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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57화 (57/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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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057화

    솔직히 티코이를 제외하면 나를 포함한 나머지 멤버들은 그리 심각한 얼굴이 아니었다. 수년 동안 숱한 어려움을 함께 헤쳐 온 처지다.

    사태의 경중을 따져 보았을 때 이번보다 더 큰일을 겪은 적도 숱하게 많았다. 걱정이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산전수전을 다 겪은 경험 때문인지 대범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목숨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나는 게임 안에서 한 번도 게임오버를 당하지 않았다. 여기서 죽으면 현실에선 어떻게 될까 걱정했던 마음이 더 게임을 치열하게 플레이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현실과 다름없는 체감의 게임이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키워진 담대함은 현실로 나와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멤버 중 가장 걱정이 많은 성격을 가진 것은 아린이지만 그녀는 파티에 합류하고 나서 많이 침착해졌다.

    지금도 암젤과 대화를 나누며 여유 있게 과자를 먹고 있지 않은가?

    그 모습은 결국 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이기도 했다.

    반면 티코이는 파티에 들어온 게 십년 만이다. 십년 전에도 같이 퀘스트를 한다든지 사냥을 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었지.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마음가짐은 다른 파티원보다 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위기감이 더 좋은 해결책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좋은 녀석이 필사적으로 그 머리를 굴리고 있으니까.

    파티의 장점은 이런 데에 있다. 각자가 잘하는 것을 하면 되는 거니까.

    나는 티코이가 방법을 생각할 동안 미뤄두었던 것을 하나씩 하기로 했다.

    먼저 던전 관리 메뉴로 들어가 새로 획득한 던전을 확인했다.

    F-002.

    옆에 그려진 것은 역시 조그만 동굴 모양의 그림이었다.

    “아린, 너한테 어제 공략한 던전의 마스터 일을 계속 맡기고 싶은데, 괜찮겠어?”

    “네? 원래 제가 하던 일 아니었나요?”

    그러고 보니 아린은 나에게로 자신의 지위가 넘어왔다는 사실을 몰랐다. 티코이만 해도 한참 만에야 알았으니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나는 그녀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아! 그런 거군요. 주인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이제 저도 던전이 그렇게 불쾌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어제만 해도 몬스터들 덕분에 주인님과 저희가 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요.”

    “전처럼 계속 그곳에 머물 필요는 없어. 대부분 내가 원격으로 관리를 할 테니까 큰 문제가 발생했을 때만 직접 가주면 돼.”

    아이템을 수거할 때도 가야 하겠지만 그때는 혼자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아니면 티코이와 함께 가면 된다.

    처음에는 여러 개의 던전을 관리한다는 게 매우 번거로운 일처럼 느껴졌지만 막상 겪어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앞으로 몇 개나 던전을 더 소유하게 될지 모르는데 관리가 어렵다면 문제가 있는 거겠지.

    만약 그렇다면 게임 시스템 밸런스에 오류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나는 F-002 던전 마스터를 아린에게 위임했다.

    내친김에 새로 얻은 던전 코어로 주변 탐색을 해볼까 했지만 당장은 그게 급한 게 아니라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후우~”

    인벤토리를 열기 전에 먼저 흥분되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어제는 꼭 나쁜 일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역경을 이겨내고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이유는 그 뒤에 보상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것을 확인할 때였다.

    인벤토리에는 총 네 개의 새로운 보상이 들어와 있었다.

    가장 먼저 획득한 보상은 명예 항목의 메인 퀘스트인 ‘카오스 게이머 셋 이상 처치하기’를 달성하고 얻은 것이다.

    랜덤 보상 상자(넘버링 아티팩트 전용).

    넘버링 아티팩트는 1~100번까지 있고, 하나같이 특별한 능력을 품고 있는 아이템이다. 그중 상당수가 난도 높은 퀘스트를 깨는 키 역할을 하는 아이템이기도 했다.

    내가 본격적으로 무적에 가까운 능력을 갖게 된 것도 이 넘버링 아티팩트를 모으고 난 다음이었다.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작은 상자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테이블에 그것을 올려놓고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랜덤 보상 상자(넘버링 아티팩트 전용)을 여시겠습니까?]

    나는 무심결에 대답을 할 뻔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하나같이 가치 있는 아이템이라고는 하지만 각각의 성능에는 차이가 있다.

    사용하는 데 레벨 제한과 같은 조건이 붙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좋은 아티팩트를 빨리 얻는 것이 좋다.

    그래야 다음 공략이 더 쉬워질 테니까.

    상자를 열기 전에 먼저 ‘로또’를 사용했다.

    과자를 먹으며 수다를 떠는 암젤과 아린, 그리고 혼자 심각한 표정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티코이.

    그들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느려졌다.

    파각. 파각. 파각-

    허공에 나타난 일곱 개의 공이 열리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로또 4등에 당첨되었습니다.]

    [1분간 모든 스탯이 40퍼센트 상향됩니다.]

    4등은 지금까지 가장 많이 당첨되었던 등수이다.

    현실적으로 4등, 아니면 5등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솔직히 이 이상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기도 했다.

    준비를 갖춘 나는 넘버링 아티팩트가 들어 있다는 랜덤 보상 상자를 열었다.

    화악-

    그 안에서 눈부신 빛이 쏟아진 탓에 암젤과 아린도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티팩트 ‘마나의 정수’를 얻었습니다.]

    “오오!”

    메시지를 확인한 내 입에서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마나의 정수!

    테이블 위의 상자가 사라지고 대신 조그마한 주전자가 나타났다. 고전적인 모양을 가진 동글납작한 주전자.

    이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진녹색의 끈적한 액체였다.

    아티팩트가 가진 효과는 단순하고도 명확하다.

    [마나의 정수]

    넘버 : 67

    효과 : 마나의 양을 영구적으로 20% 상승시켜 준다. 처음 사용하고 레벨이 1 오를 때마다 1%씩 추가로 상승(제한 없음).

    사용법 : 직접 복용하거나, 다른 아이템에 코팅해 효과를 부여할 수 있다.

    마나양이 영구적으로 20퍼센트 상승.

    더욱 대단한 점은 단순히 마나의 절대량을 더해주는 것이 아니라 퍼센트가 기준이라는 것이다.

    처음 사용 후 레벨이 오를 때마다 1퍼센트씩 더 상승한다. 지금 내 레벨이 41이니 121레벨이 되면 원래 보유해야 할 마나양의 두 배를 갖게 된다는 뜻이다.

    만약 내가 레벨 100에 마나의 정수를 얻었다면 레벨 180이 되어서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었겠지.

    “좋아.”

    로또 스킬 덕분인지 단순히 운이 좋았던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바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 중 하나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당장은 아티팩트를 사용하지 않았다.

    로또의 효과가 끝나기 전에 보상 하나를 더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꺼낸 것은 ‘스킬 에그’였다.

    A급 이상의 스킬을 보장하는 아이템.

    영토 항목의 메인 퀘스트 ‘던전 한 개 이상 획득하기’를 달성하고 얻은 것이다.

    [‘스킬 에그(A급 이상 보장)’을 지금 사용하겠습니까?]

    “그래.”

    쩌적-

    내 대답과 동시에 달걀 모양의 아이템에 금이 갔다.

    스킬 에그가 깨어지고 꽃가루가 날린다.

    [액티브 스킬 ‘기억 삭제(A급)’를 얻었습니다.]

    [스킬의 기억이 활성화됩니다.]

    [스킬 ‘기억 삭제’의 레벨이 50이 되었습니다.]

    “으음…….”

    먼저 확인한 아티팩트의 임팩트가 워낙 커서인지 대단한 감흥은 오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 스킬이지만 한 가지 애매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사용할 일이 많은 스킬이 아니라는 것.

    [기억 삭제]

    타입 : 액티브

    등급 : A

    레벨 : 50/50(Max)

    효과 : 지정한 대상의 기억을 삭제한다. 등급과 레벨이 오를수록 더 많은 대상의, 더 많은 기억을 삭제할 수 있다.

    제한 : 50명, 24시간

    마지막 줄의 제한은 한 번 사용할 때 최대 50명의 기억을 24시간 분량만큼 지울 수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많은 인원의, 많은 기억을 삭제할수록 소모되는 마나가 크다.

    이왕이면 더 쓸 일이 많은 스킬이 나왔으면 좋았겠지만 스킬의 경우 워낙 경우의 수가 많으니 무작정 좋은 걸 바라기도 애매했다.

    로또의 효과가 끝이 났다.

    나는 눈앞의 주전자를 응시했다.

    정보창에서 확인한 대로 이것을 사용하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용액을 그대로 복용하거나, 아니면 무기나 방어구에 부어 효과를 코팅하는 방법.

    후자의 경우 한 번 코팅하면 다시 벗겨낼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최고 수준의 무기나 방어구를 소유한 게 아니라면 당연히 그 방법을 택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나는 주전자를 손에 들고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맛이 어떨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불안한 감정이 생겼다.

    게임에서는 미각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한 번 경험이 있더라도 맛을 추측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으음…….”

    나는 주전자의 뚜껑을 열어 용액의 색깔을 들여다보았다. 짙은 녹색의 걸쭉한 액체를 보자 저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마시나 마나 한 아이템이었다면 그냥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할 수 없지.’

    나는 목을 뒤로 젖힌 뒤, 입을 벌리고 주전자 안의 용액을 부었다.

    꿀꺽꿀꺽.

    양이 많지 않아 금방 주전자가 비었다.

    나는 입안에 가득 찬 마나의 정수를 얼른 삼켰다.

    재빨리 테이블에 놓인 과자 하나를 집으려다가 손을 멈추었다.

    “응?”

    쩝쩝 입맛을 다셔 보았다.

    “괜찮…… 은데?”

    색깔이 의심스러운 것에 비해 맛은 달콤했다. 세상 어떤 음료를 가져와도 비슷한 맛을 느끼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새롭고 오묘한 맛이었다. 확실한 것은 여운이 매우 짙게 남는다는 것.

    이렇게 맛있는 용액인 줄 알았다면 좀 더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셨을 텐데…….

    아마 앞으로는 평생 동안 ‘마나의 정수’를 마실 일이 없겠지.

    [‘마나의 정수’를 복용했습니다.]

    [영구적으로 마나가 ×120%만큼 증가합니다. 레벨이 오를 때마다 효과가 1%씩 상승합니다.]

    “음…….”

    두 가지 보상은 확인했다.

    이제 남은 것은 두 가지.

    나는 정체불명의 열쇠는 내버려 두고 알기 쉬운 보상부터 꺼냈다.

    랜덤 보상 상자(세트 아이템 전용).

    세트 아이템이라는 것은 이 안에 세트 방어구가 모두 들어 있다는 뜻이겠지. 그 말은 즉 한 번 개봉으로 네 개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바라는 방어구 종류가 있기는 했다.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나오기를 바랐다.

    나는 다시 한 번 로또 스킬을 사용했다.

    일련이 과정이 지나가고…….

    [축하합니다! 로또 3등에 당첨되었습니다!]

    [1분간 모든 스탯이 150퍼센트 상향됩니다.]

    “오케이!”

    얼마만큼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출발은 좋았다.

    나는 마음을 굳히고 상자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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