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독식왕 : 클리어러 071화
7
종로 스타커피.
가장 대중적인 브랜드의 커피숍에서 사람이 가장 많을 시간대를 택해 나는 카오스 게이머 닷컴 운영자라는 사람과 약속을 잡았다.
당연히 반발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상대는 뜻밖에 순순히 응해주었다.
‘나한테 원하는 게 있다는 말인데…….’
메일의 답장을 보냈을 때는 이미 한국에 와 있다고 했다. 그야말로 대단한 행동력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중요한 것을 내게 원하고 있다는 것인데 나름 그 이유를 숙고해 본 결과 한 가지로 압축할 수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템.
‘귀화제’와 ‘리에고 등불’의 가치는 화제성으로 이미 입증이 되었다.
게다가 나는 피스&호프 한국 지부장인 데이비드 정을 찾아가 이런 아이템을 앞으로도 얼마든지 제작할 수 있다고 말을 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냥 코 큰 소리가 아니라 암거래상에게 있어 나는 정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일 테니까.
그래도 운영자가 직접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설지는 몰랐다.
티코이는 자신의 분석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한국에 오는 운영자가 누구인지 밝혀냈다.
피스&호프와 카오스 게이머 닷컴이 한 몸이라고 생각했을 때 피스&호프의 수장이 곧 카오스 게이머 닷컴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다.
피스&호프의 길드장은 니콜라스 알렌이라는 자였다.
게이머로서의 능력이 출중하고 언론 플레이에도 능한, 그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의 길드에 어울리는 역량을 지닌 인물이다.
구름 위의 존재들이라 일컬어지는 최상위 게이머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만약 한국에 온다고 하면 매스컴에서 먼저 알고 보도를 하는 것이 순서다. 그처럼 명망이 있는 자가 직접 나를 만나려고 무거운 엉덩이를 끌고 온다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나보다 더 영향력 있는 정치인, 경제인, 게이머들이 먼저 약속을 잡으려고 달려들 테니까.
그럼에도 내가 받은 메일에는 운영자라는 표현이 쓰여 있었다.
피스&호프에 운영자라고 부를 수 있는 또 한 명의 인물.
그것은 부길드장인 노아 알렌밖에 없다.
피스&호프는 형제가 운영하는 길드다. 하지만 전면에 나서서 대외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대부분 형인 니콜라스이고 동생의 역할은 특정되어 있지 않았다.
다만 노아 알렌은 자주 유명인의 파티에 모습을 보이는 등, 셀레브리티에 더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가 사귀었거나 사귄다는 여자 연예인의 가십 기사만도 수십 건.
“노아 알렌이 카오스 게이머 닷컴의 실질적인 운영자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것이 티코이가 내린 결론이었다. 단순히 부길드장이라는 이유를 떠나 그렇게 추측할 수 있는 또 한 가지 이유는 그가 브레인형 게이머이기 때문이다.
브레인형인 그가 카오스 게이머 닷컴을 운영하고 명망 있는 전투형 게이머인 형이 피스&호프를 운영하는 것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가정이다.
“게다가 최근 부길드장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 내용은 아직 언론에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티코이의 말에 따르면 미국의 증권가에서 흘러나오는 소문이나 길드 내부의 분위기를 보아 꽤 정확한 정보일 거라는 것이었다.
피스&호프의 부길드장에서 물러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모른다.
완전히 길드에서 손을 뗀다는 것인지, 아니면 피스&호프 말고 카오스 게이머 닷컴에 집중하기 위해서인지.
어쨌든 나를 만나러 오는 이가 노아 알렌이 맞다면 그 일과 이번 만남이 전혀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티코이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노아가 직접 게이머들과 대면하거나 업무에 관련된 자리에 나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했다.
피스&호프에서 물러난 것이나, 나를 만나러 한국에 오는 것도 모두 그에게는 특별한 일인 셈이다.
특별한 일이 두 가지 맞물려서 일어날 경우 둘은 대개 밀접한 관련이 있곤 한다.
8
“늦네. 시발 놈이…….”
나는 카라멜마끼아또를 쪽 소리가 나게 흡입하며 손목시계를 보았다.
노아 알렌이 대단한 인물인 것은 알겠지만 나 역시 시간이 금인 사람이다. 이 시간에도 던전에 들어가 메인 퀘스트를 깨고 있어야 하건만 일정과 관계없는 인물을 만나러 카페에 나와 있는 것이다.
게다가 더 신경이 곤두서는 이유는 카오스 게이머 닷컴에 대한 내 인식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미 한 번 기습을 당했고, 그 와중에 눈살 찌푸려질 만한 일도 여럿 겪었으니까.
당장 검색만 해도 관련 기사가 수백 건은 뜨는 노아 알렌은 사진상으로 매우 잘생긴 인물이었다. 단순히 미남이라는 점을 떠나 서글서글한 게 매우 인상이 좋았다.
그와 함께 잠자리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여자가 부지기수라던가?
돈도 많겠다, 지위도 남부럽지 않겠다. 그야말로 젊은 나이에 모든 것을 이룬 셈이다.
하지만 그 이면은 어떠한가? 세계 최대의 범죄 조직이자 암거래 사이트인 카오스 게이머 닷컴을 운영하고 있다.
겉모습과 실제가 다를 확률이 99퍼센트인 것이다.
나는 그와 만나는 자리에 혼자 나왔다. 그에게도 혼자 나오라고 요구를 했다.
레벨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브레인형 게이머 하나가 나를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게다가 그처럼 얼굴이 팔린 인물이 사람 많은 카페에서 섣부른 행동은 하지 못할 테니까.
나는 현실로 돌아온 뒤 빠르게 감각을 찾아가고 있었다.
내게 부족한 것은 현실 경험뿐이다.
잠과 먹을 것에 구애받지 않고 목숨을 건 모험을 십 년간이나 했으니까.
장담컨대 세계 수위의 게이머들도 나보다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기지 않고, 나처럼 많은 사냥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NPC들은 맞은편 건물인 홀리커피 지점에 있었다.
쌍둥이처럼 마주 보고 있는 건물이라 창을 통해서도 상대 건물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곳에서 음성 수신 장치를 통해 대화 내용을 듣기로 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나와 자리를 잡고 있던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약속 시간은 오후 여섯 시.
일 분이라도 오버된다면 나는 미련 없이 이곳을 떠날 것이다.
‘먼저 만나자고 했으면 미리미리 나올 것이지.’
다시 한 번 시계를 들여다볼 찰나 카페 안에 술렁임이 일었다.
고개를 들자 갈색 머리칼을 지닌 훤칠한 외국인 하나가 문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커다란 선글라스를 쓴 탓에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다.
하지만 걸어오는 아우라 하나만으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와, 잘생겼다.”
“난 왜 저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지?”
“노아 알렌 아니야?”
여자 손님 하나가 그를 알아보았지만 곧 스스로 부정을 했다.
“우리 왕자님이 왜 이런 누추한 곳에 오겠어.”
여성들의 시선이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예상대로 내가 앉은 테이블에 와서 걸음을 멈추었다.
“조성오 씨 맞으십니까?”
나는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유창한 한국어에 놀랐다.
“네.”
“반갑습니다.”
노아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아직까지는 대외적인 이미지와 다르지 않았다.
사람 좋은 웃음이 상대의 경계심을 허물어뜨린다. 물론 나에게는 소용이 없었지만.
악수를 거부한 채 턱짓으로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앉으시죠.”
노아는 기분 나쁜 내색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사람 많은 장소에서 만나자고 하다니 현명하십니다. 전의 행보는 미숙한 데가 있어서 걱정을 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네요.”
“…….”
“그렇게 경계하지 마십시오. 제가 누구인지는 알고 계시죠? 성오 씨에게 정보력이 있다면 제가 최근 부길드장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사실도 아셨을 겁니다. 아닌가요?”
나는 의자에서 등을 떼어냈다.
“한국말을 잘하시네요?”
“네, 오면서 공부했습니다.”
“오면서요?”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요. 혹시 언어 습득 아이템이 있다는 거 모르십니까? 껌처럼 씹는 것도 있고 약처럼 삼키는 것도 있는데.”
내가 대답하지 않자 노아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
“성능 좋은 동시 통역기도 있지만 이왕이면 확실히 공부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어 습득 아이템이 브레인형 게이머한테는 특히 효능이 좋거든요.”
몇 시간 만에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물건이 있다니.
이래서는 일반인과 게이머 간의 격차가 점점 커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만히 노아를 마주 보았다.
내 앞에 상대의 정보창이 드러났다.
이름 : 노아 알렌
레벨 : 120
성향 : 오더(Order) E / 카오스(Chaos) E = 뉴트럴(Neutral)
업적 : -
랭킹 : -
스탯 : 근력 12 체력 10 민첩 12 행운 124
스킬 : 패시브 - 제조(S, Lv62), 분석(S, Lv70) , 개발(S, Lv36)
이력 : 형인 니콜라스가 각성한 2년 뒤, 동생인 노아 또한 각성하였다. 각성 이후 빠르게 명성을 얻은 형처럼 그 또한 최고 수준의 재능을 각성하여 그와 함께 길드를 만들어 최고 반열에 올려놓았다.
노아가 취미 삼아 만든 암거래 사이트를 형인 니콜라스가 이름을 바꾸고 규모를 확장시켰다. 하지만 카오스 게이머 닷컴의 성장세와는 별개로 그는 곧 처음의 정열을 잃게 되었다.
연예인과 어울리는 데 몰두하는 등 방황을 거듭하다가 최근 한국의 새로운 개발자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의욕을 되찾았다.(타입 : 브레인형)
약점 : 전투형 게이머가 아니므로 약점을 논하는 게 무색하다. 다만 그를 상대하게 된다면 빠른 두뇌 회전과 임기응변을 경계해야 할 것.
‘레벨이 120이라니…….’
내 입장에서는 까마득한 수치였다. 전투형이 아닌 탓인지 랭킹은 표시되지 않았다.
이 정도 레벨이면 랭킹이 어느 정도일지 궁금했는데.
‘죽이면 쓸 만한 블러드 스톤이 나오겠는데.’
자연스럽게 생각이 그쪽으로 흐른다.
내가 직접 사용하는 것보다 티코이를 주는 게 나을 것 같은 스킬들을 장착하고 있었다.
“왜 그러시죠?”
정보창에 보이는 스탯은 행운을 제외하면 매우 낮았지만 큰 의미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스탯은 어차피 네 가지로만 표시되니까.
그보다는 레벨과 타입, 스킬에 주안점을 두는 편이 맞다.
‘뭘 믿고 진짜로 혼자 왔지?’
아까부터 생글생글 웃고 있는 얼굴이 사람을 더욱 헷갈리게 만든다.
정보창을 보고 무엇보다 놀란 사실은 그의 성향이었다.
카오스 게이머 닷컴 운영자의 성향이 중립이라니.
직접 사람을 죽이지 않더라도 그런 자리에 있으면서 카오스 게이머가 되지 않은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는 건가?’
이력을 보니 형 니콜라스가 카오스 게이머 닷컴을 변질시켰다는 내용이 있었다.
‘호기심.’
나를 알고 호기심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호기심 덕분에 의욕을 되찾았고.
반대의 입장에서 나 역시 호기심이 생겼다.
과연 이자의 입에서 어떤 말이 흘러나오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