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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70화 (70/245)

# 70

독식왕 : 클리어러 070화

더 애매한 사실은 비단 카오스 게이머를 물리쳤을 때만이 아니라 다른 퀘스트들도 내 딴에는 꽤 잘 클리어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다.

‘부’ 퀘스트의 성적이 B였던 것은 어쩔 수 없다. 마지막까지 시간을 끌고 간당간당하게 클리어를 했으니까. 오히려 B 정도면 잘 나왔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나머지 퀘스트들은 쉽게 납득이 안 갔다.

‘얼마나 더 잘 클리어해야 한다는 거야?’

나는 그 차이를 생각해 보았다. 일단 S 판정을 받은 ‘명예’ 퀘스트 때의 일을 떠올렸다.

퀘스트의 내용은 카오스 게이머를 셋 이상 처치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박철웅이 습격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던전에 들어가 결과적으로 네 명의 카오스 게이머를 죽였다.

더구나 박철웅의 레벨은 65로, 상당히 힘든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명예 퀘스트를 달성했을 때와 다른 퀘스트들을 달성했을 때의 차이를 따져 보았다.

생각할 수 있는 결론은 하나다.

S 판정을 받은 퀘스트의 경우 목표를 초과달성했고, A 판정에 그친 퀘스트는 빠르게 잘 클리어하기는 했으나 그저 정해진 목표를 충족시킨 것에 불과하다.

‘A가 최고 등급이고, S는 그것을 초과 달성했을 때 받는 판정이라고 보면 되려나?’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솔직히 S 판정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안 마당에 그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경험 많은 게이머의 입장에서 보건대, 과욕은 금물이다.

처음부터 너무 꼼꼼하게 클리어하려고 했다가는 무게감에 짓눌릴 수가 있다.

무엇보다 플레이하는 것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대관절 게임을 하는 이유가 뭐라는 말인가?

그런 생각으로 나는 메인 퀘스트를 반드시 S 판정으로 클리어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초과 달성하면 좋지만, 그것을 노리다가 되레 다른 것들이 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 보자…….’

나는 PHASE 2의 퀘스트들 중에 무엇부터 클리어해야 할지 생각했다.

50억을 버는 부 퀘스트부터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울지 모르지만 지난번의 경우를 생각했을 때 이는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클리어하지 못할 가능성을 남기는 것은 좋지 않다.

확실하게 50억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 퀘스트를 수락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나머지 세 개의 퀘스트도 당장 수락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였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자동 수락 될 테니까.

‘역시 던전에 들어가는 것밖에 없겠네.’

‘영토’ 퀘스트인 ‘던전 두 개 이상 획득하기’.

이는 게이머 본연의 일에 충실한다는 의미에서도 적절하다. 게다가 던전을 공략해야 레벨을 올리고, 그 던전을 이용해 NPC도 찾을 수 있다.

‘좋아.’

결정을 내리고 나는 다음으로 공략할 던전을 물색했다. 현재 수준을 감안하면 E급이 가장 적당해 보이지만 지난번 나는 파티원들과 함께 D급 던전 마스터인 벡실룸을 사냥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지.’

게다가 이계의 군주와의 대결을 생각하면 등급이 높은 던전을 노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더 강한 몬스터들을 전장에 풀어놓을 수 있을 테니까.

결정을 내린 나는 던전을 예약했다.

5

암젤, 아린과 함께 지난번 유진이 일행과 함께 공략했던 던전을 찾았다. 당연히 이번엔 1층부터 시작하는 공략이었다.

더 난도 높은 층을 공략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어렵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전설의 마창사 클래스가 몬스터와 싸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유니크급 무기인 히루도의 창에 관련 클래스의 숙련도까지 최고라서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단 격이었다.

50레벨이 되면서 생긴 변화가 또 하나 있다.

내가 아닌 NPC들에게 나타난 변화.

암젤은 드디어 지구에 존재하는 고양잇과 맹수 중 최고 전투력을 자랑하는 사자와 호랑이를 소환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사자와 호랑이가 그녀가 소환할 수 있는 가장 상위 소환수는 아니다.

그래도 표범이나 퓨마보다는 이들이 훨씬 강한 맹수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어흥!”

단단한 근육질의 몸을 가진 소환수가 압도적인 위용으로 던전 안을 뛰어다녔다.

아린 역시 새 스킬을 얻었다.

공포의 곡.

그녀가 그 곡을 연주하면 우리를 상대하는 몬스터들에게 피어 효과가 발동한다.

물론 상대 레벨이 우리보다 높거나, 스킬 저항력이 높으면 효과가 낮아지지만 잘만 먹혀들면 훨씬 적은 시간과 노력으로 사냥을 할 수 있었다.

첫날은 3층까지 공략을 했다.

한 층을 공략하는 데 평균 네 시간이 걸렸으니까 그야말로 강행군을 한 셈이다.

공략을 마친 우리는 아주 녹초가 되었다.

암젤은 힘이 들어서 혀를 빼물고 한마디로 하지 않았다. 사냥이 끝나고 꿀물까지 한 잔 주었는데도 계속 그 상태였다.

나는 그녀의 기분을 풀어줄 생각으로 말했다.

“암젤, 새 옷 사러 갈까?”

“그게 정말이냐옹?”

언제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냐는 듯 암젤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아린에게도 말했다.

“아린, 너도 새 옷을 골라봐.”

“정말입니까, 주인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NPC들도 성 역할에 충실한 편이다. 세상에 쇼핑을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

상점에 들어간 나는 그녀들이 방어구를 고르는 동안 내 할 일을 했다.

오늘 세 개 층을 공략하면서 히든 퀘스트도 세 개를 달성했다. 이번에 나온 보상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 ‘최고급 스킬 강화석’이었다.

내게는 이것이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어차피 다른 장비나 아이템은 메인 퀘스트 보상으로 얻을 수 있으니까.

히든 퀘스트로 얻는 보상보다 메인 퀘스트로 얻은 보상이 더 낫다는 것은 이미 밝혀졌다.

히든 퀘스트 보상은 융통성이 있어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내게 장비나 아이템이 필요 없으니까 그 대안으로 강화석을 준 것이겠지.

어차피 최고급 강화석은 상점에서 팔지 않고 아래 단계 강화석을 사서 스킬을 강화하는 것도 돈과 공력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반가운 기분으로 강화석을 사용했다.

네 개나 있으니 사용처도 쿨하게 결정했다. 아직 B급인 전투 스킬들을 한 단계씩 올렸다.

토네이도 스피어, 건샷 스피어, 연사+, 유도살+.

소환술사가 되고 마나의 정수를 복용하는 등 마나량 때문에 고민해야 했던 제한이 많이 완화되었다.

주요 전투 스킬들을 A급으로 올려도 사냥하는 데 부담이 되지 않으리라는 판단이 섰다.

[스킬 ‘토네이도 스피어’의 등급이 한 단계 올라 A급이 되었습니다.]

[스킬의 기억이 활성화됩니다.]

[토네이도 스피어의 레벨이 Max가 되었습니다.]

같은 내용을 전하는 메시지창이 네 번 반복되었다.

강화가 끝났을 때 암젤과 아린이 말했다.

“주인님, 저 옷으로 하겠다옹!”

“저도 골랐습니다, 주인님.”

다행인 사실은 암젤이 이번에 고른 의상은 비교적 평범한 옷이었다는 것이다. 제법 방어구다운 느낌이 드는 가죽옷이었다.

아린의 의상은 디자인은 비슷하지만 성능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갑옷이었다. 서포트 역할을 맡는 그녀의 의상이 로브나 천 옷처럼 가벼운 의상이 아닌 것은 다행이다. 가뜩이나 상대적인 방어력이 낮으니까.

붉은빛이 도는 갑옷이 그녀에게 잘 어울렸다.

하긴, 어떤 옷이 어울리지 않겠느냐만.

쇼핑까지 마치고 우리는 기분 좋게 던전을 나섰다.

6

D급 던전을 모두 공략하는 데는 총 일주일이 걸렸다. 층이 높아질수록 난도가 올라가고, 피로가 중첩되었으므로 속도가 느려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원하는 시일 안에 던전을 정복할 수 있었다.

[D-001 던전의 마스터가 되었습니다.]

이 던전을 소유하게 된 것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벡실룸을 죽이면 일정 확률로 ‘미라의 정수’를 얻을 수 있으니까.

던전 마스터는 확률을 따질 필요 없이 주기마다 아이템을 공수할 수 있다.

개당 수억 원을 호가하는 아이템이니 수입이 꽤 늘어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었다.

미라의 정수는 팔아도 좋고 내가 직접 써도 좋은 아이템이다.

일주일간의 던전 공략으로 레벨 57에 이르렀다. 던전 공략을 시작한 시점에 영토 퀘스트와 지위 퀘스트가 동시에 수락됐는데, 아직 랭킹은 아직 60,000위권 후반대에 있었다.

이 말은 곧 지위 퀘스트를 달성하는 것도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일사천리로군.’

새로 얻은 던전의 마스터로는 수보타를 위임했다.

전투력이 낮아서 몬스터들에게 무시당할 수 있다는 점이 걸리기는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그는 최강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불사.

죽지 않는 던전 마스터를 어떤 몬스터 놈이 해코지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는 수만 년에 걸쳐 군주를 보좌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수보타가 했던 일은 비단 집사일만이 아니었다. 병력을 관리하고 인사를 담당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슬라둠에게 있어 그는 대체 불가의 인력이었을 터다. 때려도 죽지 않으니 스트레스 해소용으로도 안성맞춤이었을 것.

내 말을 들은 수보타가 매우 기뻐했다.

“저에게 이런 중책을 맡겨주시다니요!”

“실질적으로 할 일은 많지 않을 거야. 자세한 것은 티코이에게 듣도록 해.”

“네! 감사합니다, 주인님. 이 수보타는 주인님을 만나 새 삶을 얻었나이다!”

이놈을 보고 있으면 티코이가 내게 보이곤 하는 과도한 충성심도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간의 힘든 일정을 소화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내게 티코이가 말했다.

“주인님 앞으로 메일이 한 통 왔습니다.”

“메일?”

“정확히 말하면 카오스 게이머 닷컴에 있는 저희 상점으로 온 것이지요.”

웬만큼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내게 말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무슨 내용인데?”

“카오스 게이머 닷컴의 운영자가 주인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뭐?”

순간적으로 내 머릿속에는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놈들과 나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지난번에 지부장을 찾아가 매듭을 풀었다고는 해도 근본적으로 관계가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운영자라고? 사장 말이야?”

“네,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카오스 게이머 닷컴은 운영진이라는 표현은 써도 운영자라는 표현은 쓰지 않습니다. 게다가 저희를 만나러 직접 한국에 온다고 하네요.”

“왜 만나자는데?”

“비즈니스를 논의하자고 합니다.”

“비즈니스?”

다른 이도 아니고 카오스 게이머 닷컴이 비즈니스를 하자고 하면 덜컥 의심이 든다.

하지만 티코이의 말만 들으면 이번은 조금 특별한 것 같기는 했다.

일반적인 비즈니스라면 한국까지 와서 만나는 것보다 지부를 통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무슨 얘기인지는 들어봐야 하나?’

어차피 놈들이 나를 찾는다면 숨을 곳은 없다. 박철웅이 알고 있을 정도면 내 신분은 이미 깔끔하게 오픈된 상태일 것이다.

“알았다고 해. 하지만 이번엔 던전은 안 돼. 무조건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만나자고 해.”

“알겠습니다, 주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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