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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49화 (49/245)

# 49

독식왕 : 클리어러 049화

“응?”

이건 생각지도 못한 결과다.

반란을 진압하는 것이 히든 퀘스트였다니.

히든 퀘스트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새로 생기기도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번에도 그런 경우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았다.

어쨌든, 보상을 준다는 데 고맙게 받아야지.

[아린을 동료로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래.”

[아린이 파티에 합류했습니다.]

[메인 퀘스트 ‘동료 한 명 영입하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히든…….]

나는 얼른 양손을 확 올려 허공을 가렸다.

이렇게 중요한 메시지를 아무런 감흥 없이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히든 클래스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 내가 얻었던 히든 클래스가 적지 않고 또 끝까지 얻지 못한 클래스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들 중 어떤 것을 주었을지 기대가 컸다.

양손으로 허공을 가리고 있는 내게 옆에 다가온 암젤이 물었다.

“뭐 하는 거냐옹?”

암젤뿐만 아니라 아린도 궁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거 좀…… 부끄러운데?

나는 슬며시 검지와 중지 사이를 벌렸다. 손가락 사이로 첫 번째 글자가 보였다.

‘검…….’

‘검’자만으로는 무슨 클래스인지 전혀 짐작이 되지 않는다.

‘은…….’

검은? 색깔을 말하는 건가?

여기까지 보고 나는 허공을 가렸던 손을 내렸다.

[보상으로 히든 클래스 ‘검은 소환술사’를 얻었습니다.]

[업적 ‘초고속 클리어’의 효과로 ‘검은 소환술사’ 숙련도가 Max가 되었습니다.]

검은 소환술사.

처음 보는 클래스였다.

환술은 결코 특별한 기술이 아니다. 하지만 그저 그런 소환술사와 뛰어난 소환술사 사이에는 커다란 갭이 존재했다.

히든 클래스인데 설마 평범한 소환술사는 아니겠지.

나는 그런 기대를 하며 검은 소환술사 클래스 정보를 열어 보았다.

이름 : 검은 소환술사

숙련도 : Max

소환가능 슬롯 : 30

특징 : 검은 소환술은 상대를 죽음에 몰아넣고 영혼을 속박하는 강제 소환술이다. 뛰어난 비기이지만 한 번 검은 소환술을 익히고 나면 일반 소환술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일부 엘리트들에게 비전되어 온 기술이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종적을 찾기 힘들어졌다. 이 기술을 익힌 당신은 명실상부 세상에서 유일한 검은 소환술사라고 할 수 있다.

‘상대를 죽음에 몰아넣고 영혼을 속박하는 기술?’

네크로맨서와는 다른 건가?

하지만 그보다는 다른 문구에 더 눈길이 갔다. 검은 소환술을 익히면 일반 소환술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말.

이 던전에 오면서 나는 가상현실 게임 공간에서 사용했던 환술을 떠올렸다.

결과적으로 검은 소환술사 클래스를 획득하면서 그때 다루었던 환수들은 영영 다룰 수 없게 된 것이다.

‘…….’

히든 클래스는 일반적으로 보통 클래스보다 강한 능력을 발휘하게 해준다. 하지만 대개는 그에 따른 반대급부가 존재했다.

적어도 가상현실 게임에서는 직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은 퀘스트를 달성으로 쉽게 얻을 수 있는 반면 선택의 여지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스으윽-

저절로 신체가 새로운 클래스에 맞추어 재구성되었다.

외관상 뚜렷한 변화는 없다.

대신 체내에 뿌듯한 기운이 가득 들어찼다. 머릿속이 밝게 깨인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마나양이 크게 늘어나고 마법 스킬 숙련도가 높아졌다.

‘한번 사용해 볼까?’

소환술사는 전용 스킬이 따로 없다. 레벨에 맞추어 소환가능 슬롯이 늘어나고 거기에 소환수들을 채워 넣을 수 있다.

레벨이 높고 강력한 소환수일수록 차지하는 슬롯이 많고 한 번 소환할 때 소모되는 마나가 컸다.

기본적으로 소환술사 본인보다 레벨이 높으면 환수로 삼을 수 없는데, 아마 검은 소환술사도 같은 한계가 적용될 것이다.

화악-

내 양손 위로 검은색의 마나가 휘감겼다.

[24시간 이내에 죽인 자를 소환수로 만들 수 있습니다.]

1. 라이에킹(Lv12) - 슬롯2

2. 라이에(Lv6) - 슬롯1

3. 라이에(Lv7) - 슬롯1

4. 라이에(Lv5) - 슬롯1

…….

‘응?’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기술이었다.

내가 죽인 몬스터들을 환수로 삼을 수 있다니…….

이는 일반 소환술, 또 네크로맨서 기술과도 달랐다.

목록엔 라이에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쭉 내려 보니 리에고와 네뭉도 보인다.

리에고의 슬롯은 0.5, 네뭉은 0.2였다.

가용한 30개의 슬롯을 저급한 몬스터로 꽉 채울 생각은 없었다.

소환술은 결코 만만한 기술이 아니니까.

한 번의 소환으로 적지 않은 마나를 소모해야 한다.

별스럽지 않은 소환수를 잔뜩 부리느니 근접 기술로 싸우는 편이 더 나았다.

그래도…….

모처럼 얻었으니 일반 소환수와 뭐가 다른지는 시험해 봐야겠지.

나는 목록 가장 상단에 있는 라이에킹을 선택했다.

휘잉-

내 앞에 갑자기 검은 회오리가 피어올랐다. 회오리 한가운데에 아까 목이 베였던 몬스터가 등장했다.

의아함이 가득한 눈을 끔뻑이는 라이에킹.

한참 두리번대던 놈이 나를 발견했다. 자기를 죽였던 남자라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고개를 처박았다.

“끼잉~ 끼이잉~”

이놈이 반란을 선동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담대함이나 용기보다는 약삭빠른 태세파악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필사적으로 낑낑대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일 정도다.

잠시 후, 라이에킹을 휘감던 회오리가 날카로운 칼날로 변했다. 칼날은 움직이지 못하는 몬스터의 몸통을 인정사정없이 베기 시작했다.

팍! 팍! 팍!

“꺄웅! 꺄우웅!”

한 번 죽었는데 다시 고통을 느끼는지 라이에킹이 비명을 지르며 버둥댔다.

털이 풀풀 날리고 피와 살점이 섞여 피 안개를 만들었다.

“으으…….”

지켜보던 아린이 얼굴을 찡그렸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바 있는 나는 고작 이 정도로 비위가 상하거나 하지 않는다. 끝까지 호기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살점이 모두 떨어진 라이에킹은 결국 내장까지 모조리 쏟아내고 뼈만 남았다.

하얗던 뼈에 남은 회오리가 녹아들어 거무스름한 빛깔로 바뀌었다.

“크르르…….”

낮은 울음소리를 내며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내 발 아래 머리를 조아렸다.

[라이에킹이 검은 소환수가 되었습니다.]

[슬롯 2가 소모되었습니다.]

[환술의 효과로 검은 소환수의 레벨이 ×1.5가 됩니다.]

[라이에킹의 레벨이 18이 되었습니다.]

“커허어엉!”

나는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에 숨을 멈추었다.

일반 소환술, 그리고 네크로맨서 스킬은 환수의 능력을 상승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소환수로 만드는 순간 디버프를 받는 경우가 더 많았다.

‘나보다 레벨이 높은 환수를 부릴 수도 있다는 뜻인가?’

이론상으로는 가능할 듯했다. 하지만 실제 적용하기는 쉽지 않을 터다.

마나 소모량이 클뿐더러 컨트롤하기도 어려울 거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더라도 레벨이 더 오르면 충분히 활용할 가치가 있어 보였다.

라이에킹의 머리 위에는 내 눈에만 보이는 녹색 게이지가 떠 있었다. 남은 소환 시간을 나타내는 게이지인데, 대미지를 입으면 더 빨리 줄어든다.

“괜찮네.”

새로 얻은 클래스를 시험한 나는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미소를 지었다.

9

[퀘스트 ‘세 시간 안에 3층 돌파하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900, GP +4,500을 얻었습니다.]

3층 세이브 존까지 도달하자 무엇보다 배가 무척 고팠다.

나는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아 인벤토리에서 찬합을 꺼냈다.

아린은 내가 펼쳐 놓은 음식을 보고 눈이 커졌다.

“이게 다 뭔가요?”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이야. 너도 같이 먹자.”

아린은 내가 내민 젓가락을 받아 들며 다시 물었다.

“주인님의 어머님이요?”

잠깐 생각하던 그녀가 놀란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면 주인님이 원래 살던 세상은 이곳이라는 건가요?”

“응,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은 밥부터 먹자.”

식탐 강한 고양이가 인간형으로 변신해 내 옆에 앉으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 늘어서 음식이 부족하게 생겼다옹.”

“오늘은 이거 먹고 돌아갈 거야. 집에 가서 더 먹으면 되지.”

암젤이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밥 하나를 입에 넣은 아린의 얼굴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

“맛있어요! 주인님의 어머님은 훌륭하신 분이군요!”

다소 뜬금없는 말이지만, 뭐 음식을 잘한다는 것도 훌륭하다는 기준에 포함될 수 있는 거겠지.

‘그나저나…….’

나는 젓가락을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아린을 보고 고민했다.

고양이로 변신할 수 있는 암젤과 달리 아린을 집으로 데려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호텔이나 모텔에 혼자 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지만 오래지 않아 좋은 해결책이 떠올랐다.

티코이.

그 녀석의 집은 매우 크다. 게다가 그라면 아린이 현실 적응을 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파티 개념으로 따져 볼 때 이번에 만난 NPC가 아린인 것은 참 다행이었다.

나나 암젤은 근거리 공격 스킬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버프 스킬을 구사하는 파티원이 생기면서 균형이 맞춰진 것이니까.

식사를 마친 우리는 1층으로 내려왔다.

일차 목표였던 ‘동료’ 퀘스트를 달성했으므로 굳이 무리를 할 필요는 없었다.

내일 와서 던전 공략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다만 이대로 집에 가기에는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평상복으로 갈아입을 수 있는 나나, 고양이로 변신하면 그만인 암젤과 달리 아린의 의상은 지나치게 눈에 띄었으니까.

던전을 나가기 전에 상점에 들르기로 했다.

아린은 자기가 던전 마스터를 하는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천막 건물을 발견하고 몹시 놀랐다.

“던전 안에 이런 게 있었네요?”

“나 때문에 생긴 거야. 여기에서 방어구 같은 걸 살 수 있어.”

[상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나는 함께 상점 안에 들어온 아린에게 말했다.

“갖고 싶은 의상을 골라봐.”

“네? 저는…… 돈이 없는 걸요.”

“걱정 마. 나한테 있으니까.”

“아, 감사합니다.”

이쪽 세상에 건너온 뒤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던 아린은 주인을 다시 만났다는 사실에 큰 안도감을 느꼈다.

파티에 합류하면서 그녀의 레벨도 상승했다.

나는 정보창을 보고 아린에게 ‘수면의 곡’과 ‘방패의 곡’이라는 새로운 스킬이 생긴 것을 확인했다.

전자는 적에게 수면을 유도하는 스킬이고, 후자는 아군의 방어력을 높이는 스킬이었다.

가상현실 게임 공간에서 그랬던 것만큼 당장 큰 위력을 발하기는 어렵겠지만 그것들이 가진 효력을 나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저걸로 하겠습니다.”

고민하던 아린이 손가락으로 의상 하나를 가리켰다.

나는 그것을 보고 암담해졌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의 의상이 하나같이 다 노출이 많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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