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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59화 (59/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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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05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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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복도를 걸어갔다. 웬만한 기업 이상으로 그럴듯한 곳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게이머가 아닌 듯 보이는 직원이 많았는데, 이들이 하는 일이 무엇일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지부장실은 10층짜리 빌딩의 맨 위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곳부터 붉은 융단이 쭉 깔려 있다.

    ‘대단하군.’

    일개 지부가 이 정도 수준인데, 미국 본사는 어느 정도일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것은 현대 사회에서 게이머의 지위가 어느 정도일지를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돈은 돈대로 벌고 사회적 인식까지 좋으니 거칠 것이 없는 것이다.

    똑똑.

    노크를 한 뒤, 직원이 문을 열었다.

    지부장실은 개인이 쓰는 사무실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넓었다.

    실내 이곳저곳에 비싸 보이는 장식물들이 놓여 있다. 들어오는 사람이 대번에 위압감을 느낄 만한 분위기.

    직원이 나가자 방에는 두 사람만 남겨졌다.

    나는 피스&호프 한국 지부의 지부장이 어떻게 생긴 인물인지 알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고, 오면서도 핸드폰으로 검색해 보았으니까.

    “조성오 씨 맞으십니까?”

    데이비드 정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네, 알면서 뭘 물으세요?”

    심드렁한 대꾸에 지부장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데이비드 정은 감정을 누르는 게 역력한 얼굴로 지부장실 한복판에 있는 소파로 손짓을 했다.

    “거기 앉으시죠.”

    내가 소파에 앉자 그가 맞은편으로 왔다.

    “마실 것은 뭘로 드릴까요? 직원더러 가져오라고 하지요.”

    “됐습니다. 여기 커피나 마시려고 온 건 아니니까요.”

    나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꼬았다. 일반인이라면 그를 보고 움츠려 들었겠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가상현실 게임 안에는 데이비드 정의 백배 천배 위압감을 가진 존재도 많았다.

    다만 신경 쓰이는 것은 눈앞에 드러난 그의 정보였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만만치 않은 놈이었다.

    이름 : 정태환(데이비드 정)

    레벨 : 65

    성향 : 오더(Order) - / 카오스(Chaos) B = 카오스(Chaos)

    업적 : -

    랭킹 : 41,731위

    스탯 : 근력 25 /체력 48 /민첩 47 /행운 35

    스킬 :

    액티브 - 더블 고스트(A, Lv50), 피부강화(B, Lv30)

    이력 : 한국인 부모에게 태어나 어렸을 때 미국으로 입양 보내졌다. 이기적인 데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성품을 가지고 있어서 성장기를 거치며 많은 비행을 저질렀다.

    각성을 한 뒤에도 큰 범죄를 상당수 저질렀으며 특별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중 카오스 게이머 닷컴 측과 접촉이 이루어졌다. 특별 사면으로 석방되고 신분을 바꾼 뒤 피스&호프에 들어가게 되었다.(타입 : 고스트형)

    약점 : 고스트형으로서는 상당한 경지에 오른 게이머. 모든 고스트형 게이머가 그렇듯 본체를 노리면 유리한 싸움을 할 수 있다.

    보상 : 더블 고스트(20-10%), 피부강화(60-50%), 근력 5(70-45%), 체력 4(60-45%), 행운 5(50-35%)

    ‘나쁜 놈이라는 거군.’

    대충 보아도 박철웅과는 비교도 안 되는 나쁜 놈 같았다.

    나는 그의 이력에 나타난 정보를 눈여겨보았다. 그리고 이 빌딩 안에 들어오면서 보았던 풍경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피스&호프 길드 내의 모든 직원이 카오스 게이머 닷컴 쪽 일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조직이 이원화된 것이겠지.

    데이비드 정은 내가 이곳에 나타나서 무척 놀란 얼굴이었다. 티코이의 예상대로 제대로 한 방 먹인 것 같았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여기서부터다. 상대가 불편함을 느낀 것으로 끝난다면 그 사실 자체가 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으니까.

    데이비드 정은 한 차례 거친 콧김을 뿜어낸 뒤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우리 계약에 차질이 생긴 것 같아서 말이죠. 그걸 다시 되짚기 위해 왔습니다.”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군요. 혹시 제 직원이 실수를 했다면 미안합니다. 저는 다만 계약 내용을 수정할 것을 다시 권유해 보라고 했을 뿐입니다. 조성오 씨가 저희에게 우선판매권을 준 귀화제가 너무 욕심나는 물건이라서요.”

    “개소리하지 마시죠.”

    “네?”

    “욕심이 나면 던전에서 길을 막고 습격을 해도 되는 겁니까? 계약 내용을 바꾸고 싶다면 점잖게 문의를 하면 그만이지, 레시피를 내놓지 않으면 죽인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그건…….”

    “됐고, 제 대답은 그 직원에게 통해 들려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잘한 것은 없는 것 같으니 이 문제는 그만 거론하도록 하지요.”

    데이비드 정의 입장에서는 직원을 넷이나 잃었지만, 어차피 그가 먼저 시작한 일이다.

    던전 안에서 암습을 한 주제에 뻔뻔하게 왈가왈부할 수는 없겠지.

    데이비드 정은 소파에 등을 기대었다. 잠자코 나를 바라보다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뭘요? 아……. 양심적인 길드라고 개구라를 치고 있는 피스&호프가 실제로는 세계 제일의 범죄 집단이라는 사실 말입니까?”

    “…….”

    “정보를 구하는 것은 그쪽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제가 개인이라고 무시하셨기 때문에 오늘 같은 일이 생긴 겁니다.”

    “혹시 이 사실을 가지고 협박하려고 하시는 거라면 그만두십시오. 같은 생각을 한 게 조성오 씨 하나만이 아니니까요. 그들이 모두 어떻게 되었는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당연하지요. 섭섭하게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제가 오늘 찾아온 이유는 얼굴을 붉힐 만한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이지요.”

    “비즈니스요?”

    데이비드 정의 얼굴이 풀리면서 호기심을 띠었다.

    “지부장님은 큰 실수를 하실 뻔했습니다. 세상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려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황금알을 낳는 거위요?”

    나는 허공에 손을 가져갔다.

    데이비드 정이 움찔 놀랐지만, 내가 인벤토리에서 꺼낸 것은 갈색 주머니였다.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매우 익숙한 물건.

    이차원의 주머니.

    내가 그것을 테이블에 올려놓는 동안 데이비드 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잔뜩 경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미소를 띠었다.

    “긴장하실 것 없습니다. 새 상품을 보여드리고 싶은 것뿐이니까요.”

    “새 상품……?”

    나는 주머니를 열었다. 그러자 그곳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쑥 빠져나오더니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환한 빛을 내며 날개를 퍼덕이는 그것은 리에고 등불이었다.

    데이비드 정은 멍한 얼굴로 처음 보는 생명체를 올려다보았다.

    “던전 중 상당수가 무척 어둡다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 그래서 게이머들은 각자 따로 빛을 내는 도구를 지참해야 하지요.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될지 몰라도 따지고 보면 매우 귀찮은 일입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이 물건은 저절로 날아다니면서 주위를 밝힙니다. 빛이 강해서 넓은 구간을 비출 수 있지요.

    던전 공략을 해보셨을 테니 아시겠지만, 어둠 속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를 상대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아이템, 게이머들이 좋아할 것 같지 않나요?”

    데이비드 정의 얼굴에 경이의 빛이 스쳤다. 귀화제도 놀라운 아이템이지만 이 등불은 더하다.

    이자는 대체 뭐 하는 인물이기에 이런 독특한 자꾸 아이템을 내놓는 걸까.

    그는 비로소 조성오가 왜 스스로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말했는지 이해했다.

    “설마……. 이것 말고도 다른 아이템도 만들 수 있는 겁니까?”

    나는 데이비드 정의 물음에 여유 있게 대답했다.

    “물론이지요.”

    “구체적으로 뭘 만들 수 있습니까?”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걸 만들 수 있지요. 아마 전부 마음에 드실 겁니다.”

    “……이 얘기를 저한테 하시는 구체적인 이유가 있나요?”

    “저한테 레시피를 들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지나친 욕심입니다. 그 말씀을 드리려고 온 것입니다. 만약 더 이상 개수작을 부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면 새 상품을 출시할 때마다 카오스 게이머 닷컴과 우선 판매권 계약을 하도록 하지요.”

    “흠…….”

    데이비드 정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잠시 고민하던 그의 얼굴에서 싱긋 웃음이 떠올랐다. 동시에 오른손을 쑥 내밀었다.

    “그렇게 하지요. 지금까지 피차간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은 깨끗이 잊기로 합시다.”

    나는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악수를 하면서 데이비드 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확하게는 그의 머리 위로 떠오른 감정 메시지였다.

    ‘쳇.’

    레벨 차가 커서인지 아니면 데이비드 정이 마음을 숨기기 위해 배리어를 치고 있는 것인지, 마인드 리더가 작동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일단 겉으로 짓고 있는 더 미소를 믿는 수밖에 없다. 대단히 찜찜하기는 하지만.

    악수를 마친 나는 인벤토리를 열어 다른 물건을 꺼냈다.

    플레지킹 스팅 스무 개.

    시장에서 일명 ‘귀화제’라고 불리는 아이템이다.

    그것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번 주 분량입니다. 잘 팔아주십시오.”

    “네, 물론이지요.”

    데이비드 정은 웃음 띤 얼굴로 대답했다.

    5

    길드 빌딩 주차장에는 티코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차 안에 암젤과 아린도 타고 있다.

    티코이가 자동차로 돌아온 내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어떻게 됐나요?”

    “얘기는 잘 됐어. 엄청 좋아하더라고.”

    “휴……. 이제 한숨 돌리게 됐군요. 아무리 사악한 인물이더라도 공과 사는 구분할 수 있겠지요. 설마 앞으로 카오스 게이머 닷컴의 위상을 높여줄 고객을 함부로 대하지는 못할 겁니다.”

    사업이라는 것은 무형적 요소까지 고려를 해야 하는 법이다.

    티코이가 하는 말은 내가 만들 상품에 대한 게이머들의 관심이 높아질수록 카오스 게이머 닷컴의 명성도 함께 높아질 거란 뜻이었다.

    데이비드 정이 현명한 인물이라면 당연히 거기까지 생각을 했을 것이고, 우선 판매권을 확보한 것이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후우…….”

    큰 소용돌이가 하나 지나가자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는 다음으로 해야 할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겠지.

    PHASE 1 메인 퀘스트를 모두 달성한 뒤로 새로운 메인 퀘스트는 열리지 않았다.

    아마도 차원문의 열쇠를 사용하고 난 다음에 PHASE 2로 넘어갈 수 있는 모양이었다.

    차원문의 열쇠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D급 던전 마스터 하나를 물리쳐야 한다.

    ‘근심 하나가 끝나니까 또 다른 근심이 꼬리를 무는구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E급 던전까지는 공략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E급 던전과 D급 던전은 전혀 다른 난이도라고 보아야 했다.

    항간에도 진짜 던전 공략은 D급부터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진짜 명성을 갖고 활동하는 게이머들은 F급, E급 던전에 들어가지 않는다. 등급이 낮지만 잠재력이 있는 게이머들도 저네들끼리 파티를 만들거나 길드에 들어가 더 높은 등급의 던전에 도전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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