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독식왕 : 클리어러 047화
힘을 조절한다고 했지만 숨이 끊어져 버린 녀석이 대다수였다.
나는 아직 비틀거리며 바닥을 기고 있는 놈들을 한 마리씩 인벤토리에 넣었다.
[‘네뭉’ 한 마리를 얻었습니다.]
[‘네뭉’ 한 마리를 얻었습니다.]
…….
포획한 네뭉은 총 열 마리. 회수를 마치고 나서 평평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암젤이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그걸 만들 거냐옹?”
“응.”
암젤이 말하는 ‘그것’이란 합성으로만 만들 수 있었다.
혹시나 하고 검색해 본 적 있는데 아직 이 아이템이 거래된 이력은 없다. 제조한다면 ‘플레지킹 허니’처럼 나만 만들 수 있는 아이템이 하나 늘어나는 셈이다.
나는 방금 모은 재료들을 한데 꺼내놓았다.
리에고 날개 한 쌍, 그리고 열 마리의 네뭉.
네뭉들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메뉴-합성’을 선택하자 BGM이 흘러나왔다. 생명체가 포함된 합성은 상대적으로 실패할 확률이 높다.
나는 은근히 심리적인 압박을 해오는 음악을 들으며 재료를 섞어 모양을 만들기 시작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네뭉 열 마리를 가운데 뭉쳐 두고 날개 한 쌍을 양옆에 붙인다.
잠시 후,
[합성에 성공했습니다!]
[‘리에고 등불’ ×1을 얻었습니다.]
리에고 등불.
리에고와 네뭉으로 만들 수 있는 합성 아이템.
완성된 모양은 날개가 달린 등불과 같다. 생명력을 얻은 리에고 등불이 퍼드득 날개를 펴고 떠올랐다.
놈은 알아서 내 전방 2미터쯤에 자리를 잡았다.
어두운 던전에 들어오는 게이머들은 필수적으로 빛을 내는 도구를 지참한다. 던전에서는 전기를 쓸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천연 소재로 제작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리에고 등불처럼 알아서 빛을 내는 아이템이 있다면 당연히 그런 도구를 챙길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등불을 보고 암젤이 흥분해서 펄쩍펄쩍 뛰었다.
이 녀석은 전부터 리에고 등불 괴롭히기를 좋아했다.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이라 묘족의 본능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리에고 등불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고양이의 발톱을 피해 더욱 높이 날아올랐다.
나는 그것을 보며 다른 생각을 했다.
‘상점에 등록하면 잘 팔리겠군.’
며칠 전까지 돈을 벌기 위해 애를 썼기 때문에 자연히 생각이 그쪽으로 미쳤다.
대신 그러려면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등불의 지속 시간이 스무 시간에 불과하다는 것.
그것도 만들어진 직후부터 생명력이 소모된다.
‘기술적인 해결책이 필요하겠구나.’
그것을 지금 고민할 필요는 없다.
이런 걸 구상하는 데는 나보다 제격인 녀석이 있으니까.
6
[퀘스트 ‘다섯 시간 안에 1층 돌파’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2,500, GP +11,000을 얻었습니다.]
[레벨 36이 되었습니다. 스탯 포인트 3을 얻었습니다.]
예상대로 히든 퀘스트 보상은 없었다.
지금 내 수준에 F급 던전 한 층을 빠르게 공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아마도 D급 던전은 가야 ‘층 돌파’ 히든 퀘스트가 다시 생길 것이다.
나는 세이브 존에 나타난 상점을 바라보았다.
잠깐 고민을 했지만 이번엔 들르지 않기로 했다. 아직 GP가 충분하지도 않고 지금은 딱히 강화가 필요하지도 않으니까.
곧바로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세 종류의 몬스터가 있었다. 두 종류는 1층에도 있던 리에고와 네뭉이고, 다른 하나는 ‘라이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늑대형 몬스터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놈을 ‘동굴늑대’라고 불렀다. 검은 털을 가진 이놈들은 동굴에만 서식하니까.
다른 늑대들과 달리 무리 생활을 하지 않고 개체별로 따로 활동할 때가 많다. 하지만 드물게 리더십이 강한 놈이 나타나 집단을 이끌기도 한다.
F급 던전인 만큼 이곳에 나타나는 ‘라이에’는 소형이었다.
레벨은 4~5.
이번 층의 공략은 암젤에게 맡기기로 했다. 맹수는 맹수로 잡는 것이 편하기도 하고, 이놈이 아까부터 사냥에 집중하지 않고 등불만 못살게 굴고 있었으니까.
“야, 우리 놀러온 거 아니다.”
암젤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저놈이 자꾸 나한테 엉덩이를 흔든다옹.”
“네 착각이야.”
리에고 등불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지속 시간이 줄어든다. 그렇더라도 공략 중에 꺼질 일은 없겠지만 괜히 가만있는 녀석을 괴롭힐 필요는 없다.
더군다나 수명이 스무 시간밖에 안 되는 불쌍한 놈인데.
“……알았다옹.”
암젤이 체념하고 등불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평화를 찾은 리에고 등불이 몸을 흔들며 날아갔다.
“크르르르…….”
서식지를 침범당한 늑대들이 곳곳에서 눈을 빛냈다. 나는 딱 퀘스트를 달성할 만큼만 사냥하기로 했다.
바자야를 꺼내 시위를 당겼다.
‘유도살!’
빠르게 날아간 화살들이 저절로 몬스터를 찾아갔다.
푹! 푹!
“컹!
“커엉!”
[퀘스트 ‘라이에 한 마리 처치하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40을 얻었습니다.]
암젤은 표범을 소환했다.
“크르릉!”
호전적인 맹수가 늑대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덩치가 작고 공격력이 대단찮은 늑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강력한 맹수.
동굴 곳곳에 단말마가 울려 퍼졌다.
7
2층 중간쯤 왔을 때 암젤이 나를 돌아보았다.
“주인님, 뭔가 이상한 것 같지 않냐옹?”
“뭐가?”
“갑자기 늑대 숫자가 줄어들었다옹. 우리한테서 달아나는 놈들도 보았다옹.”
나는 암젤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아무 이유 없이 이런 말을 할 녀석이 아니니까.
라이에는 기본적으로 꽁무니를 빼고 도망가는 타입이 아니다.
라이에 말고도 지금껏 던전에서 상대한 대부분의 몬스터가 그랬다. 가상현실 게임 공간과는 달리 이곳의 몬스터들은 설정 자체가 그렇게 돼 있는 것인지 레벨 차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게이머를 공격하려고만 했다.
암젤의 말마따나 몬스터의 개체 수가 확연히 줄어든 느낌도 들었다.
“무슨 일이지?”
자연히 내 생각은 이곳에 있다는 NPC 쪽으로 향했다.
메인 퀘스트의 항목 자체가 ‘동료’인 것을 보면 곧 만나게 될 NPC가 적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티코이처럼 내게 섭섭한 마음을 품은 녀석이지 말라는 보장도 없었다.
짐작 가는 구석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으니까.
‘흐음…….’
지금은 생각해 봤자 답이 나오지 않았다.
‘F급 던전인데 별일이야 있겠어?’
암젤이 발견한 현상은 동굴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확연해졌다.
게다가 또 다른 사실까지 알아냈다. 라이에들은 우리에게서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동굴 안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귀를 세우고 뛰어 들어가는 모습은 달아나는 것과는 확실히 구별된다. 마치 누군가에게 부름을 받은 것 같이 움직였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낯선 광경인 것만은 분명하다.
‘분명 연관이 있어.’
이곳에 있다는 NPC.
그, 혹은 그녀는 던전 마스터일 확률이 높다. 나를 각성시킨 이가 티코이에게 그랬듯 목소리에 유인되어 던전에 들어왔을 거라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추측이니까.
던전의 몬스터들을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것은 마스터뿐이다. 그런 권한은 레벨이 높은 게이머도, 데미 마스터도 가지고 있지 않다.
‘생각보다 빨리 만날 수도 있겠는데……?’
몬스터가 적어지니, 발이 묶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2층에서 달성해야 하는 퀘스트를 모두 달성한 뒤 암젤에게 말했다.
“빨리 가자.”
“알았다옹.”
암젤은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덩치 큰 두 마리 치타를 소환했다.
레오파드 무늬를 지닌 날씬한 소환수들. 우리는 각자 한 마리씩의 치타 등에 올라탔다.
암젤의 레벨이 오르면서 소환술을 유지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현재 소환 가능 시간은 21분.
이 정도면 치타를 타고 2층 세이브 존에 닿기에 충분하다.
“달려라옹!”
암젤의 명령을 받은 치타들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8
아린은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긴 금발을 늘어뜨린 채 한 손에는 작은 하프를 들고 있었다.
은빛의 가슴 보호구와 스커트, 정강이 보호구를 제외한다면 하얀 피부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순진한 두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 담겼다.
‘대체 왜…….’
지금 그녀의 앞에는 덩치 큰 몬스터 한 마리가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수십 마리의 다른 몬스터…….
게다가 그 수가 점점 늘어나는 중이었다.
몬스터들이 자기를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먹이를 대하는 듯했다.
아린은 약 한 달 전에 이쪽 세상으로 왔다.
그 전에 그녀는 주인인 조성오, 그리고 다른 동료들과 함께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몬스터와 싸움을 하고 보상을 얻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생활.
그것이 수년 동안 계속된 그녀의 삶이었고, 동시에 즐겁고 행복한 일상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갑자기, 별다른 이유도 없이 끝나 버렸다.
주인님이 사라지고 동료들이 흩어졌다. 구심점이 사라진 세상은 점차 불온함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혼란에 사로잡혀 있던 어느 날,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이면의 세상으로 가라. 그곳에서 너의 주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목소리를 들은 그녀는 몹시 기뻤다. 원래부터 순진한 성격이라 의심 없이 그 말을 믿었다.
그러나…….
차원문을 통과한 그녀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했다.
건물도, 사람들도, 심지어 먹는 것까지 모두 다른 세상.
목소리가 말했다.
-던전으로 들어가라. 그곳이 너의 은신처가 될 것이다. 던전에서 기다리면 주인이 너를 찾아갈 것이다.
그때서야 조그만 의구심이 들었다.
“……당신은 누구죠?”
물음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가까운 던전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그 안에서 몬스터들을 보았다. 원래 살던 세계에서도 숱하게 보았던 놈들.
레벨이 낮은, 결코 두려워해야 할 놈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클래스는 ‘악사’다. 파티에서 맡았던 역할은 주로 치유와 버프였다.
공격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인 위력이 낮다. 더군다나 지금은 그조차 사용할 수 없었다.
아린은 그제야 절망적인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차원문을 통과하면서 능력이 사라진 것이다!
겁에 질려 있는 그녀에게 목소리가 말했다.
-너에게 역할을 주마. 이 던전의 마스터가 되어라.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걸 거부하면 당장 몬스터의 밥이 될 상황이었다. 던전 마스터가 된 그녀는 동시에 얼마의 능력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난국을 벗어날 수준은 아니었다.
목소리의 안내로 던전 마스터 일을 익혔다.
요령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당연하게도 그 일에 집중할 수는 없었다.
관리가 잘 이루어지지 않자 던전의 자정작용이 문제를 일으켰다 코어의 균형도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상황이 결정적으로 변한 것은 며칠 전이었다.
여느 때처럼 구슬픈 선율로 하프를 연주하던 그녀는 갑자기 가슴에 녹아드는 따뜻한 감각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닿은 곳에 있던 던전 코어가 환하게 빛을 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