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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36화 (36/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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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036화

    Chapter 14 - E급 던전

    1

    집에 돌아와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난 뒤 나는 곧바로 다시 집을 나섰다. 자는 듯했던 암젤이 내가 외출하는 기색을 눈치채고 따라 나왔다.

    앞발로 눈을 비비며 물었다.

    “어디 가는 거냐옹?”

    “티코이 만나러.”

    “걔는 왜 만나러 가는 거냐옹? 부르면 자기가 올 텐데.”

    “가까운 데 사는데 한번 들러주는 게 도리일 것 같아서. 본인이 한번 오라고 노래를 부르는 것도 있고.”

    아닌 게 아니라 티코이의 집은 우리 집에서 불과 십오 분 거리였다. 그것도 걸어서.

    근처에 F급 던전이 있어서 이 일대에는 주거지가 많지 않다.

    원래 있던 아파트들이 헐리고 그 자리에 소규모 주택 단지가 들어섰다.

    다른 곳보다 상대적으로 땅값이 싸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에 그럴 듯한 주택을 지어놓고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당연히 그런 사람의 상당수는 게이머였다.

    이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F급 던전을 들락거리는 수준의 게이머들이다.

    일터가 가깝고 일반인보다 몬스터의 위협을 적게 느끼는 터라 이런 식의 선택도 가능한 것이다.

    때문에 동네의 풍경은 조금 기이했다. 일반인들이 사는 서민형 아파트가 있고, 게이머나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사는 주택 지역이 있다.

    티코이는 바로 이 고급 주택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동네에서 가장 크고 그럴 듯한 집의 소유주가 그였다.

    ‘대체 어떻게 돈을 번거지?’

    나랑 현실로 나온 시점도 비슷할 텐데, 빚이 없다고는 해도 짧은 시간에 이만큼 돈을 벌었다는 것은 뭔가 특별한 수가 있었다는 뜻이다.

    ‘대단한 녀석이야.’

    티코이의 집은 저택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컸다.

    물론 서양 부자의 대저택 같은 규모는 아니지만, 적어도 중소기업 사장님들이 살 만한 집의 규모는 되었다.

    “와~ 여우 녀석, 이런 데서 살고 있었던 거냐옹? 당연히 주인님을 이 집으로 모시고 자기가 그 아파트로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냐옹?”

    “너 참 자기 거 아니라고 쉽게 말하는구나.”

    띵동.

    벨을 누르자 즉각 문이 열렸다.

    달칵.

    “주인님, 오셨습니까!”

    인간형으로 변신한 티코이는 맑은 눈으로 우리를, 아니, 나를 반겼다.

    벨소리를 듣고 현관으로 나왔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

    현관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얼마나 기다렸어?”

    “삼십…… 아니, 십 분밖에 안 기다렸습니다.”

    “아, 그래.”

    ‘삼십 분 넘게 기다렸나 보군.’

    나는 앞으로 티코이 집에 올 때는 너무 빨리 연락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복도를 지나 거실로 가자 테이블 위에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식사를 하고 오셨다고 해서 간단한 디저트를 준비했습니다. 호텔 제과점이나 해외 직수입으로 구입한 것들인데,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단 걸 좋아하나 보구나.”

    “아니요. 저는 단 음식은 별로 안 좋아합니다.”

    “응?”

    “주인님이 저희 집을 방문해 주실 것을 대비해 미리 주문해 둔 것들입니다.”

    “으음…….”

    이쯤 되면 슬슬 부담스러워진다.

    나와는 달리 암젤은 인간형으로 변신한 뒤 자연스럽게 소파로 가서 앉았다.

    양손에 마들렌과 컵케이크를 들고 티코이에게 물었다.

    “야, 여우! 마실 것은 없냐?”

    순간 티코이의 이마에 핏발이 섰다. 하지만 그는 바로 표정을 바꾸고 내게 물었다.

    “원하시는 음료 있으십니까? 과일 주스부터 와인까지 그럭저럭 구색은 갖추어 두었습니다.”

    “그냥 사이다면 돼.”

    “나는 오렌지 주스. 백 퍼센트 아니면 안 마신다옹.”

    암젤의 말에 티코이의 얼굴이 굳어졌다.

    잠시 후, 티코이가 음료수를 가지고 나타났다. 적어도 모양새로 보면 티코이가 집사, 암젤이 집주인 같았다.

    “캬! 이거 맛 괜찮은데? 너 보기보다 센스 있다?”

    “그, 그래?”

    암젤의 태도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티코이는 자기도 모르게 조금 기뻐했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피오리오 장갑과 신발을 꺼냈다. 전에 맡긴 가죽옷을 제외한 나머지 세트 아이템이었다.

    결정석 몇 개도 함께 꺼냈다.

    “오늘은 이걸 맡기려고 들른 거야. 새로운 방어구가 생겨서 여유가 생겼거든.”

    나는 암젤에게도 말했다.

    “네가 입고 있는 옷을 벗어서 티코이에게 주도록 해.”

    암젤은 조금 못마땅한 얼굴이었지만 옷을 벗은 뒤 티코이에게 주었다.

    티코이가 방어구들을 한쪽으로 챙기며 말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는 고급스러운 가구로 꾸며져 있는 거실을 둘러보았다.

    “그건 그렇고, 너 언제 이만큼 돈을 모았냐?”

    “맞다옹. 돈 벌었으면 주인님한테 먼저 갖다 바쳐야 할 것 아니냐옹.”

    “아! 면목이 없습니다! 당장 이 집을 주인님께 바치겠나이다!”

    티코이는 황송하게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궁금해서. 너도 나랑 같은 시기에 이쪽 세상에 나왔잖아.”

    “네?”

    티코이는 상체를 세우더니 잠깐 뭔가 생각을 했다.

    “아, 돈 버는 법 말씀이시군요. 저한테는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라서……. 주인님이 그런 걸 고민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자연스러운 일?”

    “이 세상은 게이머가 돈을 벌기 아주 쉬운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주인님이나 저에게는 더더욱 쉬운 일이지요.”

    “자세히 말해봐.”

    “저 같은 경우는 던전 마스터의 지위를 이용했습니다. 던전 마스터가 되면 몬스터들이 저절로 제 명령을 따릅니다. 말하자면 플레지도 꿀을 갖다 바치고, 곤파스킹도 곤파스킹 머시룸을 갖다 바친다는 말씀이죠.

    거기다 한 달에 한 번씩 다량의 결정석이 생깁니다. 매달 던전이 리셋되면서 몬스터들이 결정석으로 바뀌는 시기가 있거든요. 그것들이 저절로 던전 마스터의 방 안에 쌓입니다. 저도 한 번밖에 수거하지 않았지만 그 양이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게 있었다는 말이야?”

    “그다음은 아주 쉽습니다. 연구용 결정석을 제외한 나머지는 직접 온라인으로 시세를 보면서 비쌀 때 팔아넘겼습니다. 대개 관리소에서는 결정석 가격을 후려치거든요. 세금 혜택을 준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눈속임일 뿐입니다.

    정부는 대기업에서 정기적으로 리베이트를 받고, 대기업은 시세보다 싼 가격에 결정석을 구입해 가는 겁니다. 재주는 게이머가 부리고 돈은 공무원이나 사업하는 놈들이 챙겨가는 형국이지요.”

    “맞아, 나도 암시장에서 직접 거래하면 결정석을 비싸게 팔 수 있다고 들었어.”

    “네, 맞는 말씀이기는 합니다만 저는 불법 루트는 이용하지 않습니다. 제 신분이 가짜이니만큼 행동에 조심할 필요가 있거든요.”

    나는 감탄하며 무릎을 탁 쳤다.

    “대단한데?”

    열 살에서 멈춘 현실 감각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이런 일을 하고 있다니, 역시 난놈은 난놈이었다.

    티코이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졌다.

    “주인님께서 돈을 벌고 싶다는 말씀이시죠…….”

    “그냥 네가 하는 방식에 나도 동참하는 정도로 괜찮을 것 같은데?”

    “아닙니다!”

    티코이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주인님께서 돈을 버시겠다는 데 저처럼 허접한 방법을 쓰게 하실 수는…….”

    나는 주인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티코이를 보다가 암젤에게 시선을 옮겼다.

    암젤은 여전히 디저트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황홀경에 빠져 주인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관심도 없었다.

    그녀 머리 위로 현재 감정 상태가 나타났다.

    [맛있음!]

    [왕맛있음!]

    생각을 마친 티코이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주인님! 차라리 사업을 해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사업?”

    “네, 주인님이 갖는 상대적인 강점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감히 저 따위는 흉내 낼 수 없는 주인님만이 가진 위대함!”

    “오버하지 말고, 그게 뭔데?”

    “주인님, 합성하실 수 있으시죠?”

    “응.”

    “주인님의 합성으로 만들어진 아이템은 지금 세상에는 없는 것들입니다. 만약 성능이 밝혀지면 사려고 하는 게이머들이 줄을 설 겁니다.”

    “오!”

    이 똘똘한 녀석!

    티코이는 혼자 팔짱을 끼고 사업 구상을 이어갔다.

    “일단 재료를 모아 아이템을 만들고, 효력을 인증받아 특허를 출원한 뒤, 법인을 설립하여 홍보를 하면…….”

    “잠깐만, 그거 엄청 복잡해 보인다?”

    “네? 그런가요?”

    “그거 다 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려?”

    “짧게 잡아도 일 년 이상……. 하지만 일단 절차만 끝나면 돈을 왕창 벌 수 있을 겁니다. 주인님이 더 이상 던전에 들어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요.”

    “뭐? 던전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고?”

    티코이의 마지막 말은 마치 내 머리를 둔중한 무언가로 때리는 것 같았다.

    던전 공략은 내게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십 년간 가상현실 게임을 하며 경험을 쌓은 내게 던전은 완벽한 놀이터이기도 했다.

    “기각!”

    “네?”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재료가 많다고 해도 어차피 합성을 하는 것은 나야. 내가 남는 시간에 합성을 한다고 해도 아이템을 몇 개나 만들 수 있겠어? 네 말대로 하면 나는 던전에 안 들어가고 합성만 해야 돼.”

    “아…….”

    티코이는 고개를 숙였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는 새로운 구상을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아이템을 대량 생산할 수 없다면, 다른 루트를 뚫어보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효율이 나쁘니까요. 기대하는 것만큼 수익을 얻을 수 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직원 고용 문제도 걸림돌이죠. 일반인을 고용하면 아무래도 보안에 문제가 생기니까요.”

    티코이가 결정을 내렸다는 듯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암시장을 이용하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위험하지 않겠어?”

    “게이머와 관련된 암시장 규모는 매년 급속도로 커지고 있습니다. 각국 정부가 손을 쓰지 못할 정도로요. 방법을 찾는다면 이쪽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저도 암시장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조사가 필요합니다.”

    “그래, 천천히 해.”

    이렇게 티코이 집에서 용건을 모두 끝마쳤다.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티코이가 애처로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가실 건가요?”

    “응, 며칠 뒤에 보자. 어차피 장비도 찾으러 와야 하니까.”

    “원하신다면 저…… 주무시고 가셔도 됩니다. 제 침실을 내드리고 제가 손님방에서 자면 되니까요. 홈시어터 시스템이 완비되어 있으니 원하시면 영화를 감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입가에 과자 부스러기를 잔뜩 묻힌 암젤이 검지를 흔들었다.

    “쯧쯧. 여우, 아직 주인님에 대해 잘 모르는군. 주인님은 일반 영화보다 여자들의 속살이 많이 나오는 동영상을 더 좋아한다고.”

    “아!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당장 주인님이 좋아할 만한 동영상들을 다운받아 대령토록 하겠습니다.”

    “됐거든!”

    티코이는 집 밖에 나와 암젤과 내가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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