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왕 클리어러-54화 (54/245)
  • # 54

    독식왕 : 클리어러 054화

    챙! 챙!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온 힘을 다해 방어를 하는 것뿐이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상대하는 변신형 게이머가 얼마나 성가신 존재인지 실감했다.

    수가 많지 않지만 하나같이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하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변신에 시간제한이 있다는 사실이다.

    정보창에서도 보았듯 변신형 능력자는 동급 능력자들에 비해 뛰어난 전투력을 자랑하지만, 대개 그 능력을 변신한 상태에서만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전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그것을 알기 때문에 처음부터 직접 싸움에 개입하지 않고, 지금도 점점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의 움직임이 빨라질수록 나와 암젤의 부담은 커져 갔다.

    내가 직접 무기를 맞대는 것을 최소한으로 하고 공간을 활용해 시간을 끄는 동안, 암젤 또한 쉴 새 없이 소환수를 불러내 박철웅의 발을 묶으려고 했다.

    하지만 암젤의 마나양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녀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슬슬 지친 기색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더욱 더 박철웅을 상대하는 일에 힘겨움을 느꼈다.

    “젠장!”

    이 정도로 강할 줄 알았다면 차라리 6층으로 올라오지 않고 물러나는 편이 옳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실로 돌아오면서 판단 능력까지 떨어지고 만 것일까?

    쾅!

    또 한 번 박철웅이 전력으로 내지른 공격을 몸을 숙여 피해냈다. 그러면서 위를 올려다보는데 처음에 비해 확연히 굳어진 그의 표정이 보였다.

    ‘아직 기회는 있어!’

    나는 바닥을 굴러 넓은 장소로 빠져나오면서 암젤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후방으로 빠져나갔다.

    내가 박철웅의 어그로를 전담하는 동안 암젤이 마나 포션을 복용했다.

    의식하고 보니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박철웅의 피부를 가득 덮고 있던 은색의 마나가 옅어졌다.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갑자기 박철웅이 동작을 멈추더니 긴 호흡을 내뱉었다.

    전신을 덮은 은색 마나가 사라졌다. 완전히 변신 상태를 되돌린 것은 아니라서 양팔의 모양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상태로 다시 공격을 해오는데, 물론 변신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상대하기 쉽지 않았다.

    아마도 반만 변신한 상태로 시간을 들여 마나를 회복하려는 생각이리라.

    ‘이러면 약점도 의미가 없는데.’

    자기 마나를 컨트롤하는 능력도 출중한 놈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레벨이 깡패라는 말을 떠올렸다.

    박철웅과 나의 레벨 차는 10 이상이다. 이쯤 되면 도저히 뒤집을 수 없는 격차가 있다고 보는 편이 맞았다.

    놈이 드러냈던 초조함은 싸움이 길어지면 자신이 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아니라, 쉽게 판가름 나지 않는 승패에 대한 짜증에 불과했던 것이다.

    “후우! 후우!”

    나도 점점 체력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무기를 부딪칠 때마다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현실에서의 싸움은 가상현실 게임과 백 퍼센트 같지 않았다. 상처나 부상은 포션으로 회복할 수 있지만, 정신적 피로감은 계속해서 나를 갉아먹었다.

    집중력도 시간에 비례해 점점 떨어져갔다.

    캉!

    결국 박철웅이 내친 일격에 내 양손의 검이 튕겨 나갔다.

    그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입에 걸었다.

    “잡았다.”

    하지만 나 역시 그를 따라 웃었다. 박철웅의 등 뒤로 새까맣게 몰려오는 몬스터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린이 6층의 몬스터를 전부 이끌고 이리로 오는 중이었다. 따로따로 와서는 의미가 없으니 한꺼번에 데리고 오라고 지시를 했었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최대한 빨리 몬스터들을 동원하고 나타난 것이다.

    등 뒤를 가득 채운 발소리와 흉악한 기운에 박철웅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 동요, 그 이상의 감정이 떠올랐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장면이었다. 여자 게이머 하나가 선두에 서서 수십 마리 몬스터가 몰려오고 있다니.

    모양새만 보아서는 마치 그녀가 그 몬스터들을 선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상식에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장면이기 때문에 이성이 기능하지 못하고 정지해 버렸다.

    나는 그가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이에 몸을 빼냈다.

    거리를 띄운 다음, 아까 놓쳐 버린 무기를 주워 들었다.

    “주인님!”

    아린의 얼굴에는 걱정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괜찮으신가요?”

    “응, 괜찮아.”

    내 말을 듣고 나서야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쁜 놈!”

    고운 눈썹이 가운데로 몰린다. 그녀가 노려보는 것은 당연히 박철웅이었다. 던전 마스터가 몬스터들에게 지시했다.

    “저놈을 혼내줘!”

    “꾸워어어어~”

    “크아아아!”

    비록 레벨이 낮은 몬스터들이지만 오십에 가까운 숫자가 한꺼번에 몰려드는 장면은 스펙타클하기 그지없었다.

    구경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볼만하지만 당하는 사람의 기분은 어떨까?

    나는 망연하게 서 있는 박철웅에게 말했다.

    “새로운 수가 없냐고 했지? 여기 있다, 이놈아.”

    “진짜, 아린 쟤는 왜 이렇게 늦은 거냐옹.”

    암젤이 혀를 빼물었다. 그녀의 몸 여기저기에는 적지 않은 상처가 나 있었다. 그중 일부는 상당히 큰 것이었다.

    나 역시 시간만 끌면 아린이 올 거라는 걸 알면서도 꽤 마음을 졸였던 것이 사실이다.

    박철웅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자기에게 달려드는 몬스터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F급 던전의 하급 괴수들이라 그가 팔을 휘두를 때마다 마치 허수아비처럼 쓰러져 나갔다.

    하지만 이내 아린이 하프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듣기 편안한 음악이지만, 박철웅에게는 가슴이 벌떡벌떡 뛰는 흉악한 음색으로 들렸다.

    일명 ‘혼란의 곡’.

    “젠장!”

    박철웅은 몹시 당황했다. 그가 팔을 움직이는 속도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처음엔 늦어서 질책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아린은 좋은 타이밍에 나타난 셈이었다.

    현재 박철웅은 체력과 마나가 거의 바닥나 있는 상태이므로.

    키가 3미터에 달하는 거대 괴수인 고보르가 몽둥이를 내리쳤다. 그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고보르는 다른 몬스터들이 던전 마스터에게 의심을 품고 심지어 반란을 도모했을 때도 아린에 대한 충성심을 지키고 있던 몬스터다.

    물론 던전 안의 몬스터는 날마다 몇 번씩 죽고 리젠되고는 한다. 하지만 일부 기억은 계승되었다.

    그것 역시 던전의 균형이 유지되는 한 가지 시스템인 것이다.

    한 달에 걸쳐 고보르는 천천히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줄 아는 상냥한 던전 마스터에게 빠져들었다.

    단순한 놈이라 자기보다 약한 던전 마스터에게 의심을 품을 줄도 몰랐다.

    고보르는 누구보다도 포악하게 공격을 퍼부었다.

    심지어 다른 소형 몬스터들이 그의 방망이질에 휘말려 찌그러지기도 했다.

    5

    박철웅 대 몬스터들의 싸움은 삼십 분가량 계속되었다. 나는 바닥에 앉아 그것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팝콘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아쉬운 대로 암젤과 꿀물을 나누어 마셨다.

    슬슬 싸움이 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처절했던 일 대 다의 싸움은 박철웅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아무리 몬스터의 숫자가 많고 마나와 체력이 바닥난 상황이라 해도 애초에 전투력 차이가 너무 컸던 것이다.

    나는 몸을 일으킨 다음 피투성이가 된 고보르를 향해 활을 겨누었다.

    ‘유도살!’

    퓩! 퓩! 퓩!

    세 대의 화살이 고보르의 급소에 차례대로 박혔다.

    “꾸어어어…….”

    거대한 몸뚱이가 뒤로 기울었다.

    쿵-!

    [퀘스트 ‘다섯 시간 안에 고보르 처치하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8,000, GP +20,000를 얻었습니다.]

    고보르를 죽임으로써 던전에서 달성해야 할 모든 퀘스트를 완수했다.

    [업적 ‘던전 마스터’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해당 던전의 마스터가 될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던전 마스터 ‘아린’에게서 지위가 이양됩니다.]

    [소유 던전이 늘었습니다. 해당 던전은 F-002로 명명됩니다.]

    [메인 퀘스트 ‘던전 한 개 이상 획득하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스킬 에그(A급 이상 보장)’을 얻었습니다.]

    “음.”

    ‘영토’ 퀘스트의 보상은 ‘스킬 에그’였다. 그것도 최소 A급 이상의 스킬이 보장되는.

    메인 퀘스트 보상은 역시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살아남은 몬스터가 다섯 마리 이내가 됐을 때, 아린이 곡을 바꾸었다.

    수면의 곡.

    가뜩이나 지쳐 있는 박철웅의 움직임이 슬로우모션처럼 느려졌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레벨 차 때문에 아린의 스킬이 먹혀들지 않았겠지만, 지금 그는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매우 힘든 상태였다.

    헛손질이 많아지고 자꾸 눈이 감겼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놓지 않았다.

    팍!

    최후의 몬스터 한 마리가 그의 공격에 목숨을 잃었다.

    박철웅은 침을 흘리며 멍한 눈으로 정신을 붙들려고 애쓰다가, 결국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양손의 칼날도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온 지 오래였다.

    “허억, 허억.”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몰려오는 졸음 때문에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그에게로 걸어갔다.

    뚜벅뚜벅.

    내 발소리를 들은 박철웅이 흠칫 놀랐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다시 주저앉았다.

    그가 다급하게 말했다.

    “잠깐, 잠깐만!”

    “왜? 할 말 있어?”

    “내가, 지부장에게…… 설명하겠다. 계약 조건도, 지금보다 더…… 유리하게, 내가 죽으면, 끝이야. 카오스 게이머 닷컴…… 어떤 조직인지…… 너는, 모른다.”

    졸음 때문에 말이 자꾸만 끊겼다. 듣는 것만으로 나까지 잠이 올 지경이다.

    나는 그가 가지고 있던 최후의 희망에 비수를 꽂았다.

    “카오스 게이머 닷컴이 피스&호프라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았어?”

    “…….”

    “박수철 씨, 힘들어 보이는데 그만 주무세요.”

    내가 그의 본명을 말했을 때 박철웅이 흠칫 놀랐다.

    동시에 체념하는 표정을 지었다.

    꾸벅.

    그의 고개가 떨어졌다. 그 위로 자비 없는 창날이 지나갔다.

    팍-!

    [카오스(Chaos) 성향을 가진 게이머가 죽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35,000, GP +110,000을 얻었습니다.]

    [질서에 기여하여 오더(Order) 성향을 부여받았습니다.]

    [히든 퀘스트 ‘레벨 10 이상 차이나는 게이머 죽이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25,000, 고급 스킬 강화석 ×5를 얻었습니다.]

    [레벨 41이 되었습니다.]

    [스탯 포인트 6을 얻었습니다.]

    [기존 클래스를 진화하거나 추가 클래스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마창사’나 ‘검은 소환술사’는 아직 진화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다.

    나는 추가 클래스를 얻지 않고 ‘궁사’를 ‘신궁’ 클래스로 올리기로 했다.

    [궁사 클래스가 신궁 클래스로 진화했습니다!]

    [궁술 사용 시 위력이 증가합니다.]

    [궁술 스킬 구사 시 마나양이 감소합니다.]

    [구사할 수 있는 스킬의 범위가 넓어집니다.]

    [무기술 전반에 걸친 이해도가 높아졌습니다.]

    [‘무기 숙련가’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업적 ‘초고속 클리어’의 효과로 기억이 활성화됩니다.]

    [‘신궁’, ‘무기 숙련가’의 숙련도가 Max가 되었습니다.]

    새로워진 신체의 감각에 뿌듯함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또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다.

    [메인 퀘스트 ‘랭킹 100,000 안에 진입’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보상 상자(세트 아이템 전용)을 얻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