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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33화 (3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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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033화

    오늘 공략할 곳은 과거 공원이었던 장소에 생성된 던전이었다. 넓은 부지의 절반 이상을 울창한 숲이 뒤덮고 있었다.

    당연히 던전이 생성된 후 이곳을 찾는 일반인들의 발길은 뚝 끊어졌다.

    집 근처에 있는 F급 던전과는 달리 이곳은 지하로 내려가는 구조이다.

    일반적으로 E급 던전은 7~10층 규모를 가지고 있는데, 이 던전은 7층짜리였다. 층수는 상대적으로 적어도 한 층의 면적은 평균을 훨씬 웃돈다고 알려졌다.

    이번에도 나는 던전 공략에 나서기 전에 인터넷으로 충분히 정보를 숙지했다.

    던전은 마치 내가 했던 가상현실 게임의 일부분을 그대로 현실로 옮겨놓은 것과 같다. 이 던전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게임에서도 같은 지역에 나타나는 놈들이었다.

    이곳 관리소는 상대적으로 딱딱한 분위기였다. 입구에서 슬쩍 들여다보니 나이 지긋한 소장이 안쪽 자리에 앉아 근엄하게 사무 업무를 보고 있었다.

    집 근처의 던전 관리소와는 제법 차이가 나는 풍경이다.

    젊은 여자 직원이 내게 물었다.

    “예약은 하셨나요?”

    “네, 조성오입니다.”

    나는 지갑에서 라이선스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 고양이도 동행입니까?”

    “네, 각성수예요.”

    각성수라는 말에 여자 직원의 얼굴에 살짝 놀란 표정이 스쳤다. 생각을 들여다볼 수는 없어도 마치 ‘이렇게 귀여운 각성수가 있다니!’ 하는 얼굴이었다.

    “안전한 공략 되십시오.”

    “네~ 수고하세요.”

    나는 암젤과 함께 던전 입구로 걸어갔다.

    지구에는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기괴한 형태의 나무가 입구 주위에 가지를 잔뜩 드리우고 있었다.

    크지 않은 입구가 검은 공동을 드러냈다.

    던전으로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옷을 갈아입는 것이었다.

    평범하지 않은 의상을 입고 집을 나섰다면 아마 본의 아니게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어 모았을 것이다.

    피오리오, 그리고 아르바난의 방어구는 게이머로 인식되기보다는 이상한 코스프레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 쉬운 의상이었다.

    새로 얻은 장비를 꺼내자 정보 창이 나타났다.

    [아르바난의 장갑]

    등급 : 레어

    효과 : 근력 +3, 마나 숙련도 +2, 활을 이용한 스킬 사용 시 마나 증폭 +5%, 적중에 따른 위력 증가 ×120%

    비고 : 아르바난이 궁신으로 불리기 전 즐겨 착용했던 장갑. 평범한 장갑이지만 그녀가 사용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프리미엄이 붙는다고 할 수 있다.

    [아르바난의 가죽옷]

    등급 : 레어

    효과 : 민첩 +4, 행운 +5, 활을 이용한 스킬 사용 시 마나 증폭 +5%, 연사 시 위력 증가 ×110%

    비고 : 아르바난의 채취가 가득 배인 가죽옷. 이 옷을 입으면 왠지 쏘는 것마다 백발백중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처음 얻은 피오리오 세트가 그러했듯 아르바난 방어구도 썩 대단한 물건은 못되었다.

    하지만 지금 내 수준에서 구할 수 있는 장비 중에는 최상급이라고 할 만했다.

    더 비싸고 좋은 방어구를 착용해 봤자 지금 상태로는 잠재력을 전부 끌어내지 못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되면 오히려 디버프를 받기 쉬웠다.

    암젤과 함께 던전 안으로 들어섰다.

    [E급 던전에 최초 입장했습니다.]

    [업적 ‘맵 제작자’에 대한 보상으로 맵이 제공되었습니다. 맵은 인벤토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당 던전에서 달성할 수 있는 퀘스트는 총 48개입니다.]

    1. 인판스 한 마리 처치하기(경험치 +300)

    2. 인판스 다섯 마리 처치하기(경험치 +1,500)

    3. 디플로 한 마리 처치하기(경험치 +400)

    4. 디플로 다섯 마리 처치하기(경험치 +2,000)

    5. 여덟 시간 안에 1층 돌파(경험치 +5,000, GP +30,000)

    …….

    공략 타임으로 여덟 시간이 주어졌으니 히든 퀘스트를 감안하면 최대 시간은 네 시간 안에 공략을 끝내야 했다.

    나는 맵을 꺼내어 머릿속으로 동선을 그렸다.

    모든 퀘스트를 달성하면서, 동시에 가장 빠르게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는 루트.

    “가자!”

    던전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흐느적거리던 암젤이 안광을 빛내며 빠르게 쫓아왔다.

    5

    숲이라는 테마를 가진 이 던전 1층에는 두 종류의 몬스터가 서식한다.

    하나는 땅에, 하나는 하늘에.

    첫 번째 몬스터와 조우하기까지 약 오 분가량 흙길을 걸었다.

    갈색 털로 뒤덮인 몸과 앙증맞은 꼬리를 가진 몬스터는 토끼와 같은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멀리서 활을 조준했다.

    쉬이익-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아간 화살이 토끼 등을 정통으로 맞혔다.

    퍽!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토끼를 닮은 몬스터의 본색이 드러나는 것은 지금부터다.

    화살을 맞은 토끼가 등을 곧추세웠다.

    “키에엑!”

    허공을 보고 괴상한 소리를 내지르더니 우득우득 형태가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보다 두 배 이상 덩치가 커진 몬스터가 흉물스러운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노란색 안광과 침이 흘러내리는 주둥이가, 방금 전까지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던 토끼라고는 믿을 수 없게 했다.

    “캬악!”

    훌쩍 도약하는가 싶더니 이십 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를 단숨에 좁혀왔다.

    나는 바자야를 등에 꽂고 인벤토리에서 창을 꺼냈다.

    타이밍을 재다가 스킬을 날렸다.

    ‘건샷 스피어!’

    쾅-!

    마치 총탄이 발사되는 것처럼 폭발음을 내며 길어진 창날이 몬스터의 가슴을 꿰뚫었다.

    “꾸엑!”

    [퀘스트 ‘인판스 한 마리 처치하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300이 주어집니다.]

    던전에 깊숙이 들어갈수록 펄쩍 펄쩍 뛰어다니는 토끼가 더 많이 등장했다.

    얼핏 보면 평화로운 광경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키악!”

    “캬아악!”

    공격을 당한 인판스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날뛰었다.

    “오 쉣! 언제 봐도 이놈들은 적응이 안 된다옹!”

    암젤의 말마따나 민첩성이 뛰어난 못생긴 괴물들이 사방에서 날뛰는 광경은 보기만 해도 피곤함이 몰려왔다.

    ‘연사!’

    ‘토네이도 스피어!’

    ‘건샷 스피어!’

    나는 아낌없이 스킬을 사용하며 전진하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마나가 떨어지면 일반 공격으로 전환했다가 마나가 차면 스킬을 사용한다.

    마치 액션 RPG 게임을 하는 것처럼 몬스터를 쓰러뜨려 나간다.

    나와 같은 감각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보면 신기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적어도 던전 안에서 나는 말 그대로 게이머의 현신이었다.

    적을 척살하는 데 감정 따위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레벨이 25로 올랐습니다.]

    [스탯 포인트 3을 얻었습니다.]

    나는 걸어가면서 스탯을 찍었다.

    인판스의 집단 서식지를 벗어나자, 확 트인 공간이 펼쳐졌다.

    마른 나무들이 곳곳에 서 있고, 그 위를 새 떼가 선회하고 있다.

    까마귀와 비슷한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그보다 부리가 크고 날카로우며 눈동자는 짙은 파란색을 띠고 있었다.

    “산 넘어 산이로구만. 똥쟁이 녀석들 아니냐옹.”

    암젤의 평가대로 디플로라는 이름의 이 비행형 몬스터들은 공중에서 똥을 싸면서 공격을 한다.

    이 똥이 강한 산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것들은 닿자마자 녹아버린다.

    그래서 디플로의 서식지는 항상 불모지화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바닥 여기저기에 퍼질러진 똥을 피해 밟으며 등에서 활을 꺼냈다.

    비행형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역시 원거리 무기가 최고다.

    “끼아악!”

    거리가 가까워지자 디플로들이 침입자를 인식하고 이쪽으로 날아왔다.

    똥을 싸기 위해 배를 부풀리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눈이 찌푸려졌다.

    퍽! 퍽!

    내가 쏜 화살은 정확하게 몬스터들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한 발에 즉사시키지 못하면 더 귀찮아지기 때문에 집중력을 유지하며 화살을 날렸다.

    [퀘스트 ‘디플로 한 마리 처치하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400이 주어집니다.]

    퍽! 퍽! 퍽!

    [퀘스트 ‘디플로 다섯 마리 처치하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2,000이 주어집니다.]

    개체 수가 많다보니 아무리 빨리 활을 쏜다고 해도 사정에서 벗어난 놈이 나오게 마련이었다.

    무리 중 유독 눈치가 빠른 한 녀석이 다른 몬스터 뒤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방향을 바꾸어 강하해왔다.

    대기 중이던 암젤이 전면에 나서서 몬스터를 노려보았다.

    “끼아악!”

    마치 보이지 않는 벽과 충돌하기라도 한 것처럼 디플로가 깜짝 놀라 공중으로 치솟았다.

    어쩔 줄 모르고 비틀대다가 급기야 다른 녀석들 머리 위로 똥을 싸지르기 시작했다.

    “끼악!”

    “캬아악!”

    암젤의 환각술이 모든 몬스터들에게 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디플로를 상대로는 꽤 효과가 좋았다.

    6

    [퀘스트 ‘여덟 시간 안에 1층 돌파’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5,000, GP +30,000을 얻었습니다.]

    [히든 퀘스트 ‘네 시간 안에 E급 던전 1층 돌파’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15,000, ‘아르바난의 부츠’ ×1을 얻었습니다.]

    [레벨 26이 되었습니다. 스탯 포인트 3을 얻었습니다.]

    1층을 통과했을 때 메시지가 여러 개 한꺼번에 나타났다.

    무엇보다 반가운 사실은 ‘아르바난의 부츠’를 얻어 또 하나의 방어구 세트를 완성했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티코이에게 수리를 맡기고도 운용 가능한 추가 방어구 세트가 생겼다.

    [아르바난의 부츠]

    등급 : 레어

    효과 : 체력 +3, 민첩 +6, 활을 이용한 스킬 사용 시 마나 증폭 +5%, 달리면서 화살 발사 시 적중률 ×120%

    비고 : 원래는 일반적인 부츠였으나, 수년에 걸쳐 아르바난의 발에 맞춰진 나머지 저절로 궁사 전용 부츠가 되었다. 중고라 길들일 필요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중고인 게 가장 큰 장점이냐…….’

    아르바난은 여성 궁사이다. 피오리오와 마찬가지로 게임 설정상의 전설 속 인물 중 하나인데 여성용 장비가 남자인 나에게 맞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이 세트는 모양도 그렇고 사이즈도 남자가 입기에 불편하지 않다.

    아르바난이 가슴이 밋밋하거나 발 사이즈가 남자만 했다기보다는 게임 편의상의 이유가 큰 것 같았다.

    모든 전설 속 인물이 남자가 아닐 텐데, 게임을 하는 유저는 나 하나뿐이다.

    내가 사용하지 못하면 아이템은 존재 가치를 상실할 테니까.

    정답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내 판단은 그러했다.

    [‘아르바난 궁사 세트’를 완성했습니다!]

    [세트 효과가 발동합니다!]

    [궁술 스킬 사용 시 마나 소모량이 25퍼센트 감소합니다!]

    [방어구로 인한 방어력 상승 효과가 15퍼센트 증가합니다!]

    [궁술 숙련도가 15퍼센트 빠르게 증가합니다!]

    아르바난 세트를 모두 얻고 나서 생기는 즐거운 의문 한 가지.

    과연 다음 히든 퀘스트 보상은 무엇일까?

    두 가지 클래스 전용 방어구를 모두 방출한 현재 같은 타입의 아이템을 또 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머릿속에 몇 가지 후보군이 떠올랐는데, 어떤 게 주어지더라도 나쁘지 않았다.

    “암젤, 밥 먹자.”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옹.”

    오늘은 어머니가 바쁜 관계로 누나가 대신 도시락을 싸 주었다.

    ‘누나 음식 솜씨는 어떨까? 한 번도 안 먹어봤는데 기대되네.’

    찬합을 연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단 첫 번째 칸에는 김밥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것도 한 가지 김밥이 아니라 종류가 다른 다섯 가지 김밥이다.

    두 번째 찬합을 열었을 때, 그곳에는 돈가스가 곱게 썰려 있었다.

    빛깔이나 냄새가 전문가의 그것을 방불케 했다.

    ‘거참, 시집 보내도 되겠네?’

    인간형으로 변신한 암젤이 대뜸 김밥 하나를 집어먹었다. 즐거운 얼굴로 김밥을 씹는 그녀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해갔다.

    “어? 이 맛은…… 김밥 천…….”

    전문 프랜차이즈 김밥 맛이 날 정도로 맛있다는 건가?

    나도 그녀를 따라 김밥을 집어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가만…… 이 맛은 김밥 천ㄱ…….’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돈가스도 한 점 집어먹었다.

    ‘……익숙한 맛이군.’

    세 번째 찬합을 열자 그 안에는 떡볶이가 가득 담겨 있었다.

    보온병에 넣어 준 것은 다름 아닌 오뎅 국물이었다.

    ‘누나가 많이 바빴구나.’

    어쩌면 요리 자체를 해본 적이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뭐 2퍼센트 아쉽기는 하지만 김밥 천X의 맛은 전국적으로 공인된 것이니까.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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