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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74화 (7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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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074화

    데이비드 정은 틀림없이 자신이 함정을 판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대 반응이 예상과 달라 당황했다.

    “설마 나와 싸울 생각으로 여기 온 것이냐?”

    “응, 제보를 받았거든. 네가 나를 죽이려 한다고.”

    “뭐? 그게 누구지?”

    “미쳤냐? 그걸 내가 말해주게?”

    “…….”

    담시 침묵하던 데이비드 정이 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역시 배짱이 좋은 놈이구나. 적진에 들어와서 그렇게 큰소리를 치고.”

    “꼭 그렇게는 볼 수 없지. 이 건물 직원 중에 몇 명이나 피스&호프가 카오스 게이머 닷컴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 네가 훈련실에서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는 걸 상상이나 하겠어? 운신이 자유롭지 않다는 것은 너나 나나 마찬가지다, 이놈아.”

    “흥!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군. 그래도 네놈들이 여기 들어온 건 실수다.”

    데이비드 정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그의 앞으로 다섯 명의 카오스 게이머가 나섰다.

    나는 씩 미소를 지었다.

    명예 퀘스트의 달성 조건이 카오스 게이머 다섯을 죽이는 것이니, 지금 눈앞에 있는 놈을 모두 죽이면 퀘스트를 초과달성할 수 있다. 내 입장에서는 운이 좋은 셈이다.

    ‘S급 달성할 수 있겠네.’

    “이야앗!”

    신체 강화형 카오스 게이머들이 먼저 돌진해 왔다. 신체 강화형은 일반적으로 강한 근력이 상징적이지만 그렇다고 꼭 힘으로 밀어붙이는 타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신체 강화는 말 그대로 여러 가지 신체 기능을 일컬었다. 한 놈이 내게 들입다 돌진을 하고, 다른 한 놈은 엄청난 도약력으로 훌쩍 점프를 해왔다.

    나는 가만히 선 채 NPC를 호명했다.

    “암젤!”

    “어흥!”

    굵직한 울음소리와 함께 호랑이가 출현했다. 덩치 큰 맹수가 허공에서 게이머를 낚아챘다.

    “으아악!”

    갑작스러운 호랑이의 출현에 카오스 게이머들은 몸이 굳어버렸다.

    암젤의 레벨도 나처럼 57이다. 그녀가 소환하는 맹수도 지금 상대하는 카오스 게이머들을 간단히 제압한 정도의 능력은 되었다.

    시선을 빼앗긴 신체 강화형 능력자를 향해 내가 창을 찔렀다.

    ‘백 개의 창!’

    꽈앙-!

    마나가 소모되지 않은 상태에서 폭발한 스킬이라 놈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쿠당탕!

    “끄악!”

    ‘백 개의 창’은 S급 스킬이다. 내 창술사 클래스 숙련도도 최고도이고, 정통으로 맞았으니 멀쩡하게 일어날 수 있을 리 없다.

    그야말로 일격일살인 셈.

    무리 중에 하나는 섞여 있게 마련인 매지션 힐러가 재빨리 호랑이에게 물린 동료와 내게 얻어맞은 동료를 치료했다.

    ‘뭐야? 웬 호랑이?’

    데이비드 정은 화들짝 놀랐다.

    ‘게다가…….’

    조성오는 아직 공식적인 등급이 C급인 게이머이다. 직접 대면하고 판단한 결과 분명 자기보다 두세 수는 아래라고 여겼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상대를 보았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와 뭔가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또 성장했어?’

    이제야 생각이 났다. 지난번 조성오의 데이터를 보았을 때 다른 게이머들과 다른 그만의 특징이 있었다는 것이.

    ‘빠른 성장…….’

    그렇다고 불과 몇 주 만에 이렇게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나다니.

    아이템 제작자로서만 아니라 게이머로서 불가사의한 성장세가 연구 대상인 놈이다.

    게다가 놈 주위에 있는 여자들은 또 어떠한가?

    그녀들 역시 조성오 못지않은 아우라를 뽐냈다.

    ‘젠장, 한 방 먹었다!’

    데이비드 정이 다른 이들보다 잘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단연 눈치가 빠르다는 것이었다.

    자존심이 세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체면 불고하고 자기 목숨부터 건지려고 했다.

    “앗! 주인님! 도망갑니다요!”

    수보타가 데이비드 정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네가 나설 때가 됐다. 가서 막아!”

    “……제가요?”

    나는 이곳에 오면서 수보타에게 임무를 하나 주었다.

    수보타는 잠깐 망설이기는 했지만 곧장 출구를 향해 달려갔다.

    처억!

    두 팔을 벌리고 출구를 막아선다.

    “뭐야? 이건?”

    데이비드 정은 사납게 인상을 구겼다. 순간적으로 당황하긴 했지만 이제 보니 별것 아닌 놈이었다.

    워낙 존재감이 작아 조성오 무리에 섞여 있는지도 몰랐던 놈.

    비실비실해 보이는 노인이 두 팔을 벌려 길을 막는다.

    데이비드 정은 비웃음을 흘리며 고스트를 소환했다.

    화아악-

    쑤욱-

    그는 ‘더블 고스트’ 스킬을 가지고 있다. 일정 경지 이상에 도달한 고스트형 능력자만 발휘할 수 있는 기술. 소환하는 고스트의 숫자를 늘리는 스킬이다.

    근육질의 고스트들이 나타나자마자 수보타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빠악!

    퍼억!

    강한 주먹질 두 방이 동시에 그의 몸뚱이에 꽂혔다.

    “으악! 나 죽네!”

    수보타는 괴성을 지르면서도 출구에서 비키지 않았다. 그의 가슴팍과 얼굴은 깊숙이 함몰되었다. 마치 수난을 당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신체가 변형되어도 죽지는 않는다.

    나는 뒤를 돌아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자식, 엄살은.”

    파티원이고 되고 레벨이 오르면서 수보타에게는 전에 없는 스킬이 하나 생겼다.

    무통.

    통증을 느끼지 않는 패시브.

    불사의 몸을 가진 그가 통증까지 느끼지 않게 되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무적이라 할 만했다.

    그것도 모르고 데이비드 정은 정신없이 수보타를 공격했다.

    “으악! 끄악! 나 죽네! 주인님! 사람 살려요!”

    “자꾸 거짓말할래?”

    내 말에 수보타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알고 계셨습니까?”

    “안 아픈 거 다 아니까 자리나 확실하게 지켜!”

    수보타는 뜨끔하여 입을 다물었다.

    실은 무통 패시브가 생긴 것을 스스로는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사실을 말하면 주인에게 샌드백처럼 이용당할까 봐 내색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주인님은 모르시는 게 없구나!’

    왜 이런 스킬이 생긴 것인지는 모른다. 어렴풋한 짐작이지만 수만 년 동안 군주의 화풀이 대상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 보호 작용으로 통증을 느끼지 않게 된 것일지도.

    ‘차라리 강철 같은 신체를 줄 것이지.’

    신체는 여전히 허약하기 그지없어서 맞는 대로 이리저리 찌그러졌다.

    그는 불사의 약을 마시고 난 다음 뼈와 근육, 그리고 장기들이 젤리처럼 유연해졌다. 그래서 몸이 변형은 될지언정 끊어지거나 부서지지는 않았다.

    데이비드 정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노인…… 이 아니라 쥐였어?’

    수염 달린 쥐는 능력은 보잘것없는 데도 자신의 공격을 모두 받아내고 있었다.

    ‘더블 고스트’는 결코 만만한 스킬이 아니다. 지속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나가 빠르게 소모되었다.

    ‘젠장!’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그가 불현듯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고스트를 불러들인 데이비드 정이 방향을 바꾸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주인님! 놈이 도망을 포기했습니다!”

    “잘했어, 수보타. 계속 거기 있어.”

    “넵! 주인님!”

    나는 흘긋 데이비드 정이 사라진 방향을 보았다. 워낙 넓은 훈련실이고 3D 홀로그램이 펼쳐져 있어서 그의 모습은 금방 보이지 않게 되었다.

    ‘뭐, 시간문제지.’

    도망을 친 시점에 이미 이 싸움은 포기했다고 보아야 한다. 눈앞의 졸개들을 처리하고, 놈을 찾아도 늦지 않는다.

    [카오스(Chaos) 게이머 한 명을 물리쳤습니다.]

    [질서에 기여하여 오더(Order) 성향을 부여받았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8,000, GP +30,000을 얻었습니다.]

    일방적인 싸움이다 보니 암젤과 아린의 표정도 밝았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우리를 죽인다고 깝쳤던 거냐옹?”

    “주인님을 노리다니, 용서 못 합니다!”

    아린은 새로 얻은 스킬 ‘공포의 곡’을 연주했다.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카오스 게이머들은 마치 눈앞에 사신이라도 나타난 것처럼 몸이 굳었다.

    이미 절망을 맛보고 있던 상황에서 걸린 피어라 그 효과가 더욱 강력했다.

    5

    [카오스(Chaos) 게이머 두 명을 물리쳤습니다.]

    [질서에 기여하여 오더(Order) 성향을 부여받았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26,000, GP +94,000을 얻었습니다.]

    [레벨 59가 되었습니다. 스탯 포인트 3을 얻었습니다.]

    다섯 명 전부를 처치할 동안 데이비드 정은 여전히 숨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이! 간사한 놈! 이제 그만 포기하시지?”

    “크크크…….”

    실성한 듯 들려오는 낮은 웃음소리에 나는 이맛살을 찡그렸다.

    “야! 상황 파악이 안 되냐?”

    쿠릉!

    갑자기 발밑이 진동을 하는 바람에 나와 NPC들의 몸이 흔들렸다. 숲과 늪지로 묘사되었던 홀로그램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어두운 동굴.

    그 속에서 세모난 눈들이 반짝인다.

    ‘설마……?’

    나는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자각했다.

    훈련실.

    직접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사용자의 요구에 맞추어 난도와 출현하는 몬스터의 수준을 조정할 수 있는 곳이다.

    “크르릉!”

    괴성과 함께 어둠 속에서 몬스터의 발톱이 날아왔다. 무방비한 상태에서 빠르게 날아든 공격이라 피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찔한 기분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 달리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몸이 굉장히 무거워졌다.

    어둠 속에서 데이비드 정이 말했다.

    “하하하! 훈련실의 난이도를 최상으로 올렸다. 신체 능력에 페널티가 오고 끊임없이 강력한 몬스터들이 출현할 것이다!”

    “뭐?”

    놀라는 찰나에, 또다시 어둠 속에서 몬스터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홀로그램으로 형상화된 속성 공격, 그리고 물리 공격들이 쏟아졌다.

    그것들은 실제로 신체에 타격을 입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미지를 받으면 받을수록 중력이 강해지고, 산소량이 줄어드는 등 페널티가 추가되었다.

    게이머를 대상으로 최고 강도로 가해지는 페널티였기 때문에, 그것은 점차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버거워졌다.

    “멍청한 놈! 이러면 너도 피해를 보잖아.”

    “괜찮다. 나는 어차피 지금 너희들을 죽일 생각이 없으니까. 일단 나만 살아서 나가면 너희들은 끝장이다.”

    “이 자식이…….”

    주변이 어둡고 몬스터 홀로그램이 날뛰는 상황이라 데이비드 정의 위치를 짐작할 수 없었다.

    나는 퍼뜩 생각이 나서 수보타에게 말했다.

    “수보타! 출구는 잘 지키고 있지?”

    “주, 주인님…… 저는 더 이상…….”

    강한 중력 작용으로 수보타는 이미 납작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그 위로 데이비드 정의 모습이 나타났다.

    수보타의 몸뚱이를 지르밟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나 먼저 간다!”

    “제길!”

    데이비드 정이 출구 쪽에 있다는 것을 안 나는 재빨리 그쪽으로 스킬을 날렸다.

    ‘토네이도 스피어!’

    푸슉-

    스킬의 위력이 약해지는 것도 페널티의 일종인지 토네이도 스피어는 오래 날아가지 못하고 금방 사그라졌다.

    이대로 끝인 걸까 싶어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어이없이 놈을 놓치고 마는 걸까?

    쿠당탕!

    “끄악!”

    갑자기 들린 고함에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 뭔가가 거칠게 굴러오더니 내 다리에 부딪쳐 멈추었다.

    ‘데이비드 정?’

    바깥으로 나간다던 그가 왜 갑자기 내게 굴러온 걸까?

    게다가 그는 혼절하여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탁!

    훈련실에 불이 켜졌다. 신체를 무겁게 짓누르던 페널티가 사라지고 날뛰던 몬스터들도 한꺼번에 사라졌다.

    넓디넓은 훈련실의 정경만 덩그러니 보일 뿐이었다.

    나는 출구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납작해진 수보타만 있을 뿐 다른 이는 보이지 않았다.

    “음…….”

    잠시 정신이 팔린 사이, 데이비드 정이 신음을 내뱉으며 깨어났다.

    “으…… 이게 무슨…….”

    그가 눈을 찡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내 나를 발견했다.

    “도망간다는 놈이 왜 여기 있냐?”

    “오! 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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