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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53화 (53/245)

# 53

독식왕 : 클리어러 053화

믿을 수 없는 사실은 일이 이렇게 되기까지 박철웅은 구경만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처음 선제공격 할 때를 제외하고 거리를 유지한 것은 그를 경계해서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보니 알 것 같았다. 박철웅은 자신의 졸개들을 동료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얼굴에는 부하를 잃었다는 당혹감보다는 여전한 호기심만이 떠올라 있었다.

‘진짜 개자식이네.’

나는 그를 개의치 않고 달려가 히루도의 창을 휘둘렀다.

‘토네이도 스피어!’

콰과각-!

표범과 퓨마에게 둘러싸였던 게이머가 내 스킬에 휘말려 치명상을 입었다.

나는 라이에킹에게 물려 얼굴의 형체가 사라진 고스트형 게이머에게도 스킬을 꽂았다.

‘건샷 스피어!’

콰앙-!

심장이 꿰뚫린 게이머가 선혈을 뿜어냈다.

[카오스(Chaos) 성향을 가진 게이머 두 명이 죽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18,000, GP +60,000을 얻었습니다.]

[질서에 기여하여 오더(Order) 성향을 부여받았습니다.]

[레벨 39가 되었습니다.]

[스탯 포인트 3을 얻었습니다.]

[메인 퀘스트 ‘카오스 게이머 세 명 이상 처치하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보상 상자(넘버링 아티팩트 전용)’를 얻었습니다.]

‘오오…….’

카오스 게이머를 해치우고 얻는 보상이 넘버링 아티팩트였다니.

넘버링 아티팩트는 특별한 사연과 능력이 부여된 아이템이다. 1~100번까지 있고, 하나같이 능력을 크게 신장시켜 줄 잠재력이 있는 것들이었다.

궁금증이 크기는 하지만 지금은 새 아이템을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졸개들이 모두 목숨을 잃고 나서야 박철웅은 단단히 끼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제법이군요.”

“너야말로 제법이다. 부하들이 죽었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않고 보고만 있다니.”

“오늘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의외의 연속입니다. 우리들은 모든 변수를 상정하고 행동에 나서지만, 이 정도 변수라면 절대 예측하기가 불가능하죠. 제 역할은 어디까지나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생긴 희생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역시 개자식 아니랄까 봐 궤변 하나는 끝내주네. 변수다 어쩐다 하면서 지금 웃고 있잖아?”

“하하!”

철웅은 웃음을 터뜨렸다.

“성오 씨는 참 재미있는 사람이군요. 생긴 것은 아직 애 같은 데다, 각성한 시점이나 등급도 초보나 다름없으면서 하는 말이나 행동은 마치 십 년은 굴러먹은 베테랑 같으니까요.”

‘눈썰미 하나는 끝내주네.’

이래서 경험 많은 놈들은 상대하기 껄끄럽다니까.

나는 입으로 박철웅과 대화를 하면서 곁눈으로는 고양이로 변신한 암젤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그녀는 박철웅이 내게 관심을 두고 있는 사이 바닥에 떨어진 결정석을 주우려 하고 있었다.

블러드스톤과 콜드스톤.

영리한 녀석이라 따로 지시를 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흐름을 읽고 할 일을 판단한다.

암젤은 매지션형 게이머의 몸 아래에서 결정석 하나를 주웠다.

다음으로는 신체 강화형 능력자의 시체로 다가갔다.

그때 나를 보고 있던 박철웅이 고개를 돌렸다. 그가 시체 밑을 뒤지고 있는 암젤을 보았다.

“암젤!”

암젤이 움찔 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박철웅의 발차기가 코앞까지 다가온 뒤였다.

쿠당탕!

암젤은 마치 축구공처럼 걷어차여 내 쪽으로 굴러왔다.

발이 닫기 전에 몸을 빼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라면 그대로 몸뚱이가 터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괜찮아?”

“……괜찮지 않다옹.”

암젤은 비틀거리며 내 뒤로 돌아갔다. 그녀는 자기 인벤토리에서 포션 하나를 꺼내 마셨다.

“블러드스톤도 알고 있다니……. 역시 게이머를 죽인 게 오늘이 처음이 아니라는 뜻이군요.”

박철웅은 암젤이 주우려고 했던 결정석을 대신 집어 들었다. 푸른빛을 발하는 결정석은 콜드스톤이었다.

몇 발짝 더 걸음을 옮겨 이번엔 고스트형 게이머의 몸 아래에 있는 또 하나의 결정석을 집어 들었다.

그것 또한 콜드스톤.

나는 그가 결정석을 주워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

알아본 바로 일반 게이머들은 이것들을 그냥 흡수할 수가 없다고 했다.

자기와 상성에 맞지 않는 결정석을 흡수하면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니까.

내 눈으로 정보창을 확인한 박철웅은 변신형이었고, 지금 그가 주운 콜드스톤은 각각 신체 강화헝과 고스트형의 것이었다.

설마 박철웅 같이 냉정한 놈이 심각한 부작용을 무릅쓰고 자기와 맞지도 않는 결정석을 흡수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를 보는 박철웅의 입술 끝이 위로 올라갔다.

양손에 들린 콜드스톤에서 강한 빛이 솟구치더니 그곳에서 발생한 에너지가 그에게로 옮아가기 시작했다.

뜻밖이고, 예상에도 벗어난 장면이었다.

얼굴을 일그러뜨리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박철웅은 두 개의 콜드스톤을 모두 흡수했다.

잿빛이 된 결정석들이 그의 아귀에서 떨어졌다.

“우리가 하는 일은 암거래뿐만이 아닙니다. 아이템을 연구하고, 그것에 관한 한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죠. 우리가 어떻게 암거래 사업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결국 모든 것은 돈과 이해득실이 결정하는 겁니다. 모든 국가가 비난을 피하면서 아이템을 연구할 수단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법률적인 한계를 뛰어넘어서 말이지요.”

“…….”

박철응의 친절한 설명이 새로운 사실을 말해주었다.

역시나 각국 정부, 그리고 카오스 게이머 닷컴은 게이머들이 더 강해질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자기와 상성이 맞지 않는 블러드스톤과 콜드스톤은 흡수하지 못한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이들은 눈에 띄지 않는 연구를 통해 그것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설마…….”

나는 비난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박철웅을 응시했다. 그가 옅은 웃음을 흘리며 어깨를 으쓱 했다

“우리들도 끝없이 성장을 도모해야 합니다. 제 일은 겉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정상적인 던전 공략이 불가능하지요.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라도 성장할 기회를 잡는 수밖에 없습니다. 오해는 하지 마세요. 저에게도 나름의 기준이라는 게 있습니다. 저네들 힘으로 쓰러뜨릴 수 없는 강자를 상대했을 때만, 그리고 그 싸움으로 목숨을 잃었을 때만 결정석을 흡수하는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박철웅은 죄책감 따위는 전혀 없는 얼굴이었다. 처음과는 다른 의미로 인간이 그렇게 사악해 보일 수 없었다.

결국 오늘 목숨을 잃은 부하들은 언젠가 자기가 먹이가 될 것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그를 따라다녔다는 얘기다.

모르긴 해도 카오스 게이머 닷컴 놈들이 활동하는 방식은 늘 이런 식일 터다.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썩은 놈들이라는 뜻이다.

박철웅이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지금까지와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

‘싸우자는 거군.’

나는 재빨리 레벨이 오르면서 얻은 스탯 포인트를 분배했다. 싸움을 처음 시작할 때보다 강해진 것이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박철웅도 강해졌다.

아마 나보다도 더 많이 강해졌을 거라고 보는 편이 맞겠지.

박철웅의 피부가 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근육이 녹으면서 새롭게 형태를 잡아간다. 가장 크게 바뀌는 부분은 양팔이었다.

손가락이 사라지고 팔꿈치 아래가 커다란 칼 모양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핸드 소드였군.’

참 알기 쉬운 기술명이다.

변신을 마친 박철웅은 이전과는 아우라가 완전히 달라졌다. 변신하기 전보다 적어도 두 배는 강해진 듯했다.

나는 암젤과 둘이서만 상대해서는 그를 이길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생각보다 더 강한 놈인 것 같다옹.”

내 뒤에서 돌아 나온 암젤이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 초조한 감정이 떠올랐다. 나 역시 비슷한 기분이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팀플을 할 때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물론 신뢰는 단순히 그래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암젤과 나, 그리고 아린은 이미 수년 동안 전장을 함께 헤쳐 왔다. 그런 사실 자체가 특별한 기대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함께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질 것 같지 않은 기분.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

박철웅이 움직였다.

파바박!

대시를 해온 바닥에 자갈이 어지럽게 튀었다.

박철웅의 스탯은 다른 게이머에 비해 고른 편이었다. 힘과 체력, 그리고 민첩까지 비슷한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는 상대하기 가장 어려운 타입이라는 뜻이었다. 어느 한 쪽의 스탯이 낮다면 자연스럽게 그것이 약점이 될 테니까.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를 좁힌 박철웅은 엄청난 박력으로 팔을 휘저었다.

팔 자체가 무기였기 때문에 리치가 짧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직접 겪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수도’에는 은색 마나가 코팅되어 실제 길이보다 더 길어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실제 물리력도 마나가 코팅된 범위까지 미쳤다.

나는 창을 번쩍 들어 칼날을 막아냈다.

챙-!

강한 충격에 무기를 쥔 양팔이 흔들렸다.

박철웅은 반대편 팔의 칼날로 다시 창의 한가운데를 내려쳤다.

캉-!

히루도의 창 가운데가 뚝 하고 부러졌다.

박철웅의 입가에 조소가 떠올랐지만 그가 생각한 대로 무기가 부러진 것은 아니었다.

단지 쌍검의 용도까지 겸할 수 있는 무기가 두 개로 분리가 되었을 뿐이다. 나는 양손에 들린 검으로 그의 복부를 엑스 자도 그었다.

캉-!

경도가 강한 물체를 가격했을 때처럼, 뭔가를 베었다는 손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다시 한 번 공격하기 전에 나는 바닥을 굴러 다시 거리를 띄었다.

연결 동작으로 활을 꺼내 시위를 당겼다.

‘연사!’

챙! 챙! 챙!

세 대의 화살이 연속으로 같은 부위를 때리고 나서야 박철웅의 몸이 조금 흔들렸다.

기회라고 생각한 암젤이 표범 두 마리를 소환했다.

“크릉!”

“크르릉!”

하지만 짐작대로 표범은 그와의 접전을 오래 버티지 못했다.

펑! 펑!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 표범의 잔영을 뚫고 박철웅이 팔을 뻗어왔다.

나는 전력으로 맞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쌍검으로 공격을 튕겨내며 반동을 이용해 다시 거리를 띄웠다.

박철웅이 양팔을 벌리고 웃었다.

“그렇게 도망만 다니면 싸움이 되지 않는데? 다른 수는 없는 건가요?”

말투에는 조롱과 함께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

“있지. 하지만 굳이 지금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하하!”

실은 더 이상 선보일 기술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말한 것은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이 녀석은 진심으로 나라는 존재에 호기심을 느끼고 있다. 그것을 적당히 자극하면 내가 아직 보여주지 않은 뭔가를 보기 위해서라도 싸움을 끝내려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역시 당신은 연구 대상입니다. 귀화제의 레시피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당신과 고양이를 수거해 가는 게 낫겠네요. 좋은 실험체를 구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실험체라니…….

이놈들 인체 실험까지 하고 있는 건가?

하기야 사람 목숨을 벌레처럼 여기는 놈들인데 무슨 일인들 하지 않겠는가? 나는 박철웅의 끈끈한 시선에 몸을 움츠렸다.

카오스 게이머 닷컴에 실험체로 잡혀간 게이머가 무슨 일을 당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 끔찍한 기분이 든다.

“슬슬 질리는군요.”

그렇게 말한 박철웅은 처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공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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