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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61화 (61/245)

# 61

독식왕 : 클리어러 061화

Chapter - 19 질투

1

D급 던전을 공략하기로 약속한 날이 되었다. 나는 약속장소에 아린, 암젤과 함께 나갔다.

던전은 택시를 타고 사십 분쯤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나온 우리는 먼저 던전 관리소에 들렀다. 암젤과 아린의 게이머 신분을 인증하기 위해서.

아린은 티코이의 도움으로 신분 위조를 통해 ‘조아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아린이라는 이름이 독특하기는 해도 한국에 전혀 없을 것 같은 이름은 아니다.

성을 ‘조’로 택한 이유는 나를 따른 것이었다.

암젤 또한 인간 이름을 얻었다. 항상 고양이로 변신한 상태로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이름은 ‘김예나’.

암젤이 의기양양한 태도로 아린에게 말했다.

“네가 주인님의 성을 따른 것은 남매가 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어. 나는 성이 다르기 때문에 주인님과 얼마든지 남녀관계가 될 수 있지.”

아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니, 나,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 그녀에게 보다 못한 내가 말해주었다.

“성이 같다고 다 남매가 되는 건 아니야. 그렇게 따지면 내 누이는 전국에 수백 명이나 있게?”

안심한 아린이 머뭇거리며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럼…… 성이 같아도 결혼을 할 수 있는 건가요?”

그렇게 묻고 나서 얼굴을 확 붉혔다. 부끄러워하면서도 꿋꿋하게 내 대답을 기다린다.

‘얘네들. 왠지 이쪽 세상으로 나오고 나서 좀 달라진 것 같은데…….’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상황이라 어쨌든 답변을 해주었다.

“응, 성하고 결혼은 무관해.”

“와!”

진심으로 기뻐하는 아린에게 암젤이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

“헛된 기대 품지 말라옹. 주인님과 결혼하는 것은 나다옹.”

“뭐? 그런 게 어딨어?”

“정 불만이면 너는 첩이 되라옹. 본처는 내가 할 거다옹.”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할래!”

나는 혹시 남이 들었을까 싶어 주위를 둘러보며 NPC들의 잡담을 멈추게 했다.

등급 판정에서 암젤과 아린은 C급을 받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측정을 받아보려고 했던 나는 그것을 보고 그만두었다.

그녀들의 레벨은 나와 동일하기 때문에.

스탯과 능력의 차이가 있더라도 등급이 달라질 정도는 아닐 것이다.

약속 시간이 되자 유진이 일행이 나타났다. 그녀와 함께 이곳에 온 두 사람은 모두 여자였다.

정보창을 통해 본 유형은 각각 매지션형과 고스트형.

레벨은 한 사람이 45, 다른 한 명은 46이었다.

마지막으로 유진이의 정보창을 본 나는 적잖이 놀랐다.

‘멀티 능력자였어?’

유진이의 이력에 나타난 그녀의 유형은 두 가지였다.

신체 강화형과 웨펀형. 드물게 여러 유형의 특질을 동시에 지닌 게이머가 있다고 들었지만 유진이가 그중 하나일 줄은 몰랐다.

레벨은 55였다.

멀티 능력에 55 레벨이라…….

가정하는 것 자체가 웃기기는 하지만 만약 그녀가 카오스 게이머로 적이 되어 만났다면 대단한 위협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웨펀형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다. 접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고 있다.

특정 무기를 다루는 데 재능을 보이는 게이머로 무기의 종류에 따라 근거리형이나 원거리형 딜러로 나누어질 수 있는 유형이었다.

다른 유형도 무기를 다루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웨펀 형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왔어?”

유진이는 내 인사에 즉시 대답하지 않고 내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살짝 굳은 것 같아 고개를 돌렸더니 그곳에 암젤과 아린이 서 있었다.

그녀들은 천진한 표정으로 평상시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서 있었지만 절로 대단한 아우라를 뿜어냈다.

다른 것을 떠나 일단 엄청난 미녀들이다.

단순히 예쁘다는 사실 이상으로 NPC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것을 처음 경험한 사람이라면 저절로 시선이 고정될 만한.

하지만 유진이의 표정에 나타난 감정은 호기심이나 경탄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뭐라고 해야 하나? 저 표정을?’

마인드 리더를 통해 나타난 유진이의 감정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질투]

‘질투?’

NPC와 나의 관계는 단순히 주종 관계일 뿐이다. 물론 수년 동안 쌓인 그 이상의 끈끈한 것이 있기는 하지만, 유진이가 질투를 느낄 만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그녀들과 내 사이가 특별하다고 해도 왜 유진이가 질투를 느낀다는 거지?

‘친구를 뺐긴 기분 같은 건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유진이가 몇 발자국 더 가까워졌다. 그녀의 얼굴에는 방금 나타났던 감정이 싹 지워져 있었다.

내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감정 전환이다.

“많이 기다렸어?”

“아니, 우리도 온 지 얼마 안 됐어.”

“친구들이 여자였구나?”

“중요한 게 아니라 말 안 했는데, 놀랐어?”

“아니, 뭐 그냥…… 생각지 못했던 일이라…….”

암젤이 눈을 반짝 빛내더니 앞으로 나왔다.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고 유진이를 주시하더니 대뜸 내 팔짱을 끼었다.

“……!”

우리는 이곳에 오기 전에 나름 관계 정리를 했다. 나와 NPC들이 주종 관계라는 것을 다른 게이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나는 유진이에게 오늘 함께 나올 게이머들을 던전 공략을 하며 만난 사이라고 했다.

별로 친하지 않은, 대화만 조금 나눈 사이라고.

당연히 우리끼리는 필요 이상으로 친한 척하지 않고 존댓말을 사용할 예정이었다.

암젤의 지금 행동은 말 그대로 돌발적인 것이다.

유진이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녀 머리 위에 떠오른 ‘질투’라는 글자가 더욱 선명해진다.

“친구분이랑 많이 친한가 보네?”

“아니…… 이분이 좀 활발하셔서. 예나 씨! 팔 놓고 얘기하시죠.”

암젤은 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머리까지 살포시 기대었다.

“왜요? 우리가 친하면 안 되나요?”

“……안 될 건…… 없죠.”

유진이의 심기는 매우 불편해 보였다.

그녀는 애써 외면하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자신의 동료들을 소개했다.

“이쪽은 혜리 언니랑 현아 언니. 모두 나랑 같은 길드 소속이야. 오랫동안 같이 활동해서 나랑 많이 친해.”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그녀들에게 인사하고 나 역시 암젤과 아린을 소개했다.

“이쪽 분은 김예나 씨고요. 저분은 조아린 씨입니다.”

“반가워요.”

“처음 뵙겠습니다.”

유진이와 암젤의 마주친 시선에서 불꽃이 튀었다.

“……들어갈까요?”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내가 얼른 말했다.

유진이와 두 명의 동료가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는 암젤에게 잡힌 팔을 뽑아냈다.

“야! 너 왜 그래? 아까 얘기한 거 잊었어?”

암젤은 기가 죽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미안하다옹. 주인님을 뺏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랬다옹.”

“뭔 소리야? 아무튼 조심해.”

암젤이 내게 집착하는 것과 돌발 행동을 하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닌 터라 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마련해 둔 수도 있으니까.

2

오늘 공략할 던전의 테마는 ‘무덤’이었다.

테마답게 이곳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언데드류가 대부분이다.

상대할 몬스터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사실에 저절로 기대감이 생겼다. 내 레벨도 낮았기 때문에 할 말은 없지만 솔직히 F급, E급 던전의 몬스터들은 너무 약했다.

몬스터가 약하면 사냥할 맛도 나지 않는 법이다.

나는 유진이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내 부탁대로 해줘서 고마워.”

“아니야. 그것보다 너는 D급이 처음이니까 너무 무리하지 마. 우리는 이미 여기를 여러 번 공략했어.”

솔직한 말로 유진이와 동료들이 언데드 몬스터를 상대한 횟수보다 내가 놈들을 사냥한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굳이 내색할 필요는 없다.

“잘 부탁해.”

“응, 걱정하지 마. 우리만 믿어.”

여섯 명의 일행은 차례로 돌무덤처럼 생긴 던전 안에 들어갔다.

다른 던전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입구 근처에 귀환서가 놓인 단상이 있다.

유진이와 그녀의 동료 두 명이 그 위에 손을 올렸다.

화악-

밝게 분사된 빛이 가까이에 있던 나와 암젤, 그리고 아린의 몸까지 한꺼번에 뒤덮었다.

이동을 한 곳은 던전 8층 세이브 존이었다.

이 던전의 최상층은 12층이고, 3일 동안 11층까지 공략하기로 했다.

얘기를 나눠보았지만 유진이는 아무래도 던전 마스터까지 공략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녀 자신의 의견과 관계없이 오늘 함께 나온 동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그녀들은 지금 휴식기나 다름없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호흡을 맞춰본 적도 없고, 검증도 안 된 게이머들과 던전 마스터와 싸운다는 것이 꺼려졌을 것이다.

나도 그들과 함께 던전 마스터를 사냥할 생각은 없었다.

차원문의 열쇠를 사용하는 조건은 D급 던전 마스터를 물리치는 것이지만, 거기에 단서로 파티원의 조력을 허용한다는 말이 붙었다.

반대로 말하면 파티원이 아닌 자의 조력을 받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뜻일 터다.

파티원의 범위가 단순히 사냥을 함께 한 게이머들까지 포함하는 것인지, NPC들만 일컫는 것인지는 고민의 여지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유진이를 포함한 길드원들은 모두 편안한 차림이었다. 너무 편안해서 마치 동네 마트라도 나온 것 같은 모습이다.

품이 넓은 후드티를 입거나, 박스형의 셔츠를 입고 있었으니까. 바지도 트레이닝복 차림이다.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돋보이는 모습이기는커녕, 오히려 둔해 보이기까지 했다.

8층에 도착한 유진이와 일행들은 갑자기 입고 있던 옷을 훌렁훌렁 벗었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이 굳었지만 그녀들이 후드티와 트레이닝복 안쪽에 입고 있는 것은 게이머용 방어구였다.

늘씬하고 탄탄한 몸매가 드러나는 세련된 의상이다.

내 표정을 보고 유진이가 웃었다.

“놀랐어? 여자 게이머들은 보통 이렇게 많이 하거든. 남자 게이머들 앞에서 옷을 갈아입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방어구를 입고 돌아다니면 나 게이머다 하고 너무 티내는 거잖아.”

“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옷 좀 갈아입을게.”

“우리?”

유진이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나는 내 실수를 깨닫고 재빨리 말했다.

“이분들 말고 나 말이야.”

“응.”

유진이는 대답을 하고 암젤과 아린을 바라보았다.

“옷 갈아입으셔야 되죠?”

“네.”

“그러면 저희랑 위층으로 올라가요. 성오는 여기서 혼자 갈아입고 따라오라고 하고요.”

금방 생각해 낸 것치고는 현명한 방법이었다.

유진이 일행을 따라 암젤과 아린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일행의 뒤에 처진 두 NPC가 시동어로 의상을 바꾸는 모습을.

‘긴 하루가 될 것 같군.’

여자들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뒤 나도 의상을 바꾸었다.

“피오리오.”

모르돈 세트의 성능이 더 좋기는 하지만, 오늘은 ‘검은 소환술사’ 능력을 사용할 일이 없을 것이다.

창을 이용해 싸울 일이 많을 테니 내 선택은 당연히 피오리오 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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