해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할 생각입니다. 물론 성오 씨가 허락을 해주신다는 조건하에서요.”

카오스 게이머 닷컴도 던전에서 협박을 하거나, 기습을 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나왔더라면 나도 생각을 달리 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제가 내놓는 아이템은 저만 만들 수 있습니다. 레시피를 알아도 똑같이 제조하는 것이 불가능하죠.”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 아이템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연구하면 뭔가 얻을 수 있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흠.”

티코이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가장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말이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주인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역할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다.

그는 처음으로 자기 의견을 말했다.

“아이템 판매 말고 다른 쪽 사업도 결합해 보실 생각은 없나요?”

“병행할 수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요. 생각해 두신 게 있습니까?”

“결정석 매매는 어떤가요? 직접 매매를 주도하지 않고 서비스만 제공하는 형태로요. 게이머들이 더 많은 이익을 볼 수 있게 도와주는 거죠.”

“오! 좋은 생각입니다. 정보가 부족해서 손해를 보는 게이머가 많죠. 그걸 알면서도 던전 관리소에만 판매하는 것은 정보를 찾는 것이 귀찮고 거래가 번거롭기 때문입니다. 잘만 하면 결정석 매매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뀔 수 있겠네요. 물론 정부나 기업들은 싫어하겠지만요.”

노아는 티코이의 제안이 무척 마음에 드는 기색이었다.

“제가 사이트 규모를 너무 확장하고 싶지 않은 것은 성오 씨와 동료분들을 곤란케 하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습니다. 제 추측입니다만 성오 씨는 자기만 아는 것들이 널리 알려지기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만약 안 그렇다면 그것을 과시해 더 많은 돈을 벌거나 유명해질 수 있었을 테니까요. 성오 씨처럼 수완이 좋은 분이 그렇게 하지 않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은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렸다. 나는 애초에 내 능력을 더 많은 돈이나 유명해지는 데 이용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게임을 계속하는 데 관심이 있을 뿐.

물론 내가 처한 상황이나 나만 아는 진실을 널리 알릴 생각도 없다. 그러면 혼란만 가중되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게 없으니까.

숨어 있는 악당들의 경각심만 일깨울 뿐이다.

“솔직히 지금도 성오 씨에게 묻고 싶은 것이 한가득입니다. 하지만 그걸 묻기 전에 먼저 신뢰를 쌓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와 대화를 하면서 마인드 리더까지 사용하여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본인이 선의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일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꼬일 수 있는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우리 사이에는 아직 신뢰를 더 쌓을 필요가 있었다.

“이건 더 구체적인 이야기입니다만.”

노아가 말을 이었다.

“암거래 사이트라면 개설하고 사업을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합법적인 사업은 다르죠. 필요한 절차를 준비하는 데만 상당한 기간이 걸립니다. 우리가 우려해야 할 것은 니콜라스의 반격입니다. 사업이 정식 발족을 할 때까지의 기간 동안 그가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죠?”

“성오 씨, 혹시 길드를 만들 생각은 없으십니까?”

“길드요?”

나는 생각지 못한 화제라 엉겁결에 되물었다. 게이머가 된지 얼마 안 됐기도 하지만 여태 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가상현실 게임 십 년 동안 몸에 밴 감각이 있기 때문에 솔로 플레이가 익숙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없는 비밀이 많은 사람이다.

유진이 일행과 던전을 공략했을 때처럼 매번 기억 삭제 스킬을 사용할 수도 없지 않은가?

“물론 성오 씨 상황이 특수하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제가 보고받기로 성오 씨 옆에는 이미 우수한 동료가 충분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동료들에 저까지 포함하면 길드의 구색을 갖출 수 있을 겁니다.”

“함께 길드를 만들자고요?”

“물론 제가 한국에 올 때만 해도 여기까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함께 사업을 할 수 있기를 바랐죠. 하지만 피스&호프처럼 거대한 적이 생긴 마당에 결속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함께 길드를 만들면 그만큼 화제성이 생깁니다. 니콜라스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을 거라는 뜻이죠.”

“아…….”

티코이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나보다 빨리 노아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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