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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44화 (4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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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 클리어러 044화

Chapter 16 - 세 번째 NPC

1

업로드하는 족족 팔리는 상품도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세계 최대 암거래 사이트이고 그 안에 상점까지 개설했다지만 이미 거래되고 있던 상품들은 다른 상점들이 단단히 알을 박아둔 상태였다.

암거래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신뢰가 생명이다. 먼저 거래하던 곳을 놔두고 굳이 새로운 상점을 찾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만 배송비나 안전 등을 고려할 때 한국의 컨슈머들은 우리 쪽 상점을 찾을 확률이 높았다. 아직 한국에서 카오스 게이머 닷컴 안에 상점을 개설한 판매자가 없기 때문에.

하지만 그런 사실이 한국 소비자들 사이에 알려지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했다.

퀘스트 만료일까지 남은 시간은 4일.

그 안에 10억을 마저 벌어들일 수 있을까?

하릴없이 핸드폰 모니터를 새로고침 하고 있었더니 티코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주인님.”

“응?”

“던전 말입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던전이라니? 무슨 말이야?”

대답을 하면서도 내 눈은 핸드폰 화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주인님이 저를 대신해 던전 마스터가 되었으니 관리를 하셔야 합니다. 제가 하고 싶어도 코어가 더 이상 제 말을 듣지 않으니까요. 벌써 며칠째 방치를 했는데 한 번은 찾아가서 관리 작업을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아…….”

나는 그제야 내가 티코이 대신 집 앞 던전의 마스터가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가서 뭘 해야 하지?”

“별것 없습니다. 코어를 통해 던전을 둘러보면서 몬스터들이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고, 혹시 배치가 틀어진 부분이 있으면 조정을 해주시면 됩니다. 또 몬스터들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경우 자정작용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특별히 문제가 있겠다 싶은 녀석은 직접 찾아가서 달래주어야 합니다. 물론 말을 듣지 않는 녀석이라면 죽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겠죠. 그리고…….”

별것 없다는 티코이의 설명은 십 분가량 이어졌다.

나는 중간부터 기억하기를 포기했다.

젠장.

그 많은 일을 하면서 어떻게 던전 공략을 다니라는 거야. 거기다 합성까지 해야 하는데.

게임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나이지만 건설, 매니지먼트 시뮬레이션 게임은 기피하는 편이었다.

왜냐면 해도 해도 끝이 없으니까.

나는 속전속결로 클리어한 뒤 다른 게임으로 넘어가는 것을 선호하는 게이머다.

“잠깐!”

손을 들어 티코이의 말을 멈추었다.

“왜 그러시죠?”

나는 대답 대신 메뉴를 활성화했다. 던전 마스터가 되게 하면서 그 관리까지 모조리 내가 하도록 시켰을 리가 없다.

퀘스트를 주면서 공략할 시간을 부족하게 만들었다면 자체로 모순이니까.

메뉴를 열어 훑어보던 나는 금방 찾고자 하는 항목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던전] “new”

새로 생긴 메뉴답게 옆에 new가 붙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자 ‘던전 마스터’ 항목이 있었다. 그 안에 ‘관리’ 메뉴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하위 항목에 내가 바랐던 ‘위임’이 있었다.

“휴우…….”

선택할 수 있는 던전은 두 개였다. F급 던전과 E급 던전 각 하나씩.

F급 던전을 선택하자 두 명의 이름이 나타났다.

[티코이]

[암젤]

고개를 돌려 암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인간형으로 변신한 채로 소파 위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속옷이나 다름없는 옷을 입고 엉덩이가 내 쪽을 향해 있어서 꽤 선정적인 장면이었지만 그걸 떠나 던전을 관리하는 일을 그녀에게 맡긴다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였다.

“음냥~ 티코이 과자 더 가져오라옹.”

잠꼬대를 하면서도 뻔뻔하게 다른 NPC를 부리는 녀석에게 책임감이 필요한 일을 맡길 수는 없다.

아이템 판매 일이 더해지는 바람에 업무가 과중된 것 같아 미안하기는 하지만 역시 이 일을 맡길 NPC는 하나밖에 없었다.

“티코이, 네가 나 대신 던전 마스터를 계속 맡아주면 안 될까?”

티코이는 머리 위로 쫑긋 귀를 세운 채 까딱까딱 움직였다.

“당연히 되지요, 주인님. 어차피 제가 하던 일인 걸요.”

“녀석.”

이렇게 충성도가 높은 NPC를 십 년 전에 그냥 내쳐 버렸었다니.

새삼 오래전 일을 반성하게 된다.

티코이의 몸에서 번쩍 환한 빛이 터졌다. 그는 자기 몸을 더듬더니 싱긋 웃음을 지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주인님.”

당장의 책임감에서 벗어난 나는 어차피 할 일이 없었으므로 메뉴를 계속 살펴보았다.

관리 메뉴 안에는 ‘원격 조정’이라는 것이 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터치를 하자, 키잉- 하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나타난 메시지.

[원격 조정을 ‘On’으로 설정해 두면 소유한 던전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원격 조정을 켜두시겠습니까?]

“그래.”

[설정되었습니다.]

[접속을 원하는 던전을 선택하십시오.]

열거된 두 개의 던전은 역시 내가 모든 퀘스트를 완료하고 던전 마스터가 된 곳들이었다. F-001, E-001이라는 이름 옆에 조그맣게 그림이 그려져 있다.

던전의 특징을 나타내듯 하나는 검은 산의 모양이고 다른 하나는 숲 모양의 그림이었다.

나는 E급 던전을 터치했다.

원래 있던 화면이 사라지고 커다란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사람 머리통만 한 구슬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구슬 옆에 메뉴가 나타났다.

[던전 탐색]

[주변 조사]

“오오!”

메뉴를 통해 코어를 조정할 수 있다니. 이렇게 되면 굳이 일일이 던전을 찾아갈 필요가 없어진다.

그 사실을 말해주자 티코이가 반색했다.

“그것 참 잘됐네요. 그러면 E급 던전의 마스터도 저한테 위임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주인님은 저보다 할 일이 많은 분이니까요.”

딱히 티코이보다 내가 바쁘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원격 조정을 할 수 있다면 던전 마스터로서의 업무가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다.

간단한 관리는 내가 원격으로 하고 필요한 경우만 티코이를 파견하면 되니까.

다행히 한 명의 NPC를 복수의 던전 마스터로 임명하는 것에는 제한이 없었다.

티코이의 몸에서 또 한 차례 밝은 빛이 터졌다.

위임 작업을 마무리하고 나서 나는 코어 접속 메뉴로 돌아왔다. 새삼 한 가지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동료 NPC를 늘리는 것.

메인 퀘스트 중에도 버젓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미션. 꼭 퀘스트가 아니더라도 동료가 늘어난다는 것은 당연히 환영할 일이다.

앞으로는 공략할 던전의 수준도 높아질 거고, 카오스 성향의 게이머들과 싸우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니까.

‘던전 탐색’은 해당 던전 안을 살피는 메뉴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주변 조사’는 말 그대로 던전 주위를 조사하는 메뉴이리라.

전에 티코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F급 던전은 코어의 파장이 닿는 범위가 작아서 다른 NPC를 찾는 일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E급 던전의 코어는 더 넓은 지역을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주변 조사’를 터치했다.

그러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가 먼저 나타났다.

[관련 활동을 시작하여 ‘NPC 1인 영입’ 퀘스트가 수락되었습니다. 남은 기한은 10일입니다.]

‘젠장!’

정말 피도 눈물도 없구나.

내가 느끼는 황당함과는 무관하게 코어가 작동했다.

둥그런 구슬 안에 흐릿한 화면이 떠오르더니 거짓말처럼 시야가 암전되었다.

어렴풋하게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하는 티코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목소리도 금세 어둠과 함께 묻혀 버렸다.

내 오감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코어의 작용과 일체화되었다.

내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가지가 뻗어 있었다.

단순화된 영상이지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저절로 알 수 있었다. E급 던전과 연결된 주변의 던전들.

한 바퀴 빙 둘러본 결과 그것이 모두 실체와 연결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가지는 중간에 끊겨 있고 소수만 실체에 닿아 있다.

아마도 E급 파장의 한계 때문이리라.

나는 확실하게 실체와 닿아 있는 여섯 개의 던전에 의식을 집중했다. 그러자 의미 없는 가지들이 하나씩 시야에서 지워졌다.

“으음…….”

내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정보가 한꺼번에 닥쳐온다. 던전의 외형, 그 안의 몬스터들, 그리고 사냥 중인 게이머들의 모습.

하지만 그것들은 당연히 내가 원하는 정보들이 아니었다.

나는 집중하여 정보를 간추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안개 속을 허우적대는 것처럼 컨트롤하기 쉽지 않았지만 차차 요령이 생겼다.

두통을 유발하던 복잡한 영상들이 하나씩 꺼져 갔다. 이내 주위가 완벽한 침묵에 휩싸였다.

그것은 그것대로 불안감을 야기했다.

‘설마…… 없나?’

또 다른 던전을 공략하고 그곳의 코어를 조사해 보아야 하는 걸까?

하지만 그것은 안 될 말이었다.

퀘스트가 이미 수락되어 버렸으니까.

어떻게 십 일 안에 던전 하나를 공략하여 그곳의 코어를 또 조사한단 말인가? 게다가 그 코어를 조사한다 하더라도 NPC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때.

번쩍!

잠잠하던 시야 바깥쪽에서 한 줄기 빛이 터졌다. 익숙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전해졌다.

암젤, 그리고 티코이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

벌써 세 번째라 구체적으로 특정화할 수 있는 감각이다. 빛이 터진 던전은 최근 공략한 E급 던전과 멀지 않았다.

나머지 던전을 시야에서 지우고 그곳을 향해서만 의식을 집중했다. 하지만 끝내 NPC가 누구인지는 밝혀낼 수 없었다.

머리만 지끈거릴 뿐 NPC와 관련된 영상은 선명해지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고 천천히 눈을 떴다. 입술 사이에서 저절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깜짝이야!”

나는 가장 먼저 보인 한 쌍의 눈동자에 기겁하며 몸을 뒤로 뺐다.

암젤이 양손을 내 볼에 대고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주인님, 괜찮냐옹?”

“응, 괜찮으니까 떨어져.”

“주인님이 흰자위를 드러내고 허우적거리고 있어서 놀랐다옹.”

“저도 놀랐습니다, 주인님.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티코이도 안절부절못하며 물었다.

나는 슬쩍 웃음을 띤 채로 대답했다.

“동료를 한 명 더 찾은 것 같아.”

내 말을 이해한 암젤이 항의하듯 말했다.

“여기서 파티를 늘릴 필요가 뭐가 있냐옹?”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메뉴창을 열었다. 이번에 확인한 것은 메인 퀘스트였다.

저절로 수락된 ‘동료’ 항목의 퀘스트.

[NPC 1인 영입]

목표 : 제한된 기간 안에 NPC 한 명을 영입하라.

수락 기한 : 72시간. 기한 안에 수락하지 않으면 퀘스트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퀘스트 열람 후 관련된 활동을 시작하면 자동 수락한 것으로 인정)

기간 : 10일

제한 : 이미 영입한 NPC는 제외

보상 : 히든 클래스 랜덤 획득

*실패 시 : 레벨 5 하락, 메인 퀘스트 [동료] 항목이 사라짐(복구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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