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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38화 (38/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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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038화

    암시장 얘기가 나오자 티코이의 눈이 반짝 빛났다. 중지로 안경을 끌어 올리더니 입을 열었다.

    “암시장의 거래는 온, 오프라인 두 가지 경로로 이루어집니다. 암거래를 하면서 신분을 노출하고 싶어 하는 게이머는 거의 없기 때문에 전체 거래의 80퍼센트 이상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죠.

    수백 개의 사이트가 있지만 공신력이 있는 사이트는 서너 개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중 제가 주목한 것은 전 세계 암거래 사이트 중 가장 큰 ‘카오스 게이머 닷컴’이라는 곳입니다.”

    “카오스 게이머 닷컴?”

    나는 익숙한 단어의 조합에 놀랐다.

    카오스와 오더는 게이머의 성향을 가르는 용어인데 왠지 이것이 단순한 우연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티코이는 말을 이었다.

    “이 사이트는 절대적인 공신력을 자랑합니다. 온라인상의 전체 암거래 60퍼센트 이상이 이 사이트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 증가 추세 또한 가파릅니다. 이 사이트가 그만큼 공신력을 얻게 된 데는 사기 거래가 이루어질 확률이 0퍼센트에 수렴하기 때문입니다.”

    “0퍼센트라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물론 초기에는 다른 사이트와 마찬가지로 카오스 게이머 닷컴 또한 사기 거래가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거래를 만든 당사자가 전부 보복을 당했습니다. 거래 상대방이 보복을 한 게 아니라 사이트 내에서 직접 제재를 가한 것이죠. 그중 일부 사진이 공개됐는데, 살인은 물론, 신체 일부를 절단하는 것과 같은 끔찍한 보복이 주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더불어 금전적인 보상은 약관상 열 배를 물도록 되어 있죠.”

    “도시 전설 같은 이야긴데? 그게 실제로 가능해?”

    “저도 백 퍼센트 믿을 수는 없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보복 사진의 일부가 현재도 인터넷상에 떠돌고 있고, 실제 공신력이 그만큼 높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왠지 무시무시하네.”

    “바꿔 말하면 사기 거래만 아니라면 일반 온라인 거래 이상으로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미 제가 사이트에 아이디를 하나 만들어 두었습니다. 물론 가짜 신분으로 아이피를 추적할 수 없게끔 만들었죠. 이게 이렇게 쉬울 줄 알았으면 진작 이쪽으로 구상을 할 걸 그랬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일단 시제품을 정하는 게 먼저입니다. 혹시 생각하신 아이템이 있나요?”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지금까지 들어갔던 던전이 두 군데밖에 없으니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았다.

    “네가 던전 마스터인 곳에서는 마음껏 재료를 공수할 수 있다고 했지?”

    “네, 무한정이라는 말씀은 못 드리겠습니다만, 어느 정도 물량은 자유롭게 공수할 수 있습니다.”

    “그럼 ‘플레지킹 허니’로 하자.”

    그밖에 ‘베툴루 독화살’과 같은 아이템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으니 나 말고는 사용할 수 없었다.

    이것저것 따져 보았을 때 플레지킹 허니가 가장 적당해 보였다.

    “재료가 무엇이죠?”

    “플레지 허니와 플레지킹 스팅.”

    “플레지 허니는 가진 게 좀 있는데, 플레지킹 스팅은 따로 구해야겠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 말에 암젤이 귀를 쫑긋 세웠다.

    “내가 잘못 들었나옹? 여우 네가 플레지 허니를 가지고 있다고?”

    즉각적인 반응에 되레 티코이가 당황했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그…… 저……. 나 조금만 맛보여 주면 안 되겠냐옹? 지난번에 먹은 이후로 꿈에서도 보일 지경이다옹.”

    “너 하는 걸 봐서는 저~ 언혀 주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데?”

    “이잇!”

    “티코이 님, 한입만 주세요~ 라고 공손하게 말하면 다시 생각해 보지.”

    “윽!”

    암젤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녀의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30초가량 침묵이 흐른 뒤 암젤의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며 열리기 시작했다.

    “티, 티코이 님, 하, 한입만 주, 주, 주…….”

    보기만 해도 가련한 장면이었다. 자존심을 버릴 정도로 플레지 허니가 먹고 싶은 건가?

    암젤의 필사적인 노력은 일 분 이상 이어졌다.

    “주, 주, 주…….”

    “아, 알았다. 줄 테니까 그만해.”

    티코이는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얼음을 띄운 꿀물 두 잔을 들고 나타났다.

    “드십시오, 주인님.”

    내게 먼저 한 잔을 건네고, 암젤에게도 한 잔을 주었다.

    꿀물을 본 암젤의 입이 함지박하게 벌어졌다.

    ‘겉으로는 암젤이 무시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페이스는 티코이가 잡고 있군.’

    옆에서 이들의 변화하는 관계 구도를 지켜보는 것도 제법 흥미진진했다.

    꿀물을 한 모금 마시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물론 일반인이 마셔도 충분히 맛있지만, 플레지 허니로 만든 꿀물은 게이머에게 더욱 특별한 음료였다.

    마나와 체력이 소량 회복되고 정신적인 고양감 또한 상당했다.

    나는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티코이에게 물었다.

    “혹시 암시장에서 스킬 스톤이나 스탯 스톤이 거래된다는 이야기는 없었어?”

    “스킬 스톤이요?”

    티코이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한데 그런 아이템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꼭 거래되지 않는다고 볼 수만은 없죠. 카오스 게이머 닷컴에서도 거래 품목이 등급별로 구분되어서 일부 물품은 소수의 멤버에게만 공개하고 있거든요.

    원하시면 제가 좀 더 알아볼까요?”

    “아니야.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지금은 플레지킹 허니 거래에만 집중하자.”

    “네, 잘 알겠습니다.”

    단순히 생각해도 카오스 게이머 닷컴에서 스킬 스톤이나 스탯 스톤에 대해 알아본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이런 조사는 좀 더 개인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그것도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을 통해.

    나는 인벤토리에서 장비를 꺼냈다.

    피오리오 창, 아르바난 세트, 그리고 결정석 십여 개였다.

    “이번엔 이걸 업그레이드해 줘.”

    암젤 역시 인벤토리에서 묘족의 코스프레 No.2를 알아서 꺼냈다.

    “내 것도 부탁한다옹, 티코이.”

    한 개라도 많은 아이템을 다루는 것이 결국 티코이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능력을 자꾸 사용해야 숙련도도 빨리 오르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파장 분위기가 형성되자 티코이의 불안한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가실 겁니까?”

    “응, 그래야지.”

    “디저트도 먹었고 꿀물도 먹어서 배부르다옹. 이곳에 더 있을 이유가 없다옹.”

    “저…… 오늘도 자고 가지 않으실 겁니까? 주인님께서 좋아하실 만한 동영상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취향을 정확하게 몰라서 3테라바이트쯤 테마별로 저장을 해두었습니다만.”

    “헉!”

    나는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그거 혹시 외장 하드에 담아줄 수 있어?”

    “물론이지요. 하지만 그보다 저희 집에 구비된 홈시어터로 리얼하고 웅장하게 즐기시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음…….”

    나는 고통스러운 기분으로 티코이의 제안을 거절했다.

    “내일은 던전 마스터를 사냥해야 해서…… 체력을 너무 쓰면 안 되니까…….”

    “네……. 그것 참 아쉽네요.”

    돈을 많이 벌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 내 방에도 반드시 홈시어터 시스템을 구비하고 말리라.

    “살펴 가십시오! 주인님!”

    티코이는 내 당부를 그새 까먹었는지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들을 만큼 큰 소리로 배웅을 했다.

    5

    짹짹.

    결전의 아침이 밝았다.

    몬스터를 사냥하는 일은 내게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만큼 일상적인 일이지만 그래도 보스전을 치를 때만큼은 느낌이 각별했다.

    만약 현실로 돌아오기 전의 상태였더라면 어떤 보스급 몬스터를 상대하더라도 별다른 감상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능력이 초기화되면서 사냥할 때의 긴장감이 부활했다.

    물론 이것은 내게 좋은 일이다.

    “누나, 안녕하세요.”

    기분 탓인지 관리소 직원 누나는 처음보다 옷차림이 더 화사해진 것 같았다.

    “어제 미용실 다녀오셨어요? 헤어스타일이 바뀌었네요?”

    “어머? 알아봐 줘서 고마워.”

    [호감]

    [빅호감]

    마인드리더는 일반인을 상대로도 통하므로 어느 정도 능력을 컨트롤할 필요가 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사용하면 마나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므로.

    하지만 지금과 같은 사용은 괜찮다.

    하루의 시작을 기분 좋게 할 수 있으니까.

    물론 주인을 바라보는 암젤의 마음은 또 달랐다.

    ‘주인님이 여자한테 끼를 부리기 시작했다옹. 이러다가 동영상이 실전이 되게 생겼다옹.’

    6

    던전에 들어온 나는 귀환서가 놓인 단상으로 걸어갔다.

    이 던전은 7층짜리였으므로 지금까지 귀환서는 총 여섯 장이 활성화되었다.

    암젤과 함께 1층 세이브 존으로 갔다.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싸움이 보스전인 만큼 충분한 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E급 던전에서 상점에 들르는 것은 첫날 이후 처음이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GP는 324,000.

    [상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암젤은 또 자기 옷을 사주지 않을까 싶어 기대하는 얼굴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무시했다.

    상점에 있는 묘족 의상 중 암젤이 입고 있는 ‘묘족의 외출 No.4+’보다 더 나은 의상은 없다.

    살 때 그대로였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티코이의 업그레이드를 거친 상태였다.

    비슷한 성능의 의상을 비싼 GP를 지불하고 또 사는 것은 명백한 돈 낭비니까.

    먼저 나는 2,000GP짜리 중급 포션 열 개를 샀다.

    나머지 GP는 중급 스킬 강화석을 사는 데 모두 투자했다.

    강화 순서를 어떻게 할지는 미리 시뮬레이션을 해두었다.

    로또는 당첨될 경우 효과 지속 시간이 짧기 때문에 막상 타임이 흘러가면 고민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강화할 최우선 스킬은 ‘유도살’이다.

    나는 중급 스킬 강화석 여섯 개를 일렬로 늘어뜨리고 로또를 사용했다.

    상점 안의 시간이 느려졌다.

    허공에 떠오른 일곱 개의 공이 열리고 당첨을 확인하는 일련의 과정이 지나갔다.

    [축하합니다! 로또 4등에 당첨되었습니다!]

    [당첨자의 모든 스탯이 20초간 30퍼센트 상향됩니다.]

    “좋아!”

    결과를 확인한 나는 재빨리 첫 번째 강화석을 손에 쥐었다.

    [중급 스킬 강화석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그래.”

    [강화하길 원하는 스킬을 선택하십시오.]

    나는 눈앞에 정렬한 스킬 목록 중 ‘유도살’을 골랐다.

    강화를 시작하자마자 손 안에서 붉은빛이 터졌다.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스킬 유도살이 C등급이 되었습니다.]

    “오케이!”

    다음 강화석을 손에 쥐었다.

    [강화에 실패했습니다.]

    그다음도 실패.

    연이어서 총 네 번의 실패가 이어졌다. 이제 남은 강화석은 단 하나.

    ‘처음부터 성공했다고 너무 들떴나 보네.’

    나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마음을 비우고 마지막 강화석을 손에 쥐었다.

    [축하합니다! 강화에 ‘대성공’했습니다!]

    [유도살의 등급이 한 단계 올라 B등급이 되었습니다.]

    [대성공의 효과로 스킬이 진화했습니다.]

    [‘유도살’이 ‘유도살+’가 되었습니다.]

    [스킬의 위력이 25퍼센트 증가합니다!]

    [콤보의 발동 속도가 30퍼센트 빨라집니다!]

    “우와!”

    설마하니 이번에도 대성공이 나올 줄은 몰랐다.

    ‘로또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물론 로또 말고도 간접적인 ‘대성공’의 요인들이 있었다.

    어느덧 내 레벨도 33이 되어 행운 스탯의 수치가 39에 이르렀다. 더구나 등에는 행운을 4 올려주는 바자야가 꽂혀 있다.

    ‘이번 강화도 성공적이군.’

    나는 암젤과 함께 기분 좋게 상점을 나왔다.

    이제 준비가 끝났으니, 다음은 던전 마스터를 공략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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