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독식왕 : 클리어러 052화
‘현실도 다를 것이 없네.’
나쁜 놈은 그냥 나쁜 놈일 뿐이다.
나는 허공에 손을 뻗어 히루도의 창을 꺼냈다.
동시에 스킬을 사용했다.
‘로또!’
주변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일곱 개의 공이 튀어나와 허공에 뱅글뱅글 맴돌았다.
[축하합니다! 로또 4등에 당첨되었습니다!]
[1분간 모든 스탯이 40퍼센트 상향됩니다!]
박철웅이 수트를 벗는 동안 졸개들이 먼저 움직였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
타입은 각각 신체 강화형과 고스트형, 그리고 매지션이었다.
레벨은 각 25~30 사이.
세 명의 졸개가 박철웅의 앞에 늘어섰다. 늘 이런 식으로 싸우는 것이 패턴인 모양이었다.
박철웅이 처음부터 직접 나서야 할 경우는 많지 않을 테니까.
그 증거로 졸개들의 표정 역시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내 조사는 모두 끝마쳤을 것이다.
등급이 어떻게 되는지, 던전을 공략하는 패턴은 어떠한지.
어쩌면 내 공략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르다는 사실을 조금 경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평가가 극적으로 달라질 수 없다. 공략 속도야 등급이 높은 게이머가 낮은 등급의 던전에 들어가면 얼마든지 빨라질 수 있는 거니까.
일반적이지는 않아도 전력 평가에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그보다 더 확실하게 실력을 나타내는 지표는 등급이었다. 한 번 등급이 오르면 그 다음 등급이 오를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니까.
나는 불과 며칠 전에 C급이 되었다.
옆에 있는 고양이가 각성수라 할지라도 높은 전투력을 가졌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들의 머릿속에 전력 평가는 이미 자리를 잡았다.
그것이 지금 보이는 있는 여유의 결정적인 이유다.
‘과연 그럴까?’
나는 입술 끝을 들어 올리고 웃음을 지었다.
아직도 선제공격을 할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있는 놈들에게 스킬을 날렸다.
‘토네이도 스피어!’
콰가가각-
강력한 돌풍이 5미터 거리를 가로질러 카오스 게이머 닷컴 졸개들을 향해 날아갔다. 생각지도 못한 스킬의 세기에 놈들의 얼굴에 하나같이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싸우기 굳이 로또 스킬을 사용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초장부터 강한 충격을 주고 싶었으니까.
스킬이 뻗어 나가는 속도는 매우 빨랐다.
하지만 몸을 날려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졸개들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등 뒤에 박철웅이 있었으니까.
그가 내 스킬 한 방에 어떻게 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졸개들의 입장에서 리더를 내버려 두고 자기 몸만 보전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들은 길드 상사와 부하 관계로 묶여 있지 않은가?
차선책으로 포지션을 바꾸었다. 신체 강화형이 맨 앞으로 나서며 몸을 웅크린 것이다.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으나 고작 레벨 28짜리 신체 강화형 게이머가 레벨 37의, 거기다 40퍼센트 버프까지 받은 스킬을 혼자 받아낼 수는 없었다.
아니, 받아내는 것까지는 가능할지 몰라도 몸이 온전하길 바란다면 욕심이다.
쿠당탕!
“윽!”
협상을 위해 만났을 때 직접 귀화제의 효과를 몸으로 시험했던 게이머.
그가 돌풍에 밀려 바닥을 나뒹굴었다.
토네이도 스피어는 그를 쓰러뜨리고도 여력이 남아 나머지 두 명의 졸개에게까지 불어 닥쳤다.
놈들이 강한 풍압에 눈을 뜨지 못하는 사이, 나는 땅을 박차고 거리를 좁혔다.
고스트형 게이머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고스트를 발현시켰다.
콰앙!
가슴팍이 두꺼운 검은 피부의 고스트가 내 창격을 도끼로 막아냈다. 하지만 힘겨루기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내가 사용하는 무기는 자그마치 유니크급이다. 히루도의 창이 고스트의 도끼를 파쇄했다.
그 충격으로 고스트 능력자는 몸이 꺾이면서 피를 토했다.
“커헉!”
거기까지만 하고 나는 다시 몸을 빼내 제자리로 돌아왔다. 매지션형 능력자까지 공격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그녀는 공격이나 방어 스킬 없이 버프에만 특화된 능력자니까.
이미 동료 두 명이 바닥을 구른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로또의 효력이 끝났다.
하지만 여전히 카오스 게이머 닷컴 놈들은 내 능력을 +40%로 인식할 터다. 이미 그 정도 위력의 기술을 몸으로 받았으니까.
일 분짜리 공방으로 나는 싸움의 기세를 완전히 장악했다.
잠깐 동안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 속에 상대의 충격이 전해진다.
박철웅은 수트를 벗어 옆으로 내던졌다.
예상이 빗나갔는데도 계속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역시 강자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꿈틀대는 콧잔등과 셔츠 단추를 푸는 손가락이 빨라진 것을 놓치지 않았다.
매지션형 게이머가 ‘힐’을 사용했다.
파란 빛줄기가 카오스 게이머 두 명의 몸을 때렸다. 선제공격을 허용한 두 명은 신음성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아직 리더가 나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내 실력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겠지.
호기심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보면 알 수 있다.
아까와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졸개들의 태도가 한층 진지해졌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그들은 나를 혼자서는 상대할 수 없는, 자기들 개개인보다 더 강한 능력을 지닌 존재로 인식할 것이다.
다음에 택할 선택지는 당연히 집단 공격일 터.
이들은 박철웅만 한 자질을 지니지 못한 게이머이다. 게이머들도 성장을 하지만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은 역시 재능이다.
게이머의 세계에서 재능이란 주로 각성 시에 주어진 능력을 말한다. 박철웅은 각성할 때부터 이미 거물이 될 운명이었고, 이들은 한계가 분명한 게이머들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최소한의 판단 능력은 탑재하고 있었다.
박철웅 이놈은 여전히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있으니까.
그 태도는 나와 일 대 일 싸움을 벌이더라도 절대 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깃든 것이었다.
‘뭐, 틀린 생각은 아니지.’
솔직히 지금 내 능력은 박철웅을 앞서지 못한다.
적어도 나 혼자서는.
지금껏 보고만 있던 암젤이 인간형으로 변신을 했다. 사실 그녀의 능력은 인간형일 때나 고양이일 때나 큰 차이가 없다. 어떤 형태를 취하든 결국 본인의 선택에 달린 셈이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변신은 적들에게 혼란을 가져왔다.
예상을 빗나가지 않은 상황이 만들어진 것을 보고 암젤이 상대에게 두 번째 충격을 선사했다.
펑! 펑!
허공에서 두 마리 맹수가 나타났다.
표범 두 마리.
근육질의 강력한 맹수들이 카오스 게이머들을 향해 으르렁댔다.
“뭐야, 저거?”
“각성수가 소환술을 사용했어?”
“각성수라니, 인간이잖아!”
싸움이 시작하고 처음으로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그것은 그만큼 평정심을 잃고 있다는 증거였다.
“크릉!”
표범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신체 강화형 능력자를 향해서.
신체 강화형 게이머는 몸을 숙였다가 어퍼컷을 쳐올리며 표범의 배를 때렸다.
퍽!
제법 괜찮은 반격이었지만 한 번의 공격으로는 소환수를 완전히 쓰러뜨리지 못했다.
다른 한 마리 표범은 고스트형 능력자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표범의 노림을 받은 게이머는 정신을 집중해 고스트를 만들어냈다. 아까 무기를 잃었지만 어느새 새로운 도끼를 손에 쥐고 있었다.
고스트가 애초에 실체가 없는 환영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거꾸로 말하면 깨진 무기를 복원시키는 데 게이머 본인의 마나가 적지 않게 소모되었을 거라는 것을 뜻한다.
표범과 고스트가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콰악-!
표범의 발톱이 고스트의 신체 일부를 흩어지게 하고 고스트는 표범의 정수리에 도끼를 쑤셔 넣었다.
퍼엉!
사라진 표범을 보고 고스트형 게이머가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고작 하나의 위협 요소가 사라졌을 뿐이다.
박철웅처럼 한 걸음 바깥에서 싸움을 관망하던 내가 또 다른 소환수를 내보냈다.
“크르르르…….”
검은 회오리가 피어오르고, 그 속에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났다.
든든한 주인이 생긴 데다 레벨까지 크게 오른 라이에킹은 한층 기고만장해졌다.
스켈레톤 몬스터가 소환된 것을 보고 카오스 게이머 닷컴 졸개들은 또 한 번 숨을 삼켰다.
나는 어제 상점에서 구입했던 마나 포션을 꺼내 마셨다. 로또와 소환술의 사용으로 마나가 크게 소모되었기 때문이다.
검은 소환술사 클래스를 얻게 된 뒤, 마나가 크게 늘었지만 여전히 한계는 있었다.
마나는 결국 정신적인 체력과 같은 개념이라 레벨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라이에킹이 방금 표범 한 마리를 사라지게 만든 고스트 능력자를 노려보았다.
“크르르…….”
카오스 게이머 닷컴 게이머들은 자기들이 겪고 있는 일을 믿기 힘들다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단순한 각성수인 줄 알았던 고양이는 인간으로 변신하고, 나 역시 정상적인 기준으로 이해할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으니까.
세상에 던전과 능력자들이 생긴 것 자체가 상식에 어긋난 일이지만, 그 일이 생기고 몆 해가 지난 지금은 또 그 나름대로의 상식이 자리를 잡았다.
수많은 타입의 능력자가 있어도 그 중 대부분은 한 가지 능력만을 사용한다. 드물게 몇 가지 능력을 한꺼번에 사용할 수 있는 게이머들도 있지만 나처럼 무기술과 소환술을 동시에 사용하는 능력자는 없었다.
기본적으로 육체 계열 능력자와 정신 계열 능력자는 정반대에 위치하는 유형이라고 여겨졌으니까.
상식이 무너졌을 때는 혼란이 찾아온다.
“크아앙!”
라이에킹이 쏜살같이 고스트형 능력자에게 달려들었다.
소환수가 되기 전에는 자기 몸을 사리던 몬스터다. 상대가 자기보다 강한지 약한지를 눈치껏 알고 불리한 싸움은 하지 않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계산 없이 무작정 적을 향해 돌진했다.
상대의 표정에서 두려움을 읽었기 때문이다. 싸움은 기세와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 영악한 늑대는 잘 알고 있었다.
고스트형 능력자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고스트를 날려 보냈다.
파악!
그러나 이미 한발 늦은 대응이다.
라이에킹은 고스트가 휘두른 도끼날을 가볍게 피하고 그것을 부리는 본체를 공격했다.
“크앙!”
스켈레톤이 고스트형 게이머를 올라타고 얼굴을 물어뜯었다.
“으아악!”
나는 라이에킹을 소환할 때만 해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1.5배 버프를 받았다고는 해도 레벨이 18에 불과한 녀석이다.
상대보다 10이나 낮은 레벨을 갖고 있었으므로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고 여겼었다.
뜻밖에도 예상외의 결과가 나왔다. 고스트형 능력자은 라이에킹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해 전투 불능에 빠졌다.
신체 강화형 능력자가 동료를 구하기 위해 달려왔다. 하지만 그는 암젤이 추가로 소환한 퓨마에게 길이 막혔다.
거기 더해 아직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던 표범까지 그를 공격했다.
신체 강화형 게이머의 스킬은 동굴 벽도 부술 만큼 강력한 주먹을 내지르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 기술을 쓸 여유가 없었다.
매지션은 어지러워진 싸움판을 바라보다가 힐을 사용하기 위해 팔을 들었다. 하지만 스킬이 발동되기 직전 내가 먼저 움직였다.
퍼억-!
바람처럼 날아간 화살이 그녀의 가슴에 박혔다. 연이어 날아간 두 대의 화살은 각각 그녀의 복부와 미간을 맞혔다.
[카오스(Chaos) 성향을 가진 게이머가 죽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9,000, GP +30,000을 얻었습니다.]
[질서에 기여하여 오더(Order) 성향을 부여받았습니다.]
[레벨 38이 되었습니다.]
[스탯 포인트 3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