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왕 클리어러-56화 (56/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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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 클리어러 056화

“주인님!”

“되는구나. 이걸 많이 구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깝네.”

블러드스톤 하나가 암시장에 나온다는 말은 곧 게이머 하나가 죽거나 크게 다친다는 말이 된다.

어떤 스킬을, 얼마만큼의 스탯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것의 거래 가치는 매우 클 것이 분명하다.

나는 새삼 박철웅이 다른 타입의 콜드스톤 두 개를 흡수한 일을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추측이 가능해진다.

세계 최대의 암거래 사이트인 카오스 게이머 닷컴.

사이트 내의 거래 물품 중에서도 단연 구하기 어렵고, 최고의 가치를 지닌 아이템은 블러드스톤과 콜드스톤일 것이다.

조금이라도 강해지는 데 관심이 있는 게이머라면 이것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고, 그 말은 동시에 그들이 잠재적 고객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블러드스톤과 콜드스톤이 시장에 나오려면 게이머 한 명이 죽거나 치명상을 입어야 한다.

당연히 이것을 대놓고 거래하는 것은 불법이고 게이머 자신도 흡수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거부감을 형성하는 또 한 가지 요소는 블러드스톤과 콜드스톤은 함부로 흡수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한 안에 돈을 벌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지난 며칠, 핸드폰과 노트북 화면만 주시하고 있던 나는 그냥 시간을 보내기가 뭐해 블러드스톤과 관련된 정보를 알아보았다.

예전에 블러드스톤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했을 때는 정보를 찾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방법이 있었다.

카오스 게이머 닷컴 자체가 불법 사이트이기 때문에 여기 접속하기 위해서는 특정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하는데, 이는 저절로 아이피를 몇 단계에 걸쳐 우회하게 해 주고, 보안망을 피하게 해주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검색을 하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정보를 얻는 것도 가능했다.

그래서 알게 된 새로운 정보.

자기와 맞지 않는 결정석을 흡수한 게이머는 상당한 부작용을 겪게 된다. 등급이 하락하거나 스킬을 잃게 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고, 아예 능력 자체가 사라지거나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정보를 찾다 보게 된 동영상 중에 ‘블러드스톤 자살(Bloodstone Suicide)’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 영상 안에는 한 게이머가 자랑 삼아 블러드스톤을 흡수했다가 피를 쏟고 죽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아무튼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게이머들이라면 호기심을 가졌다가도 생각을 고쳐먹기 십상이다.

게이머들이 결정석 흡수를 꺼린다면 자연히 잠재적 고객의 규모도 줄어든다.

카오스 게이머 닷컴이 거대한 시장이 될 블러드스톤과 콜드스톤을 상품화하는 일을 포기할 리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암암리에 연구를 한 것이다.

박철웅을 보면 그 연구가 소정의 결실을 얻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을 보면 완벽하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어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어쩌자고 이런 위험한 놈들과 얽히게 된 것일까.

애석하게도 내 레벨은 현실로 돌아오기 직전처럼 301이 아니라 41에 불과하다. 301레벨이었다면 혼자서도 길드 전체와 맞장을 뜰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절대 피해야 할 일이었다.

‘무력으로 안 된다면 머리를 써야지.’

어쨌든 나중에 생각하자.

Chapter - 18 D급 던전

1

오늘은 티코이네 집에 들르지 않고 바로 집으로 왔다.

다행스럽게도 이른 바 ‘메인 퀘스트 PHASE 1’이 끝난 모양이라 당장 급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던전 공략 자체는 쉬웠지만 카오스 게이머 닷컴 놈들을 만나 말 그대로 혈전을 치렀다.

가상현실 게임 공간에서처럼 잠을 자지 않고 며칠 내내 게임만 해도 되는 상황이 아니니, 어쨌든 기회가 있을 때 휴식을 취해야 했다.

카오스 게이머 닷컴 놈들이 걸리기는 하지만 당장 오늘내일 할 만큼 급한 일은 아니다.

되레 이 문제를 풀어내려면 휴식을 취하고 머리를 맑게 할 필요가 있었다.

집에 오니 어머니는 안 계시고 누나가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병원 일을 그만둔 뒤 누나의 얼굴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이제 오니?”

암젤과 같이 들어오는 나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어디 나가?”

“응, 약속이 있어서…….”

그렇게 말하며 누나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별것 아닌 모습이지만 나는 감각을 캐치하는 것이 일반인보다 능숙하다. 20대 여성이 약속이 있다고 하면서 얼굴을 붉힐 때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일이라면 굳이 참견을 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 옷차림 예쁘다. 즐거운 시간 보내고 와.”

“즐거운 시간이랄 게 뭐 있어. 그냥 친구 만나는 건데.”

둘러대는 말투가 어색하다. 그동안 집안일을 먼저 챙기느라 연애도 많이 못했을 텐데, 나는 누나에게 데이트할 상대가 생겼다는 자체가 기분 좋게 여겨졌다.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는 이미 누나는 나가고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내 방으로 와서 침대에 누웠다.

자연스럽게 손에는 휴대용 게임기가 쥐어졌다. 암젤은 내 옆에 몸을 말더니 몇 초 만에 잠이 들었다.

삼십 분쯤 게임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 떠오른 이름은 김유진.

워낙 며칠 새 많은 일을 겪은 터라 그녀를 보았던 일이 오래전처럼 느껴졌다.

“어, 유진아.”

“뭐 하고 있니?”

“게임해. 트리플 드래곤.”

보통 여자와 얘기하는 거라면 게임 제목까지 말하지 않았겠지만, 유진이는 그래도 되는 많지 않은 여자 중 하나다.

“와, 트리플 드래곤? 얼마 만에 듣는 제목인지 모르겠다.”

“엄마가 나 어렸을 때 하던 게임을 다 보관해 놓으셨거든. 오랜만에 하니까 재밌어. 확실히 액션 게임이 기분 전환하기엔 좋지.”

“그랬구나. 나도 그 얘기 들으니까 오랜만에 한번 해보고 싶다. 컴퓨터에 에뮬레이터나 깔까?”

그런 대화를 한참이나 했다. 유진이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전화했는데.”

“뭔데?”

“너 다음 주 주말에 시간 되니?”

“아직 계획은 없는데. 왜?”

“잘됐다. 그럼 나랑 던전 공략 가지 않을래? 얼마 전에 길드 합동 공략에 다녀와서 당분간은 개인 활동을 해도 상관없거든. 전에 네 말 듣고 보니까 같이 던전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때?”

던전 공략을 가자고 하는 걸 마치 어디에 놀러가자는 것처럼 말을 하다니. 역시 유진이와 나는 마음이 잘 맞는다.

하지만 내게는 함부로 대답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메인 퀘스트 쪽 일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카오스 게이머 닷컴 놈들 문제도 있으니까.

NPC들이라면 몰라도 유진이까지 그 일에 휘말리게 할 수는 없다. 나는 잠깐 틈을 두고 말했다.

“미안한데 지금 대답하기는 좀 그래. 내가 다음 주 월요일에 말해주면 안 될까?”

“아까는 별일 없다고 했잖아.”

“별일은 없는데 마음에 걸리는 게 좀 있어서.”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월요일까지는 꼭 말해줘야 한다?”

유진이는 내게 확답을 듣지 못해 몹시 아쉬운 모양이었다.

“응, 연락할게.”

딱 잘라 거절을 하지 않은 것은 나 역시 유진이의 실력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여고생 게이머로 유명세를 치렀었고 카페 종업원까지 알아볼 정도의 인기 게이머가 어느 정도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 단순한 호기심이다.

어렸을 때는 같이 콘솔 게임을 하고 놀았지만 이제는 게이머로서 던전 공략을 같이 한다.

나는 그 사실이 퍽 재미있게 느껴져 웃음을 지었다.

2

다음 날은 눈을 뜨자마자 티코이네 집으로 건너갔다.

“주인님, 오셨어요!”

오늘은 티코이 대신 아린이 현관으로 나와 맞아주었다.

짧은 반바지에 반팔티를 입고 있었는데, 금발 미녀의 내추럴한 모습에 저절로 가슴이 뛰었다.

“커흠. 잘 잤어, 아린?”

“네, 주인님도 밤새 잘 주무셨어요?”

아린은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암젤도 인간으로 변신을 했다. 그리고 지지 않겠다는 듯 내 반대편 팔짱을 끼었다.

서로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데, 불편하기는 해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뒤뚱대며 거실로 갔더니 티코이가 진지한 얼굴로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나를 발견하고 벌떡 일어났다.

심각했던 표정이 사라지고 머리 위로 여우 귀가 쫑긋 튀어나왔다.

“주인님!”

“항상 네가 고생이 많구나. 변동 사항 있어?”

“이렇다 할 변동 사항은 없습니다. 슬슬 이름이 알려져서 상점에 손님이 많아지고 있어요. 특히 추그니다킹 뿔의 인기가 올라가서 대기자 명단이 밀리고 있습니다.”

“그래? 추그니다킹 뿔은 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괜찮아?”

“네, 실은 저도 걱정이 돼서 어제 던전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물건을 공수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던전 마스터가 회수할 수 있는 아이템 중에 추그니다킹 뿔이 포함되는데, 그중 일부가 온전한 뿔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전에 올렸던 완성도의 물건 정도라면 일주일에 한 개 정도가 나올 것 같습니다.”

“일주일에 한 개라고?”

나는 의외로 높은 확률에 놀랐다. 그 말대로라면 추그니다킹 뿔만으로 일주일에 오십만 달러씩 벌 수 있다는 게 된다.

“한 달에 서너 개씩 판매가 가능하다고 공지를 했는데 희소성이 생겨서 고객들이 더 안달이 났습니다. 지금은 백만 달러까지 주겠다는 고객이 있습니다.”

“혹시 그 고객도 중동 사람이야?”

“네, 아마도 그쪽 부자들 사이에 유행이 된 것 같습니다. 알아보았더니 처음 추그니다킹 뿔을 사간 고객이 아랍에미리트의 왕족이라고 합니다. 친족의 재산을 관리하는 재단 대표이기도 하고요. 그런 인물이 유행을 선도했으니 열풍이 부는 것도 당연한 일이죠. 아마 앞으로 추그니다킹 뿔의 가격은 계속 올라가게 될 겁니다.”

아랍에미리트의 왕족이라니.

“혹시 그 사람 축구 구단도 가지고 있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축구 구단뿐 아니라 메이저리그와 NHL 구단도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 같던데요.”

뭔가 스케일이 다른 느낌이다. 거래 초반부터 이런 큰 고객을 낚다니, 당연히 기뻐해야 하는 거겠지?

편안한 화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여기까지다.

멤버들과 함께 소파에 모여 앉았다.

보아하니 티코이는 아직 어제 던전 공략을 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아린이 그리 수다스러운 타입이 아니고, 티코이도 맡은 업무가 많아 바쁜 처지이니 자세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을 수도 있다.

“티코이, 큰일 났다.”

“네?”

내 첫 마디에 티코이는 깜짝 놀라 등을 곧추세웠다.

나는 그에게 어제 던전에서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이야기해주었다. 티코이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해 급기야 창백해졌다.

“그럴 수가…….”

“정말 큰일 난 거 맞지?”

티코이는 굳은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큰일입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내 무책임한 물음에 우리 팀의 브레인은 팔짱을 끼고 숙고에 들어갔다.

“죄송한데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시겠습니까?”

“당연하지. 천천히 생각해. 설마하니 오늘 당장 놈들이 여기로 쳐들어오지는 않을 테니까.”

내 말에 티코이의 얼굴은 더 창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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